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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드로의 실패 (마 16: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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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실패 (마 16:16~24)


오늘은 옛날 우리 어른들로부터 자주 듣던 말씀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시작하려 합니다.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의 김유신 장군을 아실 것입니다. 김유신이 아직 생도시절에 생겼던 일인데 아마 여러분도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서라벌에 당대 최고의 미녀 기생이 있었습니다. 천관이라는 기생이었습니다. 본명은 아닌 듯 하나 사람들은 그 기생을 천관이라고 불렀습니다. 김유신은 천관을 너무 좋아하여 그 집에 자주 들락거렸습니다. 상당히 귀부인이고 인격이 높으신 김유신의 어머니는 아들을 걱정하여 아들에게 “한갓 기생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수련을 게을리 하면 어떻게 하느냐?” 라고 아주 엄하게 책망하였습니다. 김유신은 어머니에게 다시는 천관과 관계를 가지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정신 차린 김유신은 그로부터 천관집에 발걸음을 끊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초대를 받아 술을 그나하게 마시고 말을 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술을 마시고 말을 탔으니 요즘 식으로 생각한다면 음주운전인 것입니다. 꾸벅꾸벅 졸다가 눈을 떠보니 자기의 사랑하는 애마인 백마가 발걸음을 천관의 집으로 옮겼습니다. 자기는 마음속으로 보고 싶었지만 가서는 아니 될 천관의 집 앞에 서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김유신은 깊이 생각한 후 말에서 내려 애마의 목을 베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관계가 있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김유신은 그 뒤에 삼국통일이라는 위업을 이루는 걸물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그런 가르침 그리고 자신의 냉혹한 결단이 그런 일을 이루게 되었다고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도 때로는 아주 냉혹하실 때가 있습니다. 당신 자신에 대해서는 항상 그러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라시는 바도 그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넉넉하고 온유하고 아주 겸손하고 부드럽게 대해도 자기 자신에게 아주 냉혹하게 할 것을 기대하시면서 당신 자신에게 냉혹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때로는 아주 냉혹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위대한 고백으로 인해 주님으로부터 대단한 칭찬을 받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얼른 나서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아주 위대한 대답을 했습니다. 이것은 정설입니다. 예수가 누구라는 것에 대한 아주 멋진 답이었습니다. 여기에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칭찬하셨는지 모릅니다. 네가 복이 있도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8-19절) 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얼마나 큰 칭찬입니까? 

그런데 바로 그 다음 순간 베드로가 아차 실수를 했을 때 우리 주님께서 무섭게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무섭게 말씀하셨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혹시 우리 주님께서 이 자리에 직접 나타나셔서 이 말씀을 하셨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을 하지 못할지라도 주님이라면 저렇게 말씀하실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저는 예수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어쩌다 실수 한 것을 두고 어떻게 이렇게 무섭게 말씀하실 수 있는가를 생각해봅니다. 여러분이 인생 살다보면 이것은 아닌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셨는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날 수 있는가? 라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여러분이 진정 주님 안에 있고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고 생각한다면 생각할 것은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성경공부할 때 하는 것처럼 ‘어떻게’가 아니라 ‘왜’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렇게 하셨을까?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시고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시고 나를 이렇게 죽을 자리에 두시는가? 왜 그러시는가? 여러분이 이것을 생각하면 그 일보다 몇 배, 몇 천배 되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분명히 베드로가 잘못했습니다. 그것도 큰 잘못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주님은 오로지 한 길, 십자가의 길 그것만 준비하시고 그 길을 향해 달려가기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수차례 틈틈이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의 뜻을 따라주고 함께 해주기를 은근히 기대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번에 한 일은 스승의 그 큰 뜻을 조금도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스승의 앞을 가로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무섭게 책망하신 것입니다. 베드르가 큰 실수, 실패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베드로가 잘못했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제자에게 ‘사탄아’ 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가? 그럴 것까지 있었는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럴만한 것인가 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절대로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주님께서 내 인생을 그렇게 하실 분이 절대로 아니라는 압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주님에게는 다른 목적이 있으셨습니다. 

