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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려워하지 말라 (사 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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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지 말라 (사 43:1~7) 
 
 
어떤 심리학자가 쥐 1백 마리를 철책 속에 가두어 놓은 후 그 주위에 무서운 고양이 한 마리를 묶어 놓고 쥐들을 위협하게 만들었습니다. 1백일 후에 쥐를 꺼내어 해부해 본 결과 대부분의 쥐가 심장병, 암, 위장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었습니다. 쥐들에게 아무리 좋은 음식을 주더라도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오장육부가 오그라들어 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다를바가 없습니다. 최고의 적은 바로 이 두려움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처음 땅에서 번성하고 충만하고 땅을 다스리도록 세움 받았을 때에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원죄가 우리 인류에게 들어온 이후로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환경이 급속히 나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온 이후로 함께 두려움도 따라 들어왔고 사람이 사는 곳에는 두려움이 따라다니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나빠진 환경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다 준 것입니다. 두려움은 사람의 영과 혼과 육체에 아주 나쁜 영향력을 미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의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이 두려워하는 모든 권세를 파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려워하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이요 의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계속적하여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는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사랑하라"는 명령보다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이 더 많습니다. 그만큼 사람에게 있어서 두려움은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영항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은 정확히 366번 기록돼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이 365번이 아니라 366번 기록된 이유가 하나님께서 윤달까지 계산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루에 한 번씩 매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다 있는 윤달의 하루도, 그날마저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은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하루도 두러워해서는 안됩니다. 두려움은 어둠의 권세에 속합니다. 두려움의 감정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몰리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무슨 염려 때문에 그러셨을까요? 


1. 정체성의 혼란은 곧 두려움의 출발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하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네가 내 눈에 보기에는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의 신분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비극은 결국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가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존재라는 생각보다 자신의 무가치함에 대해 더욱 확신하고 있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보다 우리들의 무능력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려워 떠는 기드온을 큰 용사라 부르시고 자주 넘어지는 베드로를 반석이라고 부르셨던 동일하신 그분께서 우리를 이 땅 위에 있ㄴ는 사랑하는 아들의 몸으로 지체로 불러주었습니다. 

시 46:1~3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2. 두려움은 삶을 파괴하는 신앙의 적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보다 더 마귀를 믿는 믿음입니다. 두려움은 곧 불신앙입니다. 두려움에 떠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던지 적던지 하다는 싸인인 것입니다. 어느날 부터인가 두려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면 그것은 내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점점 틈이 벌어지고 멀어져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왜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하셨습니다. 두려움과 믿음은 공존하지 않습니다. 이 둘은 서로 상반되는 작용을 합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신뢰하면 세상이 주는 모든 상대적인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고, 자유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두려웠던 모든 대상이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입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입니다. 사랑이고 근신입니다. 


  3. 두려워하는 마음은 마귀를 초청하는 초청장입니다.

두려움은 사단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도록 동의해 주는 것입니다. 악한 마귀 사단은 우리가 동의해 주어야만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동의해 주지 아니하면 들어오지 못합니다. 두려움은 마귀로 하여금 우리 마음과 생활과 환경 속으로 들어와도 좋다는 허가장과도 같은 것입니다. 
  
욥은 욥기 3장 2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라고 고백했습니다. 욥은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항상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내 재산을 다 잃으면 어떡할까? 내 자식을 다 잃으면 어떡할까? 그런데 그런 두려움이 재앙으로 닥쳤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면 마귀가 우리의 약점을 이용해서 치명적으로 공격합니다.
  
썩은 고기가 있는 곳에 파리들이 몰려듭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중에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날아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워하는 곳에 마귀가 모여들어 번식하게 됩니다. 
  
바울사도는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충고하기를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 4:27)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하신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오늘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2)

네가 아무리 험난한 환경에 처할 지라도, 너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실 것이요, 하나님께서 하실 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크게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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