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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같은 가정 (엡 5: 2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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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엡 5: 22~6:4
 제목 : 교회같은 가정


   에베소서는 교회론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 말하노라’ 32절에 그렇게 말 하면서도 33절 결론에서는 ‘너희는 각각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고 가정에 대한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다보면 가정에 대한 말씀인지 교회에 대한 말씀인지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운데 이상적인 교회는 가정같아야하고 이상적인 가정은 교회같아야 한다는 말이 있게 되는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같이 교회같은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21세기를 맞기까지 많은 연구와 발전과 계획으로 아름다운 문화를 만들고, 오늘 우리가 여기에 살아갑니다. 이런 것들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답습니까?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수고와 피땀을 지불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그릇이 깨어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흘려버리고 못쓰게 되지 않겠습니까? 한 시골에서 자라신 분의 이야기입니다. 
 시골에서 자랄 때에 할 일이 없어서 소 먹이러 가면 새 집 찾으러 다니고, 마을 앞 큰 버드나무 위에 가면 까치집에서 새알과 까치새끼내려서 가지고 놉니다. 좋은 장난감이 없으니까 뭐 그렇게 놀았겠지요.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잔인한 일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개구리를 잡아다가 개구리 궁둥이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개구리가 두꺼비같이 뻥 튀겨져 가지도 못하고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새집을  헐어버리면 새 새끼들도 죽고 큰어미 새도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리고 맙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가정이 뭡니까? 가정이 새집이지요 인생의 모든 삶을 담고 있는 그릇이지요 그래서 가정이 깨어지면 거기에 담겨져 있던 새끼들이 불안해지는 것처럼 인간들이 불안해지고 흩어지는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되어 잘 살도록  권고하시고 그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을 방해하고 깨뜨리는 것은 사탄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파괴시키고 깨뜨리고 그러면 자연히 흩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옛날보다 살기가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이제 일류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GNP를 높이기 위해서 수출을 많이 하고 경제가 안정되고 정치가 안정되고, 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가정이 깨어지면 모든 것들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흩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주신 이 말씀안에 귀한 가정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정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두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어떤 가정이 되어야 하나님의 선물인 가정이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 가정의 기원은 
   첫째로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2장 22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사람을 만들었는데 아담 혼자 독처하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아니하셔서 아담이 잘 때 갈비뼈를 취하여 사람을 만들어 아담에게 데려 갔더니 아담은 ‘이는 내 뼈중에 뼈요 내 살중에 살이다 이는 그 이름을 내게서 났으니 혜화라 하리라’ 이렇게 하나님이 가정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혜화를 선물로 만들어 남편되는 아담에게 주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중심적인 삶에서부터 점점 멀어져서 자기 중심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도 남편도 아내도 가정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나의 선택이요, 내가 만들고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내도 내가 잘 택해야 하고, 남편도 내가 잘 택해야 하고, 그래야 내가 행복해지고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삶의 한 행복의 수단으로 자기 중심적으로 살게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가정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로를 돕기 위하여, 아담을 돕기 위하여 하와를, 하와의 연약함을 돕기 위하여 아담을, 그래서 한 가정을 이루어 그 가정안에서 생명의 줄을 잇게 했습니다. 여권신장이 되어가는 것은 좋은 일이나, ‘여자는 집에서 애나 낳고 밥만 하는 것이냐’ 한다면  여자가 애기 안 낳았으면 여러분과 내가 여기에 어떻게 있겠습니까? 사업을 하고 직장을 가지는 것은 자유요 주어진 자기 책임이요 자기성취이지만, 자녀를 기르는 일, 생명을 기르는 일과 비교하면 하잘것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생명을 하나의 소유로만 생각합니다. 그것보다 더 유용하고 가치가 있는것이라 생각하면 생명과 대치시킵니다. 그것을 우리 비인간화라고 하지 않습니까?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니 아내도 남편도 자식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 자식 내 맘대로 못해서 고민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얘야 내가 너 때문에 얼굴을 들 수가 없다’고 하기도 하는데, 물론 사랑하는 자녀가 부모의 얼굴을 빛내 줄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녀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요, 하나님이 그를 인하여 받으실 영광을 위하여 만들어내신 생명이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데 우리모두는 자기에게 끌어들입니다. 교회나 가정이나 의미는 똑같은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여기게 은혜를 받고 신앙이 커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이 비뚤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지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교육에 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우리와 무엇이 다릅니까? ‘너는 내 자식 우리집 애 그러므로 너는 대한의 자식’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땅에 태어나게 하셨으니 모두가 심지어 불구로 태어났든 장애자로 태어났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태어나게 하였느니라’ 얼마나 다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물이란 그 기능과 가치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주신 것인가에 그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알고, 그래서 보면 자꾸 귀해지는 것입니다. 