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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의 은혜를 함께 나누라 (고전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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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의 은혜를 함께 나누라 (고전 16:1~4)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까지는 고린도교회의 여러 가지 신학적인 문제나 또는 교회 내에 파생되는 각가지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명쾌한 대답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교인들이 이혼을 해야 하는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야 되는가, 성만찬 예식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교인들 간에 소송이 생겼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말 부활은 있는 것인가, 이런 많은 문제에 대한 고린도교인들의 질문에 대한 사도바울의 명쾌한 대답이 1장부터 15장까지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16장을 통해서 이제까지의 모든 문제를 다 깨끗하게 정리를 하고 헌금에 관한 성서적인 의미를 전달하면서 이 16장을 마감을 하게 됩니다. 헌금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민감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성경적으로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고 헌금에 관한 올바른 말씀을 교우들이 배우게 되면 축복받는 비결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헌금은 단순히 돈을 하나님에게 바치는 행위가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교우들이 가장 확실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헌금을 드릴 수 있겠는가에 대하여 사도바울이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에 관한 이야기는 16장 1절에 나와 있습니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이야기하기를 성도들에게 바치는 헌금에 관해서는 내가 전에 갈라디아교회 교인들에게 했던 것처럼 해라. 그러면 사도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게 헌금을 어떻게 하라고 했을까요? 실제 갈라디아교회에 관한 언급은 자세히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사도바울의 이야기는 헌금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헌금을 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헌금에 관한 이야기를 로마서에서 했고 고린도전후서와 갈라디아서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고 사도행전에서도 언급을 했습니다.

그럼 사도바울이 지금의 유럽에 있는 여러 교회, 갈라디아교회 데살로니가교회 고린도교회에 헌금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때에는 한 가지 목적 때문에 언급을 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의 교우들이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그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와 교우들을 돕기 위하여 지방에 있는 다른 교회들이 힘을 모아 헌금을 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1절에 성도를 위하는 연보!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오시면 예배 중에 헌금을 합니다. 이 헌금은 어디에 주로 쓰여 질까요? 물론 교회 관리하는데 많이 쓰여 집니다. 건물 관리 하는 데나 인건비, 교회 사역을 위해 쓰여 집니다. 우리 600명 가까이 되는 어린이들을 위해 많은 예산이 쓰여 지고, 해외에 파송된 선교사님을 후원하기 위해서 또 우리교회가 하고 있는 구제사업,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우리 교회에 들어오는 걸인들의 숫자가 아주 만만치 않습니다. 목요일에는 하루에도 몇 만원씩 나갑니다. 한 사람 앞에 500원씩 밖에 주지 않습니다. 다른 교회도 다 마찬가지이지요. 그런데 어떤 때는 하루에 3,4만원씩 나가고요, 1주일에 걸인들에게 나가는 돈이 10여 만원이 넘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교인들뿐만 아니라 교회 다니지 않는 분에게도 한 5,60명을 정해서 매달 일정한 금액으로 그 분들을 구제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많은 헌금을 가지고 아름다운 곳에 사용을 하나요! 

