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 (합 2:9~14, 고전 15:24)

  • 잡초 잡초
  • 778
  • 0

첨부 1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 (합 2:9~14, 고전 15:24)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는 일본이 낳은 성자라고 합니다. 그는 고베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소실을 얻어 서자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기생이었고, 이 일로 그는 학교에 다닐 때 늘 놀림감이었습니다. 10대 후반에 그는 인생을 포기할 정도로 삶에 대한 의욕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구세군이 나팔을 불고 북을 치며 전도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갔습니다. “서자도 예수를 믿을 수 있나요?” 구세군의 대답은 “그럼요,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같은 사람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었습니다. 그 후 그는 고베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의 프린스턴신학교에 유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그는 빈민을 위한 섬김의 사람이 되었고 사랑의 사람이란 별명도 얻었습니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대통령 시절에 개인자격으로 한국에 와서 일본의 한국 침략을 사죄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미국에 유학할 당시의 유명한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나이아가라를 방문한 가가와는 그 경치에 너무 혹하고 너무 좋아 경치를 보면서 계속 날뛰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함께 배를 타고 관광하던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니 의아한 생각이 들어 물었습니다. “그렇게도 좋습니까?” “그럼요, 우리 아버지가 만드신 것인데 얼마나 좋습니까?” 관광객 중의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뉘신지 모르지만 정말 당신의 아버지가 만든 것입니까?” 그 관광객은 목사님이었습니다. 초면이지만 다음 주일의 저녁설교를 부탁했습니다. 설교 시간이 되자 목사님은 키고 작은 동양인을 소개하였습니다. “오늘 저녁 설교해주실 분은 저도 잘 모르는 분이지만 나이아가라 폭포의 주인의 아들입니다”. 우리가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영광 돌립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질서와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책임입니다.
  
요한계시록 5:14에는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고 합니다. 또 11:16에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생물이 경배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엎드립니다. 또 계시록에는 “영광과 능력과 권능이 세세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이 반복됩니다. 영광이 세세토록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며 모든 영광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기도문에는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라고 가르칩니다.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영광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이 영원하시기에 그 영광도 영원합니다.
  
‘영화롭게 하다’(glorify)라는 말은 ‘아름답게 하다’(beautify)와 같은 말입니다. ‘아름답게 하다’는 말은 보통 ‘어떤 것을 본래보다 더 아름답게 만들다’는 뜻입니다. 원래의 아름다움을 개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영화롭게 하다’는 ‘확대하다’(magnify)라는 말에 가까운 말입니다. 우리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확대해야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확대하는 것이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성 이레니우스는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이 온전히 살아가는 그 자체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의 영광을 위해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 없이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는 캐나다의 뉴펀드랜드 빙산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학자들은 23년 후에는 빙산이 아예 없어진다고 합니다. 지구의 온난화는 일산화탄소(CO2)의 배출이 문제입니다. 이런 지구의 환경 재해로 말미암아 피조물이 탄식합니다. 창조 질서가 파괴됩니다.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사라집니다. 여호와의 영광을 위한다면 절대로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하게 해야 하는 사명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첫째, 악은 자기 스스로 보응을 받습니다.

10절에는 “네가 많은 민족을 멸한 것이 네 집에 욕을 부르며 네 영혼에게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고 합니다. 악인들은 자신의 힘으로 많은 민족을 지배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욕이 되고 영혼으로 범죄 하게 합니다. 악은 스스로 보응을 받습니다. 시편 1:6에는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악인들은 자기 힘에, 자기 꾀에, 자기 생각에 스스로 올무가 되어 넘어집니다. 악인들은 자기 올무에 자기가 묶입니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이란 말입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자승자박한 사람은 에스더에 나오는 하만입니다. 그는 유대인을 싫어했고 특히 모르드개를 싫어했습니다.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함을 보고 분개했습니다. 

