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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변화의 원리 (막 10:46~52) - 믿음,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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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원리 (막 10:46~52)


변화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나라도 기업도 변해야 하는데 나의 변화가 우선이다. 여기 여리고에서 한 인생이 변화하였다. 바디매오가 변화되었다. 예수님이란 말을 듣고 자신의 보지 못하는 삶을 고침 받기 원할 때 보게 되는 변화를 받았다. 이 바디매오의 길거리 인생을 바꾼 이는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불행을 건너 뛰어 행복한 새 인생으로 살게 된 바디매오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막10:32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우리는 여기서 변화의 원리를 배운다.
 

1. 변화는 믿음을 지닐 때 나타난다.

그러면 바디매오의 믿음은 어떻게 주어졌는가? 들었기 때문이다.

막10: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라고 적고 있다. 예수에 대하여 듣는 것이 믿음을 얻는 길이다. 누구든지 믿음을 지니게 되는 공식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데 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다.

우리는 믿음을 지니기 위해 말씀을 듣자. 이것이 우리의 최대 관심사여야 한다. 믿음이 있어야 구원을 얻고 믿음이 있어야 변화를 얻기 때문이다. 믿음을 얻을 수 있는 자리라면 무조건 귀를 기울이라. 

일주일의 삶을 돌이켜보라. 더 나은 믿음, 더 큰 믿음, 더 확고한 믿음이 마음 속에 자리잡았는가? 더욱 더 믿음이 자라나고 생성되는 시간이 되도록 삶의 우선 순위를 조정하였는가? 삶의 변화는 믿음을 지닐 때 따라온다. 거지의 삶을 청산하는 변화, 새로운 구원을 경험하는 변화, 길거리 인생에서부터 예수를 새롭게 좇아가는 신앙의 변화, 이런 변화가 내게도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어주시는 믿음을 사모하라. ‘내게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하고 주님께 엎드린 한 아이의 아비처럼 믿음을 사려고 하라.

복음은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도록 하여 의인은 믿음으로 인해 산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회의 강단은 말씀을 전하므로 믿음을 주는 데 있다. 교회의 목사는 믿음을 드러내는 전달자가 되는데 있다. 성도들은 예배 속에서 믿음의 결국, 구원과 변화를 체험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 변화되는 성도가 되라.
  

2. 변화는 솔직할 때 나타난다.

막10: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되.”

길거리 인생, 어쩌면 거리에서 사는 인생들이 더욱 자신을 위장할 수도 있다. 가난은 가난으로, 약함은 약함으로 드러내는 것은 어쩌면 용기일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들의 못난 것, 부족한 것, 다른 사람이 다 아는데도 아니 주님은 모두 다 아는데도 감출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한다. 변화는 부끄러워도 자신에게 수치스러워도 솔직하게 고할 때 나타난다.

나는 심방을 다녀보면 집이 좁아서 다른 사람처럼 못 살아서 심방을 주저하는 사람을 본다. 그럴 필요 없다. 차라리 솔직하게 드러내자. 그러면 자유하다. 더 이상 내려갈 것도 없고 수치스러울 것도 없다. 거지 바디매오는 자신이 소경이기에, 거지이기에,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였다. 

솔직한 토설, 그곳에 변화의 기적은 일어난다. 막10:50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이라 하였다. 마음도 솔직해졌고 그의 삶의 외양도 솔직해졌다. 자신의 몸을 두른 겉옷 따위가 예수의 부르심 앞에 의미나 가치가 되지 못했다. 

우리는 겉옷을 두르고 자신을 가리려고 한다. 거지가 거지의 겉옷을 입고 있으나 벗어 던지나 거지일 뿐이다. 사실 우리 인생의 영적 형편도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영적으로 굶주리고 목마른 거지이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변화받지 못했기에 화려한 인생을 살아도 의에 굶주린 거지이고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라도 구원에 굶주린 거지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외양적인 겉옷이 나를 가리우지만 그것을 의지하지 말자. 과감히 벗어 던지고 솔직한 벌거숭이 모습으로 서는 것이 중요하다.

솔직한 것이 사람과 통하는 길이다. 솔직한 것은 주님과도 통하는 길이다. 솔직한 것은 사람의 마음에도 매력이 된다. 나를 알고 계신 주님 앞에 더 이상 가리울 것 없다. 나의 안고 일어섬을 아시는 주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자. 그러면 변화의 은혜를 덧입게 된다. 솔직한 회개, 솔직한 대화, 솔직한 사귐, 솔직한 삶의 만남이 성도들의 이미지가 되기를 축원한다.

  
3. 변화는 부르짖을 때 나타난다.

부르짖는 것은 기도의 방법이다. 부르짖는 것은 큰소리로 외치는 기도다. 부르짖는다는 말은 아이를 낳기 위해 산모가 외치는 소리와 같은 것이다. 부르짖는 기도는 잠잠하지 않는 기도다.

막10: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많은 사람들은 부르짖는 바디매오를 부르짖지 못하도록 하였지만 바디매오는 더욱 심히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을 향해서 부르짖는 일을 그만두라고 강요하는 사람이 있지만 부르짖음은 더욱 커졌다. 더욱 간절해졌다. 

