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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사장의 축복 (민 6: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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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의 축복 (민 6:22~27)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백성들을 축복하라고 명령하시는 말씀이다. 제사장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을 내려 주신다는 약속이다(27). 물론 제사장이 복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여호와께서만 주신다. 

제사장은 주님의 복을 위임받아서,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제사장이 주님의 이름에 의존하여 축복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복을 주신다. 따라서 제사장은,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복의 전령이요, 복의 통로다. 

이 말씀은 현 시대의, 축도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목사님이 축도를 할 때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라는 구절을 사용한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제사장 아론의 축복에 기원을 둔다. 

루터교는 본문 말씀으로, 제사장이 축복한다. 제사장은 ‘다리를 놓는 자’라는 뜻이다. 죄로 인하여 끊어진 다리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놓는 사람이다. 물론 우리의 온전한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제사장 된, 종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복이 내려오기에, 정장복 목사님은 ‘강복’선언이라고도 한다. 지글러(Segler) 목사님은, 이 축복기도는 하나님의 돌보심에, 우리 자신을 맡기고, 하나님의 복을 회중에게 선포하는, 최고의식이라고 했다. 

따라서 복의 통로로 세우신 하나님의 종들은, 그 직분이 귀한 만큼, 성결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 하나님의 명하신 일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이 교만하여, 하나님처럼 행세하거나, 자기를 내세운다면, 무서운 징계를 받게 된다. 

아론의 아들 중에,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으로서의 자기 신분을 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명령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서, 여호와께 분향하다가(레10:1),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삼켜, 죽임을 당했다. 

또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의 신분을 망각하고, 성전에서 봉사하는 여인들과 동침하고, 하나님의 예물에 손을 대며, 제사를 멸시하였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같은 날 블레셋 사람들에게,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게 된다. 


1. 제사장의 축복은,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통로가 된다. 

축복한다는 말은, 히브리어 ‘무릎꿇는다’는 말에서 왔다.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며, 하나님을 송축하게 한다는 말이다. 용법은 하나님의 복을 전하는 통로가 된다는 말이다. 

(1)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직무(민6:23)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제사장은 하나님의 자녀를 축복하는 직분이다. 제사장의 축복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평강을 주신다. 

  정말 너무 고귀한 일을 감당하는 직분이다.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하였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직분이다. 제사장은,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축복하기 위해서, 세워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그 역할을 잘 감당하면, 백성들의 삶이 평안하고, 복을 받게 되기에,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우리는 복을 받아야 한다. 특별히 예배시간에 행해지는 축복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자리다. 이 축복의 자리에서, 빠지지 않기 바란다. 

  유대인들은 축복할 때, 어린아이들을 가슴에 않고, 머리를 꼭 붙들어 준다. 어린아이가 머리를 돌려, 축복하는 자의 손을 보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는 말씀을 믿고, 축복하는 자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하기 때문이다. 

  (민3:10)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 직무를 행하게 하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따라서 함부로 할 수 없다.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축복은, 오직 하나님의 선택받아 안수 받은 목회자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대하30:27) “그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하늘에 들리고,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이르렀더라” 성도는 교회에서 목회자로부터 축복을 받고, 세상으로 나가 세상을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원리는, 머리를 통해 축복해 주신다. 포도주 잔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았는데, 사람이 사다리를 타고 맨 위로 올라가, 포도주를 부으면, 맨 위에 잔에 차고 넘쳐흐르게 되자, 그 다음 잔에 차고, 또 차면 그 밑에 잔으로 흐르게 된다. 하나님의 축복은 이렇게 차고 흘러 넘쳐야 한다. 


(2) 성도들을 통해, 세상이 복을 받는다(창12:2).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미완료형)”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실 때, 그를 복으로 삼으셨다. (창12:3)에는 복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바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하셨다. 

