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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기훈련 방법 (고전 9: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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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훈련 방법 (고전 9:24~27)


세계 각국에서 뽑힌 대표 선수들이 영광을 메달을 따기 위해 그동안 오늘을 기다리며 훈련했던 기술을 마음껏 발휘하며 경쟁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절제하며 땀과 눈물을 흘렸던 결과는 경쟁에서 더욱 빛났습니다. 이번 2008년 북경 올림픽은 한국 사람들의 위상이 이전 보다 더욱 올라간 올림픽으로 금메달의 획득 수가 역대 경기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획득해 총 13개를 얻어 금년 처음 목표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얻습니다. 오늘 폐막식을 통해 한국은 전 세계에서 7위로 스포츠 강국이라는 닉네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경쟁 속에 삽니다. 올림픽에 참가한 모든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선의의 경쟁을 펼쳤습니다. 땅에서든 하늘에서든 선의의 경쟁에서 우수한 선수들은 메달을 획득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국가 대표 선수로 발탁되었으나 빛을 보지 못한 선수들도 있는데 이런 선수들도 국가적, 국민적 차원에서 배려하고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훌륭한 운동선수와 얘기를 나누면서 물어봤습니다. "매일 반복하는 연습이 너무 힘들지 않으세요?" 그런데 그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재미있으니까 하지요." 

그런데 운동선수들이 연습하고 훈련하는 것을 볼 때마다 깨닫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만일 운동선수들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만큼 공부에 전력한다면 누구든지 성공할 것 같습니다. 옛날 아테네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였던 고린도에서도 경기가 있었는데 그래서 바울은 '인생을 올림픽 경기와 같다'고 비유하였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경주자요. 인생은 올림픽이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인생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24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헬라에는 올림피안 경기, 피티안 경기, 네미안 경기, 이스트미안 경기 등 4대 경기가 열렸습니다. 그중에 하나인 고린도에서는 매 3년마다 '이스트미안 경기(Isthmian games)'가 열렸다고 한다. 올림픽과 같은 이런 경기가 열리면 대규모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이 경주만을 위해 먹고 자고 훈련만 했다고 합니다. 대규모 경기에 출전해서 승리자가 되는 것이 당시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명성을 안겨주었고 가문에서는 지극히 영예로운 것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부와 명예가 주어졌습니다. 이스트미안 경기(Isthmian games)에 출전하기 위해서 선수들은 최소한 10개월 동안 예비훈련을 받아야 했고, 경기 시작 30일 전에 경기장에 집합하여 엄격한 훈련에 임했습니다. 정말 고되고 금욕적인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운동선수들이 훈련하는 광경을 보다가 아주 단순하면서도 의미 깊은 교훈을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과 몇일이 지나면 시들어 없어질 나뭇잎 월계관을 얻기 위해서도 저렇게 고되고 엄격한 훈련을 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 얼마다 더 부단한 자기훈련을 해야 하겠는가?라고 경기에서 신앙의 교훈을 얻은 것입니다.

자기 훈련이 잘 된 사람이 성공합니다. 우리가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기훈련의 좋은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자기 훈련의 방법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 사도께서는 성공적인 운동선수의 모습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켜 훈련하는 방법을 적용해 봅시다. 자기 훈련을 어떻게 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1. 자기를 다스리는(Self control)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훌륭한 운동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잘 다스리는 엄격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즉 바울이 활동하던 당시 '이스트미안 경기(Isthmian games)' 운동에 출전한 선수들은 10개월 동안 연습을 하면서 결코 포도주를 마실 수가 없었고, 단호한 다이어트와 식이요법의 습관을 길러야 했습니다.

여기 본문 25절에서 "절제"라고 번역되는 낱말은 굉장히 강한 단어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strict training'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아주 엄격한 훈련'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엄격하고 철저하게 잘 다스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 아침에 우리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자기 훈련, 즉, 절제해야 할 여섯 가지 항목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①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다스려야 합니다.