본문 21절에는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21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이 길로 가십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 납니다. 주님께서 가시고 나면 교회는 어떻게 되며 기독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란 무엇이며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치셔야하는데 누가 가르치겠습니까? 주님께서 이것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당신은 가지만 누군가는 제대로 알고 가르쳐 주어야하는데 누가 하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이것을 기회로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교회란 무엇인가? 참된 제자들이란 어떤 사람인가? 기독교란 어떤 것인가?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이런 책망을 들을 필요가 없이 제대로 공부한다면 큰 복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또 교회 다니고 있으면서 정작 기독교가 어떤 종교이며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이며 교회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첫 번째, 참된 제자들이란 ‘나’라는 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없고 ‘나’라는 존재가 없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쩌다 내가 큰일을 하고 귀한 일을 했을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전적으로 우리 주님께서 하신 것으로 아는 사람, 말만이 아니라 정말로 아는 사람입니다. 나 같은 사람은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주님께서 먼저 이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절) 라고 베드로를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너의 입에 이 대답을 넣어주었기 때문에 네가 그 위대한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때 주변에 있던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2천년 동안 기독교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베드로 입에 그 답을 넣어주신 것이지 베드로가 답을 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17절 하반절에 말씀하신 것은 하나의 경고입니다. 충분이 내가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있을 때 절대적으로 조심하고 실패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였습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항상 이런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으면 내가 했다고 하고 ‘나’라는 말을 하고 싶어집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이런 유혹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교회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현재 대통령이 지금 실패하고 있는 까닭도 바로 이것입니다. 지난번 대통령이 실패한 것을 바탕으로 너무 빨리 해결하려고 서둘렀던 면이 없지 않습니다. 이번 대통령뿐만 아니라 앞의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자기 재임기간 동안 무언가 하려고 서두르다가 국민들로부터 많은 거부를 당했습니다. 그 전의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항상 문제입니다. 우리가 재물을 모았다면 내가 죽도록 고생하고 공부했다고 생각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면 아니 됩니다. 항상 생각할 것은 내가 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어쩌다가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행복을 주십니까?’ 라고 생각해야합니다. 무엇을 하든 간에 하나님께서 해주셨음을 생각해야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조금 부흥되면 항상 넘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넘어지는 사람들이 사실은 주의 종이라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내가 교회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 때문에 넘어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하나님, 나같이 못난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교회를 이루어나가도록 맡겨주십니까?’ 라고 생각해야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실패한 것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자 베드로는 자기도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 한 번 더 멋진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얼른 앞서서 나섰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앞에 귀한 일을 했다면 내가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합니다. 평소에 그런 생각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런 대답을 했는가? 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 고맙습니다.’라고 고백해야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베드로는 다시 넘어졌지만 돌이켰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실패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 헤롯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높여주신 왕이었습니다. 성경에는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행12:21-22)라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아주 말을 잘 했던 것 같습니다. 백성들이 신의 소리라고 말했을 때 빨리 겸손해야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제 입에서 이런 연설을 하도록 해주셨습니까? 고맙습니다. 하나님, 영광을 받아주십시오.'라고 돌이켜야 하는데 헤롯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사자가 곧 쳐서 벌레에게 먹혀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어떤 영광이 있을 때 얼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내가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삶으로, 인격적으로 선언해야하는데 이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참된 예수의 제자들은 나를 높이지 않습니다. 나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좀 바보같이 낮춥니다. 바보가 아닌데도 그렇게 합니다. 여러분, 좀 심할 정도로 낮추는 사람이 우리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눅14:8).. 아예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면서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그 까닭을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은 더 깊은 뜻이 있었지만 우선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그 까닭을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눅14:8-9)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눅14:10).. 자꾸 낮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우리 주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낮추면 내가 높여주고, 섬기는 자가 되면 섬김을 받는 자가 되게 해주고, 끝자리에 앉는 사람이 되면 앞에 앉은 사람이 되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조금 모자라는 사람처럼 또 조금은 바보처럼 살아보십시오.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높여주십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지으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아 성전을 짓지 못했습니다. 대신 자기 아들이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전부를 준비하였고, 엄청난 재물과 재산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바치고 난 후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섬김과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때 다윗의 마음속에 어떤 신앙이 있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어떤 개념과 마음가짐이 있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드렸습니다만 드린 것뿐만 아니라 지금 제게 남아있는 모든 재물이 하나님의 것이고, 내 것을 하나님께 바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다시 돌려드린 것밖에 없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시고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왕이 된 것, 높은 자리에 있는 것, 그런 명예를 가진 것 전부 다 자기가 잘나서 혹은 자기가 성실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냥 은혜로 주신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많은 백성 앞에서 기도하는 그것도 우리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선 것이지 내가 잘나서 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였습니다. 

