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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과 평안을 누릴려면 (롬 8: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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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평안을 누릴려면 (롬 8:1~17)
  
 
폼생폼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폼 나게 살다가 폼 나게 죽자’는 뜻이라고 합니다. 정신이 약간 나간 젊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입니다. 인간답게 바른 인생을 살아보자는 것이 아니라, 폼 나는 인생을 살다가 폼 나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 요즘 일부 젊은이들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아기와 나’ 라는 영화가 제작되어 나왔는데, 그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람이 장근석입니다. 그 장근석에 대해서, 어느 신문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장근석은 폼생폼사, 잘 나가는 열아홉 고등학생 준수로 변신해서 17:1로 싸움을 벌이고, 오토바이로 질주를 하는 등, 남성적인 매력을 풍길 예정이다.’라고. 말하자면, 남성적인 매력이라는 것이 싸움 잘하고 오토바이 폭주족이 되는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나이 드신 노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 중에 998834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혹시, 들어보셨는지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삼일만 앓고 나흘째 죽는 것이, 나이드신 어른들이 바라는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 경우, 아픈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노인들도 젊은 시절 못지않게 폼이 나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바램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고 살 경우, 그런 생각을 갖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미래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명이 다 끝나기 전에, 어떻게든지 좀 더 멋있게 즐기면서 폼나는 인생을 살아보자고 하는 것이, 의식이 없는 불신자들의 생각인 것입니다. 

KBS-2TV의 ‘미녀들의 수다’ 라는 프로에 출연하는 사람들 중에 ‘비앙카’ 라고 하는 미국 국적의 아가씨가 있습니다. 이 아가씨는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가씨로서 현재 나이 18세입니다.

그런데도, 이 어린 아가씨는 나이트클럽과 댄스홀과 같은 유흥업소에 자주 드나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든지 놀러 다니는 것을 취미로 여기는 아가씨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이번 학기 기말 시험을 하루 앞두고서도, 그녀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갖다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나온 게스트 중에서 한 사람들이 그녀에게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나이트클럽이나 출입하면서 시험 앞두고 놀러 다니면 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비앙카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런 데도 다니지 못할 것 같으면,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사나?” 아직 18세밖에 안 된 아가씨가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생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항상 보면, 그녀는 그 정도가 조금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되바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어머니에게도 적잖이 걱정을 끼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아가씨만을 나무랄 수 없는 것이, 가정이 좀 여유롭고 인생의 쓴맛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이처럼 정신 나간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젊은 사람들뿐이겠습니까? 옛날보다 살기가 좀 좋아진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즐겁게 놀고 즐기는 것에다 인생의 목적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로마서에서 말하기를 ‘육신의 욕망에 따라 사는 사람은 자신만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산다(8:5)’ 고 하면서, 그런 사람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 일도 없거니와, 또 결코 지키려 하지도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내린 결론은 ‘우리 육신은 죄 때문에 죽게 되어 있다.’ 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즐겁게 마시고 노는 것도 그야말로 한 순간에 불과한 것이지, 그 즐거운 시간이 영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육신만 생각하고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나 소홀히 여기고 있습니다. 

