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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이야 일어나라 (눅 8:4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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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일어나라 (눅 8:49~56)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는 그야말로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연의 신비가 놀랍고, 우주의 신비는 더 놀랍습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인체의 신비입니다. 

인간의 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인간구조와 신체는 신비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 몸의 모든 신체가 신비롭지만 그중에 ‘귀’라는 것이 놀랍습니다.  귀는 듣는 기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을 제한해 놓으셨습니다. 보통 듣는 것을 ‘소리’라고 말합니다.  

소리는 주파수로 구분하는데 1∼15 Hz를 저음파로 말하고, 16∼20,000 Hz는 음파로, 그리고 20,000 Hz 이상을 초음파라 구분합니다.  그런데 보통사람의 귀로 음파의 영역은 들을 수 있으나 저음파나 초음파는 들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신비하고, 인간을 배려한 은혜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우리가 모든 주파수의 소리를 다 듣는다면 아마 사람이 온전히 살수가 없을 것입니다. 15헤르츠 이하의 소리를 듣지 못하기에 여기저기에서 소곤대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각종 세미한 소리, 자연의 소리, 동물의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반대로 20000 헤르츠 이상의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지금 고주파의 소리가 전 세계를 떠돌고 있습니다. 모든 방송 매체의 소리가 다 고주파입니다.  그것까지 다 듣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적당하게 들을 수 있는 것만 듣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듣는 음파와는 달리 믿는 자에게는 날마다 또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보통 이것을 영혼의 소리, 마음의 소리라고 합니다.  음파와 함께 우리는 그 소리를 듣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우리 영혼을 울리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가 우리를 살게 하고, 힘을 줍니다.

본문은 바로 영혼을 향해 들려오는 주님의 소리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이야, 일어나라, 사랑하는 자들아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과연 이 소리는 무슨 소리일까요?  어떤 의미가 있는 소리일까요?


첫째는 위로가 임하는 소리입니다.

본문은 주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는 사건입니다. 당시 야이로의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회당장이라는 공적인 위치가 있기에 그의 집에는 항상 상주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거기에는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몰려온 친척들과 동네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이야 일어나라’는 음성은 모두가 들은 것이 아닙니다.  51절에 보면 예수님은 소녀의 방에 들어갈 때 아이의 부모와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음성은 예수님과 함께 했던 이 사람들만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우선적으로 주목할 사람이 바로 소녀의 부모입니다.  그에게 임한 주님의 소리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위로와 힘을 주는 소리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이 힘든 일이고,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것이 더욱 처절한 일입니다. 게다가 자녀의 죽음은 더욱 참담합니다. 부모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을 것입니다. 회당장이라는 직책으로 보아 그는 재력과 능력을 겸비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힘과 정성을 다해 아이를 살리려고 했습니다.  전국의 용하다는 의사도 만났고, 좋은 약도 많이 썼을 것입니다.  아이를 살리는 일이라면 모든 방법을 동원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러다가 주님의 소식도 접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그의 직책으로 보아 주님을 만나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아이를 살리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각오로 주님을 찾은 것입니다.  그렇게 애쓰고 수고했는데 결국 아이가 죽었습니다.  이것이 당시 부모의 심정입니다.  울 기력도 없도록 힘이 빠져 두려움과 한숨으로 지금 주님과 함께 아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런 낙심과 한숨으로 지쳐 있는 부모를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더 우렁찬 목소리로 ‘일어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리는 누구보다도 먼저 부모에게 큰 위로가 된 것입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위로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특히 요즘과 같은 어려운 때는 더욱 위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어려운 일을 만납니다. 아픔의 터널을 지나갑니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예수를 바르게 믿으려고 하면 더욱 어려움이 생기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지난 한주간도 얼마나 힘들게 사셨습니까?  육체와 마음의 고통을 안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까?  세상과 싸우며 얼마나 지치셨습니까?  죄와 싸우며 몸부림치던 적이 몇 번입니까?  남편이 모르는 아픔, 아내가 모르는 고민이 있지 않았습니까?  자녀가 모르는 부모의 심정, 부모가 이해하지 못하는 자
녀의 고통이 있지 않았습니까?  이런 나에게 필요한 것이 위로가 아닙니까?  그 위로를 과연 어디서 받아 우리가 힘을 얻습니까?

성경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선포합니다. 이사야 40장 1절에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3절에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위로하시는 분이고, 어렵고 힘들 때는 더욱 위로하시기에, 우리가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임해야 합니다.  오늘 이 예배에 나온 것도 바로 그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더욱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죽은 소녀의 부모에게 들려온 주님의 음성, 아이야 일어나라, 오늘 이 시간도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와야 합니다.  그래서 지치고 힘든 인생길에 주님의 크신 위로와 힘을 얻으며 살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믿음을 자극하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님에게는 열두 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은 3명의 제자들만 데리고 가신 것을 봅니다. 여기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는 물론이고, 변화산에서도,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이들만 거기에 있었습니다. 

