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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하려면? (고전 9: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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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려면? (고전 9:24~27)


미국의 농구 코치 가운데 커튼 피시먼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이끄는 농구팀이 계속  꼴등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커튼 피시먼스라는  코치가 자기팀도 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심리적 설득을  했습니다. "여러분!  게임에 나갈  때 마다 '우리팀은 항상 지는 팀이다.' 하는 생각을 하지 맙시다. 이번 게임은 이런 생각을 하고 나가세요. '우리는 항상 이겨왔던 팀이다.' 그래서 이긴 척 하고 나가시오.  그리고 이번 게임이 평범한  게임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 이겨서  마지막 챔피언 결정전에 올라왔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갑시다." 그렇게 해야 자신감이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졌어요. 코치가 화가 났습니다.  "아니  내가 승리자라고 여기고 싸우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또 그렇게 위축된 플레이를 하면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내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고 이게 무슨 꼴인가?" 그런데  한 선수가 코치를 빤히 쳐다보더니 "코치님, 그냥 우리가  이번 게임도 이긴척  하세요. 그냥 이긴걸로 치면 되잖아요."
  
경기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심리적인 요인도 중요하지만 심리적인 방법만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어제 북경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첫 금메달이 유도에서 나왔습니다. 최민호선수가 업어치기 한 판승을 거두는 장면은 시원하고 보기 좋습니다. 정말 다른 선수들보다 탁월한 힘과 기술을 소유하여 너무나 승리가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그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까지 얼마나 많은 훈련을 했겠습니까?  그리고 상대 선수 하나하나를 열심히 연구하고 치밀한 작전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완벽한 준비를 하였다고 모두 다 금메달을 따는 것은 아닙니다.  금메달을 따지 못하는 선수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들이 모두 운동 선수는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들을 향하여서도 이기기를 다투는 사람이 될 것을 명령합니다. 24절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명령합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영적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승리자의 상을 받기 위하여 반드시 거룩한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받는 상은 올림픽 금메달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승리자인지 패배자인지를 이 땅에서 어떻게 구분할 수 있습니까?  27절에서 바울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라고 말합니다. 버림을 당한다는 말은 얼핏 보면 구원을 잃는 것으로 느껴지지만 성경 전반에 흐르는 사상은 그것이 아닙니다. 한때는 귀하게 쓰임받았으나 계속 쓰임받지 못하고 버림받는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평생 존귀하게 쓰임받고 싶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하는 것을 최고로 두려워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쓰임받는 기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의 손에 붙잡혀 쓰임받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인생이 진정한 승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승리자는 과거뿐 아니라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께 붙잡혀 존귀하게 쓰임받는 사람입니다.  패배자는 과거에는 크게 쓰임받았으나 지금은 전혀 쓰임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는 왕년을 들먹거리며 과거를 자랑하는 것이 멋있을지 몰라도 교회에서는 그런 사람이 가장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지금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예전에 내가 교회에서 이런 큰 일도 하였고 저런 능력도 행하였다.'는 식으로 늘 과거를 자랑하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지금 어떻게 쓰임받고 있느냐?'를 중요하게 여기고 앞으로도 계속 쓰임받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받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방해를 일삼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현혹시킵니다.  우리로 하여금 사소하고 별것 아닌 일에 걸려 상처받고 넘어지게 하여 쓰임받지 못하게 만듭니다. 또는 잘 달려가고 있는 사람으로 범죄하도록 유혹하여 죄의 권세에 발목이 잡혀 주저앉혀 버립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처럼 사단의 많은 방해속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끝까지 잘 달려갈 수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중에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되어 영원히 빛나는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을 상으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단 한 번만이 아니라 평생토록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만큼 존귀하게 쓰임받다가 행복한 얼굴로 주님앞에 갈 수 있겠습니까? 


  1. 승리하려면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26)
  
바울은 그리스에  위치하고 있는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속에서 바울은 신앙생활을  경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아테네에서는 이미 고대 올림픽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고린도에서는 소위  이투미안이라는  체전이 매년 열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고린도 사람들은 이런 경기의 규칙과  문화에 대해  매우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고린도 사람들은 이 게임에 선수로  출전하는 자체를 커다란  명예로  생각했습니다. 
  