  이 말씀대로 아브라함은, 오늘날 모든 믿는 자들의 믿음의 조상이요, 복이 되었다. 하지만 아브라함만 아니라, 주님의 부름에 순종하는 사람은, 모두 복이 될 수 있다. 복의 통로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내려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불러주셨기 때문이다.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왕 같은 제사장이다. 성도는,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 있는 직분을 맡게 되었다. 정말 보잘것없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내려주시니,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이제 우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복을 빌 수 있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모든 신자는 제사장”이라고 하였다. 성도는 세상을 축복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목회자와 성도간에 차별은 없지만, 구별은 있다. 목회자와 성도의 직무의 우열을 가린다면, 바람직하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지만, 분명히 그 직무는 서로 다르다.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복음의 전신갑주를 입히며, 각각 은사에 따라 직분을 맡겨 교회를 섬기도록 훈련시켜야 할 직무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세움 받은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잘 활용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와 가정, 그리고 세상을 잘 섬기도록 해야 한다. 


(3) 부모님을 통해, 가정이 복을 받는다. 

나이가 많아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이삭이지만,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온 야곱을 축복하므로, 야곱이 큰복을 받았다. 

  반면 이삭의 축복을 받지 못한 에서는, 에돔 족속의 시조가 되고, 그의 후손들은 이삭의 말대로 칼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되는, 안타까운 처지에 이르게 된다. 또한 야곱도 죽기 전에, 그의 아들을 축복하는데, 후에 축복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자녀를 위한 부모의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마치 목회자가 성도들을 위해 축복할 때에,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듯이, 부모의 축복은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며,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훌륭한 자녀는 돈으로 키워지지 않는다. 부모의 축복과 기도로 자라난다. 

  링컨은 가난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낸시가 어려서부터 축복하며 키워낸 자녀였다. 주색과 방탕에 빠졌던 어거스틴을 위대한 성자로 변화시킴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눈물로 기도하며 축복했던 어머니 모니카였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님들은, 먼저 복을 받고, 자녀를 축복하시기 바란다. 


2. 제사장의 축복의 내용(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로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성경에 나타난 모든 축복 중에, 가장 짜임새 있고, 아름다운 구절이다. 모두 미완료형이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그대로 임하시기를 축복한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24), 우리에게 누가 복을 주시는가? 여호와 하나님만이 복을 주신다. 그러면 어떤 복인가? 

(1) 지키시기는 복(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신다”고 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기를 원하신다’고 표현은, 아무나 받는 축복이 아니다. 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한다. 

  하나님의 축복은 언약의 자녀들에게만, 집중적으로 부어주신다는 말이다. 여기서 ‘지켜주시기’를 기도하라는 말씀은, 받은 복을 잘 간수하게 해 달라는 말이다.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받느냐도 중요하지만, 받은 것을 잘 지키고, 효과적으로 활용함은 더 중요하다. 

  ‘지킨다’는 말은 ‘솨마르(ר󰗫󰚂)’인데, “(가시로) 울타리를 친다”는 의미다. 악한 원수 마귀는 조금도 쉬지 않고, 우리 인생을 향해 공격해온다. 때로는 간교한 유혹으로, 때로는 무서운 핍박과 환란으로 공격한다. 이때 악한 원수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쳐서 철저하게 지킨다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신다. 마귀의 목표는 어찌하든지, 인간을 넘어뜨리고, 멸망에 이르게 하려는 목적이다. (요10:10) “도둑이 오는 적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벧전5:8)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하였다. 

  세상에 살다보면, 얼마나 병도 많고, 사건 사고도 많은가?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들로부터 피할 길을 주시고 지켜 주신다. (시121:3-4)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게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시121: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란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하였다. 운동회 때, 군대훈련 수료식 때, 수백 명이 다 같은 유니폼을 입었는데, 부모님은 자기 자식을, 기기 막히게 찾아낸다. 그리고 움직일 때마다 눈길을 돌리며 계속 주목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이 세상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살고 있어도, 우리를 찾아내시고 주목하시고 보호해 주신다. 잠시도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고, 철저하게 시켜주신다. 따라서 지켜주시는 복이 큼을 알아야 한다. 