근본적으로 여러분이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에 드리는 것은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인데, 결국 하나님께 바쳐진 이 예물은 성도들을 위하여 아름답게 쓰여 집니다. 개업을 하시거나 결혼을 하시거나 장례가 나거나, 아니면 가정에 필요한 것들, 도움이 필요한 것들을 교회가 그런 곳에 헌금을 다시 사용하지 않습니까? 결국 교회는 여러분이 드린 헌금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기 위하여 교우들을 돕기 위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에 중국과 미얀마 에 있었던 지진과 해일 피해를 위하여 헌금을 하셨지요? 그것을 교회가 교단을 통하여 다 전달을 해서 중국과 미얀마에 아름답게 쓰여 지고 있습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바쳐지지만 그 헌금이 쓰여 지는 곳은 바로 사람들을 위하여 쓰여 집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작은 정성이 모아저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아름답게 쓰여 집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사도바울은 성도들이 헌금을 할 때 어떤 자세를 가지고 하는가? 이 부분에 관해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몇가지 중요한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2절에 나옵니다.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각 사람이 헌금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나는 나이도 많고 직업도 없고 정기적인 수입도 없으니 나 같은 사람은 헌금을 하지 않아도 되고 돈 많고 부자고 정기적인 수입이 있고 직장이 있고 사업하는 사람이 헌금하는 것이 아닌가!”혹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각 사람이 헌금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하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교회에 헌금을 하면 여러분의 마음이 교회에 담겨져 있습니다. 가난하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개인적으로 도왔다고 하면 그들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을 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드린다고 하는 말은 내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친 헌금 속에 담겨져 있는 우리의 감사하는 마음을 받으시고 우리와 아름다운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생명을 누가 주셨나요? 몸 속 깊은 곳에 암 덩어리가 있을 수 있지요! 아픈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치료해 주시는 분은 누구신가요? 오늘날 여기에 앉아있기까지 생명을 연장시켜주시고 건강을 지켜주신 분은 누구신가요? 직장과 일터와 가정과 자녀를 지켜주신 분은 누구신가요? 어느 누구도 살아있다고 자신 있기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 때나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잃을 수 있고 우리의 재산을 잃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 자리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연장하셨고, 우리에게 재물을 주셨고, 믿음을 주셨고, 우리에게 일터와 직장과 사업장이 있어서 우리가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 아닙니까? 다시 말해서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작지만 정성을 담아 나의 정성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부자만, 능력 있는 사람만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헌금을 바칠 때 하나님이 그것을 가장 값지게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헌금을 드릴 때는 정기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2절에 보면 매주 첫날에~ 그랬습니다. 매주 첫날은 언제인가요? 바로 주일입니다. 본래 이스라엘 사람 유대인은 안식일 날, 지금의 토요일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초대교회 때에도 안식일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수님도 안식일에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쳤다고 했고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사도행전에 보면, 안식일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수님 돌아가시고 1,2백년 동안에는 유대인들은 회당이나 성전에서, 그리고 기독교인들도 함께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게 됐는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똑같은 토요일에 지금의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니까, 겹쳐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또 신학도 달랐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는 기독교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이 한 성전과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니까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점차 기독교인들은 안식 후 첫날 즉,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지금의 일요일 날, 즉 주일날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마다 즉 주일날 성도들이 모일 때마다 헌금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왜 교회가 주일날마다 헌금을 할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교회의 사역을 후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드린 헌금이 우리 교회 예산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 예산이 16억 5천만원이라고 하면, 16억 5천만원! 교회가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아닙니다. 교회는 은행이 아니기 때문에 매 주일 기적과도 같이 아름답게 드린 헌금으로 교회재정이 꾸려져 나갑니다. 교회는 한 달, 두 달, 분기별로 또는 1년 단위로 또는 몇 년 단위로 계획을 세워서 운영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런 계획 하에 교회사역을 운영하기 때문에 교우들이 매 주일마다 정기적으로 드린 헌금 가지고 재정이 운영이 됩니다.

매 주일 드린다는 말은 또 무슨 의미가 있냐하면 여러분이 직장이나 사업장에서 얻은 수입을 규칙적으로 드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저 규모 없이 되는 데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헌금은 여러분의 수입에 따라 드려야 합니다. 

2절 중반절에 보면,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그랬습니다. 정기적으로 주일마다 헌금을 드리되 각자의 수입에 따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지가 아니십니다. 돈이 없어서 우리에게 헌금을 요청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만약에 한 달에 100만을 버시는데 1000만원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헌금의 기준은 우리의 수입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한 달에 100만원을 번다고 한다면, 수입에 따라 즉, 십일조는 뭔가요? 10분의 1, 십만원을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이고 나머지는 감사헌금이나 서원헌금 같은 것을 마음에 따라 자원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입에 따라 드린다는 이 전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십일조 신앙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모든 것의 10개중의 하나는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들에게 요청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간혹 가다 교우들을 보면 이 십일조를 도둑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헌금을 도적질 한다는 말은 헌금을 내고 난 다음에 그것을 몰래 빼서 돌린다는 것이 아니고요, 하나님이 나에게 십의 일을 100만원을 주셨다고 한다면 즉, 내 전체수입의 십분의 일이 100만원이라고 한다면, 그럼 100만원을 드려야 하는데 아까 와서 몇 십만원만 드린다거나 다른 명목으로 빼돌린다고 하면 10분의 1은 내 돈이 아니고 하나님의 돈이고 나머지 아홉 개는 우리 보고 사용하라고 주셨는데 이렇게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수입에 따라 라는 말은 우리의 전체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감사헌금으로 자원해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월정헌금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선교헌금도 구제헌금도 없습니다. 성경이 가지고 있는 헌금은 십의 일과 감사예물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헌금은 우리가 감사하면 바치는 것이지만 십의 일은 성도들의 의무입니다. 하나님이 아름다운 것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재물뿐만 아니라, 시간의 십분의 일, 재능의 십분의 일, 수고의 십분의 일, 하나님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것을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신앙으로 인하여 나머지 아홉을 더 많이 축복해 주십니다.