제자는 열두 명인데 이들만 특별히 대한 것을 보면서 혹 예수님이 편애하지 않았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모든 사람, 심지어는 원수까지도 사랑하신 예수님이 특별한 몇몇 사람만 사랑할 리가 만무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이들에게 배려를 했을까요? 그것은 누구보다도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하나님나라를 위해 잘 훈련된 주님의 군사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필요한 훈련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믿음의 훈련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늘 부족하고 연약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가 아닙니다. 믿음이 있었지만 적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본 제자들의 수준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의 믿음이 자라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특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이것이 더욱 필요했습니다. 

싸늘한 시체를 보면서 제자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당시는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긴 했지만 아직까지 죽은 자를 살리지는 못한 때였습니다. 제자들은 과연 예수님이 어떻게 하실까,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시려는가, 그들은 호기심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음성이 들려옵니다.  “아이야 일어나라”  그러자 소녀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은 죽은 자가 일어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들에게는 죽은 자도 살리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크게 자리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소리는 믿음을 깨우는 소리입니다. 연약한 믿음, 부족한 믿음, 보잘 것 없는 믿음에서 단단한 믿음, 확실한 믿음, 변치 않는 믿음을 위해 주님의 소리가 들린 것입니다.  바로 그 소리가 지금 여기,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분명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적은 믿음입니다.  이제 믿음이 자라야 합니다.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믿음은 자라지 않으면 그만큼 퇴보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겨자씨와 같은 작은 믿음이 심겨지면 반드시 자라야 합니다. 믿음을 위해 신앙생활이 필요하고, 믿음을 위해 말씀과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을 위해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믿음에 마음과 시선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믿음을 키우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해야 합니다. 믿음의 약해질 때마다, 식어질 때마다, 제자의 믿음을 깨우치려고 외쳤던 주님의 음성이 귀에 쟁쟁하게 들려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진정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에 동참하는 것이고, 그것은 십자가 위에서 사지가 찢어진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다.”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사랑할 때 고통이 없을 수 있습니까?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려고 할 때 찢어지는 고통이 없을 수 있습니까? 믿음의 사람으로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칠 때 육체가 찢기는 수고와 고통 없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래야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고, 신실한 신앙인, 뛰어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길은 없습니다. 기왕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소속이 분명한 사람으로서, 수준이 향상되는 굳건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주님은 우리 영혼을 향해 일어나라 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자극시킵니다.  더욱 큰 믿음, 산을 옮길만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능력을 행하는 소리입니다.

‘아이야, 일어나라’는 주님의 소리는 무엇보다도 죽은 소녀를 향한 것입니다.  소녀를 향한 주님의 우렁찬 소리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소녀의 육체와 영혼을 살리는 소리였습니다.  분명 소녀는 죽어 있었습니다.  이젠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능력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산자도 죽게 하는 주님의 능력이 지금 임한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시면서 보여주셨던 것은 한마디로 능력이었습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자연을 다스리고, 병자를 고치고, 능력으로 죽은 자도 살리셨습니다. 그의 능력으로 죽은 영혼도 살린 것입니다.  그의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그의 능력으로 생명의 말씀들을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선포하셨습니다. 그의 능력으로 수난을 당하시고, 능력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주님의 생애는 능력, 그 자체였습니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모습, 역시 능력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하나님, 그런 주님을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시고, 우리 앞에 어떤 장벽과 난관과 장애가 있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능력의 주님을 믿기에 신앙생활을 합니다.  주님을 믿는 것은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이 세우시고, 일으키시고, 주님이 해결하십니다.  죽은 자도 살리신 주님이신데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없는 것도 있게 하는데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이런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요즘 노래가운데 ‘You raise me up’(당신이 나를 일으키신다) 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는 2002년 발매된 노르웨이 출신 혼성가수그룹인 ‘Secret Garden’의 앨범에 수록되었다가 여러 사람들에 의해 리메이크된 노래입니다. 미국에서는 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에 미국 사람에게 힘을 주었던 노래입니다.  한국에서는 장윤영씨의 앨범에서 소개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이런 가사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When I am down and oh my soul, so weary
When troubles come and my heart burdened be
Then, I am still and wait here in the silence
Until you come and sit awhile with me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내 영혼이 힘들고 지칠 때
괴로움이 밀려와 내 마음을 무겁게 할 때
당신이 내 옆에 와 앉으실 때 까지
나는 여기에서 고요히 당신을 여전히 기다립니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에 우뚝 서 있을 수 있고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도 건널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받쳐 줄 때 나는 강해집니다.
당신은 나를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여러분, 분명 주님의 능력이 나의 삶에 임합니다. 주님의 능력이 우리의 가정에, 교회에, 민족에, 열방위에 임합니다.  힘들고 지친 우리 삶에 더욱 큰 능력으로 행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일으켜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더 큰 나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분명 주님은 놀라운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 능력이 임하는 소리가 바로 아이야, 일어나라입니다.  오늘 우리 영혼을 향해, 내 삶을 향해 사랑하는 자녀야, 사랑하는 사람아 일어나라고 힘을 주며 일으켜 주십니다.  이제 우리 모두 주님의 능력을 힘입고, 큰 위로를 받으면서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며 살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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