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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랄 수 없는 중에 믿는 믿음 (롬 4: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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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랄 수 없는 중에 믿는 믿음 (롬 4:18~25)  
 

성경에는 하나님을 믿는 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하면 믿음의 사람과 믿음 없는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이들은 하나님께 칭찬 받는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사실 성도를 일컬어서 혹자는 ‘믿는 사람들’,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한마디로 믿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믿음’이란 현실에서 바랄 수 없는 큰 사실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 재림과 심판을 믿습니다. 나아가 구원과 영생, 삶의 목표와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 등에서부터 시작하여 현실의 생활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점 등을 포함합니다. 

본문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라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신앙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의 신앙은 어떤 신앙이었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신앙 

당시 아브라함은 매우 늙었고 그의 아내 사라 역시 태(胎)의 문이 닫힌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자기에게 후사를 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굳게 믿었다(18-21절). 이것은 본문의 간략한 내용입니다.

창세기 15장으로 돌아가 보면 하나님께서는 무자(無子)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으리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에게 후사를 주실 것을 약속하신 바 있습니다(창 15:4,5). 그러나 이러한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는 오래도록 자녀를 갖지 못했습니다(창 16:16, 17:24,25).

하지만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다시 한번 반복 확인하여 주셨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99세, 사라가 89세가 되어서야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리라’(창 17:16,17)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들에게 임하였습니다.

이때는 이미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는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때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미 출산능력이 없어진 자신의 신체적 조건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상식과 이성과 현실을 초월하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확연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절망적인 현실에 처한다 할지라도 상식과 이성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합니다. 

(롬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의 신앙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본문의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에 대하여 주석가 리츠만(Lietzmann)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은’ 인간적인 면에서 절망적이며 불가능한 상태이고 또 ‘바랐다’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의 가능성을 희망하고 믿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바랄 수 없는 중에서 바라고 믿는 아브라함의 신앙은 없는 중에서 있게 하심을 믿는 창조적 신앙이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심을 믿는 만능적인 신앙, 절망 속에서 낙심치 아니하는 소망적인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창조의 하나님, 그 아들을 주신 하나님, 지금 살아 계시는 하나님, 우리와 같이 계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아브라함처럼 믿게 될 때 우리는 큰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롬 4:17)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첫째,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임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산(出産) 능력이 없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 사이에서 약속의 아들 이삭을 출생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 가운데서 살리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둘째,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에서 ‘부르시는’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존재하게 하다’, ‘창조하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즉 그는 없는 것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자손을 볼 수 없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삭의 출생을 알리신 하나님은 하늘의 무수한 별들과 같이 그 백성이 번성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네 후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창 17:5)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셨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 모든 약속들을 지키셨습니다.

(렘 32:27)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2.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아니하고 믿는 믿음

요즈음 우리 나라에 미신이 성행하여 점괘를 보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특히 선거철이나 입시 혹은 자신의 출세와 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들은 허무맹랑한 것을 의존하고 요행을 바라는 바라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바라고 희망하는 것들이 무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회의 축복은 동기와 목적에 있어서 다르며 그 근거와 방법에 있어서도 전혀 다릅니다. 이것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 가운데 성도의 소원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간구하는 내용이 개인적이고 때로는 물질적일 수 있으나 그 목적은 하나님의 뜻과 인류애를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약속을 ‘다바르’라고 하는데 800회 이상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아들의 약속이며, 승천 후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 그리고 구주의 약속입니다. 이처럼은 성경은 약속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롬 4:20,21)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아브라함의 소망은 아들을 통한 자손의 번창과 그를 통한 모든 민족의 축복이었습니다. 그가 100세가 되어서 아들을 얻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약속’이란 우리들에게 소망과 환희와 의욕을 갖고 살아가게 합니다. 

예를 들면 탄광속에 갇힌 광부나 포로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구출과 해방의 소식과도 같아서 큰 믿음을 갖게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신앙으로 보증되고, 하나님 안에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어느 한쪽에서라도 의심하게 되면 파괴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의심’이란 ‘분리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의 생각이 양분되어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이지적 작용으로 생기는 심리적 현상으로 의지적인 면까지 동요하게 합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의심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서로 금이 생기지 아니하고 서로의 사이에 불순물이 개입되지 아니하고 어떤 공간도 생기지 아니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의심치 아니하고 믿었습니다. 그런고로 아브라함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인정받는 순수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히 11: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미국에 불론댕이라는 줄타기 명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나이어가라 위에 줄을 걸어서 타고 건너갔다. 만약에 조그마한 실수라도 있으면 순간에 폭포에 떨어지고 마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가 무사히 강을 건너자 구경꾼들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 등에 타라고 하였으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믿음의 놀라움을 알면서도 그렇게 실천하는 일에는 주저하고 의심하게 됩니다. 