아무튼, 육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대개 영적인 일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설교의 주제가 조금 심각해지거나 어렵게 느껴질 경우, 골치 아프다고 하면서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저 즐겁게 웃으면서 지내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미래에 대해서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 육신적으로 편안하고도 즐겁게 지낼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서 불에 던져지게 되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이런 경고의 말씀조차 그런 사람들에게는 귀에 들어올 리가 만무합니다. 어둡고 캄캄한 죽음의 멸망이 그들에게 닥치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그들은‘골치 아프거나 힘든 것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면서 바다나 산으로 놀러갈 계획을 열심히 세우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는데, 여러분도 잘 아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농부가 밭에다가 씨를 뿌렸는데, 어떤 것은 길가에 떨어져서 새들이 와서 쪼아 먹었고, 어떤 것은 돌밭에 떨어지는 바람에 싹이 트기는 했으나 금방 말라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것은 가시덤불에 떨어져서 가시들 때문에 숨이 막혀서 곡식이 제대로 자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옥토에 떨어진 씨는 곡식이 잘 자라서 30배, 60배, 백배의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말씀하신 옥토라는 것은 ‘말씀을 잘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가시덤불은 어떤 마음을 말하겠습니까? 주께서 설명하시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잘하지만, 이 세상 걱정과 재물에 대한 유혹 때문에 말씀대로 생활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생명의 말씀을 잘 듣고서 열심히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면, 틀림없이 좋은 열매를 많이 맺게 될 것입니다. 주일아침, 이와 같이 교회에 나올 정도라면, 세상 즐거움과 명예와는 거리를 두고 사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즐겁게 노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인간답게 바른 인생을 사는 것이 진정 폼이 나는 인생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왔을 줄로 믿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돈이 많다거나 지위가 높다고 해서, 아니면 즐겁게 놀며 지낼 수 있다고 해서, 폼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돈이 많거나 지위가 있어서 자신은 잔뜩 뽐내면서 살는지 모르나, 그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령 돈이 좀 있어서 뽐낼 경우, 그 돈이 필요한 사람은 돈을 가진 그 사람 앞에서 어느 정도 아부를 할는지 모르나, 뒤에 가서는 욕을 하게 마련입니다. 남이 부러워할 정도로 열심히 놀러 다니는 사람들의 경우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 앞에서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말할는지 모르나, 안 듣는 곳에서는 코웃음을 치면서 비웃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진정으로 부러워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마음속으로 깊이 존경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다지 잘사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지만, 어디를 가든지 항상 성실하게 일하면서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 폼이 나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성령에 속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에 속한 사람은 자기중심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육신에 따라 사는 사람은 자신만 즐겁기 위해서 살지만, 성령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육신에 따라 사는 사람은 어디 놀러 가자고 하거나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할 때에는 시간이 없다거나 바쁘다는 소리를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은 일에 시간을 내자고 할 때, 그런 사람들은 갑자기 ‘너무나 바쁘다’ 거나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엊그제, 저는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제가 그 사람에게 “이제는 교회에 나와야죠!”하고 권면하자, 그는 말하기를 “나가기는 해야 할 텐데, 워낙 바빠서 못나가고 있습니다.”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사람도 직장 다니랴, 농사일을 하랴, 어지간히 바쁘기는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세상 즐거움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시간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어떤 사람이든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서, 바쁘기도 하고 한가하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세상적으로 즐겁게 놀며 지내는 시간보다는, 하나님 앞에 나오는 시간을 좀 더 여유롭게 배분해두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 바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욕심을 물리치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 선생이 우리에게 일러주신 말씀을 귀담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 선생이 뭐라고 했습니까?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만,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의 일을 생각한다(롬8:5)’고 했습니다. 그 결과, ‘성령을 따라 살 경우 생명과 평안을 누리지만,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을 따를 것인가, 육신을 따를 것인가 하는 것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자유입니다. 다행히도, 저와 여러분은 일찌감치 진리의 말씀을 듣게 되어서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고, 그래서 주님이 보내주신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영생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잠깐 누리게 되는 세상 즐거움에 빠져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외면하겠지만, 예수를 믿는 저와 여러분은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진리 안에서 아름답고 멋있는 인생을 살려고 할 때, 반드시 사탄 마귀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다시 타락의 길로 가게 하려고, 인간의 원수인 마귀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오토바이 폭주족들에게 아무리 용기가 많다손 치더라도 그렇지, 어떻게 ‘사고가 나서 죽게 되는 일이 생길지라도 한 번 멋있게 달려보자’고 하면서 그처럼 무섭게 달릴 수가 있겠습니까? 죽음의 길로 인도하는 마귀가 유혹하지 않고서는, 그런 용기를 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시험과 유혹을 잘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특권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의 말씀을 보면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0장 36절 말씀에서, 복음서 기자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은 천사들과 같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죄를 짓고 살아가는 수치스러운 인생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거듭난 인생들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냥 한 번 죽고 마는 헛되고 허무한 인생이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영원토록 살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된 복된 사람들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 영광스러운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이 귀한 특권을 세상의 썩어질 것과 바꿔 먹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죽는 그날까지 이 특권을 잘 지켜서 우리 인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이 귀한 특권을 세상 것과 바꿔치기 한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에 나오는 ‘에서’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에서는 그야말로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볼 때에 정말 멋있게 살던 사람입니다. 들판에서 신나게 달리면서 사냥을 하고, 사냥한 것을 잡아서 술과 함께 맛있게 먹으며 즐겼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에서는 들에서 사냥을 하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에 팥죽 냄새를 맡게 되었습니다. 한창 배고프던 참에 풍겨오는 팥죽 냄새는 에서의 배창자를 요동치게 만들었습니다. 약아빠진 야곱이 그걸 노리고 있다가, 팥죽을 달라고 사정하는 에서에게 장자권을 받고 팔았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먹고 말았던 것입니다.

물론, 야곱이 잘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주 나쁜 놈입니다. 그러나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먹은 에서는 너무나 큰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에서는 들판에서 인생을 멋있게 지내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장자권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던 것입니다. 

장자권은 맏아들만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는 축복권이었습니다. 야곱은 늘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그 사실을 배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장자권을 탐내고 있던 야곱은, 형 에서가 팥죽을 달라고 하자, 그에게 팥죽 한 그릇을 주고 그 장자권을 획득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야곱처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특권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고 쓸데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특권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성령에 따라 사는 사람은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롬8:6)’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갖게 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다른 무엇을 가지고서도 얻을 수 없는 참 평안과 참생명을 누리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해서 살아가게 되지만, 생명의 길을 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요, 자녀들로부터도 마음속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자녀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게 된다면, 얼마나 슬프고 괴로운 인생이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해서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 부끄러운 인생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욕심과 쾌락을 멀리 하지 않는 한, 그 인생은 결코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이미 받아서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분명히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언제까지 썩어질 육신만을 위해서 살겠습니까? 그렇게 살면, 인생의 마지막에는 참으로 부끄럽게 마쳐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하루빨리 세상 중심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우선적으로 행하심으로써,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자녀들에게서도 존경과 사랑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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