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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매복이 능력입니다 (수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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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복이 능력입니다 (수 8:1~9)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40년간의 생활을 마감하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에 들어갔습니다. 모세는 죽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참 오묘하지요? 하나님이 쓰시는 종은 “가 본 만큼 쓰임 받는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가나안땅에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훈련을 받았기에 그곳에서는 백성들을 잘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가나안땅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왜요? 그 땅은 모세가 가보질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 땅을 가보았습니다. 12명의 정탐꾼과 40일 동안 정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가나안 땅에 대해 자세하게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가나안 땅까지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하나님의 사람은/ 가 본 만큼 가게 되고/ 가 본 만큼 쓰임 받게  된다./ 

저도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 보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저같이 연약한자를 선교사역에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이제 미국도 가 보았으니 더 크게 쓰임을 받을 것을 믿습니다. 아멘? 

여호수아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첫 성, 여리고 성을 아주 쉽고 간단하게 점령하였습니다. 전쟁 한번 제대로 치르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으로 승리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엄청난 성 여리고성에서 대승을 거둔 이스라엘이 예상과는 다르게 여리고 옆의 작은 성 “아이성” 전투에서는 처참한 실패를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왜 이스라엘 군대가 ‘아이’성을 점령하는 일에 실패했을까요?  그 원인은 아간이라는 군사의 탐심과 욕심이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원인은 자만과 교만이 문제의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간의 범죄를 처단하시고 다시 전쟁에 임하라고 여호수아에게 명령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작전 명령이 좀 이상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복병을 매복시키라고 합니다. 

어찌 보면 좀 치사하고 사나이답지 못한 전쟁의 자세입니다. 아니 정정 당당하게 전쟁하시지, 왜 군사를 복병하고 매병을 하라 하실까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셨나요? 참 이해가 안갑니다. 매복과 복병을 하는 것은 상대방을 속여서 전쟁하여 승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그것을 명령합니다. 

왜일까요?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3만 명과 5천 명을 매복시킵니다. 그리고 주력부대로 아이성을 공격하는 척 하다가 후퇴합니다. 

결국 아이성 사람들은 첫 번째 전투에서 승리하였기에 그 승리감에 도취되어 성문을 열고 이스라엘을 추격합니다. 그때 매복한 군사들에 의해서 아이성은 점령되고, 아이 사람들은 협공에 의해서 전멸됩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매복과 복병’을 통해 전쟁을 하라고 하셨을까요? 

어찌 보면 여호수아가 매복하여 전쟁하자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오히려 ‘내가 함께 하니 염려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너희 손에 붙이리라’ 해야 할 터인데 오히려 하나님이 복병을 하라고 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1. 교만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8:1~2절을 보세요.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 2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취하라 너는 성 뒤에 복병할지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최고의 적은 교만과 자만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교만과 자만의 함정에 빠져 실패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의 승리로 인해 일종의 교만 병에 걸렸습니다. 
“여리고성도 무너트렸는데 요까짓 작은 성쯤이야 뭐 다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정탐꾼을 보냈고 그 정탐꾼은 다 올라갈 필요 없다고 2~3천명만 올려 보내면 된다고 보고 합니다. 이것이 무서운 교만 병입니다. 
이것이 왜 무서운 것이냐면 여리고성 전쟁이 마치 자기들의 힘으로 이긴 것처럼 착각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이성쯤이야”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 교만과 자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 큰 실패를 맛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역사적으로도 보면 교만과 자만으로 망한 사람은 수없이 많습니다. 
사울왕도 교만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자기 생각을 앞세워 불순종하게 되됩니다.  그러다가 교만이 극에 달하여 제사장이 집례 해야 할 제사를 집례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비참하게 무너지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또 히스기야 왕도 그랬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 걸렸다가 살아났습니다. 그때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 왕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위로 하고 예물을 보냅니다. 

