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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위대한 야망 (빌 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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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위대한 야망 (빌 3:1~16) 


그리스도인들 중에 사도 바울만큼 지대한 영향력을 세상에 끼쳤던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했던 한 혈기왕성한 청년이 어떻게 이런 놀라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노년에 로마 감옥에서 기록한 내용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만난 후 평생을 통해 추구했던 위대한 야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도님들도 바울의 이 야망을 자신의 푯대로 삼고 힘써 달려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복된 삶을 살게 되셨으면 합니다. 


I.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3:1-3) 

그리스도인은 주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그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반복적으로 이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에게는 수고로움이 아니고 성도들에게는 안전합니다.(1절) 

주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성도님들, 주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누리고 계십니까? 
무더운 날씨에 지치기도 하고, 가족들과 휴가도 보내고, 올림픽도 보며 분주한 시간을 보내셨을 텐데 마음속에 이 기쁨이 있으십니까? 

주 안에서 기쁨을 누리려면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세상을 살다가 이 정체성이 희미해지면 우리는 기쁨을 상실하게 됩니다. 바울은 3절에서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셋째, 자신에게 어떤 신뢰도 두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조용히 한 번 고백해보십시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성령을 좇아 예배하고 봉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자랑합니다. 저는 제 육체에 어떤 신뢰도 두지 않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 마음에서 흘러나오고 우리 마음과 생각을 다시금 지배하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II. 왜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3:4-8)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명확히 정의한 후 4절부터 자신의 간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이 육체를 신뢰하는 대신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는 것은, 자신이 실패했고 무능력했기 때문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4-6절을 통해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자신은 자랑할 많은 것이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가문, 로마 시민권, 능력 있고 신앙과 교육에 열정적이었던 부모님, 당시 유대 최고의 스승이었던 가말리엘 문하에서 익힌 실력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던 탁월한 삶, 이 모든 것을 바울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자신이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신이 가진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탁월하고 귀한 분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7-8절에서 고백한대로, 이전에 바울이 추구했던 많은 것들을 예수님과 비교해보았을 때 그것은 해로운 것 그리고 배설물에 불과했습니다. 더 귀한 예수님을 얻기 위해 바울은 이전에 귀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을 이 세상에서 실패했고 무기력한 자들이 가지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는 분이 고난을 통해 자신이 인간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신앙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분적인 진리입니다. 바울은 강조한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자신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소유한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귀한 분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III. 가장 탁월하시고 보배로우신 예수 (3:9-14) 

바울이 모든 것을 해로 여기며 소유했던 예수님이 그의 인생을 그토록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예수님은 가장 탁월한 분이시며 우리의 인생을 탁월하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까?  

바울은 9-14절에서 예수님을 통해 그가 얻게 된 세 가지 귀한 것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의롭게 해주십니다. (9절) 

바울은 유대인으로 태어나 평생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인정받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우렸습니다. 그러나 이 노력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도 그들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으려면 모든 율법을 마음과 행동으로 항상 지켜야 합니다. 어떤 물질, 명예, 지식, 권력, 선행도 인간을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세워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때 바울은 십자가에 죽으셨던 그 분이 실상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참된 구원 자 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을 통해서 바울은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함을 받고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게 될 때 놀라운 일이 그에게 일어났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그가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모든 좋은 것이 그의 삶에 흘러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지혜, 능력, 부, 존귀 이 모든 것이 그의 삶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제 인생에 최고의 날도 역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저의 관계가 회복된 날이었습니다. 그전까지 저는 부끄러웠고 외로웠고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제가 회복된 후로는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 분을 아버지라 부르면 그 분의 사랑과 은혜가 모든 두려움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제 맘에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담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도님들에게도 동일합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의지해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며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을 사셨으면 합니다. 