성공적인 사람일수록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들까지도 기꺼이 해내는 자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의 관계 속에서 감정 컨트롤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기분이나 감정에 쉽게 좌우되는 경향은 없지 않습니까? "나는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니야! 나는 지금 그런 일 하고 싶은 무드가 아니야!" 성도 여러분은 자신의 결정이 몇 퍼센트가 기분 따라 좌우 되는 것 같습니까?

잠 25:28절에 "자기의 기분을 자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이 무너져 성벽이 없는 것과 같다"고 교훈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통계에 의하면 기분에 좌우되는 사람일수록 성공자가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자기 훈련이 안 될수록 기분과 감정의 희생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사장 개인적 기분 때문에 회사 전 직원들이 하루 종일 스트레스 받고, 분위기를 망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에 사로잡히고, 주님께 사로잡힘으로 육의 소욕의 기본인 감정과 기분을 잘 다스리고, 오직 성령 충만함으로 자신의 기분을 다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② 자신의 입술(말)을 주의해서 다스려야 합니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일수록 <하필이면 가장 안 좋은 때에 안 좋은 말을 합니다.> 그래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입이 방정맞은 것이 화근이 될 대가 많습니다. 성도 여러분이 성공적인 업 라이프의 삶을 살기 원한다면 입술과 특히 혀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잠언 21:23절에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③ 자신의 반응을 자제해서 다스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잘못했을 때 떤 현실 속에서 벗어나 그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젓해하는 초연해 하는 자세는 훌륭한 인격의 큰 덕목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잘못했을 때 그를 미워하지 않도록 나를 다스리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나를 화나게 만들었어! 당신이 내 기분을 건드렸어! 당신이 내 감정을 상하게 했어!"라고 상대방에게 시비를 걸고, 삐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잠언 19장 11절에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은 사람의 슬기요."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훈련이 잘된 사람일수록 수동적(reactive)이지 않고, 스스로 내켜서 움직이는 자세 즉, 능동적(proactive)으로 삽니다. 잠 16:32절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낫다"고 교훈합니다. 철저한 훈련으로 반응까지 잘 다스림이 필요합니다.

④ 자신의 계획(스케줄)에 충실하고 목표에 집중해야 합니다.

자기 훈련이 잘된 사람은 인생을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살지 않습니다. 본문 26절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여기서 ‘향방 없는 것’이란 ‘목적이 불확실하다’란 뜻입니다. 경주자인 자신이 결승선이 어딘지도 모르고 달린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습니까? 그 결과는 뻔한 일이다. 바울은 목표와 방향이 분명했습니다. 빌4:13-14절에“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바라보고 계신 것처럼 자신 역시 눈을 그리스도에게서 떼지 않고 살았다는 고백입니다. 선수가 목표도 없이 헛되이 주먹만 허공에 휘두르는 그런 싸움을 한다면 분명 그는 패하고 말 것입니다. 성도는 구원의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닮고자하는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영생을 취하고자하는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영생은 변할 수 없는 성도들의 영원한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올림픽 출전 선수들이 어떻게 세계를 놀라게 하며, 역대 세계 기록을 갱신한 장미란 선수 등 많은 선수들과 한국 야구가 9전 9승 즉, 전승으로 한국 100년 야구사에 최고 기록을 세울 수 있었습니까? 끝까지 집중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갔기 때문이었습니다. 9회 말 2대 3으로 이기고 있었지만 말에 수비하다가 1루에서 3루가지 나간 상태에 원 아웃이었습니다. 두 명 중 한명만 안타를 치고 나가도 질 판이었고, 억울한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선수도 퇴장 당했습니다. 그러나 집중하여 병살타를 유도하여 올림픽 금메달을 땄습니다.

인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발명품을 개발한 사람은 어떻게 매순간 창의력을 가지고 움직이면서 비전을 융합시킬 수 있었습니까? 집중이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였습니다. <집중은 성공을 만드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성공은 무엇에 집중해야 합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성도 여러분의  꿈이 보이고 여러분의 장래가 보이며, 천국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계획에 충실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규모 있게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훈련이 잘된 성공 자답게 규모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살후 3:6-7,11). 규모 없이 사는 사람일수록 일만 만드는 자가 됩니다.

