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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느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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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느 1:1~11)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 한국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연일 승전보를 보내와 우리를 신나게 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투혼의 모습으로 우리들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일입니다. 개막식이 끝나고 일장기를 단 조선선수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젊은이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였습니다. 독일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가 응원하기 위해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는 억센 평안도 사투리로 “조선 응원가”를 불러주겠다고 했습니다. 구깃구깃한 악보 하나를 꺼내들고 자기가 작곡했다는 노래를 목청 높여 불렀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부르는 그 애국가였습니다. 조선선수들은 뜻밖의 응원에 용기백배했습니다.

베를린 올림픽 폐막 직전 마라톤 경기가 열렸습니다. 메인 스타디움에 폐막식을 보려고 입추의 여지없이 관중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조선선수 손기정이 1등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관중들이 기립하여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냅니다. 그 때 한 쪽 스탠드에 서너 명의 조선 청년들이 눈물을 흘리며 소리소리 높여 노래를 부릅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손기정 선수는 더욱 힘차게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손기정 선수가 우승을 한 것입니다.

손기정 선수가 시상대 위에 올랐습니다. 1등을 했지만 기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라를 빼앗긴 마음에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손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렸습니다. 우승국 국가라 해서 기미가요가 울려 퍼집니다. 바로 그 때 조선 청년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목이 터져라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손기정 선수는 나지막한 소리로 그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슬프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교훈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나라가 얼마나 중요한가하는 교훈입니다. 나라가 없으니까 올림픽에서 우승을 해도 태극기를 휘날릴 수가 없습니다. 애국가를 연주할 수 없습니다. 나라 잃은 설음이 얼마나 크고 고통스러운가를 깊이 깨닫게 해 줍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라를 잃은 설움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느헤미야 이야기입니다. 

느헤미야는 나라를 잃어버린 백성으로 남의 나라 페르시아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바벨론과 달리 페르시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화 정책을 폈습니다. 포로가 아니라 이주민으로 살 수 있게 허용했습니다. 돈도 벌게 했습니다. 관직에도 나갈 수 있게 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도 페르시아 땅에서 고위 관리가 됐고 유복한 삶을 살게 됐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허락했습니다. 

그렇다고 나라를 되찾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늘 나라와 민족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품고 살았습니다. 비록 몸은 페르시아 땅에 있지만 마음은 늘 고향에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고향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본문 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마침 형제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왔기에 고향 소식을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을 보면 느헤미야가 들은 고향 소식은 이런 것입니다.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고향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은 불탄 채 방치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그 소식을 듣고 보인 반응을 4절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우선 너무 슬퍼서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식하며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조국을 위해 느헤미야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기도입니다. 다른 일들 할 수 있는 일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느헤미야가 후에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을 받고 총독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가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여러 가지로 헌신합니다. 그러나 제일 먼저 한 일은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공헌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입니다. 

운동선수들은 올림픽에 나가 최선을 다해 국위를 선양함으로써 애국할 수 있습니다. 경제인들은 나라를 경제적으로 부강하게 만듦으로써 애국할 수 있습니다. 군인들은 국방의 임무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애국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연구 개발로 애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애국할 수 있는 특별한 길이 있습니다. 아니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 할 수 있는 애국의 길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때문에 이 나라와 민족이 잘 될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도보다 더 큰 애국이 없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얼마 안 된 때의 일입니다. 남편이 전쟁에 나가 죽은 미망인이 아이들과 함께 어렵게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크리스마스를 지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절절한 마음에 기도를 노트에 썼습니다. 두툼한 노트 가득 절절한 기도가 담겼습니다.

다음 날 식료품 가게를 찾았습니다. 가게 주인에게 크리스마스를 지낼 식료품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주인이 돈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부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은 없고 내가 드릴 것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주인이 뜻밖의 제안을 합니다. 그러면 당신의 기도를 종이에 쓰십시오. 그 종이 무게만큼 식료품을 달아서 드리겠습니다.“ 

부인이 갑자기 가방을 열고 노트 한 권을 꺼냈습니다. 여기에 제 기도가 적혀있습니다. 그 기도 노트를 저울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주인이 그 무게 정도의 작은 빵 하나를 저울 위에 놀려놓았습니다. 이상하게도 모자라는 것입니다. 더 큰 빵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래도 모자랍니다. 이번에는 고기를 한 덩이 올려놓았습니다. 그래도 모자랍니다. 당황한 주인이 큰 봉투를 주면서 부인이 필요한 것 마음껏 담아가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마침 그 때 저울이 고장이 난 것입니다. 주인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역시 기도의 능력이 위대하구나...”

