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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나라의 비밀 (마 1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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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비밀 (마 13:10-17)


오늘 읽은 본문은 하나님 나라를 알릴 때 비유를 사용하신 예수님의 의도와 그 나라의 비밀이 무엇인지 제자들에게 설명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천국을 말씀하실 때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13:34, 35).   

그 이유는 창세로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제자들과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었지만 천국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보는 눈이 열려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가리워져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사용된 비밀이라는 말을 NIV 성경은 secret로 번역했지만 대부분 영어성경들은 헬라어 원문을 따라 mystery로 표현합니다. 둘 다 비밀이라는 뜻이 있지만 뉘앙스가 좀 다릅니다. Secret은 말 그대로 감추어져 드러나지 않은 것이라면 mystery는 보기는 보는데 잘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더 이상 감추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 천하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눈에 빤히 보이는데 알아채지 못하는 그런 의미에서 천국은 비밀, mystery입니다.  

그러나 주님 말씀처럼 남들은 눈을 뜨고도 못 보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그것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구약의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미래의 일이었습니다.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우리가 보는 것들을 보려고 했으나 보지 못했고 우리가 듣는 것을 듣고자 했지만 듣지 못하였다고 하셨습니다(마13:17). 그러나 이제는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게 임하였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보고 듣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완악하여져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왕권을 가지고 세상에 오셨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완악하여져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았고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느 민족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있고 그 나라를 기다리던 사람들인데 어찌하여 완악한 마음으로 그 천국을 거부하였을까 그것 또한 mystery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9장에서부터 11장에 이르는 부분에서 이스라엘의 완악함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불순종이 도리어 이방인의 구원을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1장 25절에서 바울은 이것이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secret이 mystery가 되었습니다. 감추어진 것이 드러났고 보일 자에게 보이고 들을 자는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임함이 신비이고 또 그것을 받은 대상들이 뜻밖의 사람이라는 점이 신비롭습니다. 바울의 말처럼 이 구원의 진리는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깊고도 크신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세 번 놀라게 된다는 고전적인 예화가 있습니다. 첫째 놀라는 것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사람이 천국에 와 있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이 천국에 왔어?’ 하고 놀란답니다. 둘째는 꼭 천국 갈 것이라 여겼던 사람이 안 보여 ‘그 분은 없네?’ 하고 놀란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과 같은 사람도 천국에 들어왔음에 놀라 ‘나 같은 사람도 왔네?’ 한다고 하니 이것이 또한 신비가 아닐까요?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예수님의 비유들을 봅시다. 비유는 그 이야기를 통해 진리를 발견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 속에 담긴 진리를 찾았으면 충분하지 그 비유를 기발하게 해석하느라 엉뚱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오래 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셨다’는 말씀은 성령이 임하는 모습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비둘기입니다. 비둘기는 푸른 콩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성질이 온순합니다. 우리가 비둘기처럼 온순한 성령의 사람이 되려면 비둘기를 닮아 푸른 콩을 많이 먹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석해버리면 완전히 본래의 뜻과는 다른 비유가 되고 맙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천국의 비밀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도 그 비밀, mystery라는 말에 본 뜻을 두고 이해해야지 그 비유를 너무 은혜 충만하게 해석하다가 예수께서 의도하신 본 뜻을 넘어서면 ‘우리도 비둘기처럼 푸른 콩을 잘 먹는 사람이 됩시다’ 하고 영 딴 길로 빠지는 격이 됩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말씀 그대로 씨 뿌리는 비유로 들어야지 ‘네 가지 마음 밭이 있는데 우리는 옥토가 되어야 합니다’ 하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핵심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예수께서 의도하신 바는 마음 밭의 종류를 소개하심보다는 생명력 있는 천국 복음 그 자체를 소개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세례 요한도 그렇게 기대하였고 유대인들이 기대하였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가 영광과 존귀와 능력으로 모양을 갖추고 위엄 있게 나타나야 하는데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왔습니다.   

