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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목자 (겔 3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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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목자 (겔 34:11~16)


에스겔서 1장부터 읽어가다가 34장 말씀에 제 마음이 붙잡혔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읽어드린 말씀이 그 말씀의 일부입니다. 
목자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이번에 제게 일깨워 주신 소중한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양들을 위하여 참 목자를 세우신다 하십니다. 
에스겔34:23입니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되리라”

1.왜 주님께서 한 목자를 세우십니까?

기존 목자들의 탈선 때문입니다.  
에스겔34:2~6의 말씀입니다.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찐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이 말씀은 실로 충격적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목자는 1차적으로는 선민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 날 새벽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다가와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목자가 사명을 망각했습니다. 
마땅히 양 무리를 먹여야하는데 양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책망하십니다. 목자가 양들을 사랑으로 돌보지 않고 강포로 다스립니다.  
이런 목자는 이미 목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목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목자가 없으니 양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들짐승의 밥이 되는데도 찾고 찾는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로운 한 목자를 보낸다 하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도 영적인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마태복음9:36에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무리들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가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 오신 그 당시 그들을 가르치는 랍비들, 서기관들, 제사장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양들을 위한 선한 목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의 지도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보셨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양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잃어버린 그들은 이미 목자가 아니었습니다.   
선한목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은 너무나도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가복음1:21, 27입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예수님의 말씀에는 양을 사랑하는 생명의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 열정 속에 권세가 나타납니다.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말씀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권세가 그 말씀 속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양의 주변에는 항상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십니다.  

요한복음10:10~13입니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뿐이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서 풍성함을 얻게 하려고 왔다. 나는 선한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삯군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떼를 흩어버린다. 그는 삯군이어서 양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는 도둑입니다. 
양을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옵니다. 이 놈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그리하였고, 유다광야에서 예수님께도 그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 삶의 영역에 들어와 계속 그리합니다. 이 놈의 정체에 대하여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8:44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버지인 악마에게서 났고, 또 그 아버지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다. 또, 그는 진리 편에 서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말을 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이 놈은 사단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이 악한 사단의 탈을 쓰고 교회와 성도들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항상 있어 왔습니다. 이들은 세상에 죽음과 공포를 통해서 인간의 인권을 고의적으로 짓밟고, 세상에 무질서와 혼란을 가지고 옵니다.    

최근에 SBS TV에서‘SBS스페셜’4부작‘신의 길, 인간의 길’을 방영하였습니다. “예수는 신의 아들인가?” “무함마드 예수를 만나다” “남태평양의 붉은 십자가” “길 위의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한 이 내용은 2천년 동안 지켜져 내려온 성서와 기독교의 진리를 근본적으로 폄훼하고, 기독교신앙의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하여 기독교를 능멸하였습니다. 그리고 은근히 무함마드의 종교, 이슬람을 부각시키며 선전하였습니다. 

  알려진 사실은 이 프로를 제작한 사람은 이슬람으로 개종을 했고, 제작에 필요한 거액을 지원받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이슬람은 “코란이 아니면 칼”이라는 슬로건입니다. 이슬람은 유대인과 기독교인과 미국을 이 땅에서 섬멸해야할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모든 이슬람을 믿지 않는 사람은 적으로 간주하여 죽이는 것을 합리화합니다. 심지어 유대인을 죽이는 자살 테러에 희생된 사람들을 순교자라고 칭합니다. 

  나는 그 동안 한 가지 아이러니칼한 사실을 주목하였습니다. 2001년 9.11테러로 인하여 4,763명이 사망 · 실종되고 난 다음에 한국에는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슬람에 대한 대대적인 선전의 포문이 열렸습니다. 이슬람에 대한 많은 책들이 출판되었습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은 이슬람이 한국을 이슬람국가화하기 위한 전략이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슬람도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기독교와 유대교의 하나님과 동일하다고 말하지만 유대인과 기독교인에 대하여 자행하는 테러의 희생자는 순교자로 추앙하는 종교가 이슬람입니다. 

