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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3 16:47

성령의 인치심 (엡 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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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인치심 (엡 1:11~14)

 
보혜사라고 하는 단어는 우리 일반 사회에서는 쓰지 않는 단어입니다. 교회에서만 쓰는 단어로 예수께서는 성령을 보혜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헬라어로‘파라클레토스(Parakletos)’라는 단어인데 옛날 헬라 법정의 변호인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변호인은 아마 현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직업적 변호사가 아니고 대부분이 피고인의 친구가 됩니다. 자기가 나서서 친구의 무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파라클레토스를 자청하고 변호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을 잘못하거나 허위사실을 말하면 그 친구도 똑같이 벌을 받게 되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위험을 겁내지 않고 나서서 친구를 위해서 파라클레토스 역할을 해주는 사람을 보혜사라고 말합니다. 특징이 있는데 그 친구 옆에 계속 있으면서 마치 자기도 똑같은 죄인이 된 것 같이 생각하고 그에게 힘을 넣어주고 안심을 시켜주고 위로와 격려를 계속하고 희망을 주고 때로는 “만약 이것이 잘못되어서 처벌을 받는다면 너와 내가 같이, 살아도 같이 살 것이며 죽어도 같이 죽을 것이니 걱정 말아라.” 이것이 보혜사의 역할입니다. 파라클레토스 역할입니다. 

그래서 이 성령을 파라클레토스라고 부른 것은 성령께서 우리 곁에 항상 일부러 찾아오셔서 나를 위해서 변호사 역할을 해가면서 우리를 변호하고 다시 살려내는 작업을 열심히 하고 위로하고 희망을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보혜사, 파라클레토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바로 파라클레토스가 되어서 너희를 도와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 오늘 성경 말씀에 “너희도 그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치심”이란 도장을 찍었다는 겁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어주는 파라클레토스가 될 것이며 우리 이마에 그 약속을 도장을 찍어버렸다.” 이것이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유대나라, 또 우리 대한민국, 중국은 다 도장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땅을 사고 팔 때, 집을 사고 팔 때, 임명장을 줄 때, 상장을 줄 때 마지막 부분에다 큼직한 도장을 찍어야만 인정을 받습니다. 도장이 안 찍힌 문서는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가 학교를 졸업할 때도 졸업장 맨 아래 구석에 학교장의 사각 도장이 빨간 인주로 선명하게 찍혀있습니다. 그게 있어야지 졸업장이지 없으면 위조입니다. 또, 학교에 남겨놓는 학적부와 내 졸업장을 맞물려 놓고 기다란 도장을 찍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진짜 졸업장인지 가짜인지 알려면 거기 가서 학적부의 도장을 맞춰서 딱 맞으면 진짜이고 조금이라도 틀리면 가짜입니다. 

옛날 우리나라 임금들은 옥쇄라는 것이 있어서 국가적 명령을 내릴 때는 도장을 찍어서 임금님의 권위를 나타냈습니다.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다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장을 찍어주신 겁니다. 
그래서 이 도장은 몇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님과의 영원한 약속, 한번 찍은 도장은 취소가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으로 인을 치신 후에는 취소를 절대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나타났고, 이 도장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세 위임장을 받은 것입니다. 임금님의 도장이 찍힌 문서는 그 문서 자체가 임금님입니다. 

연속극에서 여러분 보셨죠? 임금님의 어명 문서를 가진 사람이 말을 타고 막 달려가서 큰 소리로 명령합니다. “아무개는 나와서 어명을 받으라.” 그러면 꼼짝 못하고 바로 그 문서 앞에서 임금님과 똑같이 절을 하고 무릎을 꿇고 읽어 내려가는 동안 고개도 들지 말고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신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 뭐냐?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적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 지금은 그 권세가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어디 도장이 찍혔는지 안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는 겁니다. “종말적 구원의 임재가 나타날 때는 이 도장을 인치심을 받은 사람들이 천사까지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이미 하나님의 약속으로 하고 도장을 찍었다.” 이것이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다는, 도장을 찍었다는 말로 오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사람들은 이제부터 어떻게 되느냐? 나 자신은 하나님의 소유물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매매계약서입니다. 하나님이 비싼 값을 지불하시고 나를 사신 겁니다. 성경 여러 군데 나타나 있습니다. “주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기업은 곧 하나님의 자녀들, 성도들이라.”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특권 권세를 부여하시는 한편, 이제부터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소유됨을 약속하는 계약이 성령의 인치심이라는 겁니다. 

