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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얼음냉수 같이 시원케 하는 사람 (잠 25:13) -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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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냉수 같이 시원케 하는 사람 (잠 25:13)
 

1. 더위를 이기는 법

가만있어도 땀이 흘러내리는 무더운 여름, 밤에조차도 기온이 내려가지를 않아 소위 ‘열대야’로 인하여 잠을 청하기가 쉽지 않은 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이 무더위를 어떻게 이겨내고 계시는지요? 인터넷에서 보니까 더위를 이겨내는 다양한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것으로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한 다음에 선풍기를 쐐보라’, ‘아니 에어컨이 있는데 에어컨 켜면 되지 뭔 소리냐?’, ‘수박, 팥빙수, 얼린바나나 등 시원한 과일을 먹으라’, ‘은행, 백화점, 마트 등을 자주 그리고 긴 시간 이용하라’ 등등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조금 독특한 것도 있었는데요. ‘티셔츠나 반바지에다가 분무기를 이용하여 물을 조금 과하게 뿌린 다음 냉동실에 두 세 시간 정도 넣어두었다가 꺼내 입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의사항이 하나 있었습니다. 여름옷은 대부분 얇은 면으로 된 옷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얼렸을 경우 부러질 수 있다나요 어쩌나요! 이런 이야기들 끝에 더위를 이기는 가장 저렴하고 간단한 것으로 추천하는 결론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시원한 얼음물 한 잔을 들이키는 것입니다. 

더위로 인하여 땀을 많이 흘리다 보면 자연히 시원한 물을 많이 찾게 되지 않습니까? 제가 아는 어느 선교사님은 군대 시절, 여름에 행군을 하고 있었는데요. 얼마나 목이 말랐든지, “5분간 휴식”이라는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길가 논바닥에 고인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고 합니다. 여름 논의 물은 미지근하다 못해 뜨겁기까지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워낙 목이 말라 견딜 수 없었던 그 분은 낮은 포복으로 엎드려 논바닥에 고인 물을 들이켰다고 합니다. 아마 견딜 수 없는 갈증을 느껴 보신 분들은 이것을 충분히 이해하실 것입니다. 하물며 무더위에 시원한 물, 얼음냉수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더위에 지쳐 있다가 시원한 얼음냉수를 마시면 그때만큼 행복한 순간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도 여름에 시원한 냉수를 마시는 그 기분을 아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여름날의 얼음냉수와 같은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름날의 얼음냉수와 같은 사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2. 충성하는 사람

주님께서 여름날의 얼음냉수 같은 사람이라고 한 사람은 본문에 보면, “충성된 사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충성된 사자”가 무더운 여름날의 얼음냉수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본문이 말하는 충성은 어떤 것입니까? 본문이 말하는 “충성”은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확고하여 변치 않는 것이요, 일에 있어서 확실하여 반드시 그 일을 해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자”라는 말이 나오고, “그를 보낸 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결국 본문이 말하는 충성은 일차적으로 우리를 이 땅에, 가정과 직장에, 그리고 사역의 현장에 보내신 하나님을 향한 충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와 헌신에 있어서 결코 변치 않는 사람, 주님께서 주신 일을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는 사람이 충성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이죠. 이러한 충성의 의미는 신약성경에서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충성”은 “피스티스(πιστις)”인데요. 이 말은 ‘믿음’, 혹 ‘믿는다’는 말인 “페이쏘(πειθω)”에서 왔습니다. 이 말 역시 살아계신 주님을 믿고, 그 말씀과 약속을 믿기에 그 분에 대해서, 그리고 그 분이 맡기신 일에 대하여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하는 것을 뜻합니다.

주후 79년, 이탈리아의 폼페이 근처에 있는 베스비우스 산이 용암을 내뿜으면서 화산이 폭발하여 폼페이 시 전체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1700년대 중반부터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그 발굴 작업은 현재까지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발굴된 유물들을 보면, 당시 폼페이가 얼마나 화려하고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 폼페이에는 공중화장실과 공중목욕탕이 있었고, 포장된 도로와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최고 수준의 문화와 예술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공연했던 화려한 극장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이커리와 카페, 병원 등이 있었습니다. 정말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발달된 문화를 가진 도시였던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폼페이의 유물 가운데 발굴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 하나 발굴되었습니다. 그것은 폼페이 성문을 지키던 보초병이었습니다. 그는 성문 앞에서 무기를 손에 들고 부동자세를 한 채로 용암을 뒤집어써서 그 모습 그대로 화석이 되어 있었습니다. 영국 런던에 있는 미술관에 가면 이 군인을 모델로 해서 그 당시의 어지러운 모습을 그려놓은 유명한 그림이 있는데요. 그런데 작가는 그 그림 아래에 "충성"이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습니다. 

