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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는 사람들 (삼상 17: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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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는 사람들 (삼상 17:20~30)


진정한 용기란? 

‘퍼레이드’ 라는 잡지의 편집장인 앤더슨은 “용기는 자기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예’하고 긍정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용기란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뒤로 물러서기보다 자기가 당면한 삶에 ‘예’라고 답하는 것입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반대로 두려움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하여 행하시고자 하는 그것을 찾고 그것을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에 놓고 “심히 놀라고 슬퍼 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피땀 흘려 기도하였고 “나의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결단하고 십자가를 향하여 당당하게 나아갔습니다. 

앤더슨은 이렇게 결론지었습니다. “내가 이제까지 알고 지낸 사람들이나, 이 책에 소개한 사람들의 뛰어난 점은 두려움을 가지고 사는 법만을 배워서가 아니고 오히려 그 두려움으로 인하여 더 잘 사는 방법을 터득한 데에 있습니다.” 그는 진정한 용기를 가지 사람들의 예로 바울 사도를 꼽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심히 두려워했으며 심히 떨었지만 그에게 힘주시는 예수님 안에서(고전2:2-4). 모든 대적들을 이기고 승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힘이요 기쁨이요 소망입니다. 예수님 안에 승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꿈을 꾸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며 꿈을 꾸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꿈은 누구나 꾸는 것이 아닙니다. 꿈은 지금 배고픈 사람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핍박과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 불행과 어려움으로 고난을 받는 사람들, 두려움에 둘러싸인 사람들이 꾸는 것입니다. 

남미 신학자 리차드 반디는 현재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꿈을 꾸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지금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이 꿈을 꾼다는 것입니다. 지금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요, 지혜를 얻은 사람들이요, 부자들, 가진 사람들입니다.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가지고 누리고 있기 때문에 있는 것, 즉 기득권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현재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입니다. 변두리 인간은 두려워하는 자들이요, 어려움에 있는 자들이요, 환난과 핍박을 받는 사람들이요 세상에서 욕을 먹고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미래의 꿈을 먹고 살아갑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리라는 꿈이 없다면 그들은 절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들은 변화를 갈망합니다.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날마다 미래의 꿈을 꾸며 그 꿈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소개됩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이요, 환난과 핍박을 당하는 사람들이요, 또는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모욕을 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장애를 붙들고 씨름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벨, 에녹,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 바락, 삼손 등등을 생각해 보세요. 이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된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두려움과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법을 배운 사람들입니다. 둘째로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고난과 두려움과 장애를 이기고 더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한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대부분 변두리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가난과 고난, 핍박과 눌림 가운데서 하나님의 꿈을 꾸고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미래를 바라보며 흔들림이 없이 나아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나쁜 패를 가지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들은 나쁜 패를 가지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쁜 패를 가지고도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만들어주시는 미래를 믿어야 합니다. 

미국의 제 34대 대통령을 지낸 아이젠하워가 어린 시절에 형제들과 함께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판을 시작하는 첫 판부터 그에게는 형편없이 나쁜 패가 들어왔습니다. 아이젠하워는 화가 나서 들고 있던 패를 내동댕이 쳐버렸습니다. 그리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처음부터 내 패가 나쁘게 들어왔으니 다시하자!” 그 옆에서 지켜보던 그의 어머니가 아이젠하워와 다른 자녀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 하였습니다. 

“자, 모두 카드를 테이블에 놓고 내 말을 들어보렴. 특히 아이젠하워, 너는 잘 들어야 한다. 지금 너희들이 하는 카드놀이는 앞으로 살아야할 너희들의 인생과 똑 같은 것이란다. 카드놀이에서 나쁜 패가 들어왔다고 바꾸어달라고 하지만,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나쁜 패 같이 어렵고 힘이 겨운 역경의 때가 꼭 찾아온단다. 그렇다고 피해갈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 때를 지혜롭게 잘 넘겨야 인생의 해가 떠오르는 거야. 너희들은 좋은 패가 들어오든 나쁜 패가 들어오든 그 패를 가지고 놀이를 해야 한단다. 나쁜 패가 들어왔다고 불평만 해대면 더 냉정함을 잃고 무너지기 쉬운 것이지. 자, 이제부터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감한 사람만 패를 잡고 다시 놀이를 계속해보렴. 그리고 한 가지 진실은 패는 항상 나쁘게 들어오지도 않으며, 또한 좋게만 들어오지도 않는 법이란다.” 