옛날 노예 문화 시절에는 주인이 자기 노예를 영원화 하기 위해서 약속을 하고 종의 몸에다 도장을 찍었습니다. 쇳덩어리를 달궈서 주인만이 아는 표시를 해서 어깨나 엉덩이에 지져버립니다. 그래서 그 마크만 보면 이 사람이 누구네 집종이라는 것이 다 나타나는 문화였습니다. 또 한 가지 귀를 뚫습니다. 그래서 그 귀에다 쇠고리를 끼어 넣습니다. 그러면 그 귀걸이만 보면 저 사람은 누구네 집종이라는 것을 다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어떤 주인은 조그맣게, 어떤 주인은 크게 해서 그것을 표시로 “너는 영원한 우리 집의 종이야!” 빼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귀걸이의 문화는 거기서부터 온 것입니다. 

성령의 인은 “우리가 이제부터는 하나님께 소유된 귀걸이가 달린, 아니면 도장이 찍혀버린 노예와 같습니다. 당신의 소유물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세요. 하나님의 백성은 이마에 인을 쳤다고 했습니다.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인친 자는 다 아십니다. 

밴쿠버나 시애틀에 부흥회 하러 가면 반드시 구경 가는 곳이 있습니다. 연어 부화장입니다. 연어가 부화되어서 새끼 때 연어연구협회에서 인을 찍어버립니다. 그러면 그 연어가 온 세상의 바다를 다 돌아다니다 어디서 잡힐 것 아닙니까?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그게 뭔지 모르지만 전문가들은 이게 어디 연어라고 금방 압니다. 그래서 만약 밴쿠버 연어가 동해안에서 잡히면 우리도 보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동해안의 연어가 저 칠레 앞바다에서 잡히면 거기서도 보고하러 옵니다. 그래서 연어 연구를 서로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인을 쳤기 때문에 다 아는 겁니다. 마지막 심판 때가 되면 성령의 인치신 도장을 보고 하나님의 자녀인지 사탄의 자녀인지 구분하게 됩니다. 우리는 잘 모릅니다. 인친 자는 다 안단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 사역은 도장을 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은 비둘기 같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비둘기를 보면 노아의 홍수 때 노아의 심부름꾼으로 나타나죠? 또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제사지낼 때 쓰이는 제물이 소와 양, 비둘기입니다. 문둥병 환자가 정결케 되는 제사를 드릴 때 비둘기를 사용했고 나실인이 서약을 할 때 비둘기를 사용했고 예수님도 마태복음 3장 16절에 세례 받으시고 물 위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비둘기로 조명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32절에 요한이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 위에 머물렀더라.” 성령이 비둘기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온 세상은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으로 사랑받고 있는 문화가 생겼습니다. 유엔총회에서부터 세계 어디를 가도 다 평화를 말할 때는 비둘기를 조명해서 평화를 말하는 문화입니다. 제가 옛날에 살던 집은 비둘기들이 많았습니다. 비둘기들 몇 쌍이 와서 초막 끝에서 숙박료도 안내고 날마다 주무신단 말입니다. 그러면 시끄러워요. 밤이면 이것들이 사랑을 하는 건지 잠꼬대를 하는 건지 “꾸르룽 꾸르룽!” 내가 자는 창문 바로 옆입니다. 시끄럽단 말입니다. 

일찍 잠들어야 새벽기도를 가는데 비둘기를 쫓아낼 수도 없고 더 심각한 일은 이 비둘기 몇 쌍이 와서 집에서 사니까 온통 집이 비둘기 똥입니다. 얼마나 많이 과식을 해서 똥을 싸는지 사방이 비둘기 똥입니다. 계속 치워도 끝이 없어요. 여러분, 유럽 여행 할 때 보세요. 유럽의 어느 도시든 제일 고민은 이 비둘기 똥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좋은 건물, 아름다운 건물이 전부 비둘기 똥으로 뒤덮이니까 ‘이거 어떻게 하냐?’ 그런다고 비둘기를 총으로 쏴서 죽인다든지 쫓아버리지 않습니다. 다른 동물 같으면 어림도 없습니다. 

그런데 평화의 상징으로 가장 좋은 동물의 모습으로 성경에서부터 조명이 되었기 때문에 못하는 겁니다. 비둘기는 참 복 받은 동물입니다. 온 세상 어디를 가든 사랑을 받습니다. 이 비둘기의 특징이 어떻게 나타나느냐? 언제나 짝을 지어서 삽니다. 혼자 있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금슬이 좋은 부부를 보고 비둘기 같다는 말이 생긴 것이고, 옛날에 이런 노래 가사가 있지 않습니까?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성령은 우리 혼자 두지 않으십니다. 항상 나를 찾아와서 마치 내가 없으면 못살 것 같은 반응을 성령님이 보이십니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떨어지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나의 인생 순례의 길에 어느 때나 동행하십니다. 우리는 때로 혼자 살려고 도망을 가지만 성령님께서 끝까지 따라오십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파라클레토스, 보혜사입니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오시는 성령입니다. 