여러분, 이 병사가 보여주는 “충성”이 무엇입니까? 화산 폭발로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서도 자기 목숨을 위하여 피하거나 달아나지 않고, 그 상황에서 적군이 쳐들어올 것도 아닌데 꼼짝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가 용암을 그대로 덮어쓴 것입니다. 그래서 후세의 한 화가는 그를 충성의 표본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찾으시고 기뻐하시는 사람이 바로 이와 같이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하든지 또는 저렇게 하든지 그것은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또 남들이 나를 알아주든지 몰라주든지 그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말없이, 주님께 충성을 다하는 사람, 자신이 충성하는 그 자리에서 죽을지언정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가 바로 주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이렇게 충성하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와, 여러분의 일에서도 충성스러운 삶을 사셔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충성은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것으로 세상에서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어떠하든지 그런 것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충성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믿을만한 사람이며, 신뢰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자신이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하여 깔끔하게 처리해내는 사람입니까? 혹시 사람이 보면 잘 하고 보지 않으면 적당히 하지는 않았습니까? 직장에서 받는 임금 그 이상으로 최선을 다 하셨습니까? 혹시 적당히 하거나, 상사가 없다고 일찍 퇴근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주님이 기뻐하시는 충성은 주님 앞에서만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작은 것에 충성된 자가 큰 것에도 충성한다는 말은 주님의 일만이 아니라 세상의 일, 다른 사람들과의 일에도 충성한다는 뜻도 됩니다. 성도가 이처럼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된 일에 대해서 충성스럽지 못하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그보다 큰 일을 맡기시고 은혜와 복을 그에게 주시겠습니까? 

이상과 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충성은 하나님을 향해서만이 아니라 세상과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도 충성하는 것입니다.


3. 얼음냉수 같은 사람

이렇게 충성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고 합니다. 

본문의 "추수하는 날"이라고 할 때, 여기서 말하는 시기는 보리와 밀을 추수하는 5, 6월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중동 지방은 이때가 가장 무더울 때이지요. 그리고 “얼음냉수”라고 번역된 말은 원어 상으로는 '눈의 냉기'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래서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는 "추수하는 날에 눈의 찬 냉기와 같으니라!"고 번역하는 것이 훨씬 의미를 잘 전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여기에 나오는 “얼음”, 즉 원어로 할 때의 '눈'을 문자 그대로 하늘에서 내리는 눈 또는 우박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당시 상황을 알지 못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당시 왕실에서는 여름에도 얼음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신라시대에도 석빙고가 있었지 않습니까? 당시 이스라엘의 왕궁에서는 레바논의 높은 산이나 헬몬산의 만년설을 채취해서는 그것을 잘 보관하여 음료에 타 마셨습니다. 

따라서 본문에 나오는 얼음, 즉 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것은 한여름에 난데없이 우박이나 눈이 내려야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오뉴월의 찌는 듯 한 열기를 식히기 위해 왕궁에서 포도주나 음료수에 타먹던 진짜 얼음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얼음물을 쉽게 마실 수 있습니다만,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여름에 얼음냉수를 마신다는 것은 왕궁에서나 가능한 아주 특별한 일,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서민들로서는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이와 관련한 추억이 제게도 있습니다. 초여름, 마늘 추수 때로 기억되는데요. 마늘을 뽑을 때면 어김없이 그 높은 산비탈의 마늘 밭으로 읍내에서 넘어온 아이스케끼 장수들이 아이스께끼 통을 들고 왔습니다. “아이스께끼, 아이스께끼!” 그 소리가 저 아래서 들리면 어머니를 따라 밭에 갔던 저는 지루하게 흙장난만 하다가 비탈진 밭길로 올라오는 아이스께끼 아저씨만 바라봅니다. 

그렇게 온 아저씨는 돈을 받고 아이께끼를 팔기도 했지만 마늘과도 바꾸어주었습니다. 시골에서 그 무더운 여름철에 얼음이나 아이스크림을 구경할 수 없었던 저로서는 그때 먹은 아이스께끼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과는 그렇게 인사를 잘 나누시던 어머니는 유독 아이스께끼 아저씨는 모른 척 하셨습니다. 가난한 형편 때문이었겠지요. 그래서 제 기억으로 수년의 여름을 통틀어서 아이스께끼를 먹어본 기억이 한 두 번에 불과합니다! 

그러던 제가 부산으로 이사를 해서 첫 여름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여름이 되니까 학교 앞에는 오렌지 가루를 넣어 만든 오렌지냉차와 보리차를 끓여 설탕을 탄 보리냉차 장수들이 즐비해 있었습니다. 학교 월사금도 제대로 못 내는 형편이니 그것을 사 먹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대인 관계가 원만치 못했든지 한 잔 사서 나눠먹자는 친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제가 말씀드리는 이런 의미, 즉 서민들은 꿈꿀 수 없는 여름날의 얼음냉수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왕의 마음을 얼음처럼 시원하게 해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왕은 외교상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에 지혜롭고 능력 있는 사람을 사자로 외국에 파송합니다. 그 사자를 보낸 왕은 마음이 답답하고 초조해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자가 어려운 외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답답하고 초조한 왕의 마음은 가장 무더운 추수 때에 땀 흘리며 수고하는 농부들과 같았습니다. 그럴 때, 왕이 간절하게 기다리는 소식은 자신이 보낸 사자가 어려운 외교 문제를 잘 해결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소식만이 답답하고 초조한 왕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이지요.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이제 이해가 되시지요? 하나님은 ‘지금 얼음냉수 한 잔을 들이키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 자신이 보낸 사신이 외교적 난제를 잘 해결하여 그로 인하여 마음이 시원해지듯이, 하나님도 성도 여러분들로 인하여 바로 그러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의도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에서 바울 사도는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의 온 것을 기뻐하노니."라고 하면서 "저희가 나와 너희의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7,18). 

