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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 (눅 18: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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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 (눅 18:9~14)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성령충만한 삶을 원한다. 자신감 있고, 생명력 있는 파워풀한 삶, 기도의 응답을 받는 삶, 생각만해도 마음이 뜨거워지고 의욕이 생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망일뿐 자신 삶 속에서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답답하고 짜증나는 삶이 반복되는 것이다.

(딤전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거룩함의 비결은 말씀과 기도라는 두 가지 방편을 통해서 이뤄진다는 사실을 바울은 말하고 있다.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면, 기도는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과 같은 것이다.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보며 탄식만 하지 말고 오늘 말씀을 인하여 자신의 삶에 영적인 대전환이 이뤄질 줄로 믿고 말씀을 듣기 바란다. 

오늘의 주제는 기도다. 기도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는 예수님 당시의 신자들에게도 똑같이 나타난 현상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기도 생활에 실패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 비유의 목적도 신자들에게 나타나는 기도 생활의 실패를 회복시켜 주시기 위한 것이다. 

그 첫 번째가 바로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에 관한 것이다. 이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눅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1)기도할 때 포기하지 말고 열심을 품고 부르짖으라는 것이고,
2)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첫 번째 비유가 기도의 방법이라면, 두 번째 비유는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에 관한 것이다. 두 가지 면을 잘 이해하고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가 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는 서로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종교적 모범생인 바리새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백성들 사이에서도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세리였다. 본문은 먼저 바리새인의 기도를 소개하고 있다.


1. 바리새인의 기도

(눅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눅 18:12)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 따로 서서
‘바리새인’란 말은 ‘분리된 자’란 뜻이다. 그들은 무리들과 섞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름대로 그들은 따로 있는 것을 좋아했다. 스스로 종교적 우월감에 빠져 모범적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삶의 모든 부분에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를 원했다. 그래서 함께 기도하는 자리에서도 따로 나와 앞자리에서 기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유별난 태도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경계하셨다. 
(마 6: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2) 그들의 기도의 내용은 어떠했는가?
(눅 18:11)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눅 18:12)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토색, 불의, 간음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웃에 관계된 계명을 잘 준수하고 있다는 것이며, 세리와 같지 않다는 것은 로마의 정권에 빌붙어 세금을 징수하는 세리의 매국적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부도덕하고 비겁한 일들에 가담하지 않은 것을 인해 감사하였고, 금식과 십일조 드리는 것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와 같은 바리새인의 행동은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저런 기도를 할 수 있나?’ 일반 대중의 기도는 대부분 요청하는 기도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바리새인의 기도는 요청의 기도를 넘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기도드리는 것에 대하여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반면에 세리의 기도는 어떠했는가?


2. 세리의 기도 

(눅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 멀리 서서
지성소 건물이 있는 곳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진 자리에 서서 기도하였다. 차마 가까이 갈 염치가 없었다. 죄송한 마음으로 구퉁이에 서서 기도하였다. 청년 시절, 처음 교회 나갔을 때 감히 앞자리로 나갈 수가 없었다. 교인들은 다 거룩한 사람으로 보였고 나만 죄인처럼 느껴져서 맨 뒷 자리에 앉았던 기억이 난다.

2) 기도 자세
범죄자들이 끌려 들어오는 모습은 보면 대부분 상의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의 죄에 대한 부끄럼이 있기 때문이다. 세리도 역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감히 하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리고 가슴을 쳤다. 말씀대로 살지 못한 자신의 나태함과 연약함을 스스로 책망하는면서 가슴을 쳤던 것이다.

3) 기도의 내용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자신이 구제 받을 수 없는 죄인인 것을 알 때 이런 기도가 나오는 것이다. 세리는 자신의 죄인된 것을 고백하면서, 감히 하나님 앞에 긍휼을 구하였던 것이다. 사람들 보기에도 좋은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의 것을 탈취하듯 세금을 징수하고 자신이 행한 행동들이 너무 괴로워서 염치 없지만 성전에라도 나와서 기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나온 것이다. 