자꾸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점점 존귀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안합니다.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 그 사람이라 생각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라 생각하면 다 아름다워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대로 하면 아름다울 것이 하나도 없어요.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 보다 특별한 사람들입니까? 우리 모두가 다 고만고만한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귀한 가정으로 하나님이 내게 은혜와 복을 주시기 위하여 그의 선하신 뜻을 위하여 주셨느니라.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대한 고백인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가정은 26절을 보면 ‘이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그러므로 가정은 깨끗해야 합니다.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여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꿋케 하리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거울로 삼아 보게 되어질 때에 우리의 추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추잡한 생각, 우리의 마음에 품은 것들 물로 씻어서 다 깨끗하지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오면 주께서 우리를 피로 씻으시고 그의 말씀으로 씻어 깨끗하게 하신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가정을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꺠끗한 사람은 없습니다. 늘 주의 말씀으로 씻고 주의 말씀을 묵상하고 주의 피로 가정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가정은 경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경건해야 합니다. 27절에 보니까 ‘자기 앞에 영광스런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가정, 하나님의 교회는 경건해야합니다. ‘육체의 경건은 약간은 유익이 있으나 우리의 영혼의 경건함은 금생과 내생에 유익함이니라’ 
   장로회신학대학의 표어는 ‘학문과 경건“입니다. 신학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이 말씀을 어떻게 볼것인가? 신학이 없는 말씀은 뼈가 없지 않습니까? 열심히 공부하는 학문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학교 들어가기가 참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입학만 하면 벌써 헬라어, 히브리어부터 먼저 하게 되고 굉장히 공부를 많이 시킵니다. 그러나 경건해야 합니다. 영혼이 맑아야 하고 영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거룩한 성령이 역사하고 사람의 힘이 아닌 말씀의 능력이 거하며, 사랑하는 가정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한 장로님의 경우 가정에 어렵고 힘든일이 생겨날 때 온 식구가 모여서 늘 찬송부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열심히 기도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우리의 가정이 경건해야 합니다.
   오늘 가정의 질이, 그 모습이 아주 타락되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깨끗하게 보존하여야 하고 경건하여서 하나님의 거룩한 의와 영광을 드러내기에 넉넉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교회와 가정이 하나님의 선물인데, 경건하고 깨끗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에 그런 은혜를 주십니다. 가정이 깨끗하고 경건해야 한다, 교회가 깨끗하고 경건해야 한다는 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깨끗하고 경건해야 한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꾸 그런 문제를 남에게 돌립니다. 왜 너는 깨끗하지 않느냐 너는 왜 경건하지 않느냐 내가 깨끗하고 내가 경건하고 내가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하고 내가 나를 떠나서 하나님 중심, 경건하게 되어질 때 가정이 경건하여 지고 교회가 경건해집니다. 
   
   가정과 교회가 갖고 있는 특색이 있습니다. 하나됨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우주적 신령한 하나의 교회 지교회 청운교회 영락교회 등 여러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안에서 한 주를 믿고 한 소망을 갖고 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그들은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며 하나입니다. 그래서 4장 말씀을 보면 ‘너희는 여럿인데 이제 하나가 되어라 그것을 힘써 지켜라’ 그렇게 가르치지 않고 ‘너희는 하나이니라’합니다. ‘너희들이 생각하기에 너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저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버린 백성이다’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담을 허셨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하나다 하나된 것을 힘써 지켜라’ 왜 힘써 지키라고 하셨습니까? 우리에게는 자기주장을 따라 헤어지기 쉽고 패를 짜 나누기 쉬운 사탄의 시험과 유혹이 있기 때문에, 힘써 지키라, 사랑하는 가정 사랑하는 교회 이것이 하나입니다. 힘써 지켜야 합니다. 가만히 두면 안됩니다. 
   가정도 힘써 지켜야합니다. 아내, 남편, 자녀가 하나님 가정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어느 가정을 보면 하나같은데 속은 둘이고 셋인 가정, 그래서 엄마편 따로 아빠편 따로 있고 경제도 엄마주머니 따로 아빠 주머니 따로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신용을 위해서 카드를 많이 쓰게 하고자 하는데 지출과 수입을 공평하게 만들고 세금을 많이 내게 하는 제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은행에 등록을 하고 통장을 갖게 되면 가정의 수표를 갖게 되는데 그것은 부부가 같이 사인을 합니다. 그래서 보통 개인이 하지 않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같이 사인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인을 하고 수표를 쓰고 나면 다시 은행에 들어갔다가 돌아나옵니다. 그래서 가족이 똑같이 돈의 출입을 알게 됩니다. 숨기지 못합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보면 세사람이나 두사람이 사인을 해야 돈이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돈이 들어오면 모두 은행에 들어가게 되고, 모든 나가는 돈은 교회에서 기록을 합니다. 반드시 두 세사람이 싸인을 해야 반드시 돈이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은행에 들어갔다가 나오니 영수증을 쓸 필요없이 다 하나가 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그리스도안에서 마음도 뜻도 생활도 모두 하나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교회요, 가정입니다. 우리가 때로 생각과 방법을 달리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다른 존재요 다른 단체요 다른 공동체요 다른 것 같이 생각될지 모르지만 가정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하나가 될지니라. 우리가 성찬을 행할때에 주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면서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요 예수는 교회의 머리 우리는 그의 지체니라 그래서 우리는 하나이니 ’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가정과 교회의 특색입니다. 
