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성전 (고전 3:16~17)

  • 잡초 잡초
  • 503
  • 0

첨부 1


하나님의 성전 (고전 3:16~17)  

 
천주교에서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대단한 성당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천진암 대성당’입니다. 35만평의 광활한 부지 위에 1500억원을 들여 성당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천진암은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로 꼽히는 장소 가운데 한 곳입니다. 땅을 매입한 해가 1978년이니 30년이 지났고 첫 삽을 뜬것이 1985년이니 23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성당은 위로 솟기는 커녕 아래로만 내려가고 있습니다. 

천진암 대성당 건축의 책임을 맡고 있는 변기영 신부는 성당 터를 닦기 위해 50m나 땅을 파서 평평하게 만들었고 그대로 땅을 내버려 둔 지가 10년이 넘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겨울이 가고 여름이 오면서 지반이 탄탄해져야 그 위에 천 년 이상 가는 성당을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로·세로 150m, 높이 85m의 초대형 건물을 지어 세계 10대 성당에 들어가는 대성당을 짓겠다고 말합니다. 천주교에서는 100년에 걸쳐 한국 천주교를 대표할 성전을 짓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저는 성전을 대형으로 짓는 것에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주교가 짓고 있는 천진암 성당 건축 과정을 보면서 튼튼한 성당을 짓기 위해 기초를 파놓고 10년 이상 땅이 굳어지기를 기다리는 그들의 성전 건축의 정신과 성전을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 가짐은 부럽고 우리들이 배워야 할 정신입니다.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닌 거룩한 장소입니다. 왜냐하면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성막, 성전에 대해 처음 나오는 곳은 출애굽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미디안 광야로 들어 갔습니다. 그들은 약 6개월 정도의 광야 생활을 거쳐 시내산에 도착했고 시내산 아래에서 1년 6개월 정도를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산 꼭대기로 부르셔서 그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시면서 주신 말씀이 출애굽기 25장 22절입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성전에서 모세를 만날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즉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만나는 곳입니다. 

성경에는 성전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임을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가운데 열왕기상 9장 3절에 보면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마음이 영원히 거하는 곳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성전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로 성전을 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전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은 성전에 계신 하나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성전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 곳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 17절에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저희도 그러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집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소홀히 여겨 멸망 받은 대표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성전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곳으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눈과 마음의 마음을 느끼지를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성전에서 여인들을 겁탈했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을 자기 마음대로 취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부르니 하나님께서 저들을 치셔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소중히 여겨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소중히 여긴 사람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지을 재료들을 정성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최고의 것들로 준비했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지을 때 그렇게 정성을 기울인 것은 그 성전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소중히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거하는 성전을 소중히 여기는 다윗에게 놀라운 축복을 주셨고, 그의 자녀들에게까지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수 없이 많습니다. 소망교회를 담임했던 곽선희 목사님이 청년때에 비가 많이 오는 어느 날, 새벽 기도회에 나갔는데 비가 너무 와서 사람들이 아무도 없더랍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섬기는 박장로님이라는 분이 예배당 한가운데서 큰소리로 엉엉 울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답니다. 곽목사님은 그 장로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평생 잊을 수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당시 교회 지붕이 함석으로 되었는데 장로님이 새벽 기도회를 나와 보니 함석에  구멍이 나서 예배당 안에 비가 주룩주룩 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천장에 올라가서 이리저리 애를 썼지만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릇이란 그릇은 모두 가져다가 비가 새는 곳에 갖다 놓고 빗물을 받았지만 새는 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새는 비를 어떻게 대처해 보려고 애를 쓰다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장로님이 예배당 복판에 주저 앉아 우시면서 회개하는데 ‘하나님, 내가 죽일놈입니다. 우리 집은 비 오기 전에 다 돌아보면서도 성전은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이렇게 비가 새게 만들어 놓았느니 내가 죽일 놈입니다’라고 목을 놓아 울며 회개 기도를 하셨답니다. 목사님은 그 장로님이 목놓아 우시며 기도하던 장면과 그 박장로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은 잊을 수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의 신앙 생활속에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 만큼 있습니까? 우리들의 집은 아름답게 꾸미고 무엇을 하나 들여 놓더라도 많은 것을 생각하고 다른 것들과 조화를 이루며 들여 놓습니다. 성전은 그 이상의 정성과 사랑이 들어가야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고 우리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지을때 가장 귀한 재료들을 가지고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치스런 것을 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 가짐을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교회 물건 하나 하나에 우리들의 정성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가꾸는 우리의 마음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꽃을 하나 놓더라도, 전등 하나를 달더라도, 성전에 필요한 물건 하나 하나에 우리의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의자가 반듯하게 놓여지는 것까지도 우리의 정성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혹시 오해하지 말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집에 필요한 물건들 가운데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면서 집에서 사용하던 물건이 아직도 쓸만하니 그것을 교회로 가져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활용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측면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나와 우리 집은 새 것을 쓰고 하나님은 중고를 쓰셔도 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우리 가정보다 더 귀한 것들로 정성스럽게 성전을 가꾼다는 마음 가짐으로 성전을 돌봐야 합니다. 성전은 우리들의 주인이 되시며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만이 성전이 아니라 우리가 바로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몸이 성전이라고 말씀합니다. 