영광스러운 천국의 복음을 사단이 와서 홱 빼앗아 버리고, 세상 걱정과 유혹과 핍박 등 안팎으로 어려움이 있으면 사람들이 천국 복음을 쉽게 포기해버리는 것을 보시면서도 그 힘과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감춘 채 뿌려졌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가 그 영광과 능력을 감추고 들어왔기에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았고 또 그렇게 들어오리라고 상상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는 내 기준과 상상이 정작 나에게 다가온 하나님 나라를 몰라보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천국 복음은 생명이기에 준비된 마음, 즉 좋은 땅에 떨어지면 그 생명력을 감추지 않고 힘차게 활동하여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결실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요?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가져오게 되니 이것이 천국의 비밀 다시 말해 mystery입니다. 

예수께서 또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심술 궂은 원수가 몰래 와서 그 밭에 가라지를 뿌리고 덧뿌리고 갔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싹이 나서 자라는데 가만 보니 가라지도 함께 자랍니다. 종들이 주인에게 가라지를 뽑아버릴까요?  할 때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되니 추수할 때까지 함께 자라도록 그냥 두었다가 추수할 때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나의 창고에 넣으라 하였습니다.   주인의 밭에 가라지와 곡식이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밭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교회입니까?  어떤 목사님이 분란이 있는 교회에 강사로 가서 가라지 같은 교인들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설교하여 누가 가라지인가? 하고 서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밭이 교회입니까?  세상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곧 천국이 아닙니다. 교회는 가라지들은 쫓아내고 알곡들만 모아놓은 완전한 천국이 아닙니다. 오히려 병든 영혼들이 찾아오는 병원과 같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과 그 능력을 가장 잘 나타내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사단으로부터 가장 강력한 공격을 받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혼란에 빠지고 교인들이 시험에 들어 세상 사람들에게 빛을 드러내지 못하고 손가락질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교회는 필요가 없다고 하여 나 홀로 성경말씀 지키고 선하게 살면 된다는 교회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고 어떤 이들은 교회의 모습을 보고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흠이 많고 불완전한 죄인들이 모인 지상의 교회가 완벽하지 못하다고 하여 하나님 나라를 부인하거나 하나님의 존재마저 부정하고 떠나가는 것은 지혜로운 태도가 아닙니다. 마치 기저귀에 똥을 싸 뭉개 몸이 더러워진 어린 아기를 씻겨 주다가 목욕물이 더럽다고 물과 함께 아기를 씻어주던 함지박도 버리고 아예 아기도 내다 버리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세상이 더럽고 추하여 하나님 나라의 정의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나라는 지금 세상의 부조리 속에서 그 영광과 능력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고 가라지와 알곡이 섞인 채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설교하면서 몇 차례 반복하여 말씀을 드린 것처럼 지금은 가라지를 뿌리 채 뽑아내는 심판의 때가 아니라 함께 자라도록 놔두고 기다리시는 때입니다. 가라지가 알곡보다 더 왕성하게 자라는 것처럼 세상의 불의와 악독이 정의보다 더 잘되고 번성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왕창 뒤엎어버리고 정의의 칼을 뽑아 악한 자들을 본때 있게 해치우는 심판의 때가 아닙니다. 악은 더 악하여져 그 악함이 잘 드러나게 하시고 알곡은 더 성숙하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때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보면서 왜 이런 세상을 그냥 놔두시는가 불평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천사들이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들까지 다칠까 봐 그냥 놔두시기로 하셨습니다. 언제까지요? 이 세상 마지막 날까지입니다. 그 때까지 알곡은 계속 자라고 있을 겁니다. 그것은 구원을 위함입니다. 지금은 구원의 때요 은혜 받을 날입니다(고후6:2).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기다리심입니다. 그 기다리심 속에 저와 여러분이 부름을 받고 구원 얻은 자녀로 삽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이런 하나님의 뜻을 mystery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완악하여져서 복음을 순종하지 않은 결과 그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전하여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이 복음에 순종하여 구원을 얻는 것을 보고 시기가 나게 하여 그들도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돌아와 구원 받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도리어 이방인의 구원이 되었다는 역설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비밀입니다.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영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바울은 사람들로서는 감히 측량할 수 없는 깊고 오묘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을 찬양합니다(롬11:33).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스스로 지혜 있다고 자랑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이 비밀을 모르기를 원치 않는다고 아주 강력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비유입니다. 물론 겨자씨처럼 지극히 작은 씨 하나가 자라서 새들이 집을 짓고 사는 큰 식물이 되는 것처럼 천국이 이렇게 자란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은 얼마 안 되는 작은 모임이지만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정직하게 살면 세상은 점점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되어 마침내 이 땅에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심히 복음을 전합시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뭐 잘못된 해석처럼 보이지 않습니다만 이 비유의 본 뜻에서 방향이 빗나갔습니다.   

