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삶 (시 37:1~7)

  • 잡초 잡초
  • 755
  • 0

첨부 1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삶 (시 37:1~7)


누구보다도 일생을 통해서 고생도 해보고 부귀영화도 누려본 다윗 왕이
오늘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교훈 한 가지가 있습니다.

25절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 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이 말씀은 다윗이 오랜 인생의 체험과 묵상을 통해 얻은 삶의 결론입니다. 
이 의인의 반열에 서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신앙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의인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읍니다만
공통점은 의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선하게 살았다해도 
호인이나 선인이나 위인은 될 수 있지만
성경은 의인이라 하지 않습니다.

의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며 
신앙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드리고 져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는 의인의 삶 
즉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신앙의 삶을 살려면
먼저 어떤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1.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신앙의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먼저 무엇에 눈이 뜨여져야 합니까?(1-2절)

신앙의 삶이란 
오직 믿음으로 사는 삶, 즉 신앙의 삶은 절대적이 되어야 합니다.

1절 [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여기 `행악자`는 누구입니까? 
우리를 괴롭히고 억울하게 만들고 손해를 끼치고 고통을 주는 사람들입니다.여기 `불의를 행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잘 되는 것 같고, 오히려 바로 인생을 살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있을지라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실은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신앙생활 잘 못해도 부유하게 살고 
심지어 불신앙적인 일을 하는 자들이 더 득세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때문에 불평하고 신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그런 데가 있습니다. 시73:1-
[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뻔 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 

그 뒤에 보면
나는 무죄하게 살아도 이렇게 고난이 많은데 
악인들은 죽을 때 까지 목에 힘주고 거만하게 살아가니 
도대체 이해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16절
[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하여 생각한 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깨달았나이다. ]

사람이 살아가면서 한두 번 퍼떡 잘되는 것 형통한 삶 같이 보이겠지만
2절 [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 일시적이란 말입니다.
물론 성경에도 하나님 떠나서 잘되는 상태를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암8:1「여름실과 한 광주리」라고 합니다.

여러분 가진 성경에 보면 1번이라 해서 끝이라 해놓았습니다.
끝물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떠나서 잘되데 하고 너무 오래 끌면 꽝! 하면 끝장이라는 말입니다.

호7:8절 [ 뒤집지 않은 전병 ] 이란 말이 나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먹음직 스럽지마는 
들추어 보니 타서 못먹게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절대적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구약의 하바국 선지자의 항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선민이 아무리 잘못했다 손치더라도 
이방 앗수르에 의해서 짓밟힘 당할 수 있습니까?
그럴 때 하나님의 응답은 이렇습니다. 따라합시다.

합2:4절「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니다.
다른 사람 어찌든지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찰스 스윈돌박사 100여개 방송국에서 방송한 적이 있는 성공의 비법

1) 시139:14인용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능력으로 지으심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 인식 

2) 지금도 그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3)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라.
4) 그러나 자신을 남과 비교하는 것 거부하고 주님만 바라보라.

우리의 신앙 상대적이 되어질 때 그때부터 신앙생활 병이 듭니다.
남들 보다 좀 나으면 교만해지거나
못하면 열등감에 사로잡힌 패배자가 되거나 시기하는 자가 됩니다.
절대적인 신앙의 소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절대적 신앙의 소유자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2. 절대적 신앙을 가진 자의 삶의 특징이 무엇일까요?(3절)
다윗은 상대적 신앙으로 불평하거나 흔들리지 말고 너희는 

3절 [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에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 

이 말을 의역한다면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이 안전보장이 되어 줄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신뢰, 확신을 품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자기를 의뢰하는 자에게 
실망시키거나 외면하지 아니한다는 말입니다.

시34:10절 [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라고 합니다.

 `동가식 서가숙`이란 고사성어가 있지요
시집가고 싶어 안달이 난 처녀에게 마침내 중매가 들어왔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에게서 동시에 중매가 들어왔으니 
입이 찢어질 수밖에.....
먼저 동쪽에 사는 총각을 만나보니 재산이 엄청나게 많고, 가문도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얼굴을 보니 천하에 그렇게 못생긴 사람은 처음이더랍니다.
서쪽에 사는 총각을 만나보니 훤칠한 키에,
기가 막히게 잘생긴 얼굴에 근육질의 강한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가난하여 목구멍에 거미줄을 치고 있었습니다.