  그들의 예배의식에서 이슬람의 최고의 성직자 이맘은 설교단에서 칼을 빼들고 세상의 비 이슬람인들을 협박하며, 살해하고 세상을 이슬람화 하는 것이 알라의 뜻이라고 선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살 테러를 자행한 사람들을 영웅화하고 순교자로 추앙하는 종교의 무서운 그림자가 세상에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도둑입니다. 

  
다른 하나는 삯군입니다. 

삯군이란 품삯을 받고 일하는 고용인이라는 뜻입니다. 삯군은 목자도 아니고, 양도 제 양이 아닙니다.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도망합니다. 이리가 양들을 약탈하고 헤칩니다. 
에스겔34:2에“자기 만 먹이고 양 무리는 먹이지 않는 이스라엘 목자”라고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서3:18,19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
이들은 “자기 배를 하나님으로 삼고......땅의 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가치관의 기준이 땅입니다. 자기만족입니다. 나를 만족시키는 것이 진리이고 당장의 이익이 되는 모든 것이 선의 기준입니다. 하나님도, 믿음도, 예배도 나에게 유익이 될 때만 좋은 것입니다. 가롯 유다가 그러했습니다. 그는 돈 궤를 맡고 다른 사람들이 드리는 헌금을 훔쳐갔습니다. 결국 예수님까지 은30량에 팔아넘기는 수완을 나타내었습니다. 돈이 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이들이 삯군입니다. 
  
이 번 유럽여행은 저에게는 더 없는 축복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대단히 힘들었습니다. 목회자로 31년을 살아온 저에게 가장 편한 것은 수준이 비슷한 목사님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편합니다. 그 다음이 성도님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제가 앉고 설 자리, 해야 할 일이 정해집니다. 다만 내가 할 일만 잘하면 됩니다. 그런데 가장 힘든 경우는 불신앙의 사람들과 함께 노는 것입니다. 이번 여행 12일은 저에게 그런 기회였습니다. 사전에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 열아홉이 같이 하였습니다.  
  
저는 그동안 제가 꽤 유명한 줄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제법 많이 나를 안다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CBS텔레비전에서 매주설교도 하지요, CBS라디오와 극동방송라디오에서 매주 설교도 하지요, 또 가끔은 기독교TV채널 얼굴이 조금씩 비치기도 하지요. 그런데 열아홉 명 중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제 아내 밖에 없었습니다. 
  
내 영향력의 부족함을 깨닫는 첫 번째 사건이 있었습니다. 7월 13일 주일이었습니다. 호텔에 특별한 홀도 하나 빌리고, 포스터를 만들어 광고도 하고 해서 우리 일행뿐만 아니라, 그 호텔에 투숙하는 한국인 그리스도인들을 초청해서 폼 나게 주일 예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광고를 만들어놓고 붙이지도 못했습니다. 겨우  열아홉 명의 우리 팀들에게 구두로 광고를 하였습니다. 주일 아침 몇 사람이 예배를 드린 줄 아십니까? 우리부부까지 3명이 전부였습니다. 
  
한국의 기독교인이 900만 명이니 전체 인구의 20%이니, 최소한 4명은 같이 예배를 드려야하는 것 아닙니까! 주일 후 한 주간 동안 매일 이른 아침 2시간 30분 이상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매일 하나님께 영광, 이웃에게 은혜, 내 마음 속에 평화! 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드디어 7월 20일 주일이 되었습니다. 동행한 열아홉 명을 예배에 초청을 하였습니다. 과연 몇 분이나 오실까? 주일 예배순서를 손으로 써서 프린트를 해 두었습니다. 헌금봉투도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방을 깨끗이 청소하였습니다. 예배시간에 몇 분이나 오셨을까요? 좀 놀라주십시오. 한 주일 사이에 예배인원이 300%가 증가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아홉이라는 숫자를 그 날만큼 많게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정도면 박수를 쳐야하지 않을까요? 저에게가 아니라 주님께 말입니다.   
  
두 번 드린 예배에서 드린 헌금은 모두 38만원이었습니다. 이 헌금은 북한 결핵어린이 돕는 성금으로 보냈습니다. (아 여기서 지난번 우리가 헌금한 구제헌금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좋겠군요. 중국과 미얀마 지원에 2천만 원을, 그리고 북한 결핵어린이들을 위하여 6백만 원을 보냈습니다.) 
  