 
세 번째는, 지속적으로 사역을 후원하기 위하여 헌금을 모아 두어야 합니다. 

2절 중반절에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모아 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 할까요“? 헌금을 즉흥적으로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사업을 1주일 동안 하셨어요. 월요일에 얼마, 화요일에 얼마, 이렇게 이것을 모았다가 잘 계산해서 정확하게 주일에 드리게 되면 이것이 잘 모아서 드리는 것인데 이렇게 모아서 드리지 않고, 주일 날 교회 와서 지갑을 막 뒤져서 만원짜리 나오니까 막 집어넣고 오천원짜리 빼고, 헌금을 규모 없이 드리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얼마를 드리든지 관계없습니다. 액수 보다 더 중요한 규모 있게 모아서 정확하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원하십니다. 

교회는 여러분이 드린 헌금이 기반이 돼서 예산이 집행이 됩니다. 우리 교우들이 내시는 십일조 헌금이 교회 헌금의 가장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지요?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감사헌금, 주일헌금을 따라서 교회 예산을 짭니다. 그러니까 규모 있게 정기적으로 모아서 헌금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교회가 이 헌금을 가지고 아름다운 곳에 사용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고린도교회에게 예루살렘교회를 후원하기 위한 헌금을 지금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 교회도 빚이 있는데 뭘 남을 도와주고 선교하고 구제를 하느냐, 이렇게 이야기 하시지요? 고린도교회도 교회입니다. 왜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 보고 예루살렘의 어려운 교인들을 위해 헌금해달라고 왜 부탁을 하나요?

고린도교회는 돈이 남아서 그랬을까요?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부자여서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1,2,3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이야기 합니다. “너희들 가운데 지식이 많은 자가 없고 너희들 가운데 부가가 없고~” 성경에 보면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왜 예루살렘교회 교인들을 위해 헌금하라고 할까요?

교회는 홀로 독립해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나 아프리카 교회나 세계 모든 교회는 다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가 돕는 것입니다. 내가 잘 먹고 잘 산다고 해서 내가 부자라고 해서 우리 교회만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세계 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교회는 다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다 형제를 돕는 것 아닙니까? 형제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모른다고 하십니까? 남의 교회와 어려운 교회를 위한 헌금이 아름다운 것이고 하나님이 그렇게 다른 어려운 교회를 도우면 하나님이 그 교회를 축복해 주십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전도했는데 예를 들어서 그 분이 부산에 삽니다. 부산에서 여기에 올 수 없지요?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해서 그 분이 집 근처의 교회에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절대 몰라라 하지 않습니다. 다니고 있는 우리 교회에 여러분 때문에 언제가 하나님이 한 분을 우리교회에 보내 주십니다. 전도는 내가 부산에서 했는데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든 외국교회를 돕거나 후원하거나 선교를 하게 되면 우리가 외국을 도와주었지만 결국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재정적으로 후원을 해 주십니다. 이런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헌금을 하는 것 아닙니까!