그때 히스기야 왕이 흥분하고 자만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갖고 있는 왕국의 금은보화 모습을 다 보여주며 자랑합니다. 자신의 내탕고의 보화를 그 바벨론 사신에게 다 보여줍니다. 왜요? 자기의 국력과 힘을 자랑하고 과시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그 자랑한 모든 것을 다 빼앗깁니다. 
이게 인간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죽을병에 들려 살라달라고 눈물의 기도를 드렸던 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수명을 연장 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받은 왕이 자기 왕국을 자랑합니다. 
그래서 잠언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자랑하지 말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시 105:3에는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 찌로다.” 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현명한 사람은 하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을 자랑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를 자랑하고 과시합니다. 그러기에 멸망의 길입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합니까? 
자신의 것을 감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힘을 의지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은혜의 힘은 10배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힘이 있습니까? 
그 능력을 가슴속에 매복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영적인 힘을 기르시되 그 힘을 내면의 힘으로 매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력, 세상사람 아무도 모르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파워를 갖추시길 축원합니다. 사단 원수 마귀를 이기려면 하나님의 놀라운 영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은밀하게 이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주신 은혜나 은사를 받은 분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은혜나 은사를 마치 자기가 얻은 실력으로 자랑하지 마셔야 합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은사 받았다고 하며 마치 특별한 특권을 누리는 것처럼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실력이나 능력으로 은사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런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고 얕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말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또 고후10:17에서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찌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숨은 실력을 닦아 두길 축원합니다. 드러나지 않은 영적 자산을 늘리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뭐냐고요? 봉사와 헌신, 충성과 희생입니다. 

이런 것이 은밀하게 진행되고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미래를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나를 들어내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자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매사에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은 무서운 능력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2. 다 들어내지 말고 감추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4절을 보세요. 
“4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성읍 뒤로 가서 성읍을 향하고 매복하되 그 성읍에 너무 멀리 하지 말고 다 스스로 예비하라” 

사람은 자꾸 자기 것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난리입니다. 내 힘, 내 실력, 내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명심하세요. 

그 자랑이 남들에게 다 은혜가 되고 덕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자랑 때문에 남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잇습니다. 
내 자랑 때문에 남들은 기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자기에게 욕이 돌아오기도 합니다. 

자랑할 때는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결과는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들어내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뱀같이 지혜롭게 행하라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드러내지 않는 삶은 매우 중요합니다. 드러나지 않는 곳에 생명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나무의 생명은 어디에 있나요? 
드러나는 잎사귀에 있는 것 같기도 하나 실상은 드러나지 않는 뿌리에 있습니다. 그 뿌리가 나는 왜 땅속에만 있어야 하냐? 나도 밝은 세상으로 드러나야 하겠다고 하면서 땅위로 올라오면 죽어버립니다. 그 뿌리는 감추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도 세상 사람이 보지 못하는 감취어진 힘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게 기도의 힘이고 영적 교제의 힘입니다. 
그게 성령의 권능이고 말씀의 능력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무시합니다. 그렇다고 내 것을 들어내려 하진 마십시오. 그래야 결국은 승리하게 됩니다. 빙산도 들어난 10%보다는 들어나지 않은 90%가 있기에 무서운 존재인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이 강력한 것이 진짜 강력한 힘을 소유한 자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영적으로 육적으로 충만하려면, 보이지 않는 곳에 매우 강한 힘들이 묻혀 있어야 합니다. 그런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축적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사람은 5천을 5만같이 사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5만을 5천같이 사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매복의 능력을 아는 사람은 항상 자기 힘보다 더 강력하게 일을 합니다. 왜냐하면 매복된 힘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도 감당하고 좁은 길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를 위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매복의 힘, 이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충분하게 비축되길 축원합니다. 

매복은 적이 예상하지 못한 병력이기에 5천을 가지고도 5만같이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들어내고 과시한 힘은 모든 전력이 다 드러나 있기에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드러난 병력은 5만이라 할지라도 5천정도의 힘밖에 발휘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들이 다 알지 못하는 책, 한 두 권 읽어둔 책이 있다면 요긴한 때 그 책이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새벽기도 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능력입니다.  

