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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요 8:34~36, 갈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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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요 8:34~36, 갈 5:1)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날씨에도 늘 성전에 나와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8월 15일을 지나고 맞는 해방 기념주일입니다. 또 1948년에 건국된 우리나라의 건국 60주년 감사주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국경일을 통틀어 이보다 더 귀한 날은 없을 것입니다
.   
이스라엘의 가장 큰 절기는 유월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해방이 되어 가나안을 향해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해방된 것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매해 정월 14일~21일까지를 유월절로 지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2장 2절에 보면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월절을 새해 첫 절기로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유월절을 무교절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절기에는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스라엘의 유월절을 여러 번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모두 딱딱한 빵을 먹으면서 한 주일을 지냅니다. 똑같이 누룩 없는 빵, 딱딱한 돌덩어리 같은 빵을 먹으면서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보내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2장 14절에 보면 “너희는 이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유대인들은 3,5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누룩 없는 빵을 먹으며 유월절을 철저하게 지켜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나 우리나라나 해방의 기쁨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36년 동안 일제의 압제로 인해 온갖 고통을 당해 왔습니다. 우리의 국토를 빼앗기고, 이름과 언어를 빼앗기고, 생명까지도 다 빼앗겼습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강제로 동원되어 석탄광산에서 60만 명, 금속광산에서 15만 명, 군수공장에서 40만 명, 토건과 관계해서 30만 명, 항만운수와 관계해서 5만 명 등 총 150만 명의 젊은이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일제에 징병된 젊은이만도 6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총알받이가 되어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더구나 20만여 명의 귀한 딸들이 정신대에 끌려가서 짐승보다도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반성하지 않고 아직까지 독도를 자기나라 소유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정신 차려야 합니다. 36년간의 고통스러운 과거가 우리 역사에 다시는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끊임없이 힘과 국력을 길러 이 나라를 지켜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해방 이후 우리 민족에게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전 세계 200여 개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경제순위를 10위권으로 올려 주셨습니다. 최대의 스포츠 제전이라는 올림픽과 월드컵 경기도 1988년도와 2002년도에 훌륭히 치러냈습니다. 한국전쟁을 치른 후 남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자원 하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을 만큼 자유와 풍요와 번영과 발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현재 우리나라의 자동차 대수는 1,643만여 대라고 합니다. 한 가정에 한 대씩, 3명에 한 대꼴로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수명도 여자 82.4세, 남자 75.7세로 얼마나 장수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전쟁으로 가족과 재산을 잃고, 폐허가 된 길거리를 옷도 신발도 없이 울며 헤매던 우리 민족이 이렇게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이 모든 축복은 자유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이번에 열린 올림픽도 그렇습니다. 각 나라의 올림픽 메달의 개수는 그 나라의 자유의 순위와 같다고 합니다. 중국을 보십시오. 그들이 지금 세계 속에 앞선 것은 자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유가 그들에게 풍요로움과 금메달을 딸 수 있는 환경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자유가 없는 나라일수록 메달을 따지 못합니다. 북한이 그렇게 죽기 살기로 연습해도 메달을 따기 어려운 이유는 자유가 주는 자유인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유가 있는 나라가 발전합니다. 자유 대한민국의 국력과 자유인이 가지고 있는 정신으로 우리가 세계를 앞서가고 주름잡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인물이 많이 나옵니다. 모든 일의 번영은 자유와 함께 주어지는 것입니다. 
  
현재까지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총 717명입니다. 2007년 기준으로 미국 277개, 영국 90개, 독일 78개, 프랑스 50개, 스웨덴 23개, 스위스 16개, 네덜란드 15개 순입니다. 아시아 쪽은 다 합쳐야 10개도 안됩니다. 노벨상이든 스포츠 분야든 자유가 있는 곳에 에너지가 모이고, 자유가 있는 곳에 인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유가 주는 축복이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 이 자유를 자손만대까지 누리는 축복받은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는 세상의 어떤 자유와도 비교할 수 없는 참 자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주신 자유, 이것만이 하나님께서 주신 진짜 자유, 성경에 있는 참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 자유는 하나님만이 주십니다. 죄의 종이 되고, 마귀의 종이 된 우리 인간을 어두운 사망의 권세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범죄한 우리 인간이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8장 34절에 보면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죄의 어마어마한 힘이 그를 누르고 지배하게 되는데, 그를 건져낼 자가 누구입니까? 세상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우리 인간을 건져내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인간을 죄와 사망과 멸망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 자유인 것입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민족은 참 자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나라를 세웠지만 결국 바벨론에 붙잡혀 갔고, 바벨론에서 해방된 후에는 앗수르에, 로마에, 헬라에 붙잡혀 갔습니다. 주님께서 해방시켜 주시지 않으면 우리 인간은 참 자유를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 보면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목마르게 자유를 찾고 있습니다. 군에 있는 사람은 제대할 날짜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그곳을 빨리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빨리 졸업하고 싶어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밖에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여름휴가철을 맞아 국내외 피서지를 찾아 떠나고 있습니다. 진정 그들이 찾아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삶의 자유를 찾아 떠나는 것입니다. 또 인간은 경제성장을 통해서도 자유를 얻으려 하고, 풍요로움을 통해서도 자유를 얻으려고 합니다. 북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탈출해 내려오는 것도 자유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더 큰 자유가 있는 곳을 찾아 끊임없이 자유의 행군을 하고 있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나 참 자유는 이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저기 찾아다닌다고 얻게 되지 않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실패에서 성공으로 옮겨질 때 참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저주와 멸망에서 건짐을 받을 때, 참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유월절 희생양이 되셔서 우리를 멸망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옮기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오늘 이 시간에서도 자유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가 영원토록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호주의 시드니교도소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실화입니다. 그 교도소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빵을 배달하는 트럭이 왔습니다. 매일 빵을 배달하는 트럭이 오는 것을 알게 된 죄수 한 사람이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빵을 배달하는 트럭에 몸을 숨겨 탈출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계획대로 모범수가 되어 빵을 싣고 나르는 부서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찬스가 왔습니다. 그를 워낙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안심하고 있는 사이에 그는 빈 박스 속으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트럭의 화물칸이 찰카닥 잠기는 소리가 들리고 차가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추워 오기 시작했습니다. 빵을 싣고 다니는 냉동차였기 때문입니다. 몸이 꽁꽁 얼었지만 ‘오늘부터 나는 자유다!’라는 생각 하나로 꾹 참고 견뎠습니다. 1시간쯤 지났을까, 트럭이 어느 곳엔가 섰습니다. 그는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가 열리자마자 재빨리 뛰쳐나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뛰어가다 보니 동서남북이 철조망이고, 총을 든 군인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 트럭은 모든 교도소를 돌며 빵을 배달하는 차였습니다. 그는 다른 교도소로 옮겨진 것입니다. 

