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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정 선한 일이란 (엡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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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선한 일이란 (엡 4:28)


한 유대인의 임종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두 아들이 장례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장남이 차남에게"우리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셨기 때문에 마차를 50대 준비해서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차남이 말합니다."50대를 빌리면 돈이 너무 많이 드는데 우리가 아버지 장례 치르고 파산할 일이 있습니까? 그냥 25대로 합시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러자 장남이"그럼 장례 집례는 유명한 랍비를 모셔서 하자."고 하자 또 다시 차남이 말을 받아서"형님, 유명한 랍비는 사례비를 많이 줘야 하니까 시골에 이름없는 늙은 랍비를 모시고 합시다."사사건건 형제가 의견이 맞지 않는 모습을 누워서 가만히 듣고 있던 임종직전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면서 말합니다."얘, 둘째야! 내 바지를 가지고 오너라."두 아들이 깜짝 놀라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내 발로 걸어서 묘지까지 가마 그러면 돈이 한 푼도 들지 않을 것이다."하고는 터벅터벅 걸어 나가더랍니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이 되어간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다 싶은 이야깁니다. 흔히 한 인간의 삶을 평가할 때 가장 표면적으로 행, 불행의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즉 그가 행복했었느냐 불행 했었느냐로 평가한다는 말입니다. 그때에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으로 분류되는 근거는 축복 속에 태어나고 축복 속에 살다가 축복 속에 죽을 수 있을 때 행복한 생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될 수만 있으면 이러한 삶에 가깝도록 살려고 노력합니다. 우리 또한 그래야 할 것입니다.

<웰 빙(well-being)>이라는 말이 많이 유행했던 말입니다. 참살이, 즉 얼마나 인간답게 잘 사느냐가 중요한 시대를 지나 이제는<웰 다잉(well-dying)>을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죽음의 순간과 죽음 이후까지 준비하는 영적인 운동입니다. 잘 죽는 것도 분명히 복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실이지 세상은 다른 여러 가지 복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또 얻으려고 애쓰지만 잘 죽기 위해서 준비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아니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을 보고 부러워하거나 본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적습니다. 하지만 죽음 이후의 영생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이 죽음도 복으로 여길 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죽음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복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단체를 비롯한 사회단체에서<웰-다잉 운동>을 펼치면서 죽음에 대해서도 준비가 필요하며 죽음을 바르게 인식함으로 현재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사람이 세상을 잘 살았다면 죽는 것도 잘 죽어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복되어야 정말 복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리더십과 동기 연구가로서 유명한[로빈 S. 샤르마]라고 하는 사람이 쓴 책이 있는데 그 제목이 의미심장합니다.<내가 죽을 때 누가 울어줄까(Who will cry when you die)>라고 하는 책입니다. 우리들 각자의 영적인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해줄 101가지 방법을 소개한 안내서입니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스트레스와 걱정거리를 덜고, 하루하루를 만족스럽게 보내면서 나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여정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이어질 멋진 유산을 남길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을 책에서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 중에 격언을 인용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울음을 터트렸지만 너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은 기뻐했단다. 네가 죽을 때는 많은 사람이 울겠지만 그때 네 자신은 기뻐할 수 있도록 살아야한다."대단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죽기 직전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이 말속에 있습니다. 

사람은 죽음직전에 반드시 몇 가지의 후회를 한다고 합니다."좀 더 잘할 걸...","좀 더 사랑할 걸..."그리고"좀 더 베풀 걸..."하고 후회한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할 수 있을 때에 잘하지 아니하면 잘하고자할 때 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지 못하면 사랑해야할 때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베풀 수 있을 때 베풀지 아니하면 베풀고자 할 때에 할 수 없게 됩니다. 꼭 그렇습니다. 그래서 후회합니다. 

누가 이런 재미있는 말을 합니다. 내가 미루다가 손해 본 것, 엉뚱한 생각하다가 날려 버린 것들만 가지고 좋은 일 했다면 아마 성자가 될 것이랍니다. 그렇게 살았더라면 마지막이 아름다웠을 겁니다. 이제 생각하니'그것 가지고 좋은 일 좀 할 걸...'싶지만 기회는 지났습니다. 

여러분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내가 죽을 때 주변사람들은 울겠지요. 설마 단 몇 명이라도 울어 주겠지요. 그러나 나는 울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울 이유가 없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십니까? 나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도록 살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이치입니다. 거스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죽는 것 행복해야합니다. 죽는 순간도 행복해야 옳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지막까지 행복하려면 사는 날이 행복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자, 그러면 생각해 봅니다. 행복의 조건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우선 기본적으로 건강해야 행복하다고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건강한 거지가 병든 재벌보다 나은 겁니다. 돈이 아무리 있으면 뭘 하겠어요. 건강 잃어버리고 비실비실 하면은 만사가 귀찮은 거예요. 한 끼의 식사마저 맛있게 할 수 없는데 그게 얼마나 불쌍합니다. 거지는 소화불량이 없거든요. 무엇이든지 항상 맛있게 먹습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건강이 제일입니다. 그래서 건강하면 건강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히 행복한데 사람이 이걸 모르고 삽니다. 