지난 19일 토요일저녁은 노르웨이에서 덴마크 코펜하겐에 기착하면서, 시내에 세워져 있는 많은 큰 예배당 건물들을 보면서 흥분하였습니다. 그룬트비히 목사님과 달가스와 같은 지도자들의 지도로 척박한 소국을 오늘 국민소득 6만5천불 수준으로 만든 기독교가 국교인 나라가 역시 다르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빨리 그 예배당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주일아침 10시부터 11시까지 덴마크의 여왕이 출석하는 교회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함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50~60명이 전부였습니다. 예배에서 성령의 감동은 별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는 의식을 무리 없이 집전하였고, 예배하러 나온 사람들은 은혜의 감격이나 기쁨보다 텅비어가는 예배당을 지킨다는 거룩한 의무감으로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한 때, 그 큰 예배당을 건축하고 주일마다 은혜와 기쁨이 넘치는 예배를 드리던 사람들은 다 어디를 가고 이렇게 냉랭하고 설렁한 분위기만 남았을까!  
헌금시간도 없었습니다. 기독교 국가이므로 종교세금을 내고, 국가는 성직자들에게 월급을 준답니다. 결국 삯군으로 전락한 것일까요? 그래서 양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도 간절함도 잊어버린 것일까요?  


셋째는 선한목자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의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히 하려고 합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희생합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알고 그 이름을 부릅니다. 그리고 앞서 가면 양들도 자기 목자를 알기 때문에 따릅니다. 
  
이번 여행을 통하여 구라파나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난 신자”(BORN AGAIN CHRISTIAN)의 문제를 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국교가 된 이 나라의 기독교인들은 일생 네 번은 꼭 교회에 나간다고 합니다. 유아세례 받을 때, 결혼할 때, 결혼해서 아이 유아세례 받게 할 때, 죽어 장례식을 치를 때입니다.  

여러분은 거듭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양들을 당신이 세운 목자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요한복음21:15이하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을 맡기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여기서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양이라 하십니다. 오늘의 교회의 목자들에게 맡겨진 양들은 주님의 양들입니다. 우리는 목자장이 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목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13:20에는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양의 큰 목자이십니다. 
당신의 양들을 작은 목자인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목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영광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5:2~4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하나님은 에스겔서의 말씀을 통하여 참 목자 상을 보여주셨습니다. 

1.잃어버린 양을 찾도록 찾는 목자입니다.(겔34:11,12)

2.찾은 양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목자입니다.(겔34:16)
교회의 지극히 작은 자 하나까지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섬기는 목자입니다. 병든 자,  굶주린 자, 헐벗은 자, 감옥에 갇힌 자, 나그네 된 자들을 주님처럼 섬깁니다.

3.양을 분별할 줄 아는 목자입니다.(겔34:17,18)
바른 양은 더욱 바르게, 악한 양은 바르게 인도하는 목자로 삽니다.   

시편23:1-6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주님만이 영원한 참 목자이십니다. 참 목자는 주님을 본 받아 주님의 심장으로 삽니다. 
성역30년을 기념하는 이번 여행에서 주님은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같은 참 목자로 살아라.  
이 말씀은 새삼스런 것이 아닙니다. 2003년 3월 23일 제가 취임할 때 나 목사님께서 권면의 말씀으로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범노라고 하시는 서예가께서 저를 처음만나서 목양일념이라고 하는 붓글씨를 써주시고 그 다음날 주님께로 돌아가심으로 그의 마지막 작품, 권면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3월 8일 새벽기도시간에 주님께서 육성으로 직접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지난 7월11일 새벽과 22일 새벽에 거듭 주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나의 부족함을 아십니다. 목자답게 살수 없는 나를 끝까지 권면하시며 이끌어 주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교회를 섬기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양이면서 동시에 목자입니다. 
주님 앞에 신실하게 사명을 감당하여 주님 앞에 서는 날 칭찬받는 성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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