성전을 헬라어로 히에론이라고 하는데, 히에론은 성전의 마당, 공원을 다 포함한 성전을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성전은 헬라어로 보면 나오스로 되어 있습니다. 나오스는 지성소입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교회 건물에는 교육관, 식당, 주차장 큰 교회 같으면 봉사관 등의 여러 부속 건물들이 있습니다. 히에론이라는 단어는 성전에 포함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면 나오스는 예배를 드리는 본당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과 인격을 성전의 지성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치있고 소중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것도 죄가 됩니까?’라는 질문을 종종합니다.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는 것이 죄가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배우자가 아닌 다른 남자와 또는 다른 여자와 사귀는 것이 죄가 됩니까? 음란 사이트를 보는 것이 죄가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악덕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그것도 죄가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동성 연애를 하면서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태어났는데 이것이 죄가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취업하기 위해 학위를 속인 것이 그렇게 큰 죄가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그것도 죄가 됩니까?’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들이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말은 죄를 멀리하며 죄를 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죄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으로 죄를 합리화하며 그 생활을 더 즐기고 싶은 것입니다.

거룩한 삶은 죄를 향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삶입니다. 내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이 거북해 하시는 일이면 내가 그것을 즐기고 좋아해도 그것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먹는 것, 자는 것, 입는 것, 행동하는 것이 성령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이면 멀리하는 것입니다. 

침례교회에서는 세례를 줄 때 사람을 물에 완전히 잠기게 한 후에 꺼냅니다. 봄, 여름, 가을에는 강가에 데리고 가서 강물에 잠기게 하고, 겨울에는 강단에 세례 욕조를 준비해 두고 거기에 잠기게 합니다. 침례교회에서 한 청년이 침례를 받는데, 오른손을 자꾸 물 밖으로 내놓았습니다. 목사님이 손을 물 속으로 눌러 넣어도 자꾸만 다시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왜 이래요?’ ‘이 손이 침례를 받으면 저는 먹고 살 길이 없어요.’ ‘왜요?’ ‘저는 소매치기입니다. 이 손이 침례를 받고 나면 소매치기를 못할 건데 그러면 저는 어떻게 먹고 살겠습니까?’ 누가 만들어 낸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것이 몽땅 성령에 잠겨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은 부분적인 거룩이 아닌 온전한 거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너희는 성전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내 속에 성령님이 거하시고 그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러나 좀더 깊이 말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성령님과 함께 하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만납니다. 우리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생활하는 가운데 우리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입니다. 교회 생활과 신앙 생활은 믿음있는 사람들이 믿음없는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믿음없는 사람에 의해  믿음있는 사람이 이끌려 가고, 영향을 받으면 바른 교회가 될 수 없고 복된 신앙 생활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너희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말씀을 마음판에 새겨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지는 은혜가 우리 교회와 모든 성도님들이 삶에 충만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