오늘의 이 시대는 부르짖는 기도가 사리지고 있다. 부르짖는 기도는 한국 교회의 영성의 한 모습이다. 고요하고 조용하고 정적이 깃드는 기도도 기도의 요소지만 부르짖는 기도가 모든 변화를 만들어낸다.

시편 107편을 보라. 부르짖는 기도가 있을 때 모든 상황이 변화되었다.

“이에 저희가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모든 것이 변화됨을 노래한다.

“강을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으로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거민의 악을 인하여 옥토를 염밭이 되게 하시며 광야를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으로 샘물이 되게 하시고...” 등 그 변화를 이루 말할 수 없다.

부르짖는 기도가 고통에서 사람을 건지시고 찬송이 터져 나오도록 변화를 맛보게 한 것이다. 이제 더욱 부르짖는 기도가 교회에서 회복되어야 한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부르짖는 기도가 살 길이다. 개인도, 가정도, 민족도 살 길이다.

나는 분당에 위치한 새에덴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님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 목사님은 10,000평의 교회를 짓고 2만명의 성도들이 모여 예배한다.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군가 했더니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 예수를 믿는다고 쫓겨난 사람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교회에 나가서 고3 수련회를 갔는데 거기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만난다. 전북 용화산 기도원 동굴에 들어가 기도하다가 주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들었다. 

“너는 장차 두루 다니며 복음을 증거하는 큰 종이 되리라. 내가 너로 인해 영광을 받으리라. 내가 너를 부르노라.”

그래서 소명을 받고 신학교에 가려고 하니 난리가 나서 아버지가 매질을 하고 핍박하였다. 그때 그는 눈물을 흘리며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외쳤다. 부르짖었다. 

“주여 순교의 믿음을 주옵소서. 제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더욱 주님 한 분만을 붙잡게 하옵소서.”

화가 난 아버지는 힘들게 농사지어 공부시켜 놨더니 목사가 무슨 목사냐고 하면서 아들을 밧줄로 메주 달아놓는 곳에 묶어두고 매질을 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큰 형님까지도 모든 가족의 핍박이 너무나도 심해졌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 도망을 나왔다고 한다.

10원 한푼 없이 오직 성경, 찬송가뿐이었다. 예수를 버리고 핍박에 항복하여 잠잠히 집에서 있을 수 없어 그는 집을 나와 부르짖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만 좇아 아비의 집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부어주소서.”

그 부르짖음 앞에 하나님의 응답이 내려왔다.
“지금 네 호주머니에 10원 한푼 없어도 너를 입히고 먹이우는 것을 보라. 장자 너를 위대하게 써주리라.

그는 그렇게 하여 신학교를 다니며 리어카를 빌려다가 수박 장사, 오이 장사를 하였다. 그리고 그는 광주신학교를 다니며 부르짖는 기도를 계속하였다.

“상처 받는 민족을 고쳐주세요, 황무한 백성의 심령에 열정을 주세요. 음란으로 가득한 도성에 주님의 십자가의 피가 뿌려지게 하소서. 그리고 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눈물을 닦아주는 사랑을 주소서.”

그렇게 부르짖는 기도를 할 때 주님은 그를 축복하셨다. 무등산 기도원에서 부르짖는 기도를 하다가 그의 개척 목회를 돕는 정금성 권사를 만나게 하시고 뜨겁게 열정을 불태우며 부르짖는 기도에 반한 정금성 권사가 그를 사위로 맞아 오늘의 교회를 세우는데 밀알이 되었다.

나는 소강석 목사의 목회 이야기를 읽으면서 부르짖는 기도가 그를 세계적인 종으로 키우고 변화시킨 것을 보게 되었다. 단돈 10원 한푼도 없이 부모로부터 철저히 쫓겨난 젊은이가 영적 세계의 큰 인물로 변화된 것은 부르짖는 기도의 응답이었다. 
  

그렇다. 부르짖는 기도는 변화의 열쇠다. 하나님은 나의 부르짖는 목소리를 듣기 원하신다. 간절함과 열정이 담긴 격식 없는 기도를 원하신다. 그래서 토마스 왓슨은 최고의 기도란 “마음과 혀가 협력하여 조화를 이룰 때이며, 마음과 혀가 열정적일 때”라고 하였다. 마음과 혀가 조화를 이룬 부르짖는 기도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새 길을 걷게 되듯 부르짖는 사람, 부르짖는 교회는 산다. 

우리는 부르짖는 기도의 소리로 야성을 회복하고 삶의 굴레를 바꾸는 사람이 되자. 우리교회의 신앙 색깔은 포효하는 사자처럼 부르짖는 기도로 변화를 이끄는 것이다. 

나는 나의 목회를 돌아본다. 학창 시절 밤 자정 시간에 내 기도가 허공을 치는 소리 같아도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 오늘의 내가 되었다. 내 생전에 꿈을 잃고 살았어도 들에서, 산에서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 목사가 되고 오늘의 나된 것을 고백한다. 

“더욱 소리 질러 가로되” 세상의 소리가 크지만 기도 소리가 커지면 변화를 멀리 있는 것 같아도 믿음과 솔직함으로 나아가 외치면 변화는 지금 일어나게 된다. 소경을 변화키시고 나를 변화키시고 무수한 영적 사람을 변화시킨 예수님은 우리를 바라보고 계신다. 

“내가 무엇을 해 주길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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