그 다음에 성령 사역은 술과 같습니다. 술과 비교해서 좀 어색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성경에 그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혹시 성령의 사역 성격과 술의 성격이 같다고 술을 많이 드시라는 것은 아니니까 오해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2장 13절에 보세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충만히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가서 뭐라고 말하니까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술에 취하였다! 저 사람들이 아침부터 술을 먹고 취해서 저렇게 중얼거리느냐?” 이런 반응이 금방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성령 충만해지면 술에 취한 사람과 비슷해 보이는 면이 있다는 겁니다. 

사무엘상 1장에 보면 한나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얼마나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까? 그랬더니 엘리 제사장 앞에서 책망을 들었습니다. “술 끊어라! 웬 여자가 술을 많이 마시고 성전에서 이 모양이냐? 언제까지 이렇게 취하여 있겠느냐?” 제사장한테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입니다. 술 취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토한 것뿐입니다.” 그렇게 변명하잖아요? 그러니까 여러 군데서 성령이 충만하면 술 취한 사람과 비슷해지는 모습이 조명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과거에 술 많이 드신 분들은 왜 술을 드셨습니까? 술을 마시면 마음이 흥분하게 되잖아요? 저는 술은 안 먹어봤지만 술에 대해서는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유대인의 성경 탈무드를 여러분 보셨잖아요? 거기에 술에 대한 말이 그렇게 많이 나옵니다. 유대인이 처음에 술을 만들기 위해서 식물을 재배하는데 어떻게 하면 이 식물이 잘 자라서 식물이 될까 생각하다가 그 식물을 심어놓고 짐승을 잡아서 피를 갖다가 거름으로 줍니다. 양의 피도 주고 돼지의 피도 주고 사자의 피도 주고 원숭이 피도 줍니다. 그래서 식물이 잘 자라서 열매를 맺으니까 그 열매를 따서 술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네 가지 동물의 성격이 술에 들어있다고 합니다. “처음에 조금 마셨을 때는 양과 같이 조용해 졌다가 조금 더 마시면 돼지같이 미련해졌다가 조금 더 마시면 사자같이 사나워지고, 마지막에는 원숭이같이 재주를 부린다. 그것이 술의 성격이다.” 비슷하잖아요? 

또 중국 고담의 욘나라 임금 때 술이 처음으로 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술을 처음 만들어서 임금님 진상에 올리니까 임금님이 처음 마시고 기분이 좋으니까 “이야! 누가 이렇게 좋은 음식을 만들었느냐?” “예, 아무개가 그렇게 했습니다.” “참 좋은 음식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하도 좋아서 이로 인해 패가망신할 사람이 많이 생기겠다.” 이게 중국 고담에 나옵니다. 너무 흥겨워지기 때문에 이 성령 사역은 좋은 것이 없는 사람을 괜히 좋게 만듭니다. 

여러분, 바울 사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세요. 그 사람이 뭐가 좋은 게 있었습니까? 가족도 없습니다. 돈도 없습니다. 날마다 매 맞고 헐벗고 감옥에 갇히고 정처 없이 떠돌고 좋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바울 서신의 제일 많이 나오는 말!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나는 기뻐하고 또 기뻐하니….” 뭐가 기쁩니까? 술에 취하면 기쁠 게 없어도 괜히 기쁘잖아요? 성령에 충만해져도 똑같아 집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한다고 그러는데 맞습니다. 술을 마시면 말이 많아지는 것과 똑같이 성령이 충만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믿으십시오. 예수 믿으십시오.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영이 나와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성령이 계시네” 술 취한 사람과 비슷해집니다. 술 취한 사람들은 다 담력이 생기잖아요? 술에 취하면 세상이 손바닥만 하게 보이고 길거리에서도 막 큰 소리치고 그럽니다. 겁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는 노방전도라는 게 있잖아요? 길거리에서 창피한 것도 모르고 전도합니다. 

지금은 노방전도 문화가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제가 청소년 시절에는 전도하면 다 노방전도나 축호전도,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예수 믿으라고 하는 것과 길거리 아무데서나 사람 모인 곳에 가면 찬송 부르면서 예수 믿으라고 막 떠듭니다. 창피한 줄을 모르는 겁니다. 술 취한 사람이나 성령 취한 사람이나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여러분, 이매역이나 야탑역에 가서 사람들 많이 모였을 때 한번 노방전도 가보세요. 자신 있게 해보세요.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나도 못하면서 함부로 비판할 게 아닙니다. 

제가 청년 때 뉴욕에 친구와 둘이 처음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뉴욕에서 살다 오신 분은 아시겠지만 스테이튼 아일랜드에서 자유의 여신상 앞으로 해서 맨해튼으로 가는 배는 항상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그 배를 타고서 생전 처음 맨해튼 구경 가자!”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맨해튼으로 들어가는 도시를 바라봤을 때 처음에는 너무나 황홀했습니다. 

