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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알곡과 가라지 (마 13: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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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곡과 가라지 (마 13:24~30) 


여러분, 천국이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단편적인 대답이지만, ‘나쁜 사람이 없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창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러나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범죄 이후 세상은 보기에 좋지 않게 되었다. 이유는 죄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언제 어느 곳에서나 다툼과 살인, 성적인 타락과 질병,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우리가 사는 곳이 천국이 아니라는 증거는 너무나 많다. - 경찰서, 파출소, 교도소, 법원, 검찰청, 군대, 병원, 화장장등... 텔레비전과 인터넷 뉴스는 쉴사이 없이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알리고 있다. 사람들은 강심장을 가지고 되었다. 

그런데 재미 있는 사실은 사람들의 죄와 다툼, 질병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기관들이나 직업들이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부와 권력을 안겨 주는 통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열심히 공부시키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법관이 되라, 의사가 되라, 약사가 되라, 장군이 되라.’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세상적으로 출세하는 것이다. 온통 그곳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신에 대하여, 진리에 대하여, 천국에 대하여 관심을 별로 갖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넓은 문, 넓은 길, 사람이 많이 가는 곳을 선호한다. 그러나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은 좁고 가는 사람이 적다. 

오늘 비유의 말씀은 바로 좁은 길을 가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의 대부분은 힘이 없고, 병든 사람들,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제자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그렇다. 갈릴리 호수의 어부들, 아니면 세리 정도였다. 권력 층에 있는 사람들, 특별히 예루살렘 지역에 살고 있던 공회원,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예수님에게서 무엇인가 얻을 것이 있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특별히 제자들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목을 매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그들에게 두둑한 보수가 지불되었거나, 아니면 확실한 지위가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제자들의 마음 속에 불안과 염려가 자리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 있는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심으로 격려와 함께 소망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앞서서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천국의 풍성함을 말씀하셨다. 옥토와 같은 심령은 가진 사람들은 비록 몸은 이 세상에 있으나 천국의 풍성함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천국은 반드시 미래적이고 종말적인 것만은 아니다. 만일 미래적인 면만 있고 현재적 천국이 없다면 이 비유의 말씀을 들어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늘 본문도 천국에 관한 비유의 말씀인데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알곡과 가리지’에 대한 말씀이다.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어떤 위로와 교훈이 담겨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마 13: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이 말씀에 대한 설명이 37-38절에 나오고 있는데,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은 인자고,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고, 밭은 세상이며,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 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발견하게 된다. 이 세상은 종국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한 이미 저주 받은 땅이지만 그러나 아직까지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닿아 있는 곳이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통해서 오늘날도 척박하고 죄 많은 이 땅에 복음의 씨가 뿌려지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생겨나고,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아직 소망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세에서 이 땅에 이뤄지는 천국의 모습은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마 13: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마 13: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가리지를 덧뿌리고 갔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38-39절에 나와 있다. 가라지를 심는 원수는 마귀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다. 마귀가 언제 가라지를 뿌렸느냐 하면, 밤 중에, 잘 때라고 했다. ‘잘 때’는 마귀가 공작하기 가장 좋은 환경을 가리키는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마귀의 특성을 ‘우는 사자’로 비유했다. 

예수를 믿으면 이 땅에서도 천국과 같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마귀라는 존재가 활동하고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들, 곧 성도들이 이 땅에서 평안한 삶을 누리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약점을 파고 공격해 오는 것이다. 독보리 가라지 씨를 뿌리고 가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가라지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38절에서 가라지는 마귀의 아들들이라 했는데, 그것은 바로 악한 영들을 가르키는 것으로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악한 마음을 심어서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좁은 의미로는 신자들 각 개인을 말하는 것이고, 넓게는 교회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사단은 불신앙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는 역사하지 않는다. 

반드시 성도들의 심령 속에 역사하거나, 교회 가운데 역사한다. 성도들로 하여금 육신의 욕망을 따라 범죄하도록 부추긴다. 교회로 하여금 다툼과 분열을 통해 무너지게 하는 것이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그런데 이 마귀는 항상 우는 사자같이 사납게 공격하지 않는다. 때때로 광명한 천사와 같이 은혜롭게 접근해 오기 때문에 처음에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때로는 예배 시간에도 나타나고, 기도 시간에도 역사한다. 때로는 제직회에서도 나타나고, 목사님과 장로님들의 모임인 노회나 총회에서도 나타난다. 거룩한 백성들의 모임에서 고성과 욕설이 오고 간 후에야 마귀가 가라지를 뿌리고 간 것을 알고 후회하게 된다. 

예수 믿었다고 항상 심령이 평안하고 육신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항상 은혜롭고 천국 같은 것도 아니다. 마귀는 쉬지 않고 발 걸어 넘어뜨리기 위해 삼킬 자를 찾고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본문의 등장하는 종들은 ‘형광등’ 신자들이다. 처음에는 전혀 몰랐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 이삭이 패여 결실할 때쯤 되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주인에게 말했다. 

- 아니 어떻게 된거지요? 분명히 좋은 씨를 심었잖아요.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지요?
-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 이것들을 뽑아 버릴까요? 그때 주인이 이렇게 말했다. 

