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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상과 입 맞추는 사람들 (호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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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과 입 맞추는 사람들 (호 13:1~8)


어느 목사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교인들과 함께 태국에 단기선교를 갔답니다. 산지족 선교를 은혜 가운데 마치고 방콕에 들렀습니다. 태국에서 제법 크다는 교회를 방문했는데, 거기서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강단 앞에 왕비 사진이 있고 그 앞에 제단이 있더랍니다. 저게 뭔가 싶어 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 앞으로 나아가 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이 마침 왕비 생일이라서 그런다는 겁니다. 예배를 마친 후에는 또 사진 앞에서 왕비를 찬양하며 공연을 하더랍니다. “이 나라를 지켜주신 하나님과 부처님께, 그리고 우리 왕비께 감사하나이다!” 그 해괴망측한 광경을 보고 너무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신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마디로 이건 신앙도 아니죠! 아예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이런 식으로 다른 것과 뒤섞인 애매한 신앙을 가지는 경우는 더 큰 문제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을 기쁘게 받아주겠습니까?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기억해야 될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순도(純度)입니다. 금속이나 음료 등의 품질을 평가할 때 순도를 측정하죠. 예를 들어서, 금의 순도를 언급할 때 24K, 18K, 14K 등으로 말합니다. 다른 금속이 섞이면 순도가 낮은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향하면 신앙의 순도가 낮은 겁니다. 우리 마음이 100% 하나님을 향해야 진짜입니다. 그런 신앙을 가리켜 ‘온전한 신앙’이라 부릅니다. 만일 마음이 한편으로는 하나님에게 한편으로는 다른 데 가 있으면, 그런 신앙을 가리켜 혼합주의(混合主義 Syncretism)라고 부릅니다. 혼합주의는 한 마디로 ‘우상 숭배’입니다. 아예 하나님을 믿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도 우상 숭배지만,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마음이 갈라져 다른 신을 섬기고 세상을 섬기는 것도 우상 숭배입니다. 
  
성경을 연구해 보면 온전한 신앙을 갖는다는 게 참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경우 계속 하나님 앞에 책망 받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오직 하나님을 향해야 되는데, 한편으로는 다른 신에게 가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 바로 호세아서입니다. 

특히 호세아 1장을 보면 호세아 선지자의 결혼 이야기가 나옵니다. 누구나 순결한 결혼을 하는 게 마땅하지만, 특히 구약의 선지자들은 정말 순결한 처녀와 결혼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호세아는 고멜이란 음란한 여자와 결혼은 합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하나님이 호세아에게 그런 결혼을 명령했다는 사실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굳이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일종의 충격요법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느껴 보라는 겁니다. 고멜은 결혼한 후에도 마음이 다른 남자에게 가 있습니다. 가출해서 다른 남자와 놀아납니다. 그러면 호세아가 가서 몸값을 치르고 데려옵니다. 한번으로 그친 게 아니라 그러기를 여러 번 반복합니다. 그러니 호세아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마치 숯덩이처럼 새까맣게 타들어갔을 겁니다. 

하나님이 아마 호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 같습니다. “호세아야! 네 마음 내가 안다. 내 마음도 네 마음처럼 숯덩이란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의 마음도 타들어갔지만, 가장 불행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스스로 불행해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그 안타까운 심정을 공감하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피를 토하듯 외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하나님의 그 안타까운 심정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비난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면 좋겠습니다. 과연 내 신앙의 순도는 몇 %인가? 부디 저와 여러분의 신앙은 순도 100%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1] 이스라엘의 배신 : 우상과 입맞추는 사람들 

①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

구약 이스라엘은 겉보기에는 분명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입만 열면 “주여! 주여!” 했고, 때만 되면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마음은 다른 신에게, 세상의 죄악에 가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그들의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우상숭배를 책망하기 전에 먼저 당신이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셨는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는지 언급합니다. 그런데도 배은망덕하게 배신하고 말았다는 겁니다. 본문 5절~6절을 보시죠. “5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6 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 광야 마른 땅은 ‘사막’입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전혀 없는 곳입니다. 한 마디로 스스로 생존이 불가능한 곳입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자께서 그들을 돌보시고 그들을 축복하셔서 거뜬히 살게 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치 못하고, 오히려 자기 힘으로 된 줄로 착각하는 가운데 교만해지고 하나님을 잊었다는 겁니다. 

