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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옛사람 야곱, 새 사람 이스라엘 (창 32: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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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 야곱, 새 사람 이스라엘 (창 32:22~32)


오늘 본문 말씀은 얍복 시냇가에서 이스라엘의 족장 야곱이 씨름하듯이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기도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언약을 맺은 야곱인데, 이제는 더 이상 외삼촌 라반의 집에 머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외삼촌 라반과 그의 아들들이 야곱을 죽이려고 하였고, 이제는 양과 염소와 소떼가 너무 커지므로 함께 거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외삼촌 집에 20년 동안 거하는 동안 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하셔서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자식들도 11아들과 한 딸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택하신 백성이 이방인들과 어울려 번성하면 그곳에서 타락하고 죽을 것으로 보아서 역경에 몰아넣으시면서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방 세계에서 잘 되는 것도 하나님이 축복이지만, 다시금 어려운 역경의 바람에 밀려 다시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은 더욱 큰 은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데, 세상에 나가서 방황하고 있습니까? 이만하면 물질적으로 잘 산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알아주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힘들어도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이 은총이요, 잘 되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랜 타향생활을 접고,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축복으로 주신 가나안 땅,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였습니다. 나올 때는 빈손으로 도망쳐 나왔는데, 이제는 마침내 거부가 되어 귀향하게 되었으니, 돌아가는 길은 금의환향의 길이 되어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 않고 무거운 것은 에서를 만나야 하는 외나무다리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억척스런 사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자기가 할 일은 남에게 맡겨본 일이 없고, 일중독에 빠져 살았습니다. 내 것은 어디까지나 내 것이 되어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라도 내가 차지할 수 있으면 먼저 움켜쥐었습니다. 내 것을 누구에게 빼앗겨본 일이 없었습니다. 객지에 나와서 20년 만에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소유를 에서를 만나는 순간에 다 잃어버릴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형 에서가 사병을 이끌고 자기를 맞이하러 온다고 하는데, 무려 40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20년 동안 한 순간도 마음 편히 놓을 수 없었던 무서운 꿈, 형 에서가 죽이려고 자기를 쫓아오면 도망치던 그 악몽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형이 사는 에돔에 심부름꾼을 보내서 이렇게 말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주인님, 주인의 종 야곱이 이렇게 아뢰고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라반에게 몸 붙여 살며, 최근까지도 거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소와 나귀, 양 떼와 염소 떼, 남종과 여종이 있습니다. 형님께 이렇게 소식을 전하여 드립니다. 형님께서 저를 너그럽게 보아 주십시오.”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심부름을 갔던 사람들이 에서에게 이르고 보니, 야곱이 온다는 말을 누구로부터 전해 들었는지, 에서가 400명의 사람을 이끌고 야곱을 맞으러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떨었습니다. 자기 집에 와서 일하는 일꾼들과 모든 짐승을 두 떼로 나누고, 에서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도망가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마음을 녹일 수 있도록 화해의 선물을 구별하였습니다. 암염소 200마리, 숫염소 20마리, 암양 200마리, 숫양 20마리, 젖 나는 낙타 30마리와 그 새끼들, 암소40마리, 황소 10마리, 암나귀 20마리와 새끼 나귀 10마리였습니다. 그것도 한꺼번에 다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떼로 나누어 종들에게 맡겨 동생 야곱이 형 에서에게 드리는 선물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에서가 종들을 만나서 “너는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고 말하면,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이것은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리고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똑같이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선물을 보내어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자기를 받아주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날 밤에 야곱은 여러 사람의 무리 가운데서 잠을 자려고 했습니다. 그에게는 가족들만이 아니라, 여러 종들도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 사이에서 자다보면, 형이 쳐들어와도 자기를 감출 수가 있을 것이었습니다.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도망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야곱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1) 홀로 남은 야곱

