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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집으로 (창 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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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집으로 (창 35:1~5)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던 야곱이 숙곳에 머무르는 동안 큰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그곳 성주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한 것입니다. 격분한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성을 도륙하였습니다. 세겜사람들의 보복을 받게 될 야곱은 눈앞이 캄캄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주시고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였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위기에 처한 성도가 찾을 곳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1. 야곱이 당한 환난

성도는 하나님을 향한 삶의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간혹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성도의 걸음이 방향을 잃게 되면 큰 시련에 봉착하고 맙니다. 벧엘로 올라가야 되는 야곱이 잠시 방향을 돌려 숙곳에 진을 쳤다가 엄청난 환난을 당했습니다.

1) 정욕에 지배당했습니다.

창세기 34:1-2에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본래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로서 이방인과 상종하지 않고 구별된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창 28:1-2). 그런데 야곱의 딸 디나가 그곳 세겜성 추장의 집에 끌려들어가 강간을 당했으니 엄청난 충격이요, 씻을 수 없는 치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창세기 34:7에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2) 혈기와 폭력에 사로잡혔습니다.

하몰의 아들 세겜은 디나를 자기의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결심하고 그의 아버지를 졸랐습니다. 이에 하몰과 세겜은 야곱과 그 가족들에게 저희와 통혼할 것을 제의하게 됩니다. 야곱으로서는 이를 거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맞장구를 칠 수도 없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에게 “할례 받지 못한 너희들에게 우리의 딸을 줄 수 없다”고 하여 그들로 하여금 할례를 행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에게 보복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사술을 썼습니다. 추장의 명에 따라 세겜성의 남자들이 모두 할례를 받고 고통스러운 틈을 타서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들고 들어가 성 안의 남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재물을 빼앗아 왔습니다. 

3) 최악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혈육으로 권력을 삼는 자는 사막의 떨기나무처럼 저주를 받는 자라고 하였습니다(렘 17:5-6). 디나를 강간하여 더럽혔다는 이유로 폭력을 휘두르며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인 야곱의 아들들은 정말 대책 없는 사람들입니다. 혈기와 분노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그 이후에 일어날 문제에 대해서는 개념이 없습니다. 30절에 보면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야곱의 판단은 정확합니다. 그렇지만 어찌할 대책이 없었습니다.


2. 시련을 당한 원인

성도가 환난을 당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간혹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죄가 없이도 당하는 시련이 있습니다. 욥이 당한 시련이 이런 경우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거나 그 뜻을 거스렀을 때 오는 징벌의 경우가 많습니다.

1) 약속을 저버렸습니다.

본문말씀 1절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고 하였습니다.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일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요구하시기 전에 이미 야곱이 자기 입으로 하나님께 약속한 내용입니다(창 28:22).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중심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흔히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과 주고받은 언약을 상기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하신 계시의 약속이 있고, 야곱은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며....”라고 한 서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지키셨지만 야곱은 약속을 외면한 삶을 살았습니다.

2) 육신의 일을 도모하였습니다.

얍복강을 건넌 야곱이 에서의 보복이 두려워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에서와 극적인 화해를 하였으나 야곱은 벧엘로 가지 않고 숙곳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창세기 33:17에 보면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고 하였습니다. 삶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그 방향을 바꾸면 안 됩니다. 처자식이나 재물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보다 우선시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붙잡기 위하여 이미 그에게 있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주님께 매진하였습니다(빌 3:8).

3) 세상문화에 감염되었습니다.

창세기 34:1에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디나는 세겜 땅에 사는 여인들의 모습과 그들의 유행에 호기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여인들의 자유로운 생활이 부러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디나처럼 성도가 세상문화에 가까워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불신자와 똑같은 세상을 살더라도 구별된 길을 가야되고, 타협할 수 없는 하나님나라의 문화를 지켜야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14-16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3. 야곱의 결단

환난을 당한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동안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하여 야곱은 환난의 위기에 처해 있었으나 스스로 그것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곤경에 처했을 때 반드시 찾아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십니다(대하 16:9).

1) 초심(初心)으로 돌아갔습니다.

1절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로 나아가라고 하신 것은 처음의 상태로 돌아가라는 뜻입니다. 
20년 전 집을 나올 때 야곱은 지팡이 하나만 의지한 채 혈혈단신의 빈 몸이었습니다. 가진 것도 없었지만 의지할 곳도 없었습니다. 이미 아비의 집을 떠나왔고, 아직도 외가가 있는 밧단아람까지는 갈 길이 멀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그에게만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야곱은 가족들과 많은 재물에 마음이 빼앗겨 있었고 처음의 모습과 멀어져 있었습니다.

2) 주변을 깨끗이 하였습니다.

2절에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은 밧단아람을 떠나올 때 라반의 집에 있는 드라빔을 훔쳐 낙타 안장 아래 숨겨 가지고 왔습니다(창 31:34).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을 지닐 수는 없습니다. 또 자신을 정결케 한 것은 회개를 뜻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겼거나 세상적인 때가 묻은 부분을 회개한 후 깨끗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이렇게 자기를 정결케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의복을 바꾸어 입듯이 변화된 행동으로 실천하여야 됩니다. 의복을 바꾸어 입는다는 것은 성도의 올바른 행실을 뜻합니다(계 19:8). 

3) 하나님의 역사를 실감하였습니다.

5절에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환난을 당한 성도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자기를 하나님께 완전히 의탁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맡아주시고 소망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다만 벌거벗은 모습으로 자기를 완전히 드러내야 합니다. 앞길이 막히고 눈앞이 캄캄한 지경에 이르더라도 영안이 밝아지면 하나님께서 열어 놓은 틈새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악을 선으로 바꾸십니다. 시편 30:5에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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