인간의 발전하는 지혜와 진보되어가는 고등한 인간성 또는 이성을 가진 인간의 꾸준한 노력으로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겠다고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상주의자들처럼 하나님 나라가 그렇게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이 타락한 세상이 심판이라는 그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 결코 유토피아라는 낙관적 상태로 완성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인간성이 그렇게 발전되고 개선이 되어 세상을 죄 없는 낙원으로 만들 수 있다면 예수께서 구태여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희생하실 필요가 없었고 다시 오실 필요도 없습니다.  

겨자씨 비유에서 예수님이 하시고 싶은 말씀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여 전도하면 이 땅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세상에 가져다 심은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작은 겨자씨와 그것으로부터 자라난 겨자나무를 비교해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큰 식물이 그렇게 작은 씨로부터 나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천국이 이렇게 그 능력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이 세상에 들어와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상상하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먼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우리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나 다 자란 후에 그 진면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Mystery 입니다.

우리는 천국 하면 머리 속에 화려하고 찬란한 그림을 그리고, 정의 실현이라는 화끈한 심판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가 지금 우리 중에 와 있는 천국을 놓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세상이라는 밭에는 주께서 친히 심으신 하나님 나라라는 씨앗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 나라의 찬란한 영광과 그 능력을 미래의 일로 감추신 채 지금은 다만 사람들이 그 나라의 시민으로 들어오도록 계속 초청을 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신비로운 천국의 비밀입니다.

누룩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작은 겨자씨가 큰 식물이 되는 것처럼 많은 밀가루 속에 넣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양의 누룩이 나중에 밀가루 전체를 어떻게 발효시키는지 그 결과는 처음 시작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입니다. 누룩의 양이 너무 미미하기 때문에 그 누룩을 넣은 사람 외에는 아무도 거기에 누룩이 들어온 것을 알아차릴 수 없지만 나중에는 온 밀가루를 부풀려 버립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오셨을 때 처음에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미미하였지만 그 나라는 어느새 세상 속에서 그 생명력을 나타냅니다. 그것이 천국의 신비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는 어떻습니까? 남의 밭을 갈다가 땅 속에 묻힌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그것을 얻기 위하여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고 하였습니다. 비유는 비유로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내 땅이 아닌 주인의 땅에 감추인 보화는 법적으로 내 것이 아니라 밭 주인의 것입니다. 그것을 감추어 두고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사는 것은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주인의 것을 가로챔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천국을 남의 것을 속여 가로채는 것으로 설명하시기 위함이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교훈은 이 비유의 핵심이 아닙니다.