그뿐 아니라, 한술 더 떠서 이제 다른 신을 섬기고 범죄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1절~2절을 보시죠. “1 에브라임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떨었도다 그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 2 이제도 그들은 더욱 범죄하여 그 은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되 자기의 정교함을 따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다 은장색이 만든 것이거늘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제사를 드리는 자는 송아지와 입을 맞출 것이라 하도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남북 분열 시대에 북 이스라엘 왕국을 가리킵니다.(cf. 남 유다 왕국) 에브라임은 그 중에 가장 유력한 지파로 그들이 호령하면 아무도 꼼짝 못했다는 겁니다. 그럴 정도로 번성했는데, 감사치 못하고 우상숭배를 저지르다가 이제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들은 바알(Baal), 아세라(Asherah) 등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다. 이들은 농경의 신이요 전쟁의 신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을 섬기면 잘 먹고 잘 살게 된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한심합니까? 유일하신 참 하나님 여호와가 이미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어 여태까지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는데, 엉뚱하게 다른 신을 섬기니 정말 기가 막힌 것이죠. 고멜 같은 인간들입니다. 

그들은 또 금송아지(Golden Calf)를 만들어 놓고 섬겼습니다. 남북이 분단될 때, 북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정권의 이익을 위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왕상12:25~33) 절기 때가 되면 백성들이 자꾸 남 유다의 예루살렘 성전으로 갑니다. 그러니까 금송아지 제단을 만들어 놓고 이렇게 선전했습니다. “야, 힘든데 멀리 남쪽 예루살렘까지 갈 거 있냐? 거기 가면 하나님이 보이데? 이게 하나님이야. 금송아지에게 제사하면 되는 거야! 얼마나 편리하고 좋냐” 무지몽매한 백성들은 미혹을 당했고 그 후 대대로 우상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들이 이처럼 우상숭배에 집착하고 혼합주의에 빠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속적인 욕망 때문입니다. 골3:5 말씀 그대로입니다. 골3:5~6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인간의 욕심이 우상숭배의 근원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고 뭐고, 천국이고 뭐고, 당장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식입니다. 현세적 기복주의입니다. 이렇게 되면 길은 하나, 하나님의 진노로 망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 참 신앙은 천국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장의 형통보다 바른 길(義)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살 때 현세적으로도 하나님이 축복하시죠. 그런데 눈앞의 이익에 욕심이 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 잘 될 리 없죠. 

② 현대판 우상숭배 :

안타깝게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상숭배가 판을 칩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것 같이 신상 앞에 절하고 제사하는 식의 우상숭배는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교묘한 형태로 우상숭배가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현대판 우상이죠.

인간의 마음 중심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있습니다. 비유하면 마음의 왕좌에 하나님께서 왕으로 계셔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도 평안하고, 모든 삶이 형통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왕좌에 엉뚱한 게 들어와 앉아 있으면 그게 바로 우상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우상이다.”

예를 들어 현대인들이 돈에 집착합니다. 돈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마음 중심에 돈이 자리 잡고 하나님 행세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행동까지 좌지우지합니다. 결국 사람이 돈의 주인이 되는 게 아니라, 돈이 사람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아무리 하나님을 섬긴다 해도 이미 마음 중심에 돈이 자리하면 돈이 신이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돈이면 무슨 짓이든 가리지 않고 감행하게 됩니다. 

돈이 유용한 도구이고 잘 사용하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우상이 되고 맙니다. 미국 달러를 보면 글귀가 적혀 있죠. “우리는 하나님을 믿노라!”(In God We Trust.) 그런데 이 시대는 돈이 우상화되면서 이렇게 바꿔야 할 판입니다. “우리는 돈을 믿노라!”(In Money We Trust.)

이외에도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명예의 우상, 성공의 우상, 쾌락의 우상, 건강의 우상, 심지어 자식의 우상 등 얼마나 많은 우상들이 있습니까? 겉보기에 이런 것들은 우리 인생에 꼭 필요한 것들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과도하게 추구하고 집착하다 보면 어느덧 하나님이 마음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의 창조물이고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도가 지나쳐서 하나님보다 내 몸을 위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생계를 위해서나 세상 즐거움을 위해서는 열을 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는 건강을 핑계 삼아 소홀히 한다면 명백한 우상숭배라는 겁니다.

