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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복을 (갈 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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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아브라함의 복을 (갈 3:1~14)


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나라와 종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 자유롭게 복음을 들을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사실 조선시대 말기에 처음 복음이 전해질 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역시 복음은 결코 전해져서는 안 될 금지 대상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려다가 죽임을 당한 선교사들이 여러분 계십니다. 그랬던 이 나라가 세계적인 복음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하면서 이 땅은 일제에 의해서 나라가 망했고 일제 말에 이르러서는 그나마 많은 교회가 강제로 문을 닫거나 아니면 신사참배라는 엄청난 치욕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해방 이후는 또 어땠습니까? 육이오라고 하는 동족상쟁의 전쟁이 이 땅을 휩쓸었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했습니까? 또 그때 전쟁 중에 희생된 사람들 가운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도들이 희생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랬던 이 나라가 지금은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십자가 종탑으로 가득한 나라가 되었고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세계에 가장 많이 파송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이것이 또한 은혜입니다. 물론 10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가운데도 모태 신앙인으로 자라난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운데 거의 대부분은 자라면서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성령을 받았습니까?

생각해 보면 우리들이 처음 교회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이 참으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때 내가 어떻게 교회에 나갈 수가 있었을까요? 우리 가운데 불교 가정이나 유교 가정에서 자라나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물론 어릴 적에 연말 성탄절이 되면 교회에서 나누어주던 과자 때문에 교회에 몇 번 나갔던 기억을 가진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어른들의 호통에 다시 교회에서 멀어졌던 분도 계실 것입니다. 아니 마음먹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다음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힘들어할 때가 한두 번이었습니까?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단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교인이 있고 신자가 있고 성도가 있다고 합니다. 그저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을 교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 교회에 등록도 했습니다. 열심히 교회를 드나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런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친구가 좋아 친구 따라 다니는 사람도 있고 사업상 관계 때문에 다니는 사람도 있고 교회의 어떤 프로그램이 좋아서 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부모님 따라 부모님 체면상 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천국엔 관심도 없습니다. 그저 세상에 파묻혀 살며 여전히 세상을 좋아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모습도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반면에 신자들이라고 한다면 보다 교회에 적극적입니다. 믿어보려고 애를 씁니다. 은혜 받고자 하는 열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지식적으로 논리적으로 파악하려고 합니다. 그러기에 은혜를 사모하기는 해도 은혜를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천국이 있다는 걸 믿기는 해도 천국에 갈 자신은 없습니다. 모든 기준이 말씀보다는 자기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온전히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사람입니다. 언제라도 천국에 들어갈 것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임을 분명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받은바 은혜에 대한 확실한 체험도 있습니다. 뜨거운 열정도 있습니다. 모든 기준을 철저히 말씀에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교인입니까 신자입니까 아니면 성도입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오해하는 것이 있다면 내 수고와 노력을 통해서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는 내 수고를 통해서 내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은혜 받기를 사모하는 마음도 있어야 하고 은혜를 받고자 하는 노력도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내 수고의 결과로 은혜를 받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이 질문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바울은 묻습니다. “이 한 가지만 대답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떻게 성령을 받았습니까? 율법을 지켜서 받았습니까?” 그러고 나서 다시 정답을 알려줍니다. “아닙니다.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에 받은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심을 우리가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백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까? 마음으로 믿었기에 입으로 고백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믿을 수 있도록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그래서 믿어지게 만드셨습니다. 믿어지니까 자연스럽게 고백하게도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하늘나라의 백성 성도가 된 것은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이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무슨 착한 일을 많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했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당연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한 일이 있다면 믿은 것뿐입니다. 모든 길은 이미 예수님께서 다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남들보다 더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세상으로 볼 때는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이제 새삼스럽게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는 그런 어리석음들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하나님의 자녀답지 못한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그토록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살기 시작하다가 이제 와서 다시 자기 힘으로 살려고 하다니, 여러분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그렇게 많은 고난을 경험했는데도, 그 모든 것이 다 헛일이었습니까?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운데서 기적을 일으키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고 기적을 일으키신 것은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우리가 특별히 구원받을만한 무슨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했기에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 것도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복음 3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로 자녀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원하셔서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은혜라는 말 자체가 값없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남아있을 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죽으심이 바로 나를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믿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을 듣고 우리는 단지 아멘 하고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우리가 사는 것은 그렇게 구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구원받은 자녀가 되었기에 자녀답게 살고자 하는 것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도 아브라함에 대해서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받으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다.” 그래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주셨을 때 아브라함은 우상을 만들어 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자기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여기셨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는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여기시고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중생 또는 거듭남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한 백성 성도라고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 처음 아브람이었는데 하나님의 이름에서 한 글자를 떼어 내어 그 이름에 붙여주심으로 아브라함이 되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이제는 성도로 불러주십니다.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 거룩한 백성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우리 힘으로 살려고 하는 어리석은 자로 남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힘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결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가 없습니다. 다만 내 안에 계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살아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사람답게 되기 위해서는 그를 사람답게 되도록 가르치고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도 마찬가집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해주실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 이상 내 힘으로 살려고 애쓰지 마시고 오직 성령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르십시오. 성령께서 우리를 깨우쳐 주시고 가르쳐 주시는 대로 따르십시오. 그럴 때 우리는 참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만이 아닌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자녀다운 모습을 보면서 흐뭇해하시도록 그렇게 살아가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누가 하나님의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을 함께 누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나라와 네 친척과 네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를 큰 나라로 만들어 주고, 너에게 복을 주어, 너의 이름을 빛나게 할 것이다.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될 것이다. 너에게 복을 주는 사람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을 내가 저주하겠다.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모든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역시 이제 아브라함처럼 복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참 아브라함의 자녀입니다. 아브라함의 자녀라는 뜻은 곧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을 함께 누리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아브라함이 누렸던 복을 똑같이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또 다시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성경은 장차 일어날 일, 곧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줄 것을 미리 일러 주었습니다. 이 복음을 먼저 아브라함에게 전했는데 그것은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를 믿으니 그 믿음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누구든지 믿는 사람은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그 복을 우리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도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나 때문에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되는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서 5장 1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를 이리저리 다니며, 두루 살피고, 생각해 보아라. 성의 광장을 모두 뒤져, 정직한 일을 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지 찾아보아라.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지 찾아보아라. 너희가 찾을 수 있다면 내가 이 성을 용서해 주겠다.” 

