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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꾼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 (막 6:30~34, 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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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꾼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 (막 6:30~34, 45~46)
  

여름이 되면 교회학교는 더욱 바쁘다. 성경학교를 열고 아이들을 가르친다. 중, 고등학교는 태안의 한 교회를 빌려서 수련회를 연다. 청년부는 아웃리치를 가고 소년부는 캠프를 간다. 방학이라는 주어진 시간을 이용해서 집중적인 신앙 훈련을 할 수 있기에 여름 행사는 중요하다. 학교 교육에 쫓기는 학생들에게 신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기에 교회는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 보고할 때 땀 흘린 것만큼 잘했다고 칭찬들을 수 있어야 한다. 열심히 일하고 보고하는 우리들에게 주님은 말씀해 주실 것이다.
  

1. 쉬라. 주님은 쉼에로 초대하신다. (막6:30)

오늘 본문을 보라. 막6:30을 보면 사도들은 자기들의 일한 것을 낱낱이 주님께 고하였다. 회개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인을 고친 일과 가르친 것을 아뢰었다. (막6:12~13) 그 보고를 들은 주님은 전도 파송도 주님이 하셨지만 수고하고 돌아온 일꾼들에게 말씀하신다.

막6:31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

쉼이란 일한 사람에게 따르는 보상이다. 일하지 않고 날마다 노는 사람에겐 쉼이란 없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쉼은 고통스런 고문과도 같다. 

주님은 쉼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안식일을 제정한 것도 사람이 쉼을 얻지 못하고 일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것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복지 제도였다. 집 안의 자녀는 물론 종들과 가족들까지 다 쉬도록 한 것을 보면 쉼이란 시간 속에 궁정을 세워두는 것이었다. 쉼이 있기에 땀 흘려 일해도 지치지 않는다. 쉼이 기다리고 있기에 일을 해도 최선을 다한다. 

쉼은 노는 것이 아니다. 열정을 다한 이후의 쉼은 가치있는 것이다. 결국 쉼은 주어진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준비 시간이다. 하지만 쉼은 장기간 계속되면 안된다. 피곤을 풀고 과로를 씻고 육체의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만큼 쉬어야 한다. 이 쉼은 다시 일하기 위한 정비 시간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휴가다. 휴가를 제정하신 분은 기업이 아니고 예수님이시다. 삶의 리듬을 알고 인생의 영성을 아시는 예수님은 제자들을 쉼에로 초대하신다. 쉼이란 일을 더 잘하게 하려는 속뜻이 있다.

사실 예수님은 육체의 노동에서의 쉼만 명령하신 것이 아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를 인생의 수고와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진정한 안식을 주기 위해서였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짐을 알고 계신다. 죄의 짐, 질병의 짐, 허무의 짐이 어떤 것인지 알고 계신다. 그래서 쉼으로 초대하신다.

마11:28~29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주님은 육체의 쉼만이 아니고 마음의 쉼을 얻으라고 초대하고 계신다. 금년 여름의 쉼에로의 초대가 더 일을 잘하게 되는 안식이기를 바란다.

  
2. 한적한 곳으로 가라. 주님은 한적한 곳으로 초대하신다. (막6:32)

막6:31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막6:32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라고 하였다.

주님은 쉼의 중요성을 알고 계셨지만 쉬기 위한 장소의 중요성을 말씀하신다. 즉 한적한 곳으로 가라는 것이다. 막6:31, 32을 보면 “너희는 따로”, 그리고 “이에 배를 타고 따로” 즉 ‘따로’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즉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는 이 장소에서는 쉼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이다. 거기서부터 떠나 구별된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이다. 

오늘의 휴가는 이상하게도 오고가는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간다. 음식 하나 사 먹으려고 해도 사람들이 몰려 들어서 바가지 음식을 사먹는 짜증나는 곳으로 간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장소가 아니고 휴가도, 쉼으로 보내는 것도 아니다. 쉼을 목적으로 한 휴가가 오히려 더 괴롭게 만든다. 매년 그랬듯이 사람들은 동해와 설악을 향하는 자동차가 길을 막아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는 곳으로 간다. 주님이 초대하는 자리는 한적한 곳이다. 주님은 한적한 곳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타는 방법을 사용하셨다. 갈릴리 바다를 가로질러 이 바닷가 기슭, 한적한 곳으로 떠나시는 주님은 거기서 쉼을 얻고 고요 속에서 하나님과 대면하시려 하였다.

성지 순례를 가서 주님이 택하신 한적한 곳,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그 장소는 정말 평화롭고 마음에 시원함을 주는 행세를 보인다. 갈릴리의 바다 물결과 함께 해변의 풍랑은 이곳을 거니는 사람에게 영감이 떠오르고 감사가 솟아나는 듯한 장소다.

배를 타도, 비행기를 타도 아니면 도보로 가든지 이런 장소, 한적한 곳을 이번 여름에 찾자. 나는 교회의 기도실이야말로 한적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휴가 때 어디든지 가야 하지만 한적한 곳은 바로 가까운 곳에 있다. 교회의 정원을 돌아보며 거니는 것도 한적한 곳이 될 수 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과 속삭이고 하나님과 나만의 말걸기가 가능한 한적한 곳, 거기가 주님이 초대하는 자리다. 바쁜 것보다 한적한 곳에 있음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 미우라 아야꼬는 가게를 하다가 너무 잘 팔려서 신이 났다. 옆집 가게가 울상인 것을 알고 일정한 물건을 떼어 다 놓지 않고 이웃집에 가서 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여유로운 시간 한적한 장소를 즐겼다. 거기서 감동을 주는 소설을 쓰는 소설가가 되고 하나님께 사람을 이끄는 소설가가 되었다. 

