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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소중한 것 (요 4: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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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가장 소중한 것 
본 문: 요한복음 4:23~24


지불생무명지초(地不生無名之草)라는 말이 있습니다. 땅은 이름 없는 풀을 내지 않는 다는 뜻으로 모든 사물은 존재의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강단의 마이크도 존재의 목적이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특징은 사물 자체에 존재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마이크는 마이크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크게 하여 예배드리며 말씀을 듣는 성도들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이 시계는 자신을 위해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시간을 가리켜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자식 낳으며 희희낙락(喜喜樂樂)하다가 죽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이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라고 하셨습니다. 


一. 예배는 인간을 지으신 목적입니다.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이사야 43:21에 말씀하시기를“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5~6에는“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이것이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해 예배를 받으시고자 인간을 창조 하셨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삶의 방편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즉 예배드리며 위로를 받고 은혜를 받고 새 힘을 얻는 방편만이 아니라, 예배는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버는 것이 본업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본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밝히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二.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의 목적이 예배를 위함입니다.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흘리신 피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회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 갈수 있게 되었고, 예배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의 피를 흘려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었지만 이제는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9:14에“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홈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축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 하겠느뇨.”라고 하셨습니다.“섬긴다.”는 말은“예배”(Service. Worship)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인간이 창조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천사들의 경배를 받으셨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하여 경배와 찬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천사들의 경배보다 자녀들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29에는“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였는데 맏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20:17에는, 예수님이 부활 하실 때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동산지기인줄 알고 만지려고 하자,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못했으니 만지지 말라고 하시면서“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내 아버지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너희 하나님.”이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 하신 후부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독생자의 신분을 떠나 맏아들이 되셨고 우리들은 예수님의 동생들로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들의 경배가 아니라 자녀들을 통해 예배를 받으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예배의 회복을 위한 것이며 아들들의 경배를 받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l:4에는“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성품(性品)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영적 DNA를 받아들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三. 예배는 영원합니다.

예배는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할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4:9~11에“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5:12~13에는“천사들이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 하도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 찌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모두가 영원토록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나타낸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신 것은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43:21에 말씀하시기를“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에서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과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께만 찬송과 영광과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四. 예배의 성공은 삶의 성공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선 목적이 예배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대속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누구든지 저를 믿기만 하면 값없이 구원받게 해 주신 것도 영원토록 찬송과 경배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선행이나 우리의 공로로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간다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에베소 2:8~9에 말씀하시기를“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창조의 목적인 예배를 잘 드리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에 잘 되도록 축복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에 실패하면 결국 모든 것에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언제나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진을 쳤습니다. 성막이란 하나님을 만나는 처소로서 오늘알 교회를 가리킵니다. 우리 성도들도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철저한 교회중심, 예배중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재단을 쌓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제사 즉 예배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던지 독자 이삭을 재단에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에도, 자기 생명보다 귀한 독자를 잡아 제사를 드리려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시고 산양을 준비하셨다가 그것으로 제사를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창세기 22:16~17에“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곳 이름을“여호와 이례”라고 했는데, 그 뜻은“하나님이 준비 하셨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 예배드리는 생활을 바로 하면 다른 모든 것은 하나님이 다 준비해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31~33에“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하셨습니다. 

반면 예배에 실패하면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가인의 경우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정성이 결여된 제물을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지 아니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창세기 4:4~5에“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고 하셨습니다. 동생 아벨은 정성을 다해 양의 첫 새끼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어쩔 수 없이 형식적인 제물은 드렸는데 사람의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 일로 인해 가인은 동생 아벨을 미워한 나머지 동생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자자손손 저주를 받는 것이 창세기 4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처럼 예배의 성공은 삶의 성공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예배드리는 것과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참 신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예배를 중히 여기는 것과 소홀히 여기는 것으로 분별이 됩니다. 복 받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예배의 차이입니다. 다윗 왕의 경우와 다른 왕의 경우에서 알 수 있습니다. 다윗 신앙의 특징은 성전 사랑과 예배중심의 삶을 살아간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말하기를 “종교적 엘리트들이 바쁘다는 것 때문에 예배드리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그는 도덕적으로 진흙탕에 빠지게 된다.”라고 경고 했습니다. 