남들이 모르는 내가 내 속에 매복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뭔가를 더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적인 그 매복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만이 아는 “익명성 헌신”이 그것입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3만 명을 복병시키고 부족하여 5천명을 더 복병시킵니다. 그 복병으로 승리를 했듯이 우리에게도 들어나지 않는 3만의 복병이나 5천의 복병이 준비되어 있길 축원합니다. 

제가 아는 서울의 어느 목사님은 수천 명의 성도를 섬기는 엄청난 목회를 하시는 분인데 그는 저녁 9시면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 교회를 간답니다. 3시부터 12시까지 기도와 독서로 시간을 드린다고 합니다.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남들이 이상히 여긴답니다. 언제 그 많은 설교를 준비 하냐고……. 

그것도 배복입니다. 그 능력이 엄청난 힘을 갖게 하여 승리하는 것입니다. 
남들 눈에 안 뛰게 하는 것이 매복 작전입니다. 나는 여러분도 그런 영적 매복 작전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3. 매복은 사단을 속이는 것입니다. 

조선말 고종 왕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철저하게 매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그의 대적들이 자신의 힘을 모르게 하기 위해 미친 척도 하고 자기를 철저하게 매복했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자 그 매복되었던 힘으로 원수들을 굴복시키고 엄청난 힘을 소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권력자들은 그 “이 흥선”의 힘을 몰랐습니다. 철저하게 숨겼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단이 내 실체를 몰라야 합니다. 적이 내 실체를 다 알면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매복해야 합니다. 여기서 매복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입 다물고 내 마음을 숨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일을 할 때 힘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어찌 했습니까? 혹시 왜 나만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느냐며 원망 불평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실패합니다. 오히려 하나님 한분만 알아주면 족하다 여기고 입 자물쇠를 잠그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나 집에서나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고 욕하고 비판할 때가 잇습니다. 참 속이 상합니다. 그때 여러분은 어찌하고 살았습니까? 

혹시 똑같이 욕하고 비판하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그냥 견디기 힘이 듭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욕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그때도 하나님이 나를 위해 상을 예비하고 있음을 알고 입 다물고 견디어야 합니다. 그러면 며칠이 안 되어 문제가 해결됩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그 능력, 그런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니 하나님이 보고 계시고, 하나님이 내게 상 주실 것을 예비하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입을 다무는 능력이 없어 떠벌리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원수마귀는 금방 알아챕니다. 

성도 여러분! 
명심하세요. 우리의 원수 마귀 사탄은 전능하지 못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같은 반열이 아닙니다. 타락한 천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속을 들여다 볼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매복과 복병을 해야 합니다. 내입에서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게 하면 승리합니다. 

주님은 마귀를 대적하라 하셨습니다. 
약4:6~7을 보세요.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이 누구에게 은혜를 주시느냐 하면 겸손한 자에게 주신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겸손한 사람이냐?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마귀를 대적할 힘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마귀를 대적할 수 있을까요? 

마귀는 우리 마음을 익지 못합니다. 욥기의 욥을 마음을 읽지 못하고 시험했던 것이 마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귀에게 입으로 우리 속을 다 드러냅니다. 

우리 입술로 원망하고 불평하고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이런 것은 마귀가 쾌재를 부르는 정보 창구입니다. 그러니 그 마귀의 시험을 당할 재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성령의 거룩한 능력이 함께 하면 우리의 입술과 마음을 통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매복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도 그런 능력으로 십자가를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 같다 했습니다. 얼마든지 변명할 수 있었고 얼마든지 대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도 매복하셨습니다. 마치 힘없는 유대인의 왕처럼, 나사렛 선지자처럼…….  그러나 그 매복으로 승리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의 허물과 약점도 매복하나 더 큰 능력은 갖고 있는 힘을 매복하면서 때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드러내지 않는 힘의 강력함을 소유하고 그 힘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매복은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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