야곱은 밤에 일어났습니다.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나루를 건너게 하고, 모든 사람과 소유를 다 건너가게 하였습니다. 다른 모든 식구들은 시내를 건너가게 했어도 자기 자신은 시내를 건너가지 않고, 홀로 남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홀로 남아 엎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홀로 남았다는 말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는 사실상 홀로된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항상 홀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개인적인 만남이요, 개인적인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홀로”라는 말은 히브리어에 “바드”라는 말인데, 분리, 홀로, 단독으로, 혼자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홀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홀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홀로 지내야 하는 고독한 존재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반드시 마지막에는 홀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내가 믿어야 하고, 내가 고백해야 하고, 나의 죄 문제는 내가 털고 가야만 합니다. 이것은 인간이란 하나님 앞에서 홀로 대면해야 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이날 얍복시내를 건너가지 못하였습니다. 강이라고 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그렇게 물이 많은 강이 아닙니다. 얍복시내는 비가 올 때는 개울이 되고, 비가오지 않으면 조금 깊은 계곡이 되는 그런 와디였습니다. 걸어서 건너갈 수 있는 개울을 말합니다. 그렇게 쉽게 건너갈 수 있는 개울입니다. 그런 개울을 왜 건너가지 못하는 것입니까? 아직도 형을 만날 자신이 없고, 형이 자기를 살려준다는 확신이 서지 못하였습니다. 야곱의 생애에서 가장 불안한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가장 불안한 밤을 지나게 하시면서 광명한 아침을 맞이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생애에 있어 가장 불안한 밤을 보낸다고 하면 우리는 무엇을 하면서 그 밤을 보내실 것입니까? 


2) 기도하는 야곱

야곱의 기도는 곧 씨름이었습니다. 이날 밤에 야곱과 씨름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요, 곧 하나님이셨습니다. 구약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처음에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고, 하나님의 사자라고 하셨고, 나중에는 직접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야곱은 천사와 씨름하였는데, 나중에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한 것입니다. 

호12:3-4에는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밤에 어떤 사람이 와서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였습니다. 야곱을 억지로 넘어뜨리고 잡아가려고, 억지로 끌어가려고 한 것 같아 보입니다. 그 사람은 밤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였지만, 야곱을 넘어뜨리지 못하였고,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야곱의 마음이 그렇게 애절하였고, 그의 기도 제목이 간절하였습니다. 이대로는 형 에서를 만날 수 없다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할 것을 알고는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씨름하다가 허벅지 관절을 치는 것은 반칙입니다. 지금까지 반칙에 능한 사람이 야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게 하고, 끌고 가려고 합니다. 그래도 야곱은 사력을 다하여 그를 붙잡고, 끌려가지 않으려고 힘을 다하였습니다. 이러기를 온 밤이 지나고 동터오는 새벽이 되었습니다. 그가 야곱을 이기지 못하면서 기권하는 듯이 말했습니다. 


3)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동이 터오니 나로 가게 하라고 하십니다. 야곱은 여기서 물러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씨름에서 기권하는 사람이 아무 말도 아니하고 그냥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축복의 언어를 사모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말합니다. “네 이름을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야곱이란 이름은 형 에서의 발목을 붙잡고 이어서 태어났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가 날 때에 형의 발목을 붙잡고 나왔다고 하여 야곱이라고 했는데, 발꿈치를 잡은 자, 속이는 자, 대신 들어앉은 자, 찬탈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에는 나는 욕심쟁이요, 나는 사기꾼이요, 도둑이나 다름없다는 말과 같았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하나님을 뜻하는 엘이라는 단어와 다투다, 힘을 얻는다, 통치한다는 사라가 합쳐지면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힘을 얻어 강하게 된 자”라는 뜻이요,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되라고 이름을 바꿔주시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고, 사래가 사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원하시는 사람이 되라고 새로 이름을 지어주시는 예도 많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이름을 받은 사람은 세례요한이 있고, 예수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 때에 자기는 발목을 잡는 사람, 속이는 자, 찬탈자라는 뜻의 사람이라고 대답하였으나,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시면서 하나님과 싸워 이긴 자, 하나님과 더불어 힘을 얻어 강하게 된 자,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받는 자 긍정적인 이름을 주셨습니다. 사람은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들어야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실 24절을 잘 보면 야곱이 먼저 어떤 사람을 붙잡고 씨름한 것이 아니라, 그 날 밤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였습니다. 이 날의 모든 주도권은 야곱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잡고 있었습니다. 낙심한 야곱을 찾아오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용기를 주시려고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이런 사실이 복음입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절망치 않고, 다시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실 야곱은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형 에서를 피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방으로 도망쳐 살려고 시도할 수도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생각하셨고, 이삭과 맺은 언약, 그리고 이제는 야곱을 통하여 이루실 큰 구원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다시는 가나안을 벗어나 이방으로 가지 말라고, 허벅지 관절을 쳐서 다리를 절게 하셨고,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스가랴4:6-7의 말씀을 귀하게 생각합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능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되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에게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도 도피할 곳이 없습니다. 그 때 우리는 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이란 위를 바라보는 동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출구가 되어 주십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창28:13-14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밧단아람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창31:13에서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고,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다가 하나님의 군대를 만나고, 그곳을 마하나임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야곱은 지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루를 건너가지 못하고 불안하여 떨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또 다시 이름을 바꿔주시면서 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번 선택하였으면 그를 싫어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내, 오래 참으심, 다시 회복하게 하시는 은혜로 우리는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은혜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셨습니다. 허벅지는 대퇴부를 말하며, 환도뼈, 엉덩이뼈, 우묵하게 파진 곳을 말합니다. 그 후로는 야곱은 자식을 더 이상을 낳지 못하였습니다. 환도뼈는 생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맹세할 때에, 환도뼈 밑에 손을 넣고 맹세하게 하였습니다. 

