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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사람 (고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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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사람 (고전 4: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도 안녕하셨습니까? 우리교회는 지난주일 오후부터 수요일까지 계획했던 대로 전교인 여름 수련회를 은혜 중에 마쳤습니다. 돌보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여러가지 수고하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서울은 지금도 그렇지만 무척 더웠다지요, 수련회 날씨는 끝내줬습니다. 우리보다 전 주간 수련회를 온 교회에서는 계속 비만 맞고 갔다는데 우리는 잠시도 흐리지 않고 깨끗하고 따끈 따끈한 여름 날씨였습니다. 그런데 밤이 되면 창문을 열고는 추워서 잘 수없는 시원한 바닷가의 날씨였습니다.

이번 여름 수련회 동안에 저는 하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 개인이 가슴 뭉클한 감동과 은혜가 넘쳤다고 간증하고 싶습니다. 먼저, 오신 강사 목사님과 찬양팀의 진실함과 신앙적 열정이 이제는 닳고닳은 이 목사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번 강사님은 말씀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찬양을 인도하며 간간이 말씀을 전하시고 찬양을 위하여 강사 목사님과 동행한 간단한 찬양팀이 있었습니다. 덩치 큰 목사님이 눈물을 흘리며 증거하는 진솔한 말씀과 함께 금식하며 찬양하는 젊은 전도사님들의 모습은 나를 몹시 부끄럽게 하였습니다. 저녁 금식을 한다고 들었고 그래서 옆에 있는 후배 전도사도 마음껏 먹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물론 우리교회도 오랫동안 준비 기도를 하였고 모일 때마다 수련회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저도 물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목회하는 교회도 아닌 남의 교회 수련회를 위하여 금식하며 찬양하는, 눈물 흘리며 찬양하는 그 젊은이들을 보며 내가 보기에도 참 좋은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얼마나 좋을까? 칭찬받을 만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하나 우리교회의 진행팀과 교회학교 교사들의 모습입니다. 유아 · 유치부, 어린이부, 그리고 학생부의 프로그램이 독립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정말 많이 기도하고 준비한 것 늘 교회에 있는 제가 잘 압니다. 뿐만 아니라 그 더위에 잠깐도 아니고 24시간, 3박 4일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일은 장난이 아닙니다. 어떤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제게 말하기를 ‘목사님 평소에도 느꼈지만 이번 수련회에 와서 선생님들을 보며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는 것입니다. ‘이제 부터는 주일마다 교회에 갈 때 맛있는 것 사다 드려야 되겠어요.’하며 눈물을 글썽이었습니다. 어린 생명들에게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주겠다는 사명감으로 땀 흘리는 선생님들, 이 목사가 보기에도 참 좋은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얼마나 좋을까? 칭찬 받을 만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모습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수련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우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수련원의 대강당이 원래 이동식 의자를 놓았던 곳인데 여러 가지 활동의 편의를 위하여 의자를 치우고 바닥에 앉게 만들었습니다. 의자에 익숙한 우리의 몸이 책상다리를 하고 몇 시간씩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시간 시간 자발적으로 앞자리에 앉아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습은 그것 자체가 감동이었습니다. 

