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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진리 안에서 자유 (요 8: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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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안에서 자유 (요 8:31~36)
 
 
자유에 대한 희망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와 민족이 속박에서 자유를 쟁취하고자 하는 몸부림을 치면서 인류의 역사를 발전시켜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은 다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라는 기본적인 권리를 부여받았습니다. 어떤 개인이나 국가에 대하여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일로써 마귀가 즐겨 쓰는 전유물입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죽음의 종으로 속박되어 있는 인간에게 자유를 선언하는 복음입니다. 오늘 우리 민족이 일제 속박에서 벗어난 광복 63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를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진리(眞理)라는 말이 주는 의미

‘진리’(ἀληθεία)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참된 이치’라는 뜻입니다. 희랍 사람들은 진리를 ‘캐논’(Canon)이라는 말로 썼는데 이는 사물의 기준이 되는 척도(尺度)를 뜻합니다. 진리는 시대나 환경이나 사람에 구별 없이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유일한 기준을 의미합니다.

1) 진리의 개념

예수님을 재판하던 집정관 빌라도가 예수님을 향해서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진리에 대한 물음은 빌라도뿐만 아니라 역사 이래 모든 인류의 공통된 질문입니다. 진리가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사람마다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대상은 다르기 때문에 진리의 개념도 사람마다 같을 수가 없습니다. 진리의 속성은 유일한 것이며 불변하는 것이며 영원한 것입니다. 성경은 진리의 기준을 하나님께 두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최고로 인정하시는 것이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과 악의 기준이 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좋다고 하시면 좋은 것이고 하나님께서 나쁘다고 하시면 나쁜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불변하시고 영원하시고 유일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2) 진리의 실제

복음서의 기자 가운데 사도 요한은 진리에 대하여 가장 실제적인 면을 언급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습니다(요1 :14). 빌라도의 심문을 받으시는 예수님께서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8:37). 

결국 진리 안에 있거나 진리에 속한 사람이 진리를 쉽게 분별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6에 “예수께서 가라사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3) 진리의 역할

본문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얽매인 데서 해방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얽어매고 구속하는 것은 마귀의 속성인 불의와 정욕의 소산이지만, 거기서 풀어주고 자유를 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성인 진리의 역할입니다. 본문말씀 36절에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얽매인 자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야 말로 진리 되시는 예수님의 역할입니다. 누가복음 4:18-19에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2. 참된 자유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였습니다(갈 5:1).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는 하나님께서 창조 당시 인간에게 부여하신 본래의 자유입니다.

1) 창조의 원형입니다.

창세기 1:27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지음 받을 당시부터 창조주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받아 아무데도 얽매이거나 거리낌이 없이 자유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성품뿐만 아니라 당시 그들이 처한 환경도 최상의 조건을 갖춘 낙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개입하고 죄가 들어오면서부터 사람의 영혼도 육신도 죄와 마귀의 세력에 얽혀 버렸고, 그 좋은 낙원도 삽시간에 가시덩굴과 엉겅퀴를 내면서 살벌한 전쟁터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만들어 주시는 자유는 죄가 개입하기 이전의 모습으로 회복시켜 놓는 것입니다. 계시록 21:5에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하신 말씀은 모든 것을 창조의 본래 모습으로 회복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평화와 질서와 공존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자유는 흔히 말하는 방종(放縱)이 아닙니다. 인간 세계에는 엄격한 의미에서 진정한 자유가 없습니다. 범죄한 인간의 마음속에 욕심이 자리 잡고 있어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변질시켜 버리고 맙니다. 탕자가 아버지에게 자유를 요구하더니 막상 그 자유가 주어지자 방종의 기회로 전락해 버리고 더 큰 불행에 빠져 버렸습니다. 세상 나라들 중에도 식민지에서 해방되거나, 독재 권력으로부터 민주화가 되었을 때 새로운 억압세력이 등장하기도 하고 아니면 방종과 혼란과 무질서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버리곤 하였습니다. 참된 자유는 하나님의 성품에 따라 제 위치에서 자기의 본분과 역할에 충실하므로 서로 조화를 이루어 질서 있는 평화와 공존의 세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3) 모두에게 행복을 누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구현되는 곳에 참된 자유함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선한 목적이 이루어지는 그곳에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참된 자유는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한 가지도 억압이나 공포와 불안이 없고 중간에 막힌 벽이 없이 서로가 사랑으로 교통하게 합니다. 범죄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서 에덴의 낙원을 보는 것처럼 진선미를 공유하는 자유입니다. 부분적이 아니라 전체적인 자유이며, 일시적이 아닌 영원한 자유와 행복을 다같이 누리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에베소서 2:19에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하였습니다.


3. 진리가 자유케 하면.

로마서 8:1-2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1) 인신(人身)의 속박에서 자유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의 범죄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였고 세상을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살벌한 싸움터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힘센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처럼 인간세계에도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약탈하고 식민지화하는 역사의 악순환이 거듭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국가 간에 야기되는 국제질서 뿐만 아니라, 같은 나라 같은 백성끼리도 가진 자가 못가진 자를 노예화하거나 또는 독재 권력에 의한 인권을 유린하는 형태로 이어져 나왔습니다. 다만 기독교의 복음이 가는 곳에 이와 같은 속박의 멍에를 벗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가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된 것이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된 것도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역사를 예표로 보여준 것입니다(시 126:1).

2) 정신적인 속박에서 자유입니다.

도덕과 양심의 회복을 뜻합니다.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할 때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받은 원형을 잃어 버렸습니다. 성경적으로는 이를 가리켜 “상실된 인간”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롬 1:28). 로마서 1:21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인격이 원형을 상실하게 되면 사고의 기준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게 됩니다. 결국 도덕과 양심도 보편적인 가치관이 아닌 자기 위주의 욕심에 따라 작용되고 마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도덕적이고 지성적인 사람이라도 자존심과 교만, 이기적인 탐욕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그 생각과 행동이 올바르게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3) 영혼의 속박에서 자유입니다.

사도 바울은 범죄한 인간의 본래 상태를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라고 하였습니다(엡 2:1). 그것은 공중권세 잡은 자인 마귀에게 속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2에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속박에서 풀려나게 된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입니다. 로마서 5:17에는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진리 안에서의 자유는 궁극적으로 영혼의 자유를 얻게 한 것입니다. 그 자유는 죽음에서 해방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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