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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의 태도를 바꾸라 (민 1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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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태도를 바꾸라 (민 14:8~10)


어느 백화점에서 고객이 다시 찾지 않는 이유를 분석하여 발표한 적이 있다. 고객이 사망해서 다시 찾지 않는 경우가 1%, 먼 곳으로 이사를 해서 다시 올 수 없는 경우가 3%, 다른 곳과 친분관계를 오래 전부터 맺고 있기 때문에 오지 않는 경우가 7%, 가격의 차이로 다시 오지 않는 경우가 9%,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오지 않는 경우가 14%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68%는 무슨 이유 때문에 다시 오지 않는 것일까?

그들 대부분이 고객을 대하는 종업원들의 태도가 꼴보기 싫어서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가령 물건을 사러 갔을 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거칠고, 무례하고, 불친절하고 무관심하다면 어떻겠는가? 아무리 필요한 물건이 있더라도 자리를 털고 나올 것이다. 한번 기분을 잡치고 나면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질 것이다. 시설이 얼마나 훌륭하냐가 문제가 아니다. 값이 싸고 비싸고는 나중 문제다. 층마다 얼마나 우수한 상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느냐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고객을 상대하는 종업원들의 태도가 어떠냐 하는 것이다. 태도가 불량할 경우, 고객은 점점 줄어들고 얼마 가지 않아 운영상에 상당한 어려움이 뒤따르게 될 것이다. 

종업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찾아오는 고객을 어떤 자세로 맞이하며, 또 어떤 인상을 심어주느냐에 따라 기업의 사활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현대 경영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사업에 성공하려면 최고의 우선순위를 영리나 고객이 아닌 종업원들에게 두라. 왜냐하면 고객이 늘고 줄고, 매상이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종업원들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선택의 기준을 정하라

요즈음 어느 회사나 단체를 막론하고 사람들을 채용하기 전에 먼저 적성검사를 실시하는 곳이 많아졌다. 80년대만 해도 제일 관심을 가지고 본 것이 I.Q.(지능지수)이다. 그때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좀 똑똑하고 머리 회전이 빨라야 잘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들이었다. 학교도 명문을 나와야 알아주고 성적도 상위권에 들어야 원하는 곳을 찾아갈 수가 있었다. 

그런데 9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런 고정관념이 하나둘 깨지면서 지능지수보다는 감성적인 면을 더 중시하는 풍토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머리가 뛰어나고 능숙하게 일을 잘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머리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사람 됨됨이를 더 앞세워야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였던 것이다. 

모든 사회구조나 조직이 복잡한 인간관계로 얽혀 돌아가다 보니 인간성이 나빠서는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일 뿐만 아니라 어디서나 인정받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능력보다는 인간성의 문제를 강조하면서 E.Q.(감성지수) 어쩌고 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 더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A.Q.이다. 이는 ‘Attitude Quotient(태도지수)’라고 하는데 한 인간의 성공여부는 사람을 대하는 자세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태도가 얼마나 반듯하고 진실한 가를 우선적으로 따져 보아야 한다. 아무리 재능이 있고 실력이 있고 환경이 좋고 외모가 훌륭하더라도, 태도지수가 불량하면 다 별 볼일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똑똑하면 뭐하고 훌륭한 교육을 받았으면 뭐하는가? 태도가 잘못되어 있으면, 그 만큼 더 엉뚱한 길로 나가고 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출세하고 성공하기 꼭 갖추어야 할 지수가 하나 있다. 제이큐(J.Q.)가 그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혹자는 ‘Jesus Quotient(예수지수)’라고 대답을 한다. 제법 그럴듯하지만 원하는 답은 아니다. 순수한 우리말로 ‘잔머리지수’라고 한다. 잔머리를 잘 굴려서 상황을 재빨리 파악한 다음, 어느 곳에 줄을 서야 유리한지를 한눈에 보고 약삭빠르게 행동을 해야 하나라도 더 얻어먹을 수 있는 것이다.

지능지수가 되었든, 감성지수가 되었든, 잔머리지수가 되었든 중요한 것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느냐이다. 일을 대하는 태도, 인생을 대하는 태도, 자신을 대하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 물질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하냐에 따라 삶의 향방이 정해진다. 그의 일상적인 태도를 유심히 살펴보면, 어느 정도 그의 미래를 짐작해볼 수가 있는 것이다.

대기업에서는 임원을 선출하려고 할 때, 다섯 가지 태도를 검증해본다고 한다. 
그 첫째는 야망에 대한 태도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야망이 있을 것인데, 과연 그 내용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야망을 추구하는 태도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하든지 성공하고야 말리라는 야망의 소유자라면 그의 장래는 보나마나 뻔한 것이다. 만약 그러한 사람이 회사의 중역이 되고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라.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는가? 보나마나 그 한 사람으로 인해 회사 전체가 크게 흔들리고 말 것이다. 야망이란 순수해야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인정할만한 것이라야 한다. 이런 태도를 몸에 지니고 있어야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성실히 완수해 나갈 수 있다.