(2) 은혜 베푸시는 복(25)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얼굴’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의지를 상징한다. 잠을 자는 어린 아기를, 사랑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엄마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우신다는 말은, 인간에게 절망과 죽음을 의미한다. (욥13:24)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이 개인이나 단체를 향할 때에는, 하나님의 생명과 구원과 기쁨을 충만히 주신다는 의미다. 

  출33장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내가 맹세한 땅을 너희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내가 사자를 보내서, 그 땅에 거하는 자들을 다 쫓아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셌다. 그리나 너희와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하신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슬퍼하였다(1-4).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축복은, 진정한 축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조건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자비를 말씀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얼굴’은 최대의 축복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하여 비추신다. 

  성도들이 모인 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들을 주시하시며, 영광을 비추어 주신다. 그래서 어두움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신다. 실패가 없고, 고통을 모르게 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얼굴을 비추는 것이 가장 큰복이다. 가장 큰 저주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떠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면, 저주 아래 놓이게 되고, 모두 다 실패하게 된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다. (시51:9-11)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님의 영광이 내게 비추고, 내 안에 영을 새롭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주님의 영광이 떠나면, 성령이 떠나고, 그렇게 되면 나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으니, 제발 주님의 영광을 내게서 떠나지 말게 해 달라는 기도다. 

  은혜 베푼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난(ן󰗻󰖎)’이란 말이다. 이는 본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상체를 굽힌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은혜는 ‘자격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호의’다. 우리의 인생이 아주 그럴 듯하게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추한 죄인이요, 낮고 천한 존재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의 은혜를 주신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응답해 주신다. 우리가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세밀하게 응답하여 주신다.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주시기를 기뻐하신다. 


(3) 평강 주시기를 원한다(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평강은 히브리어로 ‘샬롬’인데, ‘완전, 평안, 강건’등의 의미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오는 평화다. 

  하나님과 관계가 좋지 못하면, 그 영혼이 곤고하고 불안하게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죄의 은총을 받은 후에, 진정한 평안을 경험한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평강은, 환경조건 때문에 잠시 즐거워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예수 안에서 얻는 영적 평안, 내적 평안을 말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평안은 환란 중에서도, 체험되는 평안이다. 분명히 외적으로는 고통과 시험이 심한데, 영혼 깊은 곳에서는 평안함이 솟아난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이 주시는 평안이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 미쳤다는 소리도 듣게 된다. 

  (행26:24) 베스도 총독이 바울에게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라고 하였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왔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태연하자, 주님을 모르는 총독의 눈에는, 바울이 영락없이 미친 사람으로 보였다. 

  그래서 바울은 (빌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할 수 있었다. 

  평강은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으로, 우리에게 환희와 기쁨이 솟아오른다. 그래서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라고 하셨다. 

  종합하여 보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24) 복의 근원이시며 믿는 자들을 보호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사역 (25) 죄인 된 우리들을 구원하시고, 은혜로 깨우치시는 성자 하나님의 사역, (26)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평강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 나타나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이렇게 복을 주시기 원하신다. 이런 복을 받아 누리며 살기 바란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질 복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능력, 지혜, 물질, 건강, 자녀의 복 등을 포함하여, 현세와 내세의 모든 복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27) 하였다. 하나님은 이렇게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전제로 하여, 제사장들로 하여금 축복을 선언케 하셨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가 복 받고, 평안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다. 

  (마11:12) “침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라고 말씀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오셔서, 복 받기를 사모하여, 그 복을 받아 누리셔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란다. 또한 축복하는 자의 삶을 사시기 바란다. 


  결론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은, 복을 비는 마음이다. 복을 빌어주는 마음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요, 베풀어주는 마음이며, 사랑의 마음이기에, 복을 빌어주는 마음이 가장 아름답고 선한 마음이다. 세상이 점점 어두워지고, 삭막해 지는 이유는, 남을 축복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은 많아도, 주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남을 해치려는 사람은 많아도, 도우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남을 저주하는 사람은 많아도, 축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어두워진다. 

  이렇게 어지러운 세상을 따뜻하고, 부드러운 세상으로 만들어 가야 할 사명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와 축복을 받고, 축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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