⑤ 자신의 물질(돈)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 설교 중 2/3는 돈 관리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자신의 물질과 돈 관리를 얼마나 신용 있게 관리하고 계십니까? 인생은 돈이 말해줍니다. 미국 사람들은 수입의 4%만 저축하고, 유럽 사람들은 16%, 일본 사람들은 25%를 저축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히려 남에게 빚을 많이 지고 사는데 세계에 그런 국민을 가진 국가는 보기어렵다고 합니다. 선진 국민일수록 은행을 거래하여 자기 분수에 맞게 돈을 조달하고, 후진 국민일수록 개인적으로 돈을 거래하다가 배신을 당하는 등 관계가 깨지는 불상사가 많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만큼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쉽게 사고, 많이 사는 사람들이 없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이나 일본 사람들보다 돈을 훨씬 잘 씁니다. 허황되고 낭비적입니다. 불란서 말에 "부르주아(bourgeois)"라는 말이 있는데, 원래는 그저 "중산 계급의 시민, 혹은 자본가"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러나 요즘 이 말은 거의 부정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역사적 이면은 이렇습니다.

유럽에서 15세기를 전후하여 중상주의 기풍이 일어나므로, 이제까지 귀족들 밑에서 기를 펴지 못하던 중산층이 갑자기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그 돈으로 자기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던 귀족들의 행세를 흉내를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술에 대한 조예가 없으면서도 그림을 사 모으고, 집도 비록 세련미를 갖추지 못하면서도 휘황찬란하게 꾸밉니다. 귀족들처럼 극장과 음악회에 자주 드나들면서 온갖 추태를 부립니다. 그저 단순히 돈으로 귀족행세를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돈이 있게 되자 진짜 귀족들보다 더 못되게 가난한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래서 "부르주아(bourgeois)"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은연중에 부르주아(bourgeois)가 되어 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자기의 것으로 여기고 자기만을 위해 사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추태부리는 부르주아(bourgeois) 졸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물질을 맡겨 주셨다>는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가진 자들의 절제 없이는 유지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자본주의 사회는 청교도들과 같은 칼빈주의자들의 내적 세계는 엄격한 금욕주의 신앙 원칙에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 여러분이 번 돈보다 쓴 돈을 결산하고 계산하고 계십니다. 돈을 잘 관리해서 자기를 잘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⑥ 자신의 건강을 잘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육체(몸)을 고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 몸은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입니다(고전 6:19). 그러므로 성결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몸을 더럽히는 것을 먹거나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혼이 건강할 수 있습니다. 롬 8:13절에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자기 훈련이 잘된 사람일수록 식욕관리를 잘합니다. 탐식과 과식을 절제해야 합니다. 잠언 23장 2절은 현대인들에게 너무나 적합한 말씀입니다. "식욕이 마구 동하거든, 목에 칼을 대고서라도 억제하여라." 그렇습니다. 건강 지침 대헌장인 셈입니다. 특히 함께 식사하는 파트너에 따라 다이어트의 결심이 쉽게 무너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 훈련에서 다스리는 방법 중 식욕까지 잘 다스려야 건강을 유지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공적인 사람일수록 자기 훈련이 잘된 자들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기분, 언어 중 혀와 말, 반응, 스케줄관리, 물질과 돈, 그리고 자신의 몸과 건강관리를 잘하는 자들입니다. 자기를 잘 다스리는 자가 자기를 훈련할 줄 아는 사람임을 깨닫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2. 자기를 이기는(Self conqueror)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보다 더 성공적인 인생이 되기 위해서 한 차원 더 높은 훈련을 소개합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꾸준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경쟁의 대열에 들어가기 위해서 꾸준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요즘 인기 있는 책 중에 ‘계속모드’란 책이 있습니다. 일본인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는 ‘계속하는 놈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목표달성이 쉬워지는 계속하는 기술로 이삭처럼 한 우물을 파라>는 것입니다. <습관을 기술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이기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큰 화제는 단연 박태환의 수영에서의 금메달이었습니다. '그의 금메달은 4천억 원의 효과를 거뒀다'고 언론에서 평가했습니다. 그는 어릴 때 천식 때문에 수영을 시작했는데 그때 수영장에서 '노민상 감독'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당시 '노민상 감독'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지도하는 강사였습니다. 박태환은 하루에 18km나 되는 거리를 훈련했습니다. 우리나라 수영은 아시아에서만 조금 통할 뿐 세계무대에서는 메달 꿈을 꿀 수 없었습니다. 아예 꿈을 접고 세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않았지만, 그러나 어릴 때부터 준비한 박태환은 예상을 뒤엎고 세계 정상을 제치고 금메달을 딴 것입니다. 