   다같이 따라하십시다.우리는 하나입니다. 그것을 아는일이 얼마나 지혜로운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것을 모를때에 서로에게 상처투성이만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공격해보십시오 남편이 아내에게 상처를 줘보십시오 그게 누구의 상처가 되는것입니까? 그러므로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고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를 왕후라고 하면 자기는 왕이 되는것입니다. 자기 아내를 천한 종으로 비유하면 자기는 종의 남편이지 별수 있습니까? 하나입니다. 자기는 왕이고 아내가 종일수 있습니까? 하나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목사는 누구입니까 장로는 누구이며 처음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리석게도 남편이 아내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상처를 주고, 가장 사랑하고 가장 존경하고 믿고 있는 부모가, 격려를 주고 사랑을 준다는 자녀에게 낙담하는 말을 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가 되어집니까? 
   첫째, 사랑의 원리입니다. 오늘 25절을 보면 ‘남편들아 아내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요 우리가 교회의 지체가 되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자신을 주심으로 교회를 사랑하신것같이 남편들이여 아내를 사랑하라’
   ‘내가 아내를 위하여 헌신하고 자신을 버리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니라’ 사랑의 원리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함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마치 내가 큰 일을 하는 것 같고, 빚지는 것 같고, 큰 손해를 보는 것 같이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까?

   두 번째는 존경입니다. 마지막절 33절을 보면 ‘너희 각 사람은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자기남편을 존경할지니라’ 22절에 보면 ‘아내들이여 남편사랑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여기 순종, 복종이라는 말은 비굴하게 힘에 눌려서 종의 근성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함과 존경함으로 자원하여 하는 일을 말합니다. 여기 존경의 원리는 ‘교회가 주께 하듯 남편에게,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듯 아내에게,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순종하라. 그것은 남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자원하는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라’
   철의 부인, 영국의 대처부인에 대한 기사를 보면 언론들이 그에게 세가지 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영국병을 고친것이고, 또 하나는 영국국위가 세계에 높아져서 영국국민의 자존심을 살려준 것, 세번째는 포틀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끈것이라 합니다.  대처 부인이 이 포틀랜드 승전 2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가 예의 바르게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남편을 보살피는 일이 거기에 참여하는 일보다 귀해서라고 했는데, ‘철의 수상’이라 ‘철의 여인’이라는 말과 너무 대조적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건강은 넉넉한데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자기 혼자 가는 것이, 이제 나이 많고 약해진 남편에게  누가 될까봐 자기가 사양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변호사가 되고 쌍둥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을 때 법원에 나가 열심히 일하고 지쳐서 돌아오면 집에 가사일이 너무 많아서 식구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커튼을 치고 복도의 불의 끄고 불이 새 나가지 않도록 부엌에서 밤이 맞도록 일을 하고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기사였습니다. 
   또 남편들 되신 분들 집에 가서 ‘목사말씀 들었지?’ 하지 마십시오. 존경과 사랑의 자유로운 말씀입니다. 누가 하라고 해서 하면 이런 억울한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혼자 잘먹고 잘살자는 것이 아닌 가족을 위해서인데 낮에는 변호사로 하루종일 일하고 들어와 가족들 잠깰까봐 복도의 불을 끄고 부엌의 불이 새나갈까봐 가려놓고 일을 하는 것이 만일 책임이고 억지로 하는 일이라면 그런 불행이 세상에 어디있겠습니까? 가정을 사랑하고 남편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한다면 그에게 그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요, 얼마나 아름다운일이겠습니까? 
   우리는 억지로 못합니다. 존경하게 되어질 때에 사랑하게 되고 순복하게 됩니다. 사랑하게 될 때 어떤 수고도 희생도 감당하게 되는 것이지, 희생해라 헌신해라 그래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입니까? 그것은 율법이요 심판이요 그것은 무거운 짐이 되는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속에 넘쳐나고, 나같은 죄인 살리시고 내게 큰 은혜를 주셨으니 어떤 희생도, 어떤 봉사도 너무 기쁜겁니다. 누가 알아주느냐 알아주지않느냐 그것이 뭐 귀한것입니까? 