그렇습니다. 기도의 능력은 위대합니다.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 남아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돌아가 어려움에 처한 조국을 도울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역사하십니다. 이런 믿음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느헤미야의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에는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습니다.


1. 아픔으로 드린 기도

느헤미야의 기도에는 조국을 향한 아파하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 느헤미야가 조국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날을 가슴 아파 울었다는 것입니다. 

느 2: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왕이 느헤미야를 보니까 전과 달리 그 마음에 수심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 볼 것은 시기입니다. 니산월이라 되어있습니다. 지금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모습을 본 때가 니산월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고향 소식을 듣고 마음 아파하기 시작했던 때가 1:1을 보면 기슬르월입니다. 니산월은 기슬르월의 4달 후입니다. 그리니까 느헤미야는 안타까운 고향 소식을 듣고 마음 아파한 지가 벌써 네 달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느헤미야는 지금 페르시아 땅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크게 출세해서 왕의 총애를 받고 있습니다. 뭐 하나 부족할 것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조국이 어려움에 빠져있다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직접 자기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잠시 자기도 유대인이기에 마음 아파하긴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체념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가슴 깊은 곳이 안타까움을 묻어 두고 자기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 아픔을 가슴에 새기고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 얼굴에 수심이 가득합니다. 마치 부모님이 위독한 것처럼, 가정에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자기 신변에 큰 위기가 닥친 것처럼 말입니다. 

저명한 구약신학자 가운데 헤셀(Abraham Heshel)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의 대표적 저서가 [예언자](The prophet)입니다. 이 책에서 이분은 구약의 예언자들을 한 마디로 설명했습니다. 바로 “아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 아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주목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님의 도구로 쓰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아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주목하십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아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 그들을 주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 아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쓰십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아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 그들을 쓰십니다.


2. 말씀으로 드린 기도

느헤미야의 기도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8-9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 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자기 생각에 기초를 둔 기도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소원에 기초를 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뿌리를 내린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저는 최근 촛불집회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기독교 단체가 둘로 나누어져서 집회를 했습니다. 꺼져가는 촛불을 되살리겠다고 진보적 목회자들이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반대로 이제 촛불을 끄게 해 달라고 보수적 목회자들이 맞불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같은 사안을 놓고 정반대의 기도회가 동시에 열린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지만 자기 생각에 기초를 두고 기도를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이데올로기 즉 이념에 기초해서 기도를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에 뿌리를 둔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12세기에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유대 성경주석가 데이비드 킴치(David Kimchi)라는 랍비가 있습니다. 이 분이 묵상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내 마음에서 다른 모든 생각을 없애고 오직 말씀만을 ‘어루만지는 것’이다. 마치 새신부가 신랑에게서 받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어루만지면서 그 아름다움에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과 같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가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생각들, 사람들의 마음들, 그리고 사람들의 소원들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신랑에게서 받은 결혼 선물 다이아몬드를 어루만지듯 마음으로 어루만져야 합니다. 그 말씀을 새기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3. 헌신으로 드린 기도

느헤미야는 기도가 기도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기도가 헌신으로 이어졌습니다. 2:4-5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왕이 나라와 민족 때문에 수심이 가득한 느헤미야에게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때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자기를 유다 땅으로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헌신으로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유다 땅에 가서 문제를 해결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느헤미야는 “아멘!” 하고 나선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유다 땅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고위직도 버려야 합니다. 그동안 페르시아에서 닦은 모든 기반도 버려야 합니다. 그 땅에서의 꿈도 다 버려야 합니다. 유다 땅 그 척박한 땅 그 고난의 땅에서 험한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기도하며 아멘하고 나선 것입니다. 

1911년 105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일제가 엉터리 총독 암살극을 조작하고 이를 빌미로 대거 애국지사들을 체포했습니다. 이 때 남강 이승훈 선생도 체포됐습니다. 5년간 수감생활동안 여러 차례 성경을 통독하고 구국기도에 전념했습니다. 감옥에서도 나라사랑을 실천하며 많은 애국지사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후에 남강이 죽은 뒤 그의 비석에 사람들이 이런 말을 새겨두었습니다. “일생을 남을 위해 살았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사람”

그렇습니다. 진정한 애국은 말로만 끝나서는 안됩니다. 기도로만 끝나서도 안됩니다.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조국 대한민국의 광복 63 주년을 지났습니다. 그리고 건국 60주년을 지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누구도 무시못할 당당한 나라와 민족이 됐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힘겨운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남북통일의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나라를 선진국 반열로 올려놓아야 하겠습니다. 더 이상 독도 문제, 이어도 문제로 시비를 걸지 못하는 강한 한국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더더욱 민족 복음화를 이루고 선교 한국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느헤미야처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아픔으로 기도하고, 말씀으로 기도하고, 헌신으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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