(마 13: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마 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우리는 여기서 주인의 다른 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는 곡식을 보호하기 위함이고, 둘째는 가라지에 대한 심판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알곡인 참 신자를 보호하는 방법은 우리가 원하는 방법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라지는 당장 뽑아 버렸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범위를 축소해서 교회 안에는 알곡과 가리지가 함께 공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참 신자와 거짓 신자가 섞여 있고, 순교자와 배교자가 섞여 있고, 정통신자와 이단 신자가 함께 섞여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헬무트 틸리케 목사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1) 세상의 악은 사람의 노력으로 조절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주 흡연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담배 곽에 흡연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문을 써 붙여도 흡연 인구는 줄지 않는다. 음주 인구가 늘어만 간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사창가를 없앴는데 더욱 은밀한 방법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제는 동성애까지 합법화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가리지를 뽑아내도 마귀는 계속 뿌려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힘으로 근절되는 없다.

만약 사람의 노력으로 죄를 줄이고, 악을 제거할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이유가 없으셨을 것이다. 

2) 주님께서는 완력으로 문제 해결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눅9:52 이하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던 중 사마리아인의 한 촌을 거쳐 가시려고 제자들을 보냈는데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의 일행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다. 그때 화가 난 야고보와 요한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희를 멸하시옵소서’라고 말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두 제자를 책망하시고 다른 촌으로 둘러 가셨다. 

예수님의 목적은 불순종하는 자들을 일시에 제거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주기 위해 왔다’고 말씀하셨다. 억지로 완력을 사용하는 것은 도리어 복음의 문을 닫고 복음을 들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힘으로 하셨을 것 같으면 십자가에 달리시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3) 종들이 알곡과 가라지를 분리해낼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리지는 팔레스틴 지역에 자라는 독보리인데 밀과 비슷해서 농부들도 잘 구분을 못한다는 것이다. 종들의 열심이 도리어 알곡까지 뽑아낼 염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부도덕하고, 심술 궂고, 교활한 사람들이 있어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을 위해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타인의 잘못을 볼 때 판단하지 말고 그를 향해 동정의 손을 내미는 것이 옳은 태도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마 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두 번째 의도는 심판의 날을 예비하신 것이다. 추수의 날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섞여 있어서 알곡은 양분을 빼앗기며 수난의 날들을 지내왔다. 가라지는 최후의 승자가 자신들인 것처럼 알곡보다 목 하나는 더 높이 뻗어져 나와 있었다. 그때 예수께서 전문 추숫군들을 보내실 것이다. 마지막 날에 되어질 일을 이렇게 증거하셨다. 

(마 13: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마 13: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 13: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세상에서 죄악된 방법으로 교활하게 부를 쌓고 권세를 쥐었던 가라지 같은 인생들의 최후의 비극적인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악인들의 번성을 부러워하지 말라. 그들의 멸망의 모습을 계시록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계 18: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계 18: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계 18:10)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그러나 믿음을 지킨 성도들은 어떻게 되는가?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거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교훈

1. 현재적 천국의 불완전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한다.

그 불완전한 모습은, 내 심령 속에, 우리 교회 공동체 속에, 우리의 거하는 세상에서 나타나고 있다. 왜냐하면 마귀가 쉬지 않고 내 심령 속에, 교회 공동체 안에, 사회 도처에 악의 씨를 뿌리고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성도들은 영적 전투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엡 6: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2.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된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교회의 큰 대적이었다. 세상에서 뽑아내야 할 독보리 가라지 제1호 였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로 변신하였다. 한국 지성의 대표라고 불리던 이어령 박사, 그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기독교인들을 어리석은 자들로 보았다. 그가 작년에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섣불리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된다. 때때로 우리가 지체들을 재판정에 세우고 재판관 노릇할 때가 많다. 지금은 시원찮게 보여도 언젠가 주께서 만져 주시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인내하며 기도해 주어야 할 것이다. 남을 비판하기 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 상태를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고전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3.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와 궁극적 승리를 믿어야 한다.

악한 자와 함께 공존하게 될 때 그 피해는 성도들이 입게 된다. 그러나 주님의 의도는 곡식의 온전한 보전을 위해 가라지의 공존을 허락하신 것이다. 참된 신자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보장하신다. 그것을 칼빈의 성도의 견인이라 했다.

(요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성화 - SEA MAN


4.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은 영속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정하신 날 하나님의 심판의 때, 그날에 알곡과 가라지가 분명하게 갈라지게 된다. 그날에 후회하며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했다.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벧후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벧후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선포된 천국과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미래적 천국 사이에 끼어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단의 공격과 유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영광으로 나라로 인도하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심령 속에 성령으로 함께 하시고 보호하고 계심을 잊지 않기 바란다. 

우리에게 어머니의 품과 같은 교회를 주셨고, 인생의 갈길을 안내할 나침반과 같은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다. 

사도 베드로의 권면대로(벧후 3:11-12),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의 날을 간절히 사모하는 재림신앙으로 무장하기 바란다. 그리고 함께 더불어 이 땅에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 공의와 진리가 실현되고 사랑이 넘치는 천국을 이뤄가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축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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