아이젠하워는 어머니에게 나쁜 패를 가지고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쁜 패를 가지고도 성공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가 세계 제2차 대전의 연합군 사령관을 맡아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을 때에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나쁜 패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습니다. 그는 나쁜 패를 가지고도 승리한 장군이 되었고 미국의 34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마귀는 쉬지 않고 우리를 시험합니다. 세상은 우리들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들고자 합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장애는 곳곳에 있습니다. 나쁜 패는 언제든지 우리들을 찾아옵니다. 

그러나 믿음은 바로 여기에서 빛이 납니다. 믿음의 사람은 나쁜 패를 받았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 모든 일 가운데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용기 있게 불의를 대적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순종하여 살아갑니다. 

용기 있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믿음의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용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니면 누가 흔들림이 없이 행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을 믿고 용기 있게 믿음으로 나가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하나님의 미래에 참여할 수 있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골리앗의 외모를 보고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오늘의 말씀은 비유적으로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깨뜨린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미 여러분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만 약간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사울 왕 때에 블레셋과 이스라엘 간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새의 세 아들, 다윗의 형님 세 사람도 이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이새는 막내아들 다윗을 불러서 전쟁에 참전한 세 형님에게 음식을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형님을 만나러 갔을 바로 그때에 블레셋 장군 골리앗이 나와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며 도발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8절에서 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항오를 벌렸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개로 내려 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그 블레셋 사람이 또 가로되 내가 오늘 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군인들은 크게 두려워하여 아무도 감히 나가서 싸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골리앗은 엄청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라고 했습니다. 한 규빗이 45cm이고 한뼘이 7cm이니 골리앗의 키는 277cm입니다. 우리나라의 골리앗 최홍만의 키보다 무려 40cm가 더 큽니다. 그는 놋투구를 쓰고 5000세겔의 어린갑을 입었습니다. 그의 창날은 600세겔이었습니다. 한 세겔이 10g이니 그의 갑옷의 무게는 50kg이고 그의 창날의 무게만도 6kg입니다. 이게 어디 사람입니까? 그가 나와서 매일 같이 도발하였으나 이스라엘은 감히 나가 싸울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군인들은 골리앗의 외모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골리앗의 장대한 키와 엄청난 힘과 무시무시한 장비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골리앗의 외모를 두려워하여 도망하고 숨었습니다.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은 몸을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골리앗을 두려워하여 무려 40일 간이나  꼼짝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장형 엘리압의 중심 

그러나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외모를 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의 군대를 무시하는 할례 없는 백성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모욕을 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려는 것입니다. 누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울 수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과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싸우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다윗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러나 자기 백성을 사랑하여 거기에 임재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골리앗은 반드시 망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 자기가 아무리 힘이 없어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가면 반드시 골리앗을 이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여러분, 믿은 대로 됩니다.  

형님 엘리압은 다윗이 골리앗을 대항하여 싸우려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습니다. ‘도대체 저렇게 무모하고 어리석은 놈이 있는가?’ 그는 다윗을 향해서 야단을 쳤습니다. 2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장형 엘리압이 다윗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여러분,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개는 어떤 개입니까? “하룻강아지!” 그렇습니다. 하룻강아지는 범 무서운 줄을 모릅니다. 다윗의 장형 엘리압은 다윗을 하룻강아지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에게 호통을 친 것입니다.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하룻강아지 같은 놈, 양이나 몇 마리 치는 네놈이 감히 골리앗과 싸우려고 해? 너 미쳤냐? 계란으로 바위를 쳐? 그래서 바위가 깨어지겠냐? 교만 부리지 말고 물러가!” 

여러분 사무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새의 집으로 가서 이새의 아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게 하는 이야기를 알지요? 사무엘은 뿔에 기름을 담아서 이새의 집에 갔습니다. 그는 이새의 모든 아들을 자기 앞으로 오게 했습니다. 다윗을 제외한 일곱 아들이 그 앞에 왔습니다. 사무엘은 장남 엘리압을 보고 그의 신장과 외모에 놀랐습니다. 그는 속으로 이 사람이 기름부음을 받을 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그리고 엘리압은 기름부음을 받을 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엘리압의 중심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불합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새의 여덟째 아들 다윗을 택하여 기름을 붓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사건에서 중심을 보는 것이 무엇임이 드러났습니다. 골리앗이라는 엄청난 대적 앞에서 엘리압의 진면목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는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이 외모를 보았습니다. 엘리압은 골리앗의 신장과 힘과 무시무시한 장비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골리앗을 두려워 숨는 불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린 다윗 

그런데 다윗은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습니다. 본문 26절에서 2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다윗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백성이 전과 같이 말하여 가로되 그를 죽이는 사람에게는 여차여차히 하시리라 하니라.” 다윗은 이스라엘과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이 할례 없는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다윗은 골리앗을 보기 전에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군대가 모욕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할례 없는 백성 골리앗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엘리압은 다윗을 호랑이에게 대어드는 하룻강아지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하룻강아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골리앗이 아무리 장대하고 힘이 세고 무기를 갖추어도 하나님 앞에는 하룻강아지만도 못합니다. 골리앗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에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골리앗이 아무리 대단한 힘과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과는 게임이 안 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습니다. 