   
   이 하나됨의 원리는 이제 그 원리를 따라 책임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그렇게 가르칩니다. 아내는 존경함으로 순종해야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아내들아 남편에게 순종하둣 주께 하라 주께서 땅에 와 제자들을 사랑하셨던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너희가 서로 순종하고 복종하라’. 
   둘째 ‘남편들아 아내사랑함으로 희생하라’, 희생하라하니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함으로 희생해야 합니다. 
   세번째 ‘자녀는 부모를 존경함으로 순종하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는 계명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존경함으로 부모에게 사랑하느냐는 가정교육과 예의 범절로 볼수 있는데 저는 딱 하나로 알 수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물어보아서 너는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했을 때입니다. 엄마가 딸에게 그럽니다. 너는 아빠같은 사람과 절대 결혼하지 말아라, 존경하지 마라 그럽니다. 참 이상합니다. 물론 훌륭한 정치가 자선가 위인을 본받겠다는 것은 좋은일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딸이 ‘나는 우리 엄마를 참 존경해요’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가정입니까?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나는 우리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아버지를 미워하면 불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존경받으면 뭘 합니까? 다른 사람을 존경하라면 뭘합니까? 내 속으로 난 자식, 나를 낳으신 부모 사랑하고 존경하지 못한다면 다른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다른 것들은 순수함이 없습니다. 내게 불리할까봐 내가 위기를 당할까봐 존경함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 우리모두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부모를 존경함으로 부모에게 순복할 수 있는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자녀하기도 힘들지만 부모하기도 힘듧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녀라고 해서 맘대로 얘기 하는 것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녀라고 해서  네가 얼마나 살았다고 뭘 아냐고 함부로 말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면 자녀들이 뭐라 그러는지 압니까? 할 수 없군 그러니 저렇게 살지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참으로 서로 존경할 수 있는 관계를 갖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 모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기본 틀입니다. 이것이 깨어지면 경제도 나라도 정치도 다 무너집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이명박장로님 간증하라고 하니까 어릴 때에 아침에 맛있게 잘려고 하려면 깨워서 예배보는데, 찬송도 늘 그 찬송, 기도도 늘 그 기도인데, 그 어머님 기도가 꼭 판에 박혀서 나라를 위해서 교회 위해서 자기네 이름부르면서 매일 똑같은 기도만 하신다고합니다. 늘 ‘하나님 저들을 지켜주시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해 주시고 오늘 주신 말씀으로 주님만 의지하고 살게 하시옵소서’ 그래서 ‘아침에 예배 안봤으면 좋겠다. 우리아버지는 아프지도 않는가 아파서 누워계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그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나가면서 마음이 흔들리고 마음이 흐트러지고 힘들고 어려울때에 하나님 앞에 엎드러진 그 기도가 그 귀에 쟁쟁하여 ‘하나님 저는 가진것도 배운것도 없이 하나님께 이 자녀들을 맏깁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게 해 주십시오’ 그 말씀이 마음에 와서  ‘그렇지 내가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야지’ 그렇게 고백하게 되더랍니다. 그렇게 듣기 싫더니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한 이 얘기가 내 인생과 신앙의 길을 인도하는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자녀들을 참으로 사랑하시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들을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내 교훈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던져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있어 그들의 삶 속에 그들의 생활가운데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줄 믿습니다. 3학년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하는 일보다 공부에 힘쓰라하시는데, 학교 공부에 대해 많은 비판이 일어나고 있는 이때에, 이런 의미에서 교회가 갖고 있는 위대한 교육의 힘을 발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여 하나님이 쓰시는 귀한 일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와 가정은 이렇게 행복을 만들어내고 생명을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귀하고 교회가 소중한 것입니다. 이 말은 가정을 꾸린 우리가 한 남편으로서 한 아내로서 넉넉한 자격을 가졌다거나, 부모로서 자녀로서 훌륭한 역할을 잘 감당한다라거나, 하나님의 교회에 모인 구성원들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이 아니고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교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를 믿음안에서 측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의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정이 그리스도안에서 존경과 사랑과 하나됨을 굳게 지켜, 경건한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여러분의 삶이 주안에서 복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워진 오늘 청운교회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의 놀라운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심으로 우리가 이 땅위에 빛과 소금으로 살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삶이 이 땅위에 하나님의 선한 영광을 드러내는 빛과 소금이 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가정에 하나님이 복을 주시되 수천대에 이르기까지 하리라’ 하나님의 축복이 계신 교회, 여러분의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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