네번째, 헌금을 관리하는 사람은 교회가 인정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3절에 보면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여기 보면, 너희가 헌금한 그것을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주어 그가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해 주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인정한 사람에게만 교회 재정을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인들 가운데 교회에 와서 시험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진 집사님들 가운데서도 시험에 드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교회 재정을 맡은 사람이 시험에 듭니다. “아, 저 분은 부자인 것 같은데 헌금이 이것밖에 안하시네, 저 사람 순전히 엉터리야” 이런 경우는 많지는 않지만 어느 교회는 교회 재정을 맡은 집사님이 자기 개인적인 사업에 유용해 난리가 나서 교회가 풍지박산 난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가 인정한 사람에게 재산을 관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재산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교인들이 얼마나 열심히 힘들여서 벌고 헌금한 것입니까? 이것을 잘 사용하고 관리해야 될 책임은 교회 청지기들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재산을 잘 관리하고 잘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분들에게 하나님이 하늘의 상급을 가문에게 허락해 주십니다.

제가 워싱턴에서 목회할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못 배우고 힘들게 사는 어느 집사님이 계셨는데 아주 성실하게 사십니다. 재주가 많지 않아서 부자는 아니예요. 그런데 이 분이 교회 재정을 관리해서 맡아서 하는데 한 4,50명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교회니까 혼자 재산을 관리합니다. 성실하게 꼼꼼하게 교우들이 낸 헌금을 1원하나 허튼데 사용하지 않고 3년을 힘들고 어렵지만 회계 일을 잘 관리 했더니, 3년을 마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그 자녀를 축복해 주시고 사업을 축복해 주시는데 그 교회 담임목사님한테 들은 이야기입니다. 3년 동안 열심히 했더니 그 이후 3년 동안 그 분의 재산을 9배로 불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짜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재산을 잘 관리하는 성실한 진실된 종을 하나님은 축복해 주십니다.


마지막, 헌금을 드리는 행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바 은혜를 되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3절 하반절에 사도바울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헌금을 가리켜 다른 말로 너희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은혜란 무엇인가요? 내가 받을 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받는 것을 은혜라고 이야기 합니다. 내가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받은 것은 그것은 당연한 거지요? 그것은 제 몫입니다. 월급입니다. 우리가 회사에서 일하고 받는 것은 당연히 받을 자격이 있어서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라고 하는 것은 받을 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받을 때 그것이 은혜입니다. 헌금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여러분의 직장, 사업,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지 않으면 누릴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재산!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2003년 12월 뉴스위크지에 나온 케네스 베링(Kenneth Behring)이라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분은 위스칸 주에 사는 사람인데 아주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부모님이 가난했지만 신앙생활을 잘 했던 믿음의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이 자동차 딜러를 해서 돈을 벌고 건축업을 해서 커다란 돈을 번 아주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나이가 먹고 부자가 되도 나누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2000년 도 어느날, 구호기관의 일원으로 베트남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산골 마을에 갔는데 한 여자 아기가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는데 목발도 없는 상태에서 절룩거리며 다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것을 보고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자기 돈으로 휠체어를 사서 선물을 했습니다. 그 부자가 휠체어 사는 것이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어린아이가 휠체어를 받고 울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나도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는 것에 너무 감사하고 내 생애에 이렇게 좋은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하는 말을 듣고 이 케네스 베링씨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이 휠체어를 선물했더니 이렇게 감동하는 어린아이를 보고 은혜를 받고 감동을 더 받은 사람은 케네스 베링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돌아와서 내가 도대체 내 재산을 가지고 무엇을 했으면 좋겠는가! 해서 국제 휠체어 재단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자기돈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한테 기부를 받아 지금 매월 전세계에 있는 노약자와 환자를 위해서 휠체어 보내기 운동을 하는데 매월 만개의 휠체어를 전 세계에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전 세계에 휠체어가 필요한 사람이 1억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케네스베링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나눠주면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해지는 법입니다.” 

헌금은 하나님에게 드리지만 이것은 사람에게 쓰여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헌금의 액수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중요한 것은 정성입니다. 정기적으로 수입에 따라 거짓이 없이 그리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돕는다는 마음으로 베풀면 베풀수록, 바치면 바칠수록 하나님은 재정 형편을 아름답게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에 속해 있는 교우 여러분, 아름다운 헌금은 축복받는 지름길입니다. 이렇게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할 때 헌금 많이 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이야기 하면서 축복받을 수 있는 길을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풍족해 지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올바른 헌금 생활을 할 때 100% 축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올바른 헌금 생활로 우리 교회에 속해있는 교우 여러분들의 삶이 풍성해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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