특별히 저는 우리교회 장로님들이 참 자랑 스러웠습니다. 결코 젊은이가 아닌 연세에 처음부터 끝까지 꼿꼿이 앉아 은혜와 사랑을 나누시는 모습은 모든 성도들에게는 본이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크게 기뻐 하셨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땀을 흘리며 헌신적으로 일하신 이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 목사의 마음도 이렇게 좋은데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다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이번에 하는 일이 별로 없었지만 이런 성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감동과 은혜가 가슴속에 가득하였습니다. 불편하고 힘든 일들이 왜 없었겠습니까마는 수련회 주제처럼 Happy together 한 모든 성도들께 하나님의 갚으심이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우리의 이 신앙공동체 속에 영원히 계속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간혹 텔레비젼을 통해서 실험실의 흰쥐들을 자주 보면서 참 불쌍하다고 느낀일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실험할 수 없으니 불쌍한 쥐들에게 여러 가지 실험을 합니다. 여러 가지 실험 중에 이런 실험실의 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미국 버클리 대학 연구팀이 세 종류의 흰 쥐에게 먹이를 주었습니다. 한 마리의 흰 쥐에게 먹이를 주고 혼자 실컷 먹게 했습니다. 결과는 쥐의 뇌세포 활동이 쇠퇴하여 뇌의 크기가 작아졌고, 6백일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또 한번은 다섯 마리의 쥐를 모아놓고 한꺼번에 먹이를 주었습니다. 다섯 마리가 서로 몸을 비벼대며 먹이를 먹었습니다. 결과는 다섯 마리 쥐의 뇌는 약간 커졌고, 활동적이었지만 7백일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마지막 쥐는 사람이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정성스럽게 먹이를 주었습니다. 이 쥐는 세포활동이 원할했고 완전히 커진 뇌로 950일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첫 번째 쥐보다 350일을 더 산 것입니다.

오래전에 자세하게 소개한바 있습니다만, 에모토 마사루는 물 실험을 통해 이와 비슷한 사실을 입증한 적이 있습니다. 컵에 담아 놓은 물을 향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같은 내용의 글을 보여주면 물이 다이아몬드처럼 육각수 결정체로 변하고, 그 파장이 규칙적이며 아름답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물을 향하여 “나쁜 놈. 미워해. 증오해.” 라고 말하면 흉측한 결정체로 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70%가 물이라는 것입니다. 70%가 물로 구성된 사람을 칭찬하고, 고마워하고, 격려하면 인생이 달리진다는 것입니다. 칭찬하고 격려하면 다이아몬드의 영롱한 빛처럼 빛날 수도 있고 미워하고 저주하면 낙엽처럼 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칭찬은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돈이나 물건으로 하지 않고 마음과 입으로 할 수 있어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쉽지 않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받아야 하는 칭찬에 관한 교훈을 오늘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자기 자신을 칭찬받는 사람의 대열에 올려 놓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여러분 자신이 칭찬 받는 대열에 올려 놓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받고 칭찬받을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들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였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본래 모습은 칭찬받고 사랑받기에 넉넉한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물론 그 후에 인생을 살아가며 긴 세월동안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의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려 가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금 내가 누구를 닮느냐, 누구와 교제하느냐, 누구를 내 삶의 멘토로 삼느냐입니다. 좋은 사람, 닮아도 좋은 사람과 만나고 교제하고 본받는다면 여전히 나는 칭찬받는 사람의 명단에 낄 수 있는 것입니다. 존 맥스웰은 “당신의 행동을 바꾸려고 시도하기 전에 마음부터 바꾸라고”고 했습니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인정하겠습니까? 겸손과 자학을 혼동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존재임일 믿고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예로 들겠습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고, “만삭되지 못해 태어났다”고 했고, “분토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건 그의 겸손입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라고 했고,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했고,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천명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금해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학, 자해, 자살”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할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을 것이 많이 있는 사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칭찬받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친구 목사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회의 시작 전 편안하게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분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편하니까 그 때 한 친구가 말하기를 
A: 야! 너는 맨날 늦냐? 
B: 오늘 생각보다 차가 많았지. 수고했어. 그 목사님이 조금 늦게 들어오는데, 그날 따라 멋을 부려 빨간 넥타이를 메고 들어왔습니다. 아까 말했던 A목사님이 말하기를 
A: 넥타이 색깔이 그게 뭐냐? 유치하게. 
B: 밝고 화사해서 좋네. 10년은 더 젊어 보이네. 늦게 온 그 목사님이 나이는 50대 후반인데 머리가 하얀 분이 있었습니다. 아까 말했던 A란 목사님이 다시 말하기를 
A: 폭삭 늙었네. 머리가 완전히 파뿌리구먼. 
B: 백발은 영광의 면류관이라는데 무게 있어 보인다. 권위있는 목사님의 분위기가 난다. 
여러분 같으면 어떤 사람을 좋아할 것 같습니까? 이런 경우는 신앙생활, 교회생활,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적용되고 해당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눈앞에 나타난 어떤 사건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내가 문제입니다. 문제 접근법과 해석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려면 먼저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콘크리트 벽을 향해 돌을 던지면 나한테 되돌아오고, 하늘을 향해 먼지를 날리면 내 머리 위로 떨어집니다. 이건 만유인력의 법칙입니다. 그리고 이 법칙은 인생사와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칭찬이라는 용어 중에 희랍어로 칼레오(Χαλεω)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 뜻은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 그 사람이 한 일을 긍정적으로 불러 주는 것이 칭찬입니다. “○○집사님, 잘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장로님, 수고하셨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이렇게 인정하고 불러주는 것이 칭찬입니다. 