  
3.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약하여지지 않는 신앙

(롬 4: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한 것은 아브라함이 일시적인 망설임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창세기 17장 17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처음에는 웃었고 100세의 나이에 전혀 불가능한 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곧 사라졌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은 한 번의 갈등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이란 환경이 좋을 때 그 믿음이 좋은 것 같고 잘 믿는 것 같고 힘이 있는 것 같아도 환경이 악화되면 그만 믿음이 약하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힘이 없는 믿음이요, 어린 믿음이요, 세속적인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은 어려운 일을 만나면 염려하며 동요하고 쉽게 넘어 집니다. 그러나 강한 믿음은 힘이 있는 믿음으로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 맡기고 더욱 담대하게 믿고 나가서 큰 역사를 일으킵니다. 이 믿음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믿는 자에게도 해당됩니다(롬 4:23-24).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한편 사람들 중에 신앙을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신앙을 너무 낙천주의적으로 해석하여 예수 믿으면 늘 즐겁고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성도는 어떤 시련과 고난도 싫어합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에게도 인생의 어려움이 오게 마련인데, 신앙생활에도 역경이 있게 마련이다. 만약에 우리가 세상의 근심과 걱정 없이 평안만 원하면 죽음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신약에 ‘믿음’이란 단어가 300회에 나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사역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자기포기와 예수 그리스도를 의뢰함을 뜻합니다. 또 공관 복음서에서 믿음은 종종 병 고침과 연관되어 있는데, 특히 요한복음에서 ‘믿다’는 뜻의 동사가 98회나 사용하면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믿음을 설명하는데, 눈으로 보는 것과 대조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이 장차 보이는 가시적 축복으로 나타남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믿음의 인물들은 아무런 외적인 증거를 얻지 못했으며, 의지할 것이라고는 단지 하나님의 약속뿐이었다. 그러나 그 믿음이 현실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순결한 삶을 복 돋아 주고, 고난을 인내로 견디게 합니다. 우리는 어떤 고난과 어려움에도 그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며 강한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새에게 그 날개는 무거운 것이나 그것 때문이 날아가고 배는 그 돛이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간다. 신자는 그 십자가가 짐이 되나 그것이 그로 하여금 천국으로 향하여 전진케 하는 것이다.(S. 러더포드 - 영국의 신학자) 

미국의 제1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어머니를 위한 잔치에서 한 프랑스 관원이 워싱턴의 어머니를 향하여 “어떻게 하여 아들을 그렇게 귀하게 만드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워싱턴의 어머니는 주저 없이 “나는 그에게 하나님께 복종할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무디 목사의 도전정신 - 시카고에 대화재가 나자 시내 중심에 있던 무디 목사의 교회도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이를 본 기자들이 무디 목사에게 화재에 대하여 빈정거리며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불이 날 수 있느냐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에 무디 목사는 “우리가 교회를 헐고 다시 세워야 하는 데, 하나님께서는 불에 태워서 건물을 허는 비용이 들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자들은 “그럼, 그 큰 교회를 세울 돈은 가지고 있습니까?” 하고 묻자, 무디 목사는 낡은 성경책을 보이며, “나는 수표와 돈을 가지고 나오지는 못했지만, 아무리 써도 바닥이 나지 않는 하나님의 금고인 성경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고 답했습니다. 그 후 무디 목사는 영국으로 건너가 전 영국을 뒤흔드는 부흥을 일으켰고, 영국에서는 교회건축을 위해 많은 헌금을 했습니다. 

  
결 론 

우리 성도들도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불가능한 일들을 믿음 안에서 성취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로 인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우리로 하여금 의롭다 함을 얻게 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브라함처럼 불가능의 상황 속에서 낙심하지 않는 큰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불임증의 여인 사라로 하여금 아이를 잉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갈 3: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믿는 믿음으로 큰 은혜와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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