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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구원 계획 (롬 11: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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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 계획 (롬 11:25~32)


2차 대전 동안 나치는 공산주의자, 동성애자, 집시, 장애인을 포함하여 자기들이 원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을 유대인들과 함께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집단수용소로 옮겨져서 학살되었는데 그 피해자의 수는 거의 6백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학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대량 학살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것은 짧은 기간에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여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에 갇힌 어린이 2천5백 명을 구해 낸 폴란드 여성이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 신자인 이레나 센들로바 여사는 그 때 그 일로 최근 이스라엘 명예 시민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그녀는 1940년 경 바르샤바에 있는 유대인 수용소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비교적 자유롭게 수용소를 드나들며 헐벗고 굶주린 유대인들에게 식량과 생필품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1942년 7월 나치가 바르샤바 수용소의 유대인들을 트리블링카로 보내서 학살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유대인 부모들을 설득해서 수용소의 어린이들을 몰래 빼내기 시작했습니다. 앰브란스와 하수구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서 밖으로 빼낸 어린이들은 그녀와 동료들이 운영하는 구호 시설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2005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을 빼내는 일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 부모들을 설득하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들은 대체로 아이를 데려가라고 했지만 어머니나 할머니들은 아이를 안고 놓아 주지 않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어린이들을 수용소 밖으로 빼낸다고 해서 무사할 것이라고 그녀 자신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부모들을 설득하는 일에 실패할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1943년 10월 그녀는 게쉬타프 본부에 끌려갔습니다. 그녀는 다리가 부러지는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사형 집행 직전 그녀는 매수한 독일군에 의해서 구사일생으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을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다만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도리이며 그녀는 작은 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센들로바 여사에 의해서 구원받은 어린이들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은 자들이 오늘 우리 주위에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할 때도 생명을 부지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성경은 심판 중에도 살아남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바로 그들을 가리켜서 남은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공의로 심판하시지만 그 무서운 심판 중에도 구원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남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했을 때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범죄에 동참하지 않았던 그 당시 20세 미만의 어린이들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지 않았습니까?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해서 범죄하자 강대국들을 통해서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소수의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생각하며 바로 구약의 남은 자 사상을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언약 안으로 들어오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새 언약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사람은 결코 남은 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은 자의 선택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관한 일입니다. 인간이 간섭할 수 없습니다. 남은 자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깨닫고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맡기는 사람은 남은 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센들로바 여사에 의해서 구원받은 2천5백여 명 유대인 어린이들의 부모들은 자신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식의 생명을 기꺼이 그녀에게 맡겼던 것입니다. 그녀를 믿지 못하고 자식을 맡기지 않은 부모들은 대부분 자식과 함께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가 어린이들을 구하려고 해도 부모들이 그녀를 신뢰하지 못하고 그 제안을 거부하기 때문에 살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셔도 우리가 그 손길을 거부할 것 같으면 우리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남은 것을 찌꺼기처럼 생각합니다. 남은 것은 쓰다 남은 것처럼 생각하고 별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때문에 남은 것은 긍정적인 의미보다 부정적인 의미를 더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은 것은 오히려 은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받을 대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남은 자 사상은 우리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는 개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를 통해서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구원의 길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십니다. 죽음의 순간에도 살아날 길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신다는 말입니다.

앗수르의 산헤립이 유다 나라를 침공했습니다. 무자비한 공격을 받고 유다 나라는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마을들은 불에 탔고 작물들은 모두 빼앗겼습니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성도 적군에게 포위되었습니다. 당시 초강대국인 앗수르의 군대에 짓밟힌 유다 나라는 아무 소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상황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놀랍게도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사 1:9) 남은 것이라고는 예루살렘 성과 그 안에 거하는 백성들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유다 나라를 위해서 남겨 두신 것, 즉 구원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지자의 믿음은 결국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를 통해서 유다 나라의 명맥을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물론 예루살렘 성은 나중에 바벨론의 공격을 받고 함락되었습니다. 나라는 망하고 그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포로 생활 중에서도 남은 자를 보존해 주셨습니다. 결국 남은 자의 귀환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쟁 중에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지만 그 와중에도 살아남는 자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를 통해서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살다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걸림돌이 자꾸 생깁니다. 돌부리가 우리의 걸음을 방해합니다. 걷다가 돌부리에 채여서 넘어지곤 하지 않습니까? 누가 넘어지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은 우리를 자꾸 넘어지게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많은 형태의 낭떠러지를 만납니다. 믿음 안에도 낭떠러지가 있습니다. 이 낭떠러지는 우리의 믿음이 배신을 당하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우리가 신뢰하던 하나님이 의심의 대상으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가 깨지는 순간을 경험할 때를 말합니다. 이런 믿음의 낭떠러지는 우리를 종종 찾아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로부터 철저히 버림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어떤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도대체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아니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면 절대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순간에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음의 절벽에 서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펼치실 구원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누가 뭐래도 남은 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인 우리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이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따를 때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남은 자를 기어코 구원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오늘 삶의 현장에 그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주님의 구원하시는 손길을 날마다 체험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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