또 하나는 할일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하지요. 할일이 없다는 건 쓸모가 없다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고로 일거리가 있어야 됩니다. 또 하나는 일의 뜻을 알 때 행복한 것입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 의미를 알고 살아가야 된다는 얘깁니다. 모르고 하는 일은 힘들지만 알고 하는 일은 힘이 덜 듭니다. 목적도 알고, 방법도 알고, 결과도 알고 행동으로 옮깁니다. 그만큼 쉬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각이 먼저 가고 행동이 가야지, 행동이 먼저 가고 생각이 따라가면 피곤 한 겁니다. 또 하나는 일을 기뻐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겁니다. 죽지 못해 하는 게 아니고 할 수 없어 하는 게 아닙니다. 이왕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일 자체를 즐기고 있다면 그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내가하고 있는 일이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을 위해서는 오늘 내가 죽어도 한이 없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면 행복입니다. 일이라는 것은 일단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됩니다. 누구를 위한 일이며, 무엇을 위한 일입니까? 그 목적이 빗나가면 안 되는 것이고, 목적이 없으면 더더욱 허무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모르고 자기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기심의 노예가 될 때 사람은 피곤해 집니다. 사실은 은연중에 우리는 이미 남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남을 위해서 살아간다고 할 때 그 삶이 훨씬 행복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보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여자 분들은 음식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여름에 땀 흘리면서 주방에 있는 것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간혹 요리를 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이 만든 음식을 먹으면 정말 맛이 있고 맛있는 음식은 기분을 좋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대부분 음식 만드는 것을 즐깁니다. 다른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기분 좋아하고 또 먹고 싶어 하는 그것이 보람입니다. 그것이 행복이거든요. 그 사람이 요리를 잘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좀 더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옷을 입는 것도 그렇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옷을 입는 게 아닙니다. 자기만을 위한다면 시원하게 옷을 아예 안 입고 말지요. 그러나 내가 옷을 입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자 분들이 화장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내 맘대로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떤 면에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화장을 하는 겁니다. 오늘도 예배에 나오면서 거울을 보고 머리를 단장 했지만 그것도 한편으로 생각 하면 남을 위한 겁니다. 화장도 안 하고 머리도 안 감고 나와서 앉아 있어보세요. 옆에 낮은 사람이 신경 쓰여서 예배를 못 드립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귀찮더라도 예배에 올 때는 깨끗하게 씻고 깨끗한 옷을 입고 나오세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알고 보면 우리는 철저하게 봉사하며 사는 겁니다. 남을 위해서,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이게 살아가는 기본 정신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인정하지 못하고 나 자신만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순간 피곤해 지는 것입니다. 

깜짝 놀랄 만한 오늘 본문말씀을 봅니다."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나를 위해서도 아니고 내 자손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나와 상관이 없는 그 누구를 구제할 수 있도록 일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선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지 않는 삶은 결국 도둑질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못했다면 돌이켜 선하게 살라고 합니다. 남을 돕기 위해서 내가 일부러 더 수고한다는 말이 오늘 우리에게 가당키나 한 이야기입니까? 그러나 성경은 이것이 가장 선한 일이요,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기에 좀 더 현실 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가끔 신문에 어떤 재벌이 죽으면서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혹은 돈 많은 사람이 그랬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그것도 안 내놓는 사람에 비하면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굉장한 일로 칭찬합니다만 솔직히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냐 하면 정말 선한 일이 되려면 미리 내 놓아야 옳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못 쓰고 죽으니까 내놓는 것처럼 생각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안 하니까 문제지만 냉철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은 죽을 때 환원하는 것은 정말 선한 일은 아닙니다. 더 선한 일은 살아가면서 내가 쓸 거 안 쓰고, 좀 더 나아가서는 처음부터 선한 일 하기 위해서 돈을 벌어서 구제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정말 선한 일이지 죽을 때 어차피 못 가지고 갈 것을 무슨 대단한 일처럼 생각할 정도인 우리의 현실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정말 선한 일이란 애당초 목표를 두고 버는 것입니다. 그 목표가 있기에 신바람 나게 벌어서 구제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가난한 자"라고 했습니다만 가난한 자가 누굽니까? 내 입장에서 볼 때 나 보다 연약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은 다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도록 구제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행복의 비결이 있고 성공의 비결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말씀이 너무 공격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마음마저도 없이 살았던 우리들이 문제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라"고...

<진정 선한 일>이란 어떤 것인지를 오늘 우리가 배워서 선한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 내 자식, 내 가족 이라는 편협에서 벗어나서<우리>라는 공동체를 생각하며 선한 일에 힘쓰는 삶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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