어느 날 아하수에로 왕은 궁중의 기록을 읽다가 모르드개가 왕의 시해하려는 사람들의 음모를 미리 알아 임금을 구해준 사실을 알았습니다. 임금은 하만에게 왕이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어떻게 보응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만은 세상에 자기 외에 왕이 존귀하게 여길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여 임금님의 왕관을 씌우고 임금님의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을 한 바퀴 돌게 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임금님은 존귀하게 여길 사람이 모르드개이므로 하만에게 그렇게 하고 말을 끌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하만은 너무 억울하여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하여 자기 집 마당에 50규빗 되는 장대를 세웠습니다. 자기가 세운 장대에 하만은 결국 자기가 달리게 되었습니다.
  
‘자충수’(自充手)란 말을 아시지요? 자신의 행동이 결국에 가서는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악한 사람들의 행위는 결국에 가서는 자기에게 해롭고 불리한 일이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축구에서 제일 억울한 것이 자살골입니다. 악인은 골을 넣기는 하는데 늘 자살골입니다. 무언가 자기의 꾀로 하는데 자충수를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판 제자 가룟유다는 자신이 저지른 악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기 악의 올무에 자기가 희생을 당했습니다. 다윗을 배반한 아들 압살롬은 자기가 자랑하던 머리카락이 나무에 걸려 희생을 당했습니다. 악한 자는 자기가 자랑하는 것, 자기가 쳐 놓은 올무 때문에 스스로 희생을 당합니다.
  
‘앨리게이터’라는 오래전의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제약회사 사장이 신약을 개발하면서 실험한 동물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처리합니다. 하수도에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완용 작은 악어가 그 하수도에 버려지는데 새끼 악어가 버린 동물을 먹습니다. 작은 악어는 몸이 집채만 하게 되고 그 사장의 딸 결혼식에 나타나 결혼식도 망치고 죽습니다. 영화를 보면 악당이 개발한 무기에 악당들 스스로가 그 무기에 죽습니다. 아니면 자기가 아끼는 자기 아들딸이 희생당합니다. 이 세상의 이치도 악을 행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그 악이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은 분명히 세상에서도 살아 있습니다.
  
잠언 14:11에는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도 악의 반대는 정직입니다. 악한 자가 망하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이치입니다. 성경은 악인이 잘 되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자기 올무에 자기가 죽는다고 합니다.
  
쉐익스피어의 ‘리어왕’ 제1막에는 리어왕은 자신을 사랑하는 정도에 따라 딸들에게 재산을 분배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가장 사랑한다고 아첨하던 딸이 아버지 리어왕을 버립니다. 리어왕은 권력을 잃고 폭풍이 몰아치는 광야로 내몰리게 됩니다. 절망과 비참함에 왕은 미쳐버립니다. 그는 미쳤을 때 비로소 정신적 지혜를 얻어 사물을 바로 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자기 꾀에 넘어가 자기 무덤 파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 ‘고다이바’의 전설을 아시지요? 영주의 젊은 아내인 고다이바는 남편의 폭정에 항거합니다. 왕은 자기 성의 서민들에게 중과세를 요구했습니다. 고다이바는 자신의 남편에게 중과세를 거두어달라고 합니다. 왕은 젊은 아내가 알몸으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 바퀴 돌면 중과세를 거두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고다이바는 부끄럼을 무릅쓰고 알몸으로 말을 타고 영지를 돌기로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영지 사람들 고다이바의 갸륵한 마음에 감동을 받아 모두 창문을 닫고 커튼을 내리고 밖을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재단사 톰이란 사람이 창문을 열고 엿보았습니다. 이후에 톰은 소경이 되었다는 설도 있고, 맞아 죽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일 후에 ‘피핑 톰’(Peeping Tom)이란 말은 남의 일을 엿보거나 남의 말을 엿듣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보세요. 악한 자의 결국은 망합니다. 비극으로 끝납니다.
  
이사야 37:38에는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미래는 끊어질 것이나”라고 합니다. 악인의 멸망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악인이 절대로 잘 될 수가 없습니다. 탈무드에는 “거짓말 하는 사람이 받을 가장 큰 벌은, 그가 진실을 말해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이미 벌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옛말에도 맞은 사람은 다리를 뻗고 자고, 때린 사람은 다리를 오므리고 잔다고 하지 않습니까?
  