3. 하나님의 응답 - 누구의 기도를 들으셨는가?

(눅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세리의 손을 들어 주셨다. 사람들은 깜짝 놀랬을 것이다. 아니 어떻게 된거야?
외면적으로 보면 당연히 바리새인의 손이 올라갔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한다고 다 응답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자세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1)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의 기도를 거부하신다는 것이다.
(눅 18: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문제의 발단은 자신을 의롭다고 믿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리새인은 자신을 의롭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도 가지고 있는 일반적 성향인데 자신을 의롭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면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않는다. 

바리새인은 다른 사람을 멸시하였다. 그 멸시하는 행동이 자칭 의로움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자신이 의롭다고 믿는 것까지는 좋으나 그 믿음으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정죄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잘못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특별히 교회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 성경에 대하여 지식이 있다는 사람들, 신앙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바리새인이 자랑스럽게 말한 것처럼, 토색, 불의, 간음한 적이 없고, 주일성수하고, 십일조 잘 드리고, 봉사도 잘한 사람들이다. 

본인들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옳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툼이 일어나고 소란해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하는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딤전 6: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딤전 6:4)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착각에서 벗어나는 길은 성령의 은혜를 덧 입는 것이다. 성령께서 각자의 심령을 주장하지 않으시면 자기가 나오게 되어 있고, 십자가를 자랑하지 못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사도 바울도 이전에 예수님을 알지 못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했다. 그러나 예수를 진정 만난 후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2) 하나님은 겸손한 세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13절 말씀의 내용을 요약하면, 세리의 기도에서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겸손, 둘째는 애통, 셋째는 죄의 고백, 넷째는 긍휼 요청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윗의 참회시에서 이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시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왕의 신분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죄를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 것이다. 자신의 죄인됨을 알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자의 기도를 받으신다.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주기철 목사님과 조만식 장로님 사이에 있었던 일화가 있다.
어느 주일날 예배에 조장로님이 예배에 늦어 설교 중에 들어왔다. 이때 주목사님은 조장로님을 향하여, ‘장로님 오늘은 의자에 앉지 말고 서서 예배를 드리세요’라고 말했다. 옛 스승인 노장로에게 너무나 가혹한 처사였다. 그러나 조장로는 그대로 순종했다. 설교를 마친 후 주목사는 조장로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조장로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애국 운동한다고 사람을 만나다가 하나님 만나는 예배 시간에 늦었습니다. 목사님이 얼마나 마음 아프시면 설교하다 말고 이토록 책망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종을 마음 아프게 한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은혜스러운 설교를 듣던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 것을 방해한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조장로가 눈물로 회개 기도를 하자 주목사와 온 교우들이 함께 울었다. 사람들은 과연 ‘그 스승의 그 제자, 그 목사의 그 장로’라며 칭찬했다고 한다.

여러분, 오늘날 사람들이 부끄러운 것을 잘 모른다. 하늘 두려운 줄을 모른다. 죄의식이 사라진 시대, 죄에 대하여 둔감해졌다. 사람들의 마음이 각박해졌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마 11: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마 11:17)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세리처럼 가슴을 쳐야 한다. 위선은 일시적으로 자신을 속이고 다른 사람들도 속일 수 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한다. 세리와 같이 자신의 죄인된 것을 고백하고 조용히 주 앞에 엎드려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특별새벽기도회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이제 남은 4개월, 자신을 바로 알고, 겸손히 세리처럼 주님의 긍휼을 바라고, 주 은혜 안에 거하길 원하는 분은 이 자리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도를 잘 못해도 괜찮다. 그냥 기도의 자리에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세리처럼 통회하는 심령과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마음으로 나오길 바란다. 이 새벽에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위로와 힘을 얻는 시간이 되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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