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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렘 1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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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렘 18:1~11)


1. 이스라엘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암울한 시대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기울어져가는 나라 민족을 위해 남다른 애국심으로 가감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무너지는 나라 백성을 바로 세우고자 뜨거운 영적 열망을 지니고 온갖 생명의 위협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명을 다 했던 진정한 선지자였습니다.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B.C. 606년 여호야김 왕 시대에 바벨론의 침공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갔고, 그때부터 바벨론에 조공을 바치기 시작하여 나라 경제는 파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후 3년 동안 바치던 조공을 중단하고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바벨론의 지배 아래 있는 애굽을 의지하고자 했습니다. 친 애굽 정책을 통해 바벨론의 멍에를 벗어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바벨론이 2차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왕궁과 성전을 약탈하고 2차로 왕(여호야긴)과 왕족들, 그리고 권세와 재력있는 자들과 뛰어난 재능과 기능을 가진 인재들을 몽땅 포로로 잡아갔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만 그 땅에 남겨 두었습니다.(왕하24장)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여호야긴의 아자비(작은 아버지) 맛다니야를 바벨론식 이름 ‘시드기야’로 창씨 개명해서 왕으로 세우고 바벨론에 충성하도록 조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 이스라엘이 이처럼 거듭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포로로 끌려가고 나라경제가 거덜나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하나님의 수없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를 그치지 아니하고, 각계각층이 부정부패, 사치와 음란 등으로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죄악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습니다.(렘6:13-15) 

그래서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겪도록 조치하신 것입니다.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한 ‘사랑의 매’, ‘사랑의 멍에’로 쓰임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의 매와 멍에’를 거역하거나 대들지 말고 순히 받으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을 통한 징계를 당하기 전에 사전 경고에 순종하여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돌이키셔서 매를 거두시고 멍에를 벗겨주셨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러한 뜻을 알고 눈물로 호소하고 애원합니다. 제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계를 순히 받으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을 찾아가 거듭 촉구합니다. 바벨론에 온전히 항복하고 그에 복종하여 섬기면 생명을 보존할 수 있고 예루살렘 성도 함락되지 아니하고 보존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을 의지하고자 애굽으로 도망치면 끝까지 쫓아가 칼로 죽임을 당할 것이고 바벨론의 통치를 거역하게 되면 반드시 칼과 기근과 염병에 걸려 죽으리라는 것입니다.(렘38:2-3) 

(렘38:17-18)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만군의 하나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겠고 이 성이 불사름을 입지 아니하겠고 너와 네 가족이 살려니와 네가 만일 나가서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붙이우리니 그들이 이 성을 불사를 것이며 너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그러나 시드기야 왕은 유대인들의 협박과 조롱이 무서워서 바벨론에 항복하고 복종하기를 주저합니다. 예레미야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비록 망해가는 나라 백성이지만 하나라도 그 생명을 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더욱 간절히 이렇게 호소합니다.

(렘38:20-23) 예레미야가 가로되 그 무리가 왕을 그들에게 붙이지 아니하리이다 원하옵나니 내가 왕에게 고한바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소서 그리하면 왕이 복을 받아 생명을 보존하시리이다. 그러나 만일 항복하기를 거절하시면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말씀대로 되리이다. 곧 유다 왕궁에 남아 있는 모든 여자가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로 끌려갈 것이요 그들은 네게 말하기를 네 친구들이 너를 꾀어 이기고 네 발이 진흙에 빠짐을 보고 물러갔도다 하리라. 네 아내들과 자녀는 갈대아인에게로 끌어냄을 입겠고 너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벨론 왕의 손에 잡히리라 또 네가 이 성으로 불사름을 입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애굽으로 야반도주하다 붙잡혀 바벨론 왕 앞에 끌려와 심문을 받게 됩니다.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시드기야 목전에서 그 아들들과 그에 동조했던 모든 귀족들과 신하들을 죽여 버리고, 시드기야 왕의 두 눈을 빼게 하고 쇠사슬로 결박해서 바벨론으로 끌고 가 죽여 버립니다.(렘39장) 

이렇게 해서 남 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무참하게 멸망당하게 됩니다. 이 모든 비극을 겪는 동안, 예레미야는 망해가는 나라 민족을 건지기 위해 눈물로 호소했지만 오히려 바벨론 앞잡이라는 등 온갖 조롱과 핍박을 당해야만 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러한 박해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의 멍에를 순히 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것이 나라 민족이 사는 길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바벨론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채찍이므로, 겸손히 그 징계를 받아야 하며, 그것이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이며 사는 길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애굽을 의지하여 바벨론의 멍에를 벗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보이는 것들을 더 의지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들의 뜻과 생각대로 판단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은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2. 이러한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의 역사 과정에서 한 나라 민족의 역사와 그 흥망성쇠, 그리고 한 개인의 생사화복의 주체자는 왕이나 어느 지도자 등 인간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사실과 그 어떠한 경우에도 역사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거역하고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불러 오늘 본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너는 어서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거라. 거기에서 내가 너에게 나의 말을 선포하겠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갔더니, 토기장이가 마침 물레를 돌리며 진흙으로 그릇을 빚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토기장이는 빚는 그릇이 터지자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그 흙으로 다른 종류의 그릇을 빚었습니다. 이를 본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렘18:6-11)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 할 때에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