독도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이렇답니다. 한국은 한 숨도 못자는 국가이고, 일본은 일(잃)어 봤자 본전이라는 말입니다. 밝은 대낮에 날강도 짓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문자 그대로 ‘후안무치’(厚顔無恥)입니다. 얼굴이 두껍고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입니다. 뻔뻔스러워 부끄러워할 줄 모릅니다. 악인은 스스로 보응을 받습니다. 그 집이 욕됩니다. 영혼에게 죄를 범합니다. 심판을 견디지 못합니다. 악인의 종말을 잘 보시고 우리 믿음에 더욱 증진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합니다.

  14절에는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고 합니다. 아무리 세상에 악이 득실거리고, 악한 자가 잘 되는 것이 보여도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영광을 사람을 통하여 가득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장로교 ‘소요리문답’ 제1번에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영광을 돌리면 이 세상은 영광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이 영광을 돌리지만 유독 사람만이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감사치 못하는 사람은 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하는 사람은 두 배나 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0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고 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을 주셨습니다. 21절에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 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데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영화롭게 하지 못하는 미련한 사람입니다.
  
우주 전체에서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단 두 가지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했는데 하나는 타락한 천사인 악마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들 즉 인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것이 하나님을 배반한 악마와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은 허망한 것입니다. 미련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보 같은 짓입니다.
  
영광이란 말은 대체로 각국의 언어가 빛을 의미합니다. 빛이 가득한 이 세상은 영광도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빛을 만드신 다음 이 세상은 빛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19:1에는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은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시는도다”라고 합니다.
  
신학적으로 영광은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본체적 영광과 효과적 영광입니다. 본체적 영광이란 본질적 영광입니다. 이 영광은 보통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이 하나님께 돌리는 영광입니다. 해나 달은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둘째는 효과적 영광입니다. 이 영광은 사람의 영광입니다. 고등 영광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발적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영광이 진짜 영광입니다. 사람들이 의지로 영광을 돌릴 때에 하나님의 영광은 이 세상에 가득 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들게 하신 성막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솔로몬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건축하게 하신 성전을 보세요. 성막과 성전은 다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 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성막에는 영광이 가득하므로 모세가 감히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성전에는 영광이 너무 찬란하므로 제사장들이 감히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우리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해야 합니다. 우리사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해야 합니다. 온 세계에 영광이 가득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14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영광스런 탄생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영광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성육신은 그 자체가 영광입니다. 그리스도는 영광의 존재입니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가득해야 영광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해야 영광이 가득합니다. 이 땅을 그리스도가 통치해야 영광이 가득하게 됩니다.
  
매튜 헨리는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가는 길에 장애물을 설치하신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 장애물들을 제거하셔서 영광을 받고, 그 백성들에게 장애물을 제거하도록 도우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고통이나 장애나 아픔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수단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영광 받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24에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장애물, 이 세상의 통치, 이 세상의 악을 다 멸하시고 마침내 승리하십니다.


결론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야’는 1741년 8월, 24일 만에 작곡하였습니다. 그는 이전에 오페라 음악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이 모든 것이 덧없이 느껴졌습니다. 메시야를 처음 연주할 때 당시의 왕이었던 조지 2세는 평소에 헨델을 좋아하지 않던 왕이었지만 할렐루야를 연주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것이 전통이 되어 지금도 할렐루야를 연주하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입니다. ‘메시야’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위하여 만든 곡이었고, 듣는 자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음악의 천재입니다. 3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5살 때 미뉴에트를 작곡하였습니다. 9살 때는 심포니를 작곡하였습니다. 그는 34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지만 무려 626곡이나 되는 곡을 작곡하였습니다. 그는 작곡이 끝날 때 악보의 맨 마지막에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란 말의 첫 자인 ‘SDG’를 적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해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매주일 예배를 마칠 때에 부르는 찬양의 후렴을 보세요. “주의 영광 이곳에 가득해 우린 서네 주님과 함께. 찬양하며 우리는 전진하리. 모든 열방 주볼 때까지”.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마음, 우리교회, 우리가정, 우리나라에 임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 가득하여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들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