다 함께 사무엘상 17장 45절에서 47절까지의 말씀을 합독하십시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하나님과 함께 가는 자는 비록 계란일지라도 하나님이 없는 바위 같은 자라도 깨뜨립니다. 하나님은 계란으로도 바위를 깨뜨리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계란 같은 자일지라도 단단한 바위를 깨뜨리고 거기에 새 역사를 창조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나약함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분, 미련함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여러분 천한 것과 없는 것들과 장애들을 무서워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여 강한 자들보다 더 강하게 만드시고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는 자들과 귀한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실 것입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는 사람들 

성경의 이야기들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여러분 모세의 이야기를 아시지요? 모세는 도망자요, 노예민족의 아들이요, 외로운 사역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당시 세계 최강의 애급 왕 바로와 대적하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치기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 왕의 손에서 구원하여 가나안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는 바로왕의 모든 강팍함과 군대와 권력과 음모와 술수들을 깨뜨리고 승리하였습니다. 

기드온은 어떻습니까? 그는 항아리와 횃불과 나팔을 가진 300명의 용사로 미디안의 12만 대군을 깨뜨렸습니다. 사실 기드온의 용사들마저도 자기들의 힘으로 미디안의 대군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산위에서 굴러온 조금만 떡 덩이가 미디안 진영으로 뒤엎는 환상을 보게 함으로 미디안의 바위를 계란보다도 더 물렁하게 만들었습니다. 300명의 400배가 되는 대군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과자부스러기 같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베드로의 이야기를 기억하시지요? 그는 이리 가운데 양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갈릴리에서 올라온 어부 출신, 배운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 베드로, 그를 대적하는 자들은 예루살렘 공의회 전원과 대제사장 가문들, 모든 예루살렘의 권세 자들, 지혜 자들, 힘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베드로에게 충만하였을 때에 베드로는 그 모든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욕을 먹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일에만 전념하였습니다. 자기들은 어떻게 되든지 그것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무시를 당하고 욕을 먹는 것을 참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전달하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힘을 주십니다. 이런 사람들이 비록 계란 같은 자일지라도 바위같이 단단한 장애들을 물리치고 대적을 이기게 하십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1875년에 달레 선교사가 쓴 조선교회사에 로마 교황 피우시 9세가 쓴 서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의 교회는 멸망도 영락도 없다. 진리를 위하여 증언하고 모든 나라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운 주의 교회는 어떤 장애가 있을 지라도 어떤 폭군의 면전에서라도 항상 이르는 곳마다 이 두 가지 의무를 다한다. 주의 교회가 들어갈 수 없을 만치 면밀히 봉쇄되어 있는 나라는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깨뜨릴 수 없을 만큼 강한 바위는 없다. 또 복음을 전달치 못하고 신자들을 이길 만큼 고립된 민족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장애라도 깨뜨리신다.” 

그리고 14년후에 엘리자베쓰 엘리옷과 마지 쎄인트와 아우카 인디안 한 명이 미국으로 돌아 와서 아우카 인디안 지역 전도를 전달하였습니다. 그 인디안은 5명의 선교사를 살해하는데 앞 장 섰던 사람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는 자기와 같은 살인자에게도 예수님께서 찾아와서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셨다고 눈물로 간증했습니다. 5명의 선교사 부인들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아우카 인디언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사랑과 용서의 예수님을 증거 하였고 드디어 아우카 인디안 전부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린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과 조건 앞에서도 먼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아무리 나쁜 패를 가져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이런 걱정 불안을 가지고 두려워하는 분들이 있지요? ‘이런 자녀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직장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이런 이웃들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런 동네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이런 외모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이렇게 키가 작은데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배우자를 어떻게 믿고 살 것인가?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 모든 것들이 변합니다. 아무리 약한 자라도 강한 자보다 더 강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미련한 자라도 하늘의 지혜를 얻어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기적을 만들 것입니다. 아무리 천하고 부족하여도 하나님은 가장 존귀하고 풍성한 행복을 선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면 계란으로도 바위를 쳐서 깨뜨리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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