박태환은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12년 동안 습관적으로 수영만 했고 선수로 발탁되었습니다. 철저한 준비의 결과는 엄청난 결과를 얻게 했습니다.

그것은 곧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훈련에서 승리한 결과 입니다(27절). 마라톤 선수들이 하나같이 똑같게 말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마라톤 경기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어떤 고개 길 언덕을 오르내리는 과정이 아닙니다. 힘든 요소는"자기와의 고독한 싸움"이라는 사실입니다.

운동 경기에 있어서 스포츠 해설자들이 선수들의 개인 자질을 놓고 이야기하는 중에, "승리는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말을 종종 합니다. <자기를 이겨야 상대방을 이긴다>는 원리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신앙생활의 성공에는 먼저 "자기 자신부터 복종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27절에서 굉장히 강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나는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킵니다" 이 말은 헬라어로 '두라고게오(dulagogeo)'인데, '노예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나를 굴복시켜 지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합시다. <나의 고집, 나의 사상, 나의 경험과 경력, 자기 사상과 자기주장을 노예로 만들겠습니다.>는 결단이 있어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먼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를 쳐서 굴복시키는 내적 싸움이 필요>합니다. 본문 25절에서 ‘절제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정복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수는 기록도 중요하지만 질도 뛰어나야 합니다.> 

이번에 박태환 선수가 더 주목받는 이유는 금메달을 따고 난 다음에 한 말 때문입니다. ‘나는 그에 비하면 아직 갓난아기다.’라고 자신과의 사움에서 이겼습니다. 

그리고 금메달을 기대했던 여자 양궁 박성현 선수는 아깝게 중국에게 졌지만 '그들의 매너는 중국인을 감동시켰다'고 합니다. 경주자는 기록과 함께 질이 좋아야 합니다. 경주자는 달리는 동안 무엇을 하며 달렸느냐? 어떻게 달렸느냐? 어떤 목적으로 달렸느냐? 가 보다 중요합니다.

성도 여러분의 영적 성숙을 가로막는 적은 누구입니까? 믿지 않는 부모, 믿음 없는 남편, 말썽 피우는 자녀들, 당신을 괴롭히는 이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기를 죽이지 못하는 신앙생활은 헛손질하는 노력과 같다>고 설명합니다.

본문 26절 하반부를 보세요. '링 위에서 싸우는 권투 선수들이 많은 주먹질을 하지만 상대방을 때리지 못하면 힘만 더 빠지고 맙니다. 헛손질을 크게 하면 상대방을 때린 것보다 훨씬 더 힘의 손실이 많다'고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자기를 죽이지 못하고 남을 죽이려고 하니까 얼마나 힘듭니까? 괜한 헛수고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하여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합니다(고전 15:31).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떤 자기 훈련 방법이 필요합니까?

①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 16:24절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본받는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당부하십니다. 

토마스 아 캠피스는, "남을 미워하는 것은 남도 죽이고 나도 죽이는 행위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남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나를 미워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가정이 복잡하여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와 말다툼하고, 형제는 서로 싸우고, 식구들은 서로 욕하고 다투는 상태였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집 안엔 불평만이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이웃집은 3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이므로 옥신각신하기 쉬울 텐데 아무런 풍파도 없이 언제나 평온했습니다. 하도 부럽고 존경스러워 물어봤습니다.