둘째는 정책에 대한 태도라고 한다. 회사가 내걸고 있는 정책이나 윗사람이 지시하는 방향에 대해서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따르느냐 라는 것이다. 가령 회사의 임직원이 회의에서 결정된 정책을 놓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약점을 들춰내고, 부당한 면만을 강하게 부각시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걸고넘어지려 한다면 일이 어떻게 되겠는가? 거기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매사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자는 회사 발전이나 미래에 결코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암적인 존재가 되어 회사의 장래를 망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건전한 비판이나 조언이 다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부정을 위한 부정, 비판을 위한 비판은 이유야 어찌되었든 좋은 영향을 끼칠 수가 없다. 

셋째는 동료들에 대한 태도라고 한다. 조직 사회란 사람들이 서로 모여 살면서 서로의 이해관계를 따지는 곳이기 때문에 어떤 태도로 동료들과 대화를 하고 어울리느냐를 보면 그 의 지도력 여부를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누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헐뜯고 무시하거나 그들을 이용하여 자기 출세만을 꾀하거나 자기 이익만을 취하려는 자들을 좋다고 하겠는가? 언제나 동료들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기꺼이 서로 협력할 줄 아는 태도를 가진 자만이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

넷째는 물질과 돈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돈을 취급하는데 있어서 지나친 욕심을 갖고 있다든지, 씀씀이가 규모가 없고 헤프다든지 하면 회사 재정과 관계된 일을 마음 놓고 맡길 수가 없을 것이다. 한 가지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돈에 관한 한 정직하고 신뢰할 만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무슨 일이든 믿고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정에 대한 태도를 살핀다고 한다. 가정은 사회와 연장선장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정에서 하는 말이나 행동이 그대로 사회생활로 연결되게 마련이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가정에 대한 문제가 중요한 이슈issue로 대두되고 있다. 그 이유는 가정이 어떠냐에 따라 그가 속한 공동체도 같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회사일도 마찬가지다. 가령 가정이 불안하면 결국 자기 일에 충실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회사에도 막대한 손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태도가 운명을 결정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세상을 어떤 식으로 대하고 있는가, 주어지는 일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성공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노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놀더라도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백팔십도 달라지게 된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높이는 최상의 태도가 무엇인가를 배우고, 훈련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예배에 대한 태도, 주일을 지키는 태도, 예물을 드리는 태도, 기도하는 태도, 찬양하는 태도, 봉사하는 태도 등, 이 모든 태도가 순전히 인간적인 욕심이나 형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늘 점검해보아야 한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란 언제나 주님 앞에 영광을 돌리려는 참으로 순수하고 경건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야 한다. 

오늘의 말씀은 갈렙의 유명한 연설 중 일부이다. 본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후 맥락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보고는 단순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가나안 입성을 거부하고 돌아서려고 했을 때, 행해진 메시지다. 그는 주위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연히 일어나 약속의 땅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비전을 가지고 돌파해나갈 것을 독려하고 있다. 그는 죽기를 각오하고 반대하는 무리들 앞에 서서 이렇게 외친다. ‘하나님의 백성들아 여기서 주저앉지 말아라! 물론 우리의 힘만으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울지 모른다. 그들과 싸워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 싸워보기도 전에 미리 겁먹고 도망갈 생각만 해서야 어떻게 이기겠는가. 주님이 도우시면 능히 들어가 가나안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라.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실 것을 확신하라.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라. 이제 일어나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자. 가나안은 이미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위기상황을 대하는 두 무리의 태도를 엿볼 수가 있다. 위기상황을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로 바라보는 자들이 있는 반면에 위기는 분명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히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 전자는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다, 안 된다, 실패하고 만다, 죽는다는 말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을 뿐, 한 발자국도 앞으로 전진 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불가능하다는 자기암시에 걸려 패배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아놀드 파머Arnold Palmer라는 유명한 골프 선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만약 당신이 패배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패배한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패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패배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당신이 우승하기를 원해도 우승할 수 없다고 믿는다면 십중팔구 우승할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이란 전쟁은 늘 강한 사람이나 빠른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승리는 언제나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 자의 것임을 명심하라.” 약속의 땅을 앞에 놓고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던 자들의 말로가 무엇인가? 하나같이 자기 입으로 시인한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신앙의 태도를 가진 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면 무슨 일이나 할 수 있다, 능히 차지할 수 있다는 믿음대로 결국 가나안을 정복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무슨 말인가? 우리의 태도가 우리의 운명을 바꾸고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다. 어떤 환경에 대해서, 조건에 대해서, 사건에 대해서, 일에 대해서, 어떤 태도로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성공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실패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두말이 필요 없다.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의식을 갖고 부정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치고 인생에서 승리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믿음의 태도를 가지라