1)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이 말씀에서 “진흙”은 인생이나 나라 민족을 의미하고, “토기장이”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그런데 토기장이가 물레에 올리고 빚는 진흙 그릇이 터지면, 토기장이가 자기 좋은 뜻대로 다른 종류의 그릇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한 개인의 삶이나 나라 민족의 운명을 하나님께서 정하신다, 하나님께서 선하신대로 그 길을 정하시고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걸음 하나까지도 세어보신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욥 31:4) 그가 내 길을 감찰하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욥 34:21)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한 인생의 삶에 관련된 모든 행동 하나 하나, 그 생각과 생활 방식 등 그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것까지도 모두 살펴 아신다는 뜻입니다. 시편 기자도 역시 같은 고백을 합니다.

(시33:13-15)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 

(시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족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께서 선하신 뜻대로 자신의 걸음을 정하시고 다윗 자신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을 따라 사는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을 따라 사는 사람은 어쩌다 비틀거려 넘어질지라도 이내 하나님께서 그 손을 잡아 주시니,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시37:23-24)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작은 그릇으로 만들든 큰 그릇을 만들든, 귀하게 쓸 그릇을 만들든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든, 그것은 토기장이 손에 달려 있습니다.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천하게 쓰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그는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온갖 좋은 일에 요긴하게 쓰는, 귀하고 성별된 그릇이 될 것입니다.”(딤후2:20-21) 

큰 집의 주인은 인생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릇을 만드실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그릇들을 소유하시고 자신의 선하신 뜻대로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인생과 나라 민족의 주인되시는 하나님 앞에 요긴하고 귀하게 쓰임받으려면 무엇보다 깨끗해야만 합니다. 금으로 만들어진 그릇일지라도 더러우면 씻어 깨끗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부숴버리거나 아니면 풀무에 집어넣어 다시 다른 종류의 그릇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한 개인이든 나라 민족이 깨끗해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고 예수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신의 죄가 사함받게 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써만 인간은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모든 인생들에게 정하시는 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뜻대로 사는 길,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사는 길입니다. 그것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나라가 망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지만 어느 곳, 어떠한 환경에서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은 깨끗하게 사는 것임을 깨닫고 뜻을 정하여 먹고 마시는 것 하나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결심하고 그대로 살았습니다. 비록 어린 나이에 포로되었지만 나라 민족이 우상숭배로 더럽힌 결과 멸망당한 사실을 뼈아프게 깨닫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사자굴속에 던져질지라도, 풀무 불속에 던져질지라도 우상숭배나 그 음식 등으로 자신을 결코 더럽히지 아니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다니엘, 그리고 그와 뜻을 같이 했던 네 친구들에게 지식을 더하여 주시되 모든 학문에 능통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에게는 환상과 온갖 꿈을 해석하는 능력까지 주셨습니다. 바벨론 전국에서 지혜있다 하는 자들보다 10배나 더 지혜롭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왕 3대에 걸쳐 수석 총리라는 높고 귀하게 쓰임받게 되었습니다.(단1장) 

욥은 자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엄청난 환난과 재난, 자식들이 모두 몰사당하고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이 불타버리거나 약탈당하여 한 순간에 알거지가 되는 재난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모태에서 빈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난과 재난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오히려 그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처참한 환난을 당해 욥이 잿더미에 앉아, 옹기 조각을 가지고 자기 몸의 상처를 긁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이를 보다 못해 “이래도 당신은 여전히 믿음을 지킬 겁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서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당신까지도 어리석은 여자들처럼 말하는구려.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는다 하겠소?”라면서 생사화복의 모든 주권이 바로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그렇게 힘든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말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그 욥이 마침내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욥42:10-17)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 주었더라.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세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고난과 질병과 가난과 눈물이 왜 나에게 있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뜻이 그 사건 속에 있습니다. 욥의 경우처럼 나는 알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향해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나를 왜 이렇게 만드셨는가? 나는 왜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게 하셨는가??왜 하필이면 이런 불행이 나에게 일어나는가? 이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롬9:20-21)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진흙의 운명이 토기장이의 손끝에 달려있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의 운명도, 우리의 가정과 이 민족과 국가의 운명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으시고, 범사에 한 개인의 생사화복과 나라 민족의 흥망성쇠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인정하시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깨끗이 지켜 다니엘과 욥과 같은 하나님의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2) 마지막으로, 토기장이의 손에 귀히 쓸 그릇이 되도록 하나님의 약속된 자녀로 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야곱의 12아들 중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열한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동일한 내용의 꿈을 두 번, 반복해서 꾸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이는 장차 형들이 요셉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이 꿈으로 인해 요셉을 시기하던 형들이 아버지 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기회를 이용, 공모해서 요셉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이냐? 자,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말고, 차라리 그 아이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 넘기자. 아무래도 그 아이는 우리의 형제요, 우리의 피붙이이다.”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자 모두가 공감하고 계획을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죽이려고 넣었던 구덩이에서 꺼내어,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은 스무 냥에 팔았고, 그들은 그를 다시 애굽 왕의 경호대장 보디발 가정에 팔아넘겼습니다. 이때 요셉의 나이 17세였습니다. 보디발이 노예 요셉의 하는 일들을 보니까 범사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일마다 형통하게 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자기 가정의 모든 일들을 관리하는 가정총무로 삼고 모든 소유를 그에게 위임했습니다. 그때로부터 하나님께서 요셉을 위해 보디발 가정에 복을 내려주셨습니다.(창39:1-6) 