2. 예수님은 우리에게 부활과 영광에 도달하는 길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습니다. (10절)  

사도행전을 통해 볼 때 바울의 삶에 있어 뚜렷한 특징 한 가지는 그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세계 선교를 담당하며 수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당했지만 그는 결코 굴하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그가 골로새서 1:23에서 고백했듯이 그는 복음과 교회를 위해 고난을 자초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의 불모지가 있다면 그는 기꺼이 나아가 그 곳에 자신의 눈물과 땀과 피를 흘려버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으면 그 것에 복음의 싹이 나고 열매가 맺혀집니다. 그는 실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바울이 어떻게 이런 무서운 사람이 될 수 있었나 하는 것이 항상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묵상하다 이것이 바로 그가 예수님에게 배운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0절을 보시면 바울이 하고 싶었던 것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알고 그 분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삶에서 그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고난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였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받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영광을 체험하셨고 또한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통해 볼 때, 이 땅에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구원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처럼 고난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 깨달음이 바울로 하여금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생각합니다. 바울은 고난을 무서워한 것이 아니라 귀하게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어둠과 죽음이 지배해도 그 곳에 누군가가 예수님처럼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고 희생하면 하나님은 그 곳에 부활과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를 운행하시는 법칙이었습니다. 십자가와 고난이 있는 곳에 부활과 승리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목사님을 통해 선 고난 후 영광의 귀한 깨달음을 가지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 깨달음은 수동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믿음의 삶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고난을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며 인내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 교회가 여기에서 더 나아갔으면 합니다. 앞으로 주어질 영광과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기대하며 고난에다 자신을 던지는 성도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행하실 놀라운 구원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고난에 던지는 성도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 우리 교회는 점점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교회로 세워질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우리의 평생을 두고 감당해야 할 사명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11-14절)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바울에게 평생을 통해 감당해야 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11-14절에서 자신을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경주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60이 가까운 노인이 되었고, 그를 통해 놀라운 세계 선교의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성취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대신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푯대를 향하여 여전히 자신은 달려가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평생을 통해 도달하기를 원했던 푯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께 잡힌바 된 그것`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붙잡으셨을 때 그를 향해 가지셨던 예수님의 놀라운 계획이었습니다. 행 26:16-18절을 통해서 보면 그것은 어둠과 사단의 권세에서 고통하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계획은 바울에게 평생을 통해 이루어가야 할 사명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향한 예수님의 계획에 평생을 통해 온전히 헌신했고 이러한 헌신 속에서 바울의 삶은 점점 위대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통해 소유하게 된 가장 놀라운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사명이었습니다. 평생을 드려도 아깝지 않는 사명. 한 번밖에 없는 삶을 후회 없이 위대하게 사는 길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우리가 평생을 통해 달려가야 할 사명을 발견하고 거기에 온전히 헌신하는 것입니다.   

사명은 특별한 사람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바울같은 사람에게는 세상을 가슴에 품는 사명, 한나 같은 여인에게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한 아들을 키우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성도님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사명을 주셨습니까? 이 사명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너무 초라하며 무가치한 것이 될 것입니다. 

저는 바울처럼 특별한 방법으로 사명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두고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에 한 사명을 심어 주셨습니다. 막연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세상에 볼품없는 사람들을 

예수님을 통해 특별한 사람이 되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며 내수동 교회라는 곳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언제나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저는 모태 신앙이었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는 체험적인 신앙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제가 자랐던 대구 모 교회의 친구들 과 후배들은 나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신앙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신앙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들과 나의 차이점은 단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나는 서울에 있었고 그들은 대구에 있었습니다. 이 한 가지 차이 때문에 나는 청년의 시기를 가장 귀하게 보낼 수 있었고, 제 친구들은 이 시기에 신앙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기도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고향에도 내수동 대학부처럼 청년들을 귀하게 세워줄 수 있는 교회 대학부가 세워지게 해 주십시오. 

제가 청년의 시기를 보내었던 시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꿈은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인간의 한계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잘난 사람들은 예수님 때문에 겸손해져서 그들이 가진 것으로 남들을 존경하며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의 환상처럼 사자들이 어린양과 손잡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 그런 세상을 한 번 만들어보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이것과 연관된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저는 8월을 보내며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묵상해보시고 명확하지 않다면 깨닫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남은 시간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에 온전히 헌신하여서 한 번 뿐이 인생 가장 귀하고 위대하게 만들어가셨으면 합니다. 


결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게 해주시며 하나님과 교제가 회복되게 해주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부활의 영광과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위해 우리로 기꺼이 고난에 참여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생을 통해 이루어가야 할 사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주신 사명에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헌신해서 바울처럼 헛되지 않는 위대한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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