열두 명의 정탐꾼 중 열 명이 입을 맞추어 가나안 입성 자체가 어렵다고 보고를 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요하기 시작을 한다. 나머지 두 사람의 보고는 더 들어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와-하고 다수의 의견을 따라간다. 선택의 여지가 더 이상 없어 보인다. 대중들이란 언제나 된다는 쪽보다는 안 된다는 쪽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말발을 가진 사람이 나서서 선동을 하면 맹목적으로 끌려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정적인 보고가 끝나기 무섭게 적극적으로 동조할 조짐을 보인다. 1절을 보라. 그 보고를 듣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울며 부르짖으면서 ‘이제는 끝났다’ ‘우리의 소망이 다 사라지고 말았다’고 단정을 내려버린다. 한마디로 영적인 공황panic 상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2절을 보라. 그들을 인도하던 모세와 아론을 협박하면서 ‘너희들은 지도자 자격이 없으니 이제 그만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라! 우리가 다른 장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겠다. 죽을 곳이 없어서 이곳까지 우리를 데리고 왔느냐?’ 고 거칠게 항의한다. 그들의 불신앙적인 태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3절을 보라.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대놓고 망언을 퍼부어 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망하게 하려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이 분명해. 가만 놔두었으면 지금쯤 애굽에서 편히 지내고 있지 않았겠는가? 

이에 갈렙이 일어나 옷을 찢으면서 성난 어조로 꾸짖는다. ‘아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느냐? 여기서 돌아서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지금이라도 믿고 나가면 가나안을 점령할 수 있다.’ 그러자 군중들 속에서 심상치 않은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10절 말씀을 보라. 
“온 회중들이 그를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를 죽이려 들고 있는 것이다. 

칼 메닝거(Karl Meninger)라는 심리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태도라는 것은 사실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사건이나 일어나는 일, 등은 현실 그 자체로써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실 자체보다 그 사건이나 일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태도로 반응하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은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가 없다. 환경이란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주어질 뿐, 환경 자체를 바꾸기란 쉽지가 않다. 세상은 세상대로 돌아갈 뿐이다. 우리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하던 일을 중지하거나 반대로 향하는 법은 없다. 세상은 정해진 자기의 길을 갈 뿐이다. 사건은 사건대로 일어나고 위기는 위기대로 닥치기 마련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그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느냐?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 라는 것보다 그 사실을 어떤 태도로 다루느냐 하는 것이다. 위기상황에 직면하여 매사 부정적인 쪽으로만 몰아간다면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위기가 우리를 불행 속으로 몰아넣고 말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문제가 일어나고 위기가 닥치더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가를 바라보고 믿고 나아갈 때, 놀라운 기적이 임하는 것이다.

지금 누군가 위기상황 속에 놓여 있지는 않은가?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국제적으로 여러 위기상황들이 물밀 듯 닥쳐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상황의 포로가 되어 한숨만 쉴 것인지 아니면 상황을 뛰어넘어 전진할 것인지는 우리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 위기를 견디지 못해 불평만 늘어놓다가 그대로 사라져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럴수록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담대한 신앙을 가지고 문제와 맞서 싸우며 나아갈 때에 위기가 변하여 기회가 되고 인생의 짐이 변하여 놀라운 축복이 될 것이다.

한번 실패했다고 낙심하거나 절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위기가 오더라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불안에 떨지 말아야 한다. 그럴수록 신앙의 용사 갈렙처럼 위기의 방향을 돌려놓을 수 있는 강한 믿음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투철한 믿음으로 무장해야 한다. 일단 벌어진 상황은 어쩔 수 없더라도 상황에 대한 나의 태도는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갈렙이 뭐라고 고백하고 있는가? 본문 8절이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9절을 보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여기서 밥이란 밥 먹듯이 쉽게 정복하고야 말리라는 확신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단어이다.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결코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두려워하거나 전전긍긍하는 데서 속히 벗어나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라. 주눅 들거나 도망가는 대신에 먼저 주님께로 돌이키라. 적들의 힘이 강할수록 더 강하신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담대히 나아가라. 우리 주님께서 위대한 기적을 보여 주시리라. 
주님은 오늘도 긍정적인 믿음의 태도를 갖고 있는 자를 찾으신다. 언제나 주님이 기뻐하시는 태도를 가지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오늘 위기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위기상황 속에서 갈렙이 보여준 신앙적인 태도를 통하여
자신들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많은 어려운 상황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능력으로, 지혜로는 어찌할 수가 없나이다. 그러나 내 
힘으로는 불가능할지 모르나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 모든 
위기가 변하여 새로운 기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백전불굴의 신앙으로 승리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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