요셉 자신은 노예생활이었지만 보디발 가정에는 귀하게 쓰임받는 그릇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다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감옥에서도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고 그 제반 사무 일체를 요셉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참으로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로 감옥에서도 귀하게 쓰임받는 그릇이 되었습니다. 

노예생활 10년이 지난 어느 날 애굽 왕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가에 서 있더니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어버리는 꿈이었습니다.” 바로가 깨었다가 곧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었는데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키는 꿈”이었습니다.(창41:1-7) 

왕이 그 꿈을 해석할 수가 없어서 번민했지만 나라 전역에 아무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감옥에 있을 때 자신의 꿈을 해석하고 그 꿈대로 이루어져 복직된 시종장이 번뜩 자신의 꿈을 해석해준 요셉이 생각났습니다. 왕에게 이 사실을 고하자 곧 요셉이 바로 왕 앞에 불려왔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왕의 꿈을 듣고 이렇게 해석합니다.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는 일곱 해요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입니다.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한 일곱 소는 칠 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 이는 하나님이 왕이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망하리니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 왕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그들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읍에 쌓아 두게 하소서.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 

요셉의 꿈 해석이 너무나 시원하고 정확한 것을 깨닫고 모든 신하들이 공감하자 바로 왕이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면서 그 자리에서 요셉을 국무총리에 임명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노예생활 13년만이었습니다. 

요셉의 꿈 해석대로 7년 풍년 끝에 7년 흉년이 닥쳤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명철과 지혜로 7년 풍년을 잘 관리하여 7년 흉년을 대비하여 오히려 나라가 더욱 더 부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틴 전역에 기근히 심하게 되자 각 나라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살던 가나안도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기근을 견디다 못해 양식을 구하고자 아들들을 애굽에 보냈습니다. 그 때에 요셉은 총리로서 직접 양곡 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요셉에게 절을 하며 양식을 구했습니다. 요셉은 이들을 보자마자, 곧바로 그들이 형들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짐짓 모르는 체하고, 그들에게 엄하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어디에서 왔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먹을거리를 사려고, 가나안 땅에서 왔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 때에 요셉은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며 양식을 구하는 형들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꿈을 기억하게 됩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20년만에 성취된 것입니다. 

요셉은 그토록 보고 싶은 아버지와 막내 동생 베냐민을 데려오도록 계략을 꾸미고 마침내 형들과 막내 베냐민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와 자신 앞에 엎드리자 요셉은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을 물러나게 하고, 방성대곡합니다. 그리고 엎드린 형들에게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다고요?”하면서 자신이 요셉임을 밝힙니다. 이 말에 형들이 놀라고 어리둥절하여, 요셉 앞에서 입이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가까이 다가오게 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형님들이 애굽에 팔아 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곳에 팔아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 가족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크나큰 구원을 베푸셔서 형님들의 목숨을 지켜 주시는 것이고, 또 형님들의 자손을 이 세상에 살아 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보내셔서, 바로의 온 집안의 최고의 어른이 되게 하시고,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우신 것입니다.”(창45:1-8)  

이렇게 해서 야곱의 70명 가족들이 애굽의 가장 비옥한 땅 고센에 정착하여 400년 동안에 200만명이 넘는 민족으로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에게 꿈을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이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왜 그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그러한 꿈을 주셨습니까? 야곱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을 택하시고 그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창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라는 축복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요셉이 형들에 의해 애굽에 팔려갔습니다.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애굽 왕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시고 그 꿈대로 이루어지도록 팔레스틴 전역에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된 자녀들을 축복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연에 대한 자신의 주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된 자녀들을 축복하시기 위해 자연을 다스려 야곱의 70명 가족들을 고센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된 자녀에게는 노예로 팔려가는 것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는 것도, 축복으로 가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토기장이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한 사람, 요셉을 축복하여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 나라, 애굽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셨습니다. 과연 말씀하신대로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의 생사화복과 나라 민족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진실로 예수 믿으십니까?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 그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축복이 약속된 하나님의 자녀로 사시기 바랍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리가 있습니다.” 이 토기장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요셉과 같이 언제 어디에서라도 귀하게 쓰임받는 그릇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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