여러분, 자유를 얻었습니까? 집에서입니까? 학교에서입니까? 직장에서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뛰쳐나가지만 단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질 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민족이 해방 이후에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았지만, 지금은 자살률과 이혼율 세계 1위에 알코올중독자 300만 명이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참 자유는 경제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지식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문화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가 주어질 때 모든 저주와 멸망에서 건짐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자유, 이 자유만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참 자유인 것입니다. 아무리 권력을 가졌어도,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아무리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도 주님 외에는 자유를 주실 자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자유를 가지고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주신 자유를 누리면서 자유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참 자유인의 삶을 살고 자유인의 말을 하려면 자유인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노예처럼 매여 있는 사람, 감옥에 있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말마다 불평불만이요, 욕이요, 저주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소망이 하나도 없으니 만사가 짜증스럽고 귀찮고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자유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유인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천국이 있고, 구원이 있습니다. 저주받은 어둠의 세력은 다 떠나고 그 안에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와 기쁨과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할 때도 긍정적인 말을 하고, 소망의 말을 하고, 기쁨의 말을 하고, 감사의 말을 하고, 평안의 말을 하고, 남을 살리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언어를 들어 보면 그 사람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유인의 언어를 사용하고, 자유인의 표정을 짓기 바랍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밭 속에서도 노예는 그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금은보화 속에 있다한들 노예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자유인만이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인은 잘 참으며 항상 기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참으면 기회가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듯이, 참 자유인의 삶은 소망 가운데 늘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유를 누리는 국가들을 보면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자유인의 훈련을 받습니다. 자유인에게는 엄청난 책임과 사명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예는 훈련이 필요 없습니다. 노예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습니다. 잡아끄는 대로 끌려가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 앞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 소중함을 깨달아 자유를 지키고, 자유를 사랑하고, 자유를 위해 투자하고, 자유를 위해 노력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자유인은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큰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보내 물게 하시고 땅이 꺼져 죽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애굽에서의 노예 습성을 버리지 않으면 가나안에 들어가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노예의 습관을 다 버리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믿음을 갖고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사랑하며, 주님을 더욱 가까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왜 예배를 드립니까?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이 자유를 나뿐만 아니라 자손만대까지 누리게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자유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시간을 바치는 것입니다. 마음속의 모든 걱정과 근심과 염려와 악과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 주신 주님을 세세토록 찬양하는 성도들이 될 줄 믿습니다. 자유를 위해 사명을 감당할 때 그것이 참 교인이요, 교회인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건지려 하는 사명이 있는 한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자유인의 삶을 감사하며 살아갈 때 주님께서는 더 많은 자유의 풍성함을 내려 주십니다. 자유는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다 빼앗겨도 자유만은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만 견고하게 지키면 누구도 자유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참 자유는 주님을 가까이할 때,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할 때 얻게 되는 줄 믿습니다. 
 
주님을 떠나 세상에서 자유를 찾아 헤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자유, 범죄의 길에서 비롯되는 자유에 빠져 ‘마음껏 먹어라, 마음껏 마셔라, 마음껏 즐겨라.’고 유혹하지만, 그것은 노예로 들어가는 출입구입니다. 마귀가 주는 기쁨인 것입니다. 그 기쁨은 참 기쁨이 아니요, 그 자유는 참 자유가 아닙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길을 좇다가 일생을 망치고 있습니다. 믿음생활이 우리를 옭아매는 것 같지만 우리 성도들이 누리는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걸어가야 할 정도(正道)인 것입니다. 

성도는 아무 짓이나 하고, 아무 것이나 보고, 아무 노래나 부르면 안 됩니다. 인터넷도 아무 곳에나 접속하면 안 됩니다. 자유인이 고정시켜야 할 채널이 따로 있습니다. 성도의 채널에 고정시킬 때, 음란문화와 우상숭배와 죄악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괴로움, 마귀로부터의 괴로움은 오직 주님만이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자유를 누리면 근심하려고 해도 도무지 근심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미워하려고 해도 미움이 생기지 않는 법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주신 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항상 자유인의 길을 걷고, 자유인의 언어를 사용하고, 자유인의 표정을 짓고, 자유인으로서 사랑을 품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고, 자유인으로서 인류와 세계를 위해 헌신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유의 경주자로서 끊임없이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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