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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솔로몬의 축복 (왕상 8:5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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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축복 (왕상 8:54~61)


이번 주에 전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 올림픽이 시작됩니다.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내 10개 도시에서 17일간의 열전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올림픽 개막시간입니다. 8월 8일 오후 8시 8분입니다. 8이 네 개나 연속된 시간에 개막을 합니다. 중국 사람들이 8자를 복을 상징하는 숫자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8자를 복의 숫자로 여기게 된 것은 발음 때문입니다. 8자를 중국어로 ‘빠’(ba)로 발음합니다. 이 말이 ‘發’자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중국어로 ‘發’자는 ‘파’(fa)로 발음합니다. 이 ‘發’자가 중국어에서는 “돈을 벌다”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래서 8자는 부자가 되게 해 주는 복(福)을 상징하는 숫자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국 사람들은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 중국이 본격적으로 복을 받는 계기가 되기를 염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은 비약적인 경제적 발전을 꿈꾸고 있습니다. 일본을 능가하고 나아가 미국을 추월해서 명실상부한 세계의 중심이 되려는 야심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중국 사람들의 복에 대한 생각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복! 그러면 돈 많이 벌고 부자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을 번다는 뜻을 연상시키는 8자를 그렇게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디 중국 사람들 뿐이겠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렇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복이라면 이 세상에서 풍족하게 잘 사는 것을 생각합니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생각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복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복은 돈과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 세상에서 잘 산다는 것은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뒤 하나님께 봉헌하는 이야기 가운데 한 토막입니다. 솔로몬은 7년의 대 역사 끝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리고 성전 봉헌식을 거행합니다.

우선 다윗 성의 회막에 있던 언약궤를 성전으로 모셔와 안치했습니다.(8:1-11) 다음으로 솔로몬이 성전 봉헌사를 말씀합니다.(8:12-21) 성전 건축에 관한 하나님과 다윗 사이의 언약이 성취되었음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하나님께 봉헌 기도를 드립니다. 누구라도 이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 응답해 달라고 기도를 드립니다.

이제 본문은 그 다음입니다. 한 마디로 본문은 솔로몬의 축복입니다. 솔로몬이 백성들을 향해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우선 솔로몬은 봉헌 기도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8:54) 다음으로 제단 앞에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큰 소리로 축복합니다.(8:55-60) 그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해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해 주시기를 축원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권면합니다.(8:61) 그 내용은 하나님의 법도와 계명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의 말씀 속에서 중요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복과 관련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1. 복을 비는 삶

본문에서 솔로몬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복을 빌었습니다. 

5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함께 계시던 것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 5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또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필요한 대로 돌아보사...” 한 마디로 말하면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완공하고 이제 하나님께 봉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봉헌함을 고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봉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의 복을 빌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마음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가장 큰 축제는 춘절(春節)입니다. 중국에서 음력 설날을 춘절이라 부릅니다. 이때부터 봄이 시작된다 하여 춘절이라 불렀습니다. 이 때 중국 사람들이라면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복(福)자를 붙이는 것입니다. 빨간 종이에 노란 글씨로 福자를 써서 곳곳에 다 붙입니다. 집집마다 다 붙여놓습니다. 집안 곳곳에 다 붙여놓습니다. 정말 춘절에는 복을 기원하는 열풍이 저 중국대륙을 삼켜버리는 것 같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어떤 집에는 福자를 거꾸로 붙여놓습니다. 이것 역시 발음 때문입니다. 복을 거꾸로 붙이는 것은 ‘도복’(倒福)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도복과 복이 온다는 ‘도복’(到福)이 발음이 같습니다. 그래서 福자를 거꾸로 붙여놓고 복이 들어오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얼마나 복 받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지 그 염원이 대단합니다.

이것은 중국 사람들만이 아닐 것입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복을 비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다만 중국 사람들이 조금 더 적극적이고 이것이 하나의 민속 문화로 나타났을 뿐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런 복을 비는 행위들이 다 자신을 위하는데 머물러있다는 것입니다. 다 자기가 복 받는 것에 관심이 집중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나 아닌 너를 위해 복을 비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나 아닌 그들을 위해 복을 빌지 않습니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입니다.

벧전 3:9을 보면 이렇게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복을 빌라는 것입니다. 그가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면 당연히 복을 빌어야 합니다. 그가 내게 잘 해주는 사람이어도 복을 빌어야 합니다. 심지어 그들이 나를 욕하고 저주하더라도 복을 빌라는 말씀입니다. 내게 악을 저지르더라도 그들을 위해 복을 빌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복을 빌라고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명감을 가지고 축복해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축복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축복해야 합니다. 교우들끼리 서로 축복해야 합니다. 친구들끼리 축복해야 합니다. 심지어 라이벌도 축복해야 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축복해야 합니다. 핵문제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저 북한도 축복해야 합니다. 독도 문제로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저 일본도 축복해야 합니다.

어떤 과학자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물을 향해서 축복과 저주를 하고 물 분자 구조의 변화를 살폈습니다. 물을 향해 “사랑해!, 고마워! 너는 천사같아!...”라는 말로 반복해서 축복하니까 물 분자구조가 육각형의 모양으로 바뀌더랍니다. 가장 좋은 물의 형태인 육각수가 되더랍니다. 반대로 “망할 놈!, 나쁜 놈,...” 이런 말로 반복해서 저주하니까 물 분자구조가 일그러지더랍니다. 먹으면 건강에 도움이 안되는 그런 물로 바뀌더랍니다.