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본문인 요한복음 4:23~24에“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하셨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말씀은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드리라는 것입니다. 예배에 있어서 장소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드리는 사람의 심령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닫고 이에 감사하며 감격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러한 예배는 성령의 임재 아래서만 가능합니다. 인간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만나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예배는 진정한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진정한 찬송이나 기도를 드릴 수 없고 더욱 성령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는 말씀을 바로 전할 수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말씀은 말씀의 진리를 토대로 예배해야 된다는 말씀이며 이 말씀이 곧“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 중심의 예배, 예수님을 높이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닫고 감사한 마음, 주님의 뜻을 따라 살려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되 별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정성된 마음의 찬송이 있어야 합니다. 

찬송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장차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계속할 것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고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찬양은 입술의 열매를 드리는 제사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3:15에“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하셨습니다. 

2. 진실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지난 한주간의 생활을 뒤돌아보며 참회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참회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시편 34:18에“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요한일서 1:9에“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50:23에“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예배에 성령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은혜가 없으면 참된 예배를 드릴수가 없습니다. 설교자의 영력을 위해, 말씀을 받는 자신의 심령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 할지라도 길가 밭이나 돌밭처럼 단단하고 강퍅해진 마음에는 은혜가 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정성된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9:7에 말씀하시기를“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하셨습니다. 헌금은 아들이 아버지를 공경하는 심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말라기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은 눈먼 것, 저는 것, 병든 것, 팔아먹지 못할 것을 드렸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것을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말라기 1:13에는“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하셨습니다. 코웃음하며 귀찮게 여겼습니다. 정성된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즐거움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존경하는 분께 선물을 한다면 미리 준비하지 않겠습니까? 특히 헌금 중에 가장 먼저 드릴 헌금은 온전한 십일조입니다. 10분의 1은 하나님이“내 것”이라 했고 이것을 드리지 않으면 도적질 한다고 했습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영의 양식인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을 받는 성도들의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3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아름다운 자세에 대해 말씀하시기를“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사도가 전하는 설교를 들을 때 단순한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주의 종들로 하여금 기록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을 때 우리의 심령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6에“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의 삶의 길을 밝혀 주십니다. 시편 119:105에“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지혜를 주십니다. 시편 119:98~100에“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2차 대전 중 뉴턴 베이커 미 국방장관이 프랑스의 야전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두 다리와 두 팔을 다 잃어 마치 축구공처럼 보이는 병사가 시체처럼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장관은 자기가 서명한 성경을 그의 가슴에 놓고 떠났습니다. 너무나 불쌍해서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종전 후 베이커 씨는 명문인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이사장으로 있었습니다. 어느 졸업식 때 그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축구공 같았던 바로 그 병사가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곁에는 결혼한 부인까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감격의 재회를 하였습니다. 팔다리 없는 박사가 말했습니다.“그때 저에게 주신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참 생명이시고 빛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저에 게 새로운 인생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능력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 3:16에 말씀하시기를“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본문인 요한복음 4:23~24에“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하셨습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질문을 한다면 어떤 분은 전도, 어떤 분은 구제, 또 어떤 분은 사랑의 교제, 어떤 분은 봉사, 등의 여러 가지 대답을 할 것입니다. 이 모두가 교회에서 꼭 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이에 앞서 가장 소중히 여겨야할 것은 예배입니다. 교회에서 해야 할 모든 일들 가운데 예배가 최우선의 사명인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며, 예배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예배를 통해 영혼이 새 힘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결과가 전도, 봉사, 구제, 친교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도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로 영화롭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배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시요, 절대적 권위자이신 하나님께 대하여 존경과 복종과 경외와 숭배를 표현하는 인간 최고의 도덕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예배드리는 것과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참 신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예배를 중히 여기는 것과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복 받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예배의 차이입니다. 

온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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