명예와 성공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존경받고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는 것은 귀중한 일입니다. 하지만 인기나 성공을 위해서 불의를 행하고, 하나님을 저버린다면 이미 우상숭배입니다. 예를 들어 대중 가수가 인기를 위해 대마초를 피우면서 노래를 한다면 인기가 우상이죠. 학생이 높은 성적을 얻기 위해 커닝을 한다면 역시 우상이죠. 의외로 많은 사람이, 심지어 크리스천들조차 이런 유혹에 쉽게 빠져 버립니다. 

냉혹한 승부 세계를 사는 운동선수들에게 이런 유혹이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프로 야구선수들에게 징크스가 많습니다. 일종의 미신이죠. 하나님께 기도하면 되는데, 엉뚱한 데 마음을 빼앗기는 겁니다. 어떤 감독은 패전 이튿날에는 모자를 비롯한 유니폼, 신발에 속옷까지 갈아입고 출장한다고 합니다. 또 승리하면 입었던 속옷 계속 입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승을 하면 속옷이 찌들어도 계속 입고 다니는 감독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잘 될 것 같지만, 사실은 마음이 엉뚱한 데 사로잡혀서 오히려 부작용이 생깁니다. 결국은 큰 해를 당하는 겁니다. 

설사 우상숭배를 통해 당장은 잘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면 그건 큰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모실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가장 소중한 영생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상숭배에 빠진 사람들은 결국에는 자신이 간절히 소원하던 것들조차 잃어버리고 맙니다. 앞에서 남는 것 같지만, 뒤에서 왕창 밑지는 게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번영한 게 아니라,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2] 이스라엘의 멸망 : 우상숭배자들의 비극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우상숭배 하는 이스라엘, 혼합주의에 물든 이스라엘에게 경고합니다. 3절 보십시오. “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 여기 보면 몇 가지 비유가 나오죠. 아침 구름, 이슬, 쭉정이, 연기 등입니다. 이것들은 한결같이 어떻습니까? 보이는 듯하다가 금세 사라지는 허망한 것들입니다. 지금은 그들이 형통하는 것 같고 모든 게 잘 되는 것 같지만, 머지않아 모든 것을 잃고 망하게 된다는 겁니다. 

또 7절~8절을 보시죠. “7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사자 같고 길 가에서 기다리는 표범 같으니라 8 내가 새끼 잃은 곰 같이 그들을 만나 그의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 같이 그들을 삼키리라 들짐승이 그들을 찢으리라” 여기 보면 또 몇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사자, 표범, 새끼 잃은 곰, 암사자, 들짐승 등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사나운 맹수들입니다. 장차 이스라엘을 침략해 올 앗수르 군대를 상징합니다. 그들은 맹수처럼 신속하게 와서 강력한 군사력으로 이스라엘을 괴멸시키고 말 것이란 경고입니다. 

이런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 좋았을 텐데, 이스라엘은 완악하게 계속 하나님을 멀리 하고 우상 숭배를 자행했습니다. 결국 B.C. 722년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상이 무엇입니까? 마치 허수아비와 같은 것입니다. 논밭에 사람이 마냥 서 있을 수 없으니까 대신 세워 놓은 허상입니다. 실체가 아닙니다. 참새나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요즘은 참새도 약아 빠져 쉽게 속질 않아서 모터를 장착해 놓는다고 합니다. 흔들려서 진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죠. 그런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속아 넘어간다면 얼마나 한심한 일이겠습니까? 우상은 이스라엘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합니다. 그저 우두커니 서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결코 인간에게 축복하거나 저주하지 못합니다. 우상숭배는 스스로 속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오늘날도 현대판 우상들이 인간을 미혹하지만 실제로는 백해무익합니다. 인간을 욕심으로 유인하고 죄에 물들게 하다가 급기야는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찾아와 상담을 하는데 이야기를 들으니 20년간 무당을 따라다녔다는 겁니다. 그동안 있는 돈 없는 돈 다 갖다 바쳤지만 얻은 것은 눈덩이 같은 빚과 병든 몸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우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인데 어찌 잘 될 수 있겠느냐고 설득하자 이제는 하나님만 믿겠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지만 그분의 지난 세월이 얼마나 아깝던지! 