더 위대한 고백이 여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의 것을 ‘내’가 하나님께 다시 돌렸다고 말하면서 ‘내’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드리는 그 마음까지도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저도 이 백성들도 이렇게 성전 건축할 때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으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고백입니까? 이런 사람입니다. 다윗은 여기서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정말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죽고 난 뒤 2천년 동안 성경 안, 성경 밖의 사람, 믿음안의 사람, 믿음 밖의 사람 가운데 최고로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말씀하시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참된 예수님의 제자란 ‘나’라는 이름 존재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는 사람에게 칭찬받는 것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사실 칭찬을 받으면 좋습니다. 누구나 칭찬을 좋아합니다. 가끔 칭찬해달라고 제게 부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제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성경에는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면 이미 하나님께 칭찬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사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모르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칭찬을 하면 저도 좋고 여러분도 목사에게 칭찬받으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도록 하는 것이 목사가 할 노릇입니다. 목사가 칭찬하여 칭찬 잘하는 목사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좋을까요? 인간적으로는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피차가 이것을 이겨내야 합니다. 헌금하고 봉사하고 수고하는 사람을 치하하는 것은 좋지만 우리 주님께서 사람에게 칭찬받으려고 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좋아합니다. 저도 좋습니다. 그런데 좋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은 근원적으로 칭찬을 좋아합니다. 칭찬을 구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신자는 구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서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눅17:7)라고 가르치셨는데 이는 주님께서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소리 들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이면 마땅히 밭에서 일해야 하고 양을 치는 것인데 그것을 하고 난 뒤 칭찬 받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17:8-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먹을 생각을 하고, 그때 주인 옆에 앉아서 같이 먹으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또 감사받으려고, 칭찬받으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왠지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칭찬을 덜 받고 덜 재미있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칭찬받지 말고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분이 진짜 주님이십니다. 진짜 우리를 사랑하는 분은 본래 이렇게 하십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고 구하지 않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세 번째는 앞에 나서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철저히 주님 뒤에 서는 사람들이 바로 참된 예수의 제자입니다. 제자라는 말의 뜻은 뒤를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란 예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생각할 것은 정말로 소원할 것이 있지만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 일에 대해서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이 일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을 아는 분은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이것을 알고 제대로 하면 좋겠습니다. 정말로 급한 것이 여러 가지 있지만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정말로 나를 사랑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안다고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자꾸 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뒤에 물러가 있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내 뒤로 물러가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내가 앞에 나서서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고 내가 다 할 테니 너는 내 뒤를 따라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조금 전에 네가 그 멋진 대답을 한 것이 사실은 네가 아니라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반드시 실패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항상 ‘주님이 앞서 가십시오. 아이를 주님께서 키우십시오. 그 길을 지도해주십시오. 저희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라고 생각해야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뒤로 물러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또 여기서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말씀이 있는 마태복음 16장에서 10장이 더 지난 마태복음 26장에서 예수님께서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때 베드로가 나서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베드로는 여지없이 나서서 모두가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의 뜻을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다른 제자들은 형편없을지 몰라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주님께서 베드로뿐만 아니라 오늘 여러분들에게 앞에 나서지 말고 철저히 내 뒤에서 나를 따라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의 참뜻이 바로 이것입니다. 

네 번째 참된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장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의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제출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제자라도, 어떤 직분자도 자기 의견을 얼마든지 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자고 권할 수도 있고 하지 말자고 만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꼭 우리가 명심할 것은 주장할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잘못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는 오늘 본문에서 그렇게 말하고 난 뒤 예수를 붙들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 라고 항변하였습니다. 주님 그러시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기독교는, 교회는 어떻게 합니까?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붙들고 항변하고 결코 그렇게 안 될 것이라고, 절대 안 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은 아닙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그렇게 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일이든지 주장하지 않습니다. 내 가정, 내 사업, 내 인생에 있어서도 ‘주님께서 다 알아서 하십시오. 그러나 제 소원은 이것입니다.’ 라고 생각해야합니다. 예수님도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지 않으셨습니까? 이처럼 주장하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합니다. 여러분, 사람이란 본래 자기를 중심축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이것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까? 모든 사람들은 항상 이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속에 정말 예수가 들어있는 사람은 일이 있을 때마다 이것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나님께서 싫어하실까 좋아하실까 생각합니다. 

영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영적인 사람입니까?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과 관계 지어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참된 예수의 제자들이란 영적인 사람입니다. 이들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뻐하실까, 덜 좋아하실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참된 예수의 제자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다섯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먼저는 ‘나’, 내가 없는 사람입니다. 칭찬받는 것을 구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앞에 나서지 않는 사람들, 주장하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다섯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여러분은 여기서 얼마나 가깝습니까? 몇 가지가 여러분들에게 있고, 몇 가지가 여러분들에게 없습니까? 여러분들이 제자에 더 많이 가까울수록 다윗에게 주셨던 그 영광이 여러분들에게 더 가까울 것입니다. 날이 가면 갈수로 이 다섯 가지의 참된 제자가 바로 여러분들의 모습이 되도록 주님께서 소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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