또 잠언 11장 11절은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정직한 자의 축복을 통해 마을 전체가 자랑스럽게 되지만, 악인의 입은 그 마을을 망하게 한다.” 그 한 사람이 바로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누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이 말씀을 믿는 사람입니다. 내가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비록 세상으로 볼 때는 보잘것없는지는 몰라도 내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기만 하면 내가 바로 세상의 복의 근원이 되었던 아브라함의 복을 나도 누릴 수 있습니다. 나 때문에 망할 사람이 흥하게 됩니다. 나 때문에 죽을 사람이 살아나게 됩니다. 나 때문에 아무 짝에도 쓸모없던 사람이 가장 귀한 자로 바뀌게 됩니다. 

물론 그건 나 자신이 먼저 그렇습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패배주의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살지 마십시오. 나는 패배자가 아닙니다. 참된 승리자로 살 수 있습니다. 아니 더 이상 패배주의에 매이지 않는 사람은 패배자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나는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나의 능력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보십시오. 아니 어제 끝난 야구만 해도 그렇습니다. 물론 기대는 했겠지만 그래도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누가 믿었겠습니까? 오죽하면 일본의 호시노라는 감독이 그렇게도 우리나라를 물고 늘어졌겠습니까? 하지만 꿈이 있는 자는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승엽 일본전 홈런을 치기 직전까지만 해도 너무도 맥없이 물러서곤 했습니다. 하지만 감독이 그를 끝까지 믿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가 일본전과 쿠바전 가장 결정적인 순간의 결승 홈런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그렇게 밀어주고 계십니다. 왜요? 우리가 바로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으로 밀어주십니다. 거기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우리의 믿음입니다. 나도 믿지 못하는 나안데 그런 나를 하나님이 믿어주십니다. 나도 포기한 나를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입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곧 신뢰요 순종입니다.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9회말 1사 만루 한방이면 모든 것이 끝나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끝나버릴 수 있는 그 상황이 거꾸로 모든 것을 끝내주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금메달이 확정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자가 바로 이런 복을 누립니다. 아브라함이 받았던 복을 믿는 자가 똑같이 받습니다. 그 복된 자가 그 아브라함의 복을 함께 누리는 사람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믿음으로 받게 하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오늘날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는 사람을 볼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우리 역시 말씀대로 살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 은혜 받은 사람이기에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닌 구원받기 위해서 말씀대로 살려고 한다면 그것은 접근 방법이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장 쉽게 자동차 운전면허가 있기 때문에 운전하는 것이지 운전면허를 얻기 위해서 운전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운전면허를 얻기 위해서 자동차 학원도 다니고 주행연습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운전이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말씀을 들었기에 말씀에 기록된 대로 믿는 것이요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어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지 구원을 얻기 위해서 말씀대로 갈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 자신이 그렇게 살기에는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게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살기에 의롭다고 여김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요 의롭게 여김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게 되는 것이고 또 그렇게 살도록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말씀대로 살아보면 우리 자신이 말씀대로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부족한 나 자신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라고 그런 나 자신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역겹게만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의인은 말씀대로만 살리라고 하지 않고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추하고 더러운가 하는 것과 우리가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지르면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모를 때는 그것이 잘못인지도 몰랐습니다. 알고 나서 보니까 잘못됐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이런 우리의 모든 죄의 저주를 거두어 가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받을 벌을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우리 대신 십자가 위에서 받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들어왔던 저주로서의 죽음으로부터 우리가 자유롭게 된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요 우리가 믿고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단지 우리를 죄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보다 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이방인들에게도 미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옵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믿음으로 받게 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믿는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약속하신 성령을 믿음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믿음 안에 있는 우리 모두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힘입어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그때마다 성령께서 나를 붙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더 큰 은혜 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연약한 자를 강하게 해주시고 능력 있게 해 주십니다. 미련한 자에게는 지혜를 주십니다. 소심한 자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부족한 부분은 채워 주십니다. 가난한 자는 부하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할 수 없던 것을 할 수 있게 해주시고 은혜 아래서 기쁨과 평강을 누리게 만들어 주십니다. 누가 그런 삶을 누릴 수가 있습니까? 믿는 자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이 귀한 복을 누립니다. 그 복을 누리는 자요 복의 근원된 한 사람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받은바 은혜가 감사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제는 그 은혜 아래 강건하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안 된다고 믿지 마시고 된다고 믿으십시오. 약하다고 믿지 마시고 주님이 내게 능력주신다고 믿으십시오. 난 가난하다고 믿지 마시고 그러기에 더 풍성하게 나눌 수 있고 누릴 수 있다고 믿으십시오. 나는 못한다고 하지 마시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으십시오. 내가 바로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누리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믿으십시오. 오직 믿는 자가 아브라함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통해 놀라운 은혜로 약속하신 복을 누리도록 이끄신다고 굳게 믿고 이 믿음 안에서 더 큰 은혜와 사랑 가운데 살아가시는 믿음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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