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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적한 곳으로 가신 예수님 (눅 5:15~16, 창 32: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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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곳으로 가신 예수님 (눅 5:15~16, 창 32:22~31)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부활 승천하시기까지 쉼이 없으셨습니다. 복음을 선포하시고, 병든 이들을 치료하시고, 제자들을 가르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때때로 이런 모든 것들을 뒤로 물리시고 홀로 계신 시간, 고독한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오늘 본문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누가복음 5:15-16

'물러가사'
-- 모든 바쁜 일상을 떠나 홀로의 시간을 가지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들 모두 정신없이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위해 정신없이 뛰고 있습니다. 이 경쟁의 세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멈추면 추락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문명을 '자전거 타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 번 탄 이상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남들이 달리니 안 달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도 남처럼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대인들의 삶입니다.
     
그러나 바삐 휘돌아 치는 생활 속에 빠져 있다가도 때때로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영혼의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일상을 떠나 하나님과 마주하는 시간, 생활을 떠나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육신의 눈을 닫고 영의 눈을 열어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시간--그 시간이 물러가는 시간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고 있는가? 내 인생의 방향이 제대로 가고 있는가? 지난 일주일 나의 삶은 어떠하였는가? 오늘 나의 삶은 세상의 빛이 되었는가? 그렇게  물러가는 시간이 있어야 자신의 삶을 되새김질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채우고자 예수님을 찾고, 또는 말씀을 듣고자 예수님 앞에 올 때에, 그 모든 일들을 뒤로 물리고 물러가시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가끔씩이라도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되새김질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교회 예배시간에 조금 일찍 와서 손을 모으는 기도의 시간이 나의 영혼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새벽에 일찍 나와서 주님의 이름을 불러 보는 시간, 그것이 내 영혼을 충만케 하는 시간이 됩니다. 물러가는 시간, 여백을 갖는 시간, 머물러 안을 들여다보는 시간, 정지된 시간 같지만 실상은 더 빨리 가고, 더 분명하게 가고, 더 정확하게 가는 길입니다. 

때로는 모든 수식어나 직분은 빼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 순수해지는 느낌, 마치 본래의 자기로 돌아간 느낌을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무슨 무슨 직분이나 직책이 아닌 그냥 그 누구로서, 그냥 나, 원래의 나로서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본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경력이나 직분이나 지위로서가 아니라 그냥 본래의 나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여기 왔습니다. 주님, 저 응희가 왔습니다. 저 아무개가 왔습니다.
     
그렇게 본래의 자신을 찾는 시간이 물러가는 시간입니다. 주님은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바쁜 여정 속에서 '물러나사' 홀로 계셨다고 했습니다. 바쁠수록 물러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한적한 곳에서'
-- 복잡한 곳을 떠나 구별되는 장소를 찾으셨다는 말씀입니다.

한적한 곳은 어디였을까요? 한적한 곳은 우리의 상상처럼 도시를 떠나 시골처럼 조용하고, 시냇물이 흐르고 숲이 우거진 그런 곳이 아닙니다. 한적한 곳은 사막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광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광야는 물이 없습니다. 햇볕이 작렬하는 곳입니다. 광야는 사람들과 단절된 곳, 나의 욕망을 버려야 하는 곳, 나 자신과만 마주하는 고독한 곳,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되는 빈 곳, 그런 곳이었습니다. 왜 그런 곳에 가셨을까? 하나님께만 집중하기 위해서 입니다. 나를 얽어매는 모든 환경과 조건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본래의 내가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텅 빈 공간에 있음으로 가득찬 영혼이 되고자 하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홀로 있는 고독한 시간은 별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과의 관계의 줄이 끊어지고 혼자 고독하게 지내는 것은 그 혼이 병들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더불어 함께 살고, 더불어 함께 일하고, 더불어 나누며 살아야 몸과 마음이 건강해 집니다. 그러나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는 때때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꿇는 시간,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모든 일을 뒤로 물리시고 홀로의 시간을 가지신 것입니다.
     
우리 심령 속에 한적한 곳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속에 있는 욕망, 유혹들을 털어낼 수 있는 곳, 한적한 곳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이렇게 구별된 장소가 필요합니다. 이론상으로는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기에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잘 되지 않습니다. 꼭 어떤 곳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내 영혼에 집중할 수 있는 한적한 곳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인스턴트 식품이나 자동기계를 많이 사용합니다. 별로 수고하지 않고 손쉽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입니다. 이런 인스탄트 생활은 사람의 성격과 인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노력하거나 땀 흘리는 것에 대해서 싫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절제와 긴 시간의 익어가는 과정을 참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성장은 기도와 땀으로 얼룩진 긴 시간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세상에 귀중한 것 치고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영적 성숙도 얍복강가의 야곱처럼 영혼의 씨름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모두 바쁘게 생활하다보면 영적인 생활도 그렇게 하게 되기 쉽습니다. 언젠가 성도들과 기도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아침에 일어나서 잠간, 출근하면서 자동차에서 잠간, 그리고 그냥 오늘도 좋은 날 되게 해주세요 하며 속으로 잠간,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라도 매일 한다면 그것도 대단한 것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정식 기도라 하기는 좀 빈약한 데가 있습니다. 

그런 기도를 '햄버거 기도'라고 제가 별명을 붙여주기도 하였습니다. 햄버거는 한 손으로는 다른 일을 하면서 한 손에 들고 먹는 것이지 않습니까. 어쩌다가 급하거나 바쁘면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정식 음식은 어떻게 먹습니까? 잘 준비된 식탁에서 잘 차려진 음식을 먹지 않습니까? 기도도 그런 것입니다. 바쁠 때는 '햄버거 기도'도 할 수 있지요. 그러나 맨날 햄버거만 먹고 살수 없듯이 맨날 그렇게 감간 혼자말처럼 기도해서는 영혼이 허기가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중히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고, 때로는 부르짖으면서, 때로는 눈물을 뿌리면서, 때로는 몸부림을 치면서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한적한 곳'이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하시니라'
--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라고 하면 선교초기 광야에서 40일  금식기도 하신 것과 십자가 지시기 전의 겟세마네 피땀의 기도 정도만 기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수시로 기도하셨습니다. 새벽에도 기도하시고, 밤새워 기도하시고,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도 하셨습니다.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오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마14:23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막6:46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1:35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6:12

오늘 본문에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전쟁이야기도 있고, 기적이야기도 있고, 사는 이야기도 있지만 하나님과 관계 되어있는 한 모두 기도에 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엘리야도, 바울도, 모두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기도의 사람이 된 것은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힘을 얻고, 위로를 얻고, 용기를 얻고, 능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다고 말합니다. 그 이름을 알고, 그가 태어난 곳을 알고, 그가 하신 말씀을 알고, 그가 어떻게 죽으신 것을 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안다'라는 말은 '경험한다, 체험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 분과 대화를 나누고, 그 분이 나를 알고, 내가 그 분을 알 때 아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에 내가 순종하고, 내 요청을 그 분이 기꺼이 들어주는 관계가 있을 때 아는 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성도 여러분, 진실로 영혼 깊은 데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는 속 깊은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물러가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는 믿음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누가복음 5:16

바삐사는 성도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늘 한적한 곳, 주님과 교제의 시간을 갖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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