물도 축복하면 변합니다. 그리고 축복하는 사람에게 좋은 물이 되어 보답합니다.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간단하게 사람의 몸만 생각해 봐도 분명합니다. 사람은 70%가 물로 되어있습니다. 수정란 때는 99%, 막 태어났을 때는 90%, 다 성장했을 때는 70%가 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반복해서 축복을 받으면 사람 속에 있는 물 성분이 좋아져서 몸의 상태가 좋아질 것입니다. 

심리 정신적인 부분은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영적인 부분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고 행복해 질 것입니다. 그런 아름다운 모습으로 축복하는 사람을 대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2. 복을 전하는 삶

본문을 보면 솔로몬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축복하는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56-60절입니다. 그 중에 57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함께 계시던 것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 우리를 떠나지 마시오며 버리지 마시옵고...”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 달라는 기원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최고의 복이라는 말입니다.

솔로몬은 이 축복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역설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복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일반 종교와 무속 종교 또는 민간 신앙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복을 비는데 집착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등산을 하다보면 흔히 돌을 쌓아놓은 것을 보게 됩니다. 동네 마을 어귀에 수령이 오랜 나무 밑에는 굿을 한 흔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바닷가 바위 주변에는 용왕에게 제를 지내고 남겨진 음식 부스러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민속 신앙의 종교행위의 흔적입니다. 일종의 무속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무속 종교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 신의 뜻은 무엇인가?”와 같은 종교신념이나 철학이 없습니다. 그저 복을 비는 일에 집착해 있습니다. 기복하는 일에 몰두해 있습니다.

일반 종교에도 복을 비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에만 집착하지 않습니다. 신의 뜻을 추구하고 건강한 삶을 살게 하는 바람직한 종교의 기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종교들이 복을 비는 일에 치중하게 되면 종교는 타락의 길로 빠져들게 됩니다. 이럴 때 기복종교라 부르게 됩니다.

한 번은 심방하면서 어떤 가정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대로 무속신앙에 심취하던 집안이었습니다. 갖가지 제사에 몰두하고 때마다 점을 보고 절에 가서 시주도 하고 심지어 무당을 불러 굿도 하는 그런 집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안주인이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열심히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전도하면서 하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조상을 섬기고, 절에도 가보고, 굿도 해 봤는데 집안이 잘 되지 않았잖아요. 이제 집안이 복 받고 아이들이 잘 되기 위해서 종교를 바꿔볼 필요가 있지 않아요? 예수 믿으면 집안이 복 받고 아이들도 다 잘 된데요. 그러니 이번 기회에 당신도 예수 믿고 교회 다닙시다.”

아직 교회 다니지 않는 남편이니까 그 수준에 맞춰서 한 말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 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던 성황당 그 자리에 십자가를 놓아두는 것이 돼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소원을 이뤄달라고 치성을 드리고 정화수 떠 놓던 불상 자리에 성경을 놓아두는 것이 돼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복을 비는 일에 치중하는 기복종교로 전락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오늘 많은 성도들이 이렇게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이유가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믿고 집안이 잘되고, 예수 믿고 사업이 번창하고, 예수 믿고 자녀들이 성공하기 위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살게 해달라고 기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집안이 잘되게 해 달라고 기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자손들이 출세하고 성공하게 해 달라고 기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무엇을 기원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복이기 때문입니다.

총리를 지냈고 포항제철을 창업한 박태준 회장 이야기입니다. 정권이 온갖 공격의 표적이 돼서 명예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한국의 1만불 시대를 연 일등공신, 한국 철강의 아버지, 최고의 경영자 등 최고의 찬사만을 받던 이분이 비리의 주범으로 몰려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결국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가슴 속에는 분노로 가득찼고 건강도 엉망이 됐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고 특히 잠이 잘 오지 않아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의 인도를 따라 교회를 찾았습니다. 교회가 다 무슨 소용이냐고 거부하던 분이 이번에는 선선히 따라 나섰습니다. 교회를 다니며 사람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주님이 그 심령 속에 임하시면서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선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게 됐습니다. 괴롭고 답답하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분노도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건강도 눈에 띠게 달라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예수 믿고 돈을 많이 벌게 된 것 아닙니다. 당장 예수 믿고 문제가 다 잘 해결된 것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가 그 심령 속에 임하시면서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참된 행복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물론 후에 건강도 되찾게 되고 명예도 되찾게 됐습니다.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말씀 그대로입니다.(요 3서 1:2)

사랑하는 여러분! 참된 복은 예수 그 자체입니다. 예수와 함께 하는 삶입니다. 먼저 우리가 이점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와 함께 함으로 생겨나는 부수적인 결과 에 관심을 집중시킵니다. 예수 보다 예수 때문에 내 인생에 일어나는 좋은 결과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복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가 참된 복이 무엇인지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복의 그림자만을 쫓는 사람들에게 참된 복이 무엇인지 알려줘야 하겠습니다.


엘머 타운즈라는 분이 쓴 [축복하는 자가 축복을 받는다]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아인슈타인은 “성공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될 때, 우리는 그들을 도울 수 있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가치를 더해줄 때, 그들도 당신에게 끌릴 것이다. 자기를 돕는 사람을 무시할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도울 때, 그들이 당신을 사랑할 것이요, 언제나 당신과 함께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정말 가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해 주는 사람입니다. 바로 그들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축복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축복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복을 내리십니다. 축복하는 우리는 더욱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축복한 사람들이 또 우리를 축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땅이 참된 복으로 가득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제 복을 비는 삶을 사십시오, 복을 전하는 삶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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