당시 대표적인 게임이 달리기와 격투기였습니다. 달리기 선수는 빠르게 달린다고 다 우승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방향으로 마구 빨리 달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골 즉 결승점을 바라보고 힘껏 달려야 합니다.  그리고 격투기 선수는 펀치만 세다고 우승하는 것이 아닙니다. 허공을 향해 휘두르다가는 오히려 상대 선수에게 약점을 보여 얻어맞고 패배하게 됩니다. 정확하게 상대 선수의 헛점을 향해 주먹을  날려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가 승리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방향과 목표를 정확하게 정하고 달려가야 이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24절에서는 상이라는 단어가 반복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상을 목표로 달려갈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25절도 썩을 면류관과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비교하며 상 즉 면류관을 강조합니다.  27절에서는 쓰임받는 인생과 버림받은 인생을 비교하며 우리가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할지를 일깨워 줍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피나는 훈련을 합니다. 목표가 없다면 힘이 들면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목표가 없으면 얼마 안가서 게으름을 피우고 최선을 다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까? 아무 목표도 없이 그럭저럭 되는대로 사는 인생은 아닙니까? 10년 후에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까? 아무 목표도 없이 산다면 10년 후에도 여러분은 지금 이모습 그대로 일것입니다. 어쩌면 퇴보할수도 있습니다. 특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변화되고 어떻게 쓰임받게 될 것인지 분명한 그림을 그리고 늘 바라보며 기도하고 훈련받아야 합니다.
  
종종 우리 가운데는 열심은 있는데 목표를 잃어 버린 열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표없는 열심,  목표없는 최선을 하고 있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그의 인생의 게임은 패배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정말 왜 우리가  제대로 자기  인생을 훈련하지 않습니까?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목표가 설정되어  있으면, 뚜렷한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에 준한 진정한 훈련이 이루어져  갈수가 있을 것입니다.  목표가 분명할수록 우리는 그만큼 절제된 삶을 살고,  훈련된 삶을 추구할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모두 리더가 되려는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기를 권면합니다. 리더란 영향력이 큰 사람을 뜻합니다. 교회에서 누가영향력이 가장 큰 사람입니까?  담임목사입니다. 셀에서 누가 영향력이 가장 큽니까? 셀 리더입니다. 열린모임에서 누가 영향력이 가장 큽니까? 열린모임 리더입니다. 사역팀에서 누가 영향력이 가장 큽니까? 팀장입니다. 누가 교회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교사들입니다. 목자들입니다. 직분만 받았다고 다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준비된 자만이 거룩하고 좋은 영향을 크게 끼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교회안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변화된 모습으로 강력한 영향을 끼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확하게 훌륭한 리더의 꿈을 머릿속에 그리며 날마다 바라보고 힘껏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2. 승리하려면 자기 훈련을 힘써야 합니다.(27)
  
고린도인들에게 있어 인생을 살면서 최고의  명예는 이투미안이라는 게임에 선수로 출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명예로 생각했습니다. 그럼 최대의 불명예는 뭐겠습니까? 이 게임에 선수로 뛰던 선수가 자격을 박탈당하고, 실격당해서 선수로써  자격을  상실하는 것을 최대의  불명예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문화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서, 본문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오늘 27절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한다. 길지만 한 단어입니다. '둘라고고' 둘로스와 아고르라는 단어가 합쳐져 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둘로스' 라는 말은 '노예' 라는 말이고 '아고르' 라는 말은 '인도한다' 는 뜻입니다. 노예를 인도한다. 의역을 하면은 '노예를 길들인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승리자가 되려면 노예를 길들이듯이 내 몸을 길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운동선수는 우승을 하기 위해서 자기 몸을 강하게 훈련해서 길들입니다. 체력훈련을 합니다. 고통스러우나 참고 날마다 여러 시간동안 자기와 싸우며 몸을 만들어야 합니다. 때로는 귀찮고 컨디션이 안좋아도 거르면 안됩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기술훈련을 해야 합니다. 날마다 반복하고 강도높게 발전해가며 고난도 기술을 익히는 훈련을 해야 몸이 길들어집니다.  그렇게 몸을 길들여야 됩니다. 그러면 본 게임에 나가서 싸울 때 자연스럽게 힘과 기술이 발휘되어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새벽기도에 나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가하면 '나도 새벽기도에 나오고 싶다' 하고 마음에는 원이로되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분들이 하는 말은 '몇 일 나와 봤더니 하루종일 정신이 없더랍니다. 졸려 가지고.' 어떤 분은 "며칠만 나와도 헤메는데 목사님은 어떻게 그렇게 날마다 새벽기도하십니까?" "아, 그거요. 이제는 몸에 익어서 쉽습니다." 정말입니다. 처음에가 힘들지 습관이 되면 새벽에 눈이 떠집니다. 늦게 자도 일어나는 것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하루에 다섯시간만 자도 건강에 아무 문제 없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새벽잠이 많고 체력이 약해 아침에는 헤멨습니다. 이제는 몸이 길들여져서 늦잠을 자면 오히려 하루종일 기분도 않좋고 리듬이 깨져 힘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 좋은 새벽기도를 못하는 거예요. 왜 못합니까? 훈련하지 않아서입니다. 2-3년만 계속 해보세요. 그러면 몸이 길들여집니다. 좋은 습관 하나 우리 몸에 붙는데 2-3년이 걸리는데요. 사람들은 그걸 하루아침의 결심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실패하는 것입니다. 조금 해보다가 안된다고 실망하지 말고 반복하여 습관을 만들고 몸을 길들이는 과정을 거치기 바랍니다. QT도 마찬가지고요. 성경 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훈련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좋은 습관을 날마다 반복하는 것입니다. 운동선수들은 금메달을 따려고 고된 훈련을 감수합니다. 여러분들도 귀하게 쓰임받고 면류관받기 위해 영적 훈련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경건훈련을 기꺼이 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거룩한 습관을 만들고자 자신을 주와 주님의 말씀에 복종시키며 날마다 씨름하시기 바랍니다.