“시원케 했다”는 말은 ‘위로를 주었다, 안식을 주었다, 생기를 넣어 주었다’는 말입니다. 즉 바울 사도는 스데바나와 브느나도와 아가이고라는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았고, 마음의 쉼을 얻었고, 힘을 얻어 사역을 더 잘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들로 인하여 그 마음이 시원했던 이유는 그들이 다른 사람을 잘 섬겼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동역을 잘 했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사람의 형편을 살펴 그의 필요를 채워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얼마나 좋은 표현이며, 이런 칭찬을 듣는 이들은 얼마나 좋은 사람입니까? 교회 안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열받게 하는 사람, 그리고 한 사람은 열을 식혀주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만 보면 답답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걱정거리를 가지고 만나면 그 걱정거리가 더 커집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서 무엇을 자랑하려 하면 당장 초를 쳐서 기쁜 마음을 다 없애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그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시원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걱정거리를 가지고 만나면 그 사람 때문에 그 걱정이 반으로 줄어드는 사람,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면 그 즐거움이 더 커지는 사람입니다. 기분이 안 좋다가도 그 사람을 만나면 힘이 나고, 용기가 생기는 사람, 그런 사람, 바로 오늘 성경이 말하는 “얼음냉수”와 같은 사람이지요. 

누구의 글인지는 모릅니다만,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 

한 여름날 갈증으로 목이 탈 때 
청량음료수 같은 사람 
커피에 얼음 몇 조각 띄워 냉커피 맛을 가진 사람
다툼을 멀리하고 화평을 가까이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마치 추수하는 밭에 얼음냉수 같이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충성된 자를 말합니다
기도와 물질로서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자를 말합니다

날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은 친히 화평의 도구가 되시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친히 무릎 끓고 제자의 발을 씻어주는 섬김의 종이 되셨습니다
살과 피를 흘려주심으로 모든 것 다 주신 그분의 손은 빈손이셨습니다

그 신실하신 이름 예수님 그 주님의 마음을 본받고자
청량음료수 같은 
냉커피 맛 같은 
시원한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에게 얼음냉수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구원역사를 이루라 하신 아버지의 뜻을 그대로 다 이루신 분, 우리 같은 죄인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분, 그 분을 닮아 이제 우리도 얼음냉수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4. 주님을 시원케 해드리는 성도

설교를 시작하면서 “더위를 이기는 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들으신 결과 어떻습니까? 무더위를 이기는 방법을 알게 되셨습니까? 애석하게도 오늘 본문은 무더위를 어떻게 이길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은 무엇입니까? 당시 사회에서 왕이나 귀족들이 여름날에 먹던 얼음냉수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하나님께서 그 얼음냉수를 마신 것처럼 시원해 하시고 유쾌해 하시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고, 더위에 지친 사람들처럼, 우리 주님도 답답해하시고, 더위에 지친 듯 힘들어 하시던 중에 그 주님이 시원함을 느끼시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을 “하나님의 피서 방법”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디 산으로 가시겠습니까? 바다로 가시겠습니까? 외국으로 가시겠습니까? 우리가 보아도 답답하고 막막하고 열받는 이 세상, 하나님께서도 창조의 질서가 파괴되고, 온갖 죄악이 난무하고, 그 가운데 신음하고 고통하는 피조물들을 보시면서 답답해 하시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방법을 소개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의도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시원케 해드리는 성도, 주님께 여름날의 냉수 한 잔 같은 성도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충성스러운 사람입니다.
충성된 사람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충성된 사람은 일을 맡긴 분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분의 입장을 먼저 살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충성된 사람은 자기 입장, 자기 방법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충성된 사람의 반대편에는 게으른 사람이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의 초 같고 눈의 연기 같으니라”(잠 10:26). 이가 신 것과 눈이 매운 것은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충성하지 않는 사람은 그 주인을 괴롭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충성된 사람은 더운 여름날에 시원한 얼음냉수 같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마음이 시원해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 충성하여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충성이 주님께 한 잔의 얼음냉수 그 이상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를 보니 더위가 싹 달아나고, 내가 너를 보니 얼음냉수를 들이킨 것보다 더 시원하고, 내가 너를 보니 너무너무 즐겁구나!” 여러분들이 이러한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눈에 걸리고, 그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기보다 그들에게도 얼음냉수 같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얼음냉수, 이 세상의 얼음냉수!
아니 에어컨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충성이 그와 같은 기능을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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