그동안 야곱은 하나님의 손을 이용하려고 애를 쓴 사람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힘만을 과신하였고, 건강 하나만을 믿고 뛰어다닌 사람이었습니다. 시147:10에는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4) 브니엘의 축복받은 야곱

야곱은 브니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그 사람에게 청하였습니다.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대신 축복해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축복하시는 말씀, 축복의 언어를 사모해야 합니다. 

야곱은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했는데, 구약시대에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죽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30절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브니엘이란 지명은 야곱이 붙인 지명이 되었습니다. 브니엘이란 “얼굴”이란 말과 “하나님”이란 말이 합쳐져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야곱처럼 하나님의 손만 바라보고, 축복하시는 것을 사모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은총은 하나님의 얼굴을 만족하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물질도 짐승도 사람도 자식도 아내도 소유하는 것에 만족하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절게 하시었고, 자식도 더 이상 낳지 못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있습니다. 야곱이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솟아올랐고, 엉덩이뼈가 어긋났기에 절뚝거리면서, 얍복나루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에서가 분노의 눈을 부릅뜨고 동생 야곱을 맞이하려고 하는데, 한 노인이 나루를 건너오는데, 다리를 절면서, 절뚝절뚝 거리면서 건너오는 모습을 보는 순간, 동생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사라지고, 형제애를 가지고 맞아주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데, 허벅지 관절을 치시므로 절뚝거리며 걷게 하시니, 쉽게 형 앞에 엎드리게 하셨으며, 바라보는 형으로 측은한 마음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시는데, 사람을 병신 만들어 살리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다치는 것도 때로는 은혜요, 장애를 입는 것도 사람을 살리는 과정인 것을 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번 택하신 자녀를 버리지 않습니다. 인간의 방법으로만 살게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망속에 있는 사람에게 찾아오셨고, 계속 추적하시고 인도하시고 이끌어 가시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의 생애를 보면 인간적인 계획, 자기중심적인 이기주의, 욕심, 치밀한 수완, 집념으로 뭉쳐진 사람이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원수진 형제와 대면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대면하고 보니 그 문제가 선하게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무능함을 뼈저리게 느낄 때에 우리 하나님의 길을 열리는 것을 봅니다. 긴긴 밤을 기도로 지내고 보니, 찬란한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사람들과 문제를 해결하려고 찾아다니실 것입니까? 사람을 만나기 전에,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하나님이 손을 들어주셔서 완벽한 직장, 성공적인 사업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도 야곱과 같이 움켜쥐고, 내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전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야곱의 인생은 옛사람의 특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감사하면서, 기도하는 인생, 이스라엘로 살게 하시고 있습니다. 

현대교회의 잘못된 신앙은 우리가 다 할 수 있다는 생각, 자기의 신념을 신앙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시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사람들 편에 서 계십니다. 하나님이 항상 먼저 찾아오시고, 씨름을 걸어오시고, 변화시켜주시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현대인은 속도와 효율과 결과를 중요시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속도를 조절하시고, 홀로 남아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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