누구를 택할 것인가?
처녀는 그날부터 고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시집은 가야할 터인데 두 사람중 누구를 선택해야 할것인가?
몇일후 처녀는 단단히 결심한 얼굴로 어버지께 아뢰었습니다.
`두사람 모두에게 시집가겠습니다. 
그래서 밥은 동쪽 남편집에서 먹고, 잠은 서쪽 남편집에서 자겠습니다`
물론 웃으개 소리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냥 웃을 이야기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교인들의 신앙생활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한국사람들은 참 계절에 민감한 국민인 것 같아요.
전 세계 민족 가운데 한국 사람들처럼
여름이면 모든 사람이 반팔 옷을 입고, 겨울이면 모두 긴옷을 입는, 유행을 따라 똑같이 입는 민족이 없습니다.  

미국 공항에서 보면 날씨가 더운데도 검정색 가죽 코드를 입은 사람이 없나
추운 겨울인데도 핫팬츠 입고 다니는 여자를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유행 따라 옷은 바꾸어 입어도 되지만
입어도 되고 안 입어도 되지만 
끼니만큼은 꼭 챙겨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패션의 하나님이 아니라, 양식의 하나님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절대적 신앙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반드시 회복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3. 내가 절대적 신앙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반드시 회복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4절)

바로 여호와를 기뻐하는 삶입니다.

4절[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신앙생활의 첫걸음은 하나님을 기뻐하는데서 시작되어집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인데 어떤 관계인가 하면 생명의 관계입니다.
생명의 관계의 특징이 바로 만남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이 만남의 기쁨 성도는 예배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성도의 신앙생활 예배에서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쁨으로 예배드리는 자는 
그 삶에 반드시 신앙의 성숙과 기쁨이 나타납니다.

한국교회가 전에는 성경공부니 제자훈련이니 이런 것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부흥했습니다.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그때는 예배의 기쁨과 감격이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 만이 생명이요 복의 근원으로 믿었기 때문에
만남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예배시간 전에 10리 20리 걸어와서 한시간 전에 교회와서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예배에서 만남의 기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왜? 맛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음식이 부패하면 맛을 잃어버리듯이
하나님의 백성이 맛을 잃어버리니깐 부패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백성의 맛,
하나님 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것
이게 맛이 가버리니깐 
하나님도 좋고 돈도 좋고, 하나님도 좋고 세상도 좋고,
동가식 서가숙 신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에배에서 만남의 기쁨이 없어져 버립니다.
마치 콩크리트에 흙이 들어가면 부실공사가 되어버려 힘을 못써듯이
성도의 신앙생활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삶의 열매가 없읍니다.

우리가 열매있는 신앙생활 할려면 절로의 묘미를 알아야 합니다.
즉 신앙생활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지겨운것 하고 힘든것 하고 다릅니다.
무슨 일이든 재미만 있으면 힘든 것 그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산에 올라가는 사람 그렇게 힘들어도 재미가 있어니깐 올라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요15: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면 절로 열매 맺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 재미있습니까?
신앙생활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신앙이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우리는 먼저 소원성취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포기상태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신앙생활 교회생활 지겨워지고 특히 직분이 부담이 됩니다. 
이건 원리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기뻐하세요 그리하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면 절로 성취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삶에 변화가 있고 신앙생활에 열매가 있습니다.
직분자들이 왜 몇년이 지나면 그 직분에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까?
바로 직분을 통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한 만남의 기쁨 회복해야 합니다. 
왜? 예배를 통한 만남의 기쁨이 없는가?

이 앞에서 한번 보세요. 예배드리는 모습이 어떤지? 
찬송을 부르면서 감격해하는 모습 말씀을 들어면서 진지한 얼굴표정
이것 그냥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신앙생활 예배에서 결정되고 갈라지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만남의 기쁨이 없는 이유?

1) 구원의 은헤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2) 기대를 갖고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3) 준비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4) 마음을 다른데 빼앗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해 만남의 기쁨 회복하면 마음의 소원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사1: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주일날 교회 도장 찍으러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나러 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나 은혜 받아 기쁨을 회복하는 예배가 되시기 바랍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는 에배를 드려야 하는가 하면
즉 왜? 기쁨을 회복해야 하는가 하면
주님의 축복이 있는 곳에 반드시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축복받는 성도는 에배를 통한 만남의 기쁨이 있고
봉사하는 기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만남의 기쁨을 회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내 인생길에 형통의 비결이 무엇인가?


4. 내 인생 길의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5절)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삶입니다.

5절[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 
길은 우리 앞날의 계획과 모든 삶의 문제를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길 뿐만이 아니라 나의 삶 전부를 맡겨는 것이 신앙의 삶입니다.

잠3:6절 [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 합니다.

맡긴다는 것은 인정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자만이 하나님께 범사를 맡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 범사란? 
나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내 능력이 한계점에 다달아도
우리의 삶에 파멸이 닥아와도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편에 내 생명을 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할 때
시103:3-「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세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사람들이 어려울 때는 하나님 붙듭니다.
그러나 평탄하면 하나님 붙든 손을 놓으려고 합니다.
왜? 이제 내가 더 잘 알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이럴 때가 가장 위험할 때입니다.