이 비유의 의도는 다른 데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귀중한 보물이 밭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물은 화려하게 장식된 상자에 보관되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보물이 멋진 상자에 포장되어 장식장 속에 넣어있는 것이 아니라 흙 속에 던져져 있습니다.   밭에서 뭔가 반짝이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보석이라고는 상상치 않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러나 밭에 널려 있는 그것을 보화로 알아챈 사람만이 그것을 소유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팔아 산다는 말입니다.   골동품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그것을 눈 여겨 보고 기어코 자기의 것으로 사들입니다.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거리라는 말이 있지요? 성경에서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마7:6)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너희가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천국은 사람들이 흔히 기대하는 상식을 따라 온 것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한 방식으로 오기에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오직 그것을 발견한 사람만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소유합니다. 이것이 천국의 비밀, 신비입니다.  그 보화를 사기 위해 무엇을 팔았습니까?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았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기 위하여 가진 재물을 다 팔아 교회에 바쳐야 된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유를 오해하면 영 딴 길로 빠지고 하나님 말씀을 뒤집어 놓는 결과가 나옵니다.  비유는 비유에서 그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다음에 나오는 진주를 구하는 장사의 비유도 비슷합니다.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자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것을 샀습니다.   그 진가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천국을 발견하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삼기 위하여 정말 내다 파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재물입니까? 그것도 포함이 될 수 있지만 내가 나의 전부라고 여기고 꼭 쥐고 있는 시간이나 지식, 권력 심지어 내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천국을 소유하기 위하여 예수를 믿기 위하여 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할 때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것이 아니라 바보소리를 듣습니다. 보이지도 않고 있지도 않는 천당에 간다고 저렇게 어리석은 짓을 한다는 가족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핀잔도 듣습니다.   그래도 내 모든 것을 다 던져 그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땅 팔고 집 팔아 마련한 돈은 겨우 밭을 살 수 있는 금액이지 감추인 보화의 값에는 턱 없이 못 미칩니다.   예수 믿는다고 자존심 다 팔았으니 내가 바보가 되었습니까?    그리고 천국 백성이 되기 위하여 내가 충분히 값을 지불했다고 자신합니까?   남들은 팽팽 놀고 세상에서 누릴 것 다 누리며 자기 하고픈 짓 다하며 사는 동안 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시간과 물질과 땀과 희생을 하였다고 억울하신지요?   사실 천국이라는 그 보석과 진주의 가치에 비하면 내가 내다 팔은 나의 자존심이나 나의 희생은 절대 비교될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주에 비하면 별 쓸모도 없는 것이었으니 그것 버렸다고 희생도 아니고 손해도 아닙니다.   오히려 당연한 지불입니다.   천국이 우리에게 이런 방식으로 임한다는 것이 비밀이고 신비입니다.   

예수께서 한 가지 더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마치 바다에서 각종 물고기를 잡는 그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어부들이 그물을 끌어내어 그 속에 잡힌 것들을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누고 나쁜 것은 내버립니다.   세상 끝에도 이러할 것이라 하십니다.   천사들이 의인들 중에서 악인을 가려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 하십니다.   알곡과 가라지 이야기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드디어 심판의 날이 있음을 경고하십니다.   선과 악이 언제까지나 영원히 섞여 있지 않고 완전히 갈라내는 날이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세상이라는 밭에 함께 있고, 교회 안에는 선한 사람만 있지 않고 별별 사람들도 다 함께 있습니다.   

지금은 초청의 때입니다.   문이 활짝 열려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는 선과 악을 가려내십니다.   진짜와 가짜를 골라내십니다.   지상 교회가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다.   세상이 가진 혐오스런 모습도 보입니다.    아니 때로는 더 야비하고 독한 모습도 보입니다.   그래서 드러나는 모습만 보면 실족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지금은 그물을 던져 모으는 때이지 가려내는 때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다시 오실 그날은 오늘 당하는 이유 모를 고난과 역경 속에서 인내하며 바라보고 기다리는 중에 맞이하게 됩니다.  그날은 점점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분명히 주께서 다시 오십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여러 비유를 말씀하신 후 제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여러 시간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도 이 천국의 비밀, 신비를 이 말씀을 깨달으셨습니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기 바랍니다.    천국 백성으로 살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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