"댁의 가정은 어떻게 그리 평화스럽습니까?" 대답은 참 신기했습니다.
"선생님 댁은 옳은 사람만 한 데 모여 살지만, 우리 집은 틀린 사람뿐이니까요?" 의아스럽게 듣는 그에게 그 이웃은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댁에서 가령 실수하여 항아리를 깼다고 합시다. 즉시 '누구야, 이런 곳에 분재를 놓아둔 놈은?' '당신은 눈도 없어요?"라고 맞붙어 싸우면서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아, 내가 그런 곳에 화분을 놓아둔 것이 잘못이에요.''아니에요. 제가 부주의한 탓이지요.'하며 서로가 자기 잘못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평화롭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철저히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가 행복을 만들고, 특히 위대한 신앙생활의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② 경건의 연습을 해야 합니다.

운동선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듯이,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진정한 승리자가 되려면 경건의 연습이 부단히 필요합니다. 딤전 4:8절에 "육체의 운동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의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합니다." 이 경건의 훈련은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에서의 생명을 약속해 줍니다. 

우리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올림픽에서 분투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번쯤 우리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비전을 품고 목표를 정하고 땀과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반드시 영광을 메달을 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늘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행한 대로 보상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계22:12절에“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말씀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줄 상을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일한 대로 각 사람에게 상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런 주님의 약속이 있기에 우리는 상 받기 위해 열심히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져야 영광의 그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경주자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바울의 고백 27절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거듭 말하지만 인생은 경주자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푯대를 바라보고 달음질해야 합니다.> 

만년 동메달에 머물렀던 최민호(28·한국마사회)는 유도에서 첫 금메달이 결정되자 통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무엇보다 그런 아들을 보며 더 가슴을 치며 눈물을 삼키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준 사람은 그의 어머니 최정분(58)씨였습니다.

'그는 한창 클 때 제대로 먹지도 못 하고 살만 뺐다고 합니다. 키 크는 주사라도 맞히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부모로서 제일 가슴 아픈 일은 제대로 먹이지 못해서 아들의 작은 키(163cm)가 자라지 않았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크고 작은 대회 때마다 동메달에 그쳐 별명이 '동메달 그랜드슬래머'였습니다. 

민호는 시상식이 끝난 뒤 그래도 매일 울 정도로 힘든 훈련이었지만 "운동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했다"고 회상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유도선수로는 힘든 전 경기 한판승으로 승리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그는 만연 3등에서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훈련하고 꾸준히 연습했기 때문에 오늘의 영광을 얻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경건도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날마다 경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1등 지상주의, 지나친 경쟁의식 때문에 세상의 노예로 전락해서는 안 됩니다. 혹시나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84㎏급 동메달리스트인 스웨덴의 '아라 아브라하미안'처럼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시상대에서 보여줘서는 안 될 추태를 보여서는 안 됩니다. 그는 시상대에서 메달을 던지고 나가버렸습니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공정한 곳은 없습니다. 세상이 아무렇게 산다고 우리도 되는대로 살 것입니까? 우리는 경건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신앙의 인격과 질도 중요합니다. 

올림픽 최초의 8관왕을 노리는 미국의 수영천재 '마이클 펠프스'는 출전한 종목마다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하나씩 추가하며 역대 올림픽의 최고 금메달 기록을 갱신하고 8관왕을 수립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400m 계영이었습니다.