“이야! 말만 듣던 뉴욕 맨해튼이 정말 이렇게 어마어마하구나! 오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올라가보자!” 그리고 신이 나서 가는데 그 친구는 순복음이고 나는 장로교란 말입니다. 나더러 
“우리 여기서 노방전도 하자!” 
“아니, 여기가 한국이냐? 미국인데 노방전도를 어떻게 한단 말이냐? 영어도 못하면서….” 
“노방전도 하는데 몇 마디 단어만 말하면 되지 노방전도하면서 길게 설교를 할 거냐? 어서 노방전도 하자!” 
“그러다 누가 뭐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거냐?” 
저는 하지 말자고 하는데 그 친구는 저에게 핀잔을 주는 겁니다. 

“장로교는 저런다고! 누가 뭐라고 할까봐 겁나서 노방전도도 못하는 신학! 장로교는 틀렸다!” 
이러며 핀잔을 주니까 청년시절에 자기만 성령 충만한 줄 아니까 저는 조금 화가 나서 
“그러면 해보자!” 순복음한테 지기 싫으니까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 그랬더니 나더러 
“네가 먼저 시작해라. 먼저 노래 한곡을 불러서 시선을 집중시켜 놓으면 그 다음은 내가 책임지겠다.” 
“그래? 그러면 말하는 거 네가 책임져! 나는 노래만 할게.” 

그래서 내가 사람들이 잘 집중할 수 있는 갑판 위 제일 좋은 데로 가서 서서 잠깐 동안 기도하고 찬송 중에서 제일 가사가 쉬운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Lord, I want to be a Christian In-a my heart, In-a my heart, Lord, I want to be a Christian In-a my heart!” 
그러니까 본능적으로 사람들이 다 쳐다볼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무서워지는 겁니다. 
‘어휴! 이거 괜히 건드렸나? 어떡하지?’ 눈을 감았습니다. 
“In-a my heart, In-a my heart, Lord, I want to be a Christian In-a my heart!” 

끝나니까 이 친구가 나가는데 첫마디가 뭐냐 하면 
“회개하라! REPENT! JESUS IS COMING SOON!” 하면서 몇 마디 하더니 그만이지 더 이상 할 수 있어야지요? 
그래도 마무리를 잘해야지요? 미국 사람들이 수백 명 있는데…. 
그래서 “Lord, I want to be a Christian In-a my heart! God praise! God praise in America!” 
박수 받았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기분파가 됩니다. 그냥 좋은걸 어떡합니까?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나는 보혜사가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이것보다 좋은 게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과거에 경험들이 더러 있으실지 모르겠는데 술집에 가서 술에 취하면 기분파가 되어서 주머니에 있는 돈을 팁으로 하나도 안남기고 다 주고 옵니다. 안주는 남자는 쩨쩨한 남자라고 생각해서 다 털어주고도 모자라서 외상 팁을 “이 다음에 와서 더 많이 줄게!” 술에 취해서 기분파가 됩니다. 성령에 취한 사람은 헌금을 그렇게 냅니다. 쫀쫀한 사람은 헌금도 날마다 쫀쫀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다른 것을 아끼고 헌금이 충만해집니다. 술 먹은 사람과 똑같아 집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세요. 성령이 충만해지니까 사람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밭을 팔아다가 논을 팔아다가 사도들 발 앞에 두니라.” 그래서 초대 기독교가 섰고 그것이 세계 선교의 기초가 되었잖아요?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과거도 오늘도 앞으로도 다른 것이 없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을 통해서 이 땅에 이루어집니다. 갈보리교회 교우 여러분, 성령이 충만해서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지역 선교, 세계 선교의 창조적 능력의 교회가 되고 교인들은 다 축복받아서 이 땅에서 성취하고 길이길이 번영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비 오는 날, 우리 모두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서 주님의 품을 찾았습니다. 성령께서는 보혜사로 항상 우리 곁에 계셔 주시며 우리를 혼자 있게 두지 않으시고 항상 내 곁을 찾아다니시며 인도하시고 같이 하여 주시는 것을 저희들이 믿사오니, 우리 자신들이 우리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서 성령이 충만하여서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아버지가 주신 귀한 사역을 훌륭하게 감당해가는 교회와 우리 교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 주간 동안 각자에게 주신 모든 사역을 감당해 나갈 때 보혜사께서 함께 하여 주셔서 계획한 것마다 성취하게 하여 주시고 건강회복이 필요한 자에게 건강회복을, 물질회복이 필요한 자에게 물질회복을, 가정에 평화가 회복되기 원하는 자에게 또 그렇게 하나님의 세밀하신 은혜가 우리 교우들에게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이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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