한적한 곳, 거기가 은혜의 자리다. 영적으로 광야 같은 곳, 거기가 진짜 나를 알게 되는 곳이다. 야곱도 루스 광야에 가게 되었기에 하나님과 만났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천사를 보았다. 한적한 곳, 미디안 광야에 모세도 있었다. 엘리야도 그릿 시냇가의 광야에 있었다. 바울도 아라비아 광야에 있었다. 사람이 있는 한적한 곳을 찾아라. 거기가 주님이 초대하는 곳이다.

  
3. 행동으로 말씀하신다. 주님은 산으로 초대하신다. (막6:46)

주님은 자신도 홀로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산으로 가셨다.

막6: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예수님은 행동으로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고 나서 많은 사람들과 다시 조우된다. 예수께로 나오는 큰 무리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리고 다시 가르치고 오천명을 오병이어로 먹이셨다. 주님은 다시 일하실 수 밖에 없었다. 제자들과 함께 오병이어를 축사하신 후 그것을 떼어 나누어 주게 한 주님은 오천명을 먹이고 남은 떡 조각을 열 두 광주리에 넘치게 거두었다. 쉴래야 쉴 수 없는 사역이 저물어 가는 빈들에서 계속되었다. 예수는 사역을 마치시고 자기를 찾아온 무리를 보냈다. 정말 늦은 저녁 시간, 쉼을 위해 제자들을 건너편 벳세다에 가게 하셨다. 

막6: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주님은 쉼을 재촉한 것이다. 무리도 보내고 제자들까지도 다 재촉하여 보냈다. 그리고 당신 스스로 산으로 가신 것이다.

막6: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무리와 함께 있는 시간이 싫어서일까? 그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신 주님이 아니었는가? 주님은 무리를 작별하신 후 산으로 가신 것은 홀로 있는 그 시간을 통해 무리들과 다시 함께 있으려고 간 것이다. 산으로 가시고 홀로 계신 것은 고독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스스로 혼자 있는 것을 통해 많은 사람과 같이 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쉰다는 것은 일하기 위함이듯 떠나는 것은 다시 만나기 위해서고 혼자 있는 것은 더불어 있기 위해서이다. 

주님을 보라. 산으로 가셔서 무엇을 하시는가? 기도하기 위해서다.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과 의논하고 영성을 조율한 뒤 다시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는 주님이 되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날 수 있다. 목자 없는 양같이 방황하고 다니는 무리들을 올바르게 만날 수 있다. 쉼과 한적한 곳을 찾아야 하는 그 절정은 함께 하기 위한 지혜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있다. 기도하는 것이 모든 사역의 기본이다. 사명과 능력을 다시 점검하고 초자연적인 능력과 지혜를 구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는 스승이 되시려고 주님은 무리들은 이끌어 주는 목자가 되시려고 산에 머무시고 홀로 기도하신 것이다. 그것을 주님이 행동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이번 휴가는 어디를 가든지 생각하고 떠나라. 직장에서, 가정에서, 더 잘 지내고 무리들과 함께 하는 지혜와 능력, 품성을 회복하도록 마음을 먹고 산으로 가라. 나는 사역자 캠프를 7월 28일~30일까지 진행하므로 이 캠프하는 교회가 기도의 동산이 되기를 원한다. 하나님과 교제하러, 기도하러 나오는 사역자 캠프를 통해 식구들과 함께 하고 교인들과 함께 하고 길을 찾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영성을 배운다면 이것보다 더 중요한 자리와 기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나는 고등학생 때 천주교 수련회가 따라간 적이 있다. 하나님을 만나 더 멋진 삶을 살고자 갔다. 그러나 강변에서 나무 뗏목을 가지고 놀다가 뒤집혀서 죽을 뻔 하였다. 그때 영적 훈련도 못 받고 돌아왔다. 나는 또 산상 수련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박달재 도덕암이라는 산 아래 텐트를 치고 말씀을 듣는데 참 뭐가 뭔지 모르지만 너무도 좋았다. 강사님도 너무도 멋있고 나는 밤새워 기도하다가 깨어보니 여름 장맛비로 물 위에 떠 있었다. 때로는 공허하게, 때로는 은혜 넘치게 다가온 강과 산에서 이루어진 수련회, 거기서 주님을 부르다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쉼의 중요성, 한적한 장소의 중요성, 기도의 중요성을 확신한다. 쉼은 다시 일하기 위함이고 한적한 데 있음은 함께 있는 것을 잘하기 위함이고 홀로 기도하는 것은 사명의 능력과 지혜를 회복하기 위함이다. 금년 여름, 우리들의 신앙적 성장을 위한 휴가를 어떻게 보내는 것이 최선이겠는가? 내일부터 있을 사역자 캠프에 초대한다. 여러분의 탁월한 응답과 영적 선택을 성령이 이끌어 주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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