4명이 100m씩 번갈아 가며 뛰는 이 종목은 나 혼자 잘한다고 금메달을 딸 수 없습니다. 미국 팀은 10m를 남겨 놓았을 때까지도 호주 팀에 뒤지고 있었습니다. 그 마지막 10m에서 레작 선수가 무서운 스퍼트로 극적인 뒤집기에 성공했을 때 첫 번째 영자였던 펠프스는 수영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언론들이 ‘1분간의 포효’라고 표현할 정도로 오랫동안 그의 환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펠프스가 포효하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것’의 의미를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함께 가야할 경주자들입니다. 바울처럼 하나님이 주신 모든 권리를 내려놓고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스스로 종이 되어 남의 유익을 먼저 구할 때, 그곳에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찾아오고 천국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는 누구십니가? 우리의 구세주, 만왕의 왕이시며 우리의 구원이 되십니다. 그분의 말씀의 트랙을 달리고 달려서 승리의 면류관을 쓰시는 성도들이 되도록 경건의 노력을 경주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 경건의 연습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먼저 첫째 말씀 묵상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영적 성장에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전서 2:2절에 보면: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갓난 아기들이 어머니의 젖을 찾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해야 한다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어린 아기가 젖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하듯이, 영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는 성경말씀을 먹어야 할 것입니다. 어린아기들은 3-4시간만 되면 젖을 찾는데, 재빨리 젖을 주지 않으면 아기는 울게 됩니다. 아기는 젖을 먹어야 조용해지며, 잠잠해집니다. 시편 19:10절에 보면 성서는 꿀보다도 더 달다고 말합니다. 우리성도들은 신령한 젖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 꿀보다 더 단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갈망하고 목말라해야 한다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하여 성경을 읽어야만 합니다. 

히브리서 5:11-14절을 보면: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멜기세덱에 관하여 할 말이 많으나 성도들이 말씀을 깨닫는 것이 둔함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구원받은 자가 오래되어 이제는 신앙이 대학생 수준이 되어야 할터인데, 아직도 유치원학생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성도들이 많다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말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어야할 사람들이 아직도 신앙의 초보를 배워야만 하는 수준에 항상 머무르고 있다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탄식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젖을 먹고 성장하여, 이제는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 무엇이 악한 것이고, 무엇이 선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는 것은 영적인 일을 효과적으로 행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디모데후서 3:16-17절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모든 성경은 유익하다고 했는데 어떤 점에서 유익합니까? 교훈과 가르침에서 유익합니다. 우리는 올바른 교훈과 가르침을 받아야 올바로 살아갈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올바른 교훈과 가르침을 줍니다. 성경은 또한 책망을 통해서도 유익을 줍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를 말해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죄가 무엇인지를, 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말해줍니다. 더나아가서 성경은 우리를 바르게 해주는데 유익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마음속 깊은곳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한 삶을 살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제공해줍니다. 성경은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데 유익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실아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십니다.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의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기록된 말씀으로 우리 성도들의 삶에 교훈과 책망을 주며, 우리를 바르게 하고 의로운 삶을 살수 있는 훈련을 주기에 유익합니다, 이 모든 것의 목적은 우리가 온전케 되어 선한일을 잘 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은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한자가 되고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둘째 기도생활을 통해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경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성공자들의 공통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일평생을 말씀 묵상과 기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함을 힘입어 자기를 이기며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그 훌륭한 모범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언제나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처럼 많은 상처와 아픔, 쓰라린 고통, 배신감 등을 오직 말씀 묵상과 뱀을 지새우는 눈물 젖은 기도로 극복했습니다. 위대한 군왕이지만 눈물로 베개와 담요까지 다 적시는 자기 정복의 싸움을 겪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다스릴 수가 있었고, 자기를 거뜬히 이겨낼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의 삶을 보십시오. 그분은 그 바쁘신 와중에서도 언제나 틈을 내어 한적한 곳에 가셔서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삶을 사셨습니다(막 1:35).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존심을 극복 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는 진통을 겪으면서 자기를 다스릴 수가 있었고, 자기를 거뜬히 이겨낼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오직 말씀과 기도를 통한 성령 충만함을 힘입어 자기를 다스리고, 자기를 이기는 성공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말씀 묵상과 기도로 위대한 경건의 성공자가 된 사도 바울은 이런 멋진 간증을 합니다.

갈 2:20절에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이 자기를 훈련하되 자기를 다스리는 훈련, 자기를 이기는 훈련을 통해 금메달 신앙인이 되시고, 면류관 받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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