우리가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엉뚱한 데 마음을 빼앗기고 우상 숭배를 하다가 망할 수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온전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살 길은 오직 살아계신 참 하나님만 섬기는 온전한 신앙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3] 이스라엘의 회복 :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온전한 신앙

하나님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호소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4절.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것은 십계명 가운데 1계명입니다. 출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이 계명을 못 지키면 죽는 겁니다. 망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잘 섬기는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헷갈립니다. 다른 신을 섬기면서도 잘 몰라요. 오직 예수님이 기준입니다. 딤전2:5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오죠.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무슨 말씀입니까? 오직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아들이 보이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길이 되신 분입니다. 여기에 기독교의 유일성이 있는 것입니다. 

최근 sbs에서 「신의 길, 인간의 길」이란 특집 방송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을 훼손해서 교계에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PD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예수님이 인간에 불과하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건 착각인 것처럼 방송을 하지만, 한 마디로 엉터리입니다. 그들은 지성을 자처하고 유식한 척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근거한 자료들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우리는 그런 데에 미혹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기독교 2천년 역사가 허구입니까? 과거에 존재했던, 그리고 오늘날 생존하는 신실한 크리스천들이 다 바보란 말입니까? 어불성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붙들 진리는 오직 여호와만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란 사실입니다. 여타의 모든 신들은 거짓 신이요 우상일 뿐입니다. 세상의 물질도 돈도 권세도 인기도 명예도 향락도 우리 인생을 책임져 줄 능력이 없는 현대판 우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생명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요14:6, 행4;12 참조)

그러므로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여기 저기 세상을 기웃거리지 맙시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봅시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봅시다. 십자가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음을 고백합시다. 이제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맙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① 하나님 제일주의 :

먼저 하나님을 가장 귀히 여겨야 합니다. 이게 곧 ‘하나님 제일주의’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삼상2:30 “ ...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하나님을 무시하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무시한다는 겁니다. 절대주권자 하나님에게 무시를 당하면 그 인생은 이미 끝장난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의 정신입니다. 예배라는 영어 단어가 뭡니까? 워십(Worship)이죠. 이 단어를 분석해 보면 그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본래 worth(가치) +ship(신분)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최상의 가치를 소유한 분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예배인 것입니다. 공적인 예배도 중요하지만, 이런 예배의 정신을 갖고 살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일에 하나님을 최우선순위(First Priority)로 앞세워 드리는 것입니다. 아니, 영순위(零順位)입니다. 하나님께 나의 몸과 마음을 드리는 게 예배요 온전한 신앙입니다. 

② 말씀 제일주의 : 

마음으로 하나님을 귀히 여기면 자동적으로 그분의 말씀을 귀히 여기게 됩니다. 이게 곧 말씀 제일주의입니다. 말씀이 명하는 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축복의 장’으로 불리는 신명기 28장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죠. 신28:1~14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 ... ) 14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그렇습니다! 이것은 철칙입니다.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 게 아닙니다.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물리적인 법칙이 있죠. 이와 마찬가지로 눈이 보이지 않아도 영적인 세계와 인생 전체에도 일정한 법칙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물을 가열하면 100℃가 되고 수증기가 나옵니다. 이런 법칙은 모든 사람이 의심 없이 믿습니다. 하나님 제일주의와 말씀 제일주의로 살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도 의심 없이 믿을 만한 분명한 법칙입니다. 
  
미국의 기독 실업가인 아더 미다스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과거 미국의 10대 재벌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의 대학생 선교단체에 50만 달러를 기부한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선교재단 설립을 위해 7억 달러를 기부한 적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구제하며 봉사하는 일에 많은 재산을 헌납했습니다. 어느 날 기자가 그에게 성공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제가 남보다 특별히 머리가 더 좋은 것도 아니고 더 많이 노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저는 다음과 같은 생활신조를 갖고 살아갑니다. 첫째는 주일성수, 둘째는 온전한 십일조 생활, 셋째는 하루의 첫 시간을 기도로 시작하는 것, 넷째는 예수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 그리고 다섯째는 시간과 돈을 선한 사업에 사용하는 것 등입니다. 다른 건 없어요!” 이게 바로 하나님 제일주의이고 말씀 제일주의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이 보장하는 승리의 인생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믿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문제는 ‘신앙의 순도’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순도는 얼마입니까? 그것이 우리 인생을 좌우합니다. 혹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아직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다른 신을 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세상의 욕심에 끌려 다니며 하나님을 소홀히 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속히 청산해야 합니다. 그게 살 길입니다. 부디 순도 100%의 신앙을 회복함으로 꼭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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