  
3. 승리하려면 절제 할 수 있어야 합니다.(25)
  
언젠가 우리 나라 축구 선수들이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전날 밤에 늦도록 술파티를 벌인 일이 들통이 나서 큰 물의를 빚은 일이 있습니다. 결국 그 시합은 형편없는 졸전이 되었고 패배하였습니다. 그 일로 많은 국가 대표 선수들이 징계를 받게 되고 국가 대표에서 탈락하는 결과가 주어졌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그정도 절제할 줄 모르면 국가 대표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여기에 다툰다는 말은 승리를 위해서 전력투구하는 모습입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일에 절제해야 합니다. 식욕도 컨트롤해야 하고, 성적 욕망도 컨트롤해야 합니다. 명예욕도 컨트롤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온갖 이기적인 욕망도 컨트롤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일에  절제하지 않으면 승리는 없습니다.  
  
당시  올림픽 게임이나, 소위 이투미안 게임의 승자에게 주는 최대의 명예는 월계수 면류관이었습니다.  월계수 나뭇잎으로 만든 것입니다. 최대의 명예를 상징하는 상임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오래가지  못해요. 걸어 두면  며칠지나면 시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썩어버려요. 시들어 버리고  썩어버리는 월계수 면류관 하나 쓰자고 오래 간직하지도 못 할 면류관을 위해서 사람들이 저렇게 시간을  투자하고, 땀을 흘리고, 자신을 조절하고 욕망을 절제하면서 애쓰는가? 썩는 면류관을 위해서도 그렇게 애를 쓰는 데 썩지아니할 면류관, 영원한 가치를 위해서 노력하고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자기 자신을  절제하며 삶속에 자신을 투자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2장에  보면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서 사람들에게 전도를 해요.  전도를 해 보면 한사람 예수 믿게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믿은 사람을 신앙적으로 잘 세워주는 일 정말 어려운 일이예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설립하고 전도해서 그 사람들의  신앙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씁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2장 마지막부분에 이런 편지를 씁니다. 내가 주님앞에 서는 날 여러분은 저의 자랑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의 기쁨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의 희망의 면류관, 여러분은 저의 영광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천국에서 영원히 빛날 우리들의 면류관을 위해서 우리의 욕망을 얼마나 절제하며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승리자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패배자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승리자로 시상대에 세우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인생의 중요한 목표인 사명을 주십니다. 우리를 충분히 훈련시켜 강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의 군사로 만드시려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절제하라고 하시며 성령의 열매로 절제를 주십니다. 

여러분 모두 이 땅에서 주님의 손에 붙잡혀 존귀하게 쓰임받고 주님 앞에 서는 날 "부족하지만 저를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저의 열매들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이 열매들에는 저의 눈물과 기도가 들어 있습니다."라고 주님께 자랑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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