사람에게는 윤형본능이란게 있다고 합니다.
어느 한 알피니스트가 알프스산 등반을 하다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13일 만에 구조되어 살아나왔는데 어떻게 죽지않고 살아있었느냐? 물으니
하루 두시간만 자고 계속 걸었답니다.
그리고 자기가 얼마나 걸었는가 물어보니 6Km밖에 걷지못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반경 6Km내에서 뱅뱅 돈거지요.
사람이 윤형본능 때문에 자기는 똑 바로 걸어간다고 했지만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불신의 40년 광야생활과 같은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경은 방황이라 합니다.
우리 길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푯대를 예수님 삼고 살아가세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인생 다 산 후 남는건 
내가 방황했구나 하는 허무감 밖에 없습니다.

돈만 버리면, 졸업만 하면, 학위만 따면, 진급만 하면, 자격증만 따면 
이제 잘 살아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인생 갈릴리 바다에 떠있는 조각배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공이 되셔야만이 이 바다 건너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중국 내륙의 선교사였던 허드슨 테일러가 
선교사 생활에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고민하느라고 밤잠을 못자고 고생하고 있는데, 
어느날 영국에 있는 누님한테 편지가 왔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니까 

먼저 하나님께 맡기고 쉬는 법을 배우라.`고 쓰여 있더랍니다. 
마치 포도나무가지는 혼자 애 쓸 필요 없이 
원줄기에 붙어 있기만 하면 진액이 흘러들어와 
꽃필 때 꽃피고 열매 맺을 때 열매 맺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법을 먼저 배우라는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를 읽고 나서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배우고 
선교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너 앞날 내게 맡겨라 그를 의지하면
6절 [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겠다 ] 고 합니다.
이 구절은 바로 성도의 성공된 삶의 정의입니다.


5. 나는 성경이 말하는 성공의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까?(6절) 

영문법에 최상급 이란 문법이 있지요.
형용사 부사에다 .est를 붙이면 되지요.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겠다는 말은 
우리의 속에 있는 재능을 최상급으로 발휘하겠다는 것입니다.

실은 사람이 자기 속에 있는 재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나님 앞에 <거룩한 도둑>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내 인생의 앞날을 하나님께 의지할 때
하나님은 나의 삶의 최상급을 나타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사5:2절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어 좋은 포도열매를 맺기를 바랬는데
들포도를 맺었도다.] 어떻습니까? 
지금 최상의 컨디션과 최상의 값을 발휘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 인생 내 것이라 생각 말고 
우리 인생 명코치 되시는 예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한 가지 더 첨부한다면 
참고 기다리는 인내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7절 [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

그런데 
딤후3:1-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이 말은 신앙생활 하기 곤란할 때
그 이유중에 하나가 사람들이 「조급하며」「자고하며」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침몰 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감사와 기쁨이 마음 속에서 사라질 때입니다.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면 다음 뭐가 옵니까? 
불평 원망 짜증 비판 이런게 마음에 자리잡습니다.

왜? 불평하고 원망하는지 아십니까? 
풀핏 주석에는 이스라엘 40년 광야생활 중에 불평이란 것은
「하나님의 신빙성에 건방진 행동」이라 말합니다.
조금만 참으면 하나님의 신빙성이 나타날건데 참지 못해서 일을 망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약1:2- 여러 가지 시험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그리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 즉 참아라는 것입니다.

참을 때 우리 신앙인격이 온전해져서 
하나님의 축복의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도 히11장에 믿음을 이야기 하면서
성도는 믿음만 가지고 다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어서 12: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이인 에수를 바라보자 하면서 
예수님 바라보고 참아라 합니다.

약5:7-[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기 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시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최대이슈가 바로 마라나타 즉 주의 강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나의 신앙의 최대 이슈가 무엇입니까?
대부분 성도들이 초점 없는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참지 못합니다.
사람이 어떤 목적이 있을 때 그 목적을 성위하기 위해 참고 견딥니다.
우리의 최대의 관심이 주님 앞에 섰을 때가 될 때에 
아니 최소한 의인의 삶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아니하신다는 확신이 있을 때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결론>

내가 어려서부터 ..............................
의인의 반열-신앙의 삶이란?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삶입니다.

1. 상대적이 되지말라 - 절대적 신앙인이 되라 
2. 그의 성실로 먹을거리로 삼아라
3. 여호와를 기뻐하라-에배를 통한 만남의 기쁨 회복
4. 여호와께 맡겨라
5. 정오의 빛같이 하겠다.
(김성덕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