일본 사람이나 중국 사람에 비해 한국 사람은 칭찬에 약하다고 합니다. 칭찬만 해주면 죽자 살자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칭찬을 못해줍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그 칭찬에 그렇게 인색합니다. 칭찬받고, 칭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 5절에서 사람의 판단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면서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칭찬보다 하나님의 칭찬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칭찬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각 사람이 한 일을 따져 낱낱이 상도 주시고 칭찬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감추인 것들을 드러낸다’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남몰래 한 일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비밀의 베일에 감추어졌던 것들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는 감사패, 표창장, 훈장, 다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0:18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초대교회 일곱 집사는 칭찬 듣는 사람들이었고, 사도행전 10:22을 보면 당시 로마 군인 백부장이었던 고넬료는 유대인들의 칭찬받는 사람이었으며, 젊은 교역자 디모데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이었습니다.(행 16:2) 

성경에 나와있는 많은 칭찬받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을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구약성경은 계속하여 말하기를 너희들이 내게 제물을 가지고 와서 태우고 예배를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것 그 제물을 태우는 냄새가 나는 진력이 난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두 그룹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칭찬받은 그룹과 책망받은 그룹입니다. 열 처녀 중 다섯은 칭찬받고 결혼식장에 들어갔고, 다섯은 책망받고 식장 밖에서 서성거려야 했습니다. 달란트를 받았던 종들 역시 칭찬받고 주인의 잔치에 참석한 종들과 다 빼앗기고 쫓겨나 통곡하고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종들로 나뉘었습니다. 마태복음 25:31 이하를 보면 칭찬받은 그룹은 영생에, 책망받은 그룹은 영벌에 들어가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나는 주님 앞에 섰을 때 어느 그룹에 속할 것인가? 나는 과연 주님과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룹에 속할 것인가? 나는 혹시 책망받고 쫓겨나는 그룹에 속하게 될 것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칭찬 받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비난받고 욕먹을 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칭찬도 비난도 없이 무관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첫 번째에 속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설교는 먼저 자신을 칭찬 받는 사람의 대열에 올려놓으라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지 않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구원받은 사람의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하나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칭찬은 기계를 잘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와 같아서 우리들의 상호관계에도 이 윤활유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노력해 보십시오. 칭찬에 인색한 우리의 모습을 고쳐야 합니다. 내가 먼저 넘치게 칭찬합시다. 그래야 나도 칭찬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뭐든지 본능적으로 무엇을 보든지 대하면 잘못된 것, 마음에 안드는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단히 똑똑하고 잘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저 입니다. 고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래서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 ‘믿음이 없이는(하나님을)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 어떤 사람의 칭찬을 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은 다 아시지요. 사람들의 칭찬은 잠시 잠깐이지만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것은 영원한 것과 관계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주님께서 지금은 우리의 잘못에 대해서도 우리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도 그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가 되면 그의 마음 속에 있는 그의 마음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을 드러내고 칭찬할 사람은 칭찬하고 벌할 사람은 벌하게 되는 그런 순간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의 칭찬을 넘치게 받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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