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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씨 뿌리는 비유 (눅 8: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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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비유 (눅 8:4~15) 


예수께서 가시는 곳 마다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에도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왔는데 큰 무리를 이뤘다고 했다.

사람들은 예수께로부터 뭔가 들을 것이 있다고 생각해서 몰려 나왔던 것이다. 오늘 본문 8절에도 보면, 듣고 있는 청중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귀는 사람마다 있으나 똑같은 귀가 아니라는 말이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들이 있고, 듣지 못하는 귀를 가진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몸의 많은 기관을 만드셨는데 그 중에서 귀를 만드신 목적이 무엇이겠는가? 귀걸이 하는 것이 첫째 목적인가? 귀를 만드신 첫 번째 목적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기 위함이다. 

세간에 이스라엘 민족의 자녀교육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 그들의 자녀교육에 있어서 핵심은 쉐마교육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신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신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인간의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사단의 말을 들으므로 시작되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보다 사람의 말을 따르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 자리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여러분이 복된 줄로 믿는다. 

지난 주에 이어 오늘도 우리는 비유의 말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 본문은 지난 주의 말씀 만큼이나 잘 알려진 씨 뿌리는 비유에 관한 말씀이다. 

(눅 8:5)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눅 8:6)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눅 8:7)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눅 8: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마치신 후에 그곳에 모인 무리들이 무슨 영문인지 알지 못했다. 이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쭸다. “선생님, 우리에게 이 비유의 뜻을 알려주소서.”

그러자 예수께서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하여 설명해 주셨다. 그것이 11-15절까지의 말씀이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설명을 잘 읽기만해도 씨 뿌리는 비유의 의미를 즉시 파악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과 적용을 위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11절 말씀에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 앞서 4-8절에 언급한 네 종류의 밭은 - 길가, 돌밭, 가시덤불, 옥토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청중들의 반응이 4가지 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비유에 대한 설명(10-15)

1) 길가

(눅 8: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길가’는 밭이 아니고, 밭과 밭 사이의 경계를 나타내는 좁다란 통로를 가리킨다. 사람들이 그곳으로 통행했기 때문에 포장한 도로처럼 단단하게 다져졌다. 따라서 그 위에 씨앗이 떨어지게 되면 사람들에 의해 밟히게 되고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던 것이다. 

예수님은 뿌려진 씨앗이 사람들에 의해 밟히고 새들이 먹이가 된 것은 마귀의 공작이라고 말씀하셨다. 말씀을 듣는 자들로 하여금 믿어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를 놓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유념해야 할 사항이 있는데, 비유의 초점은 농부의 실수라든지 씨앗의 질의 문제가 아니라 씨앗이 떨어진 밭의 상태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말씀을 듣는 자의 마음 상태가 아스팔트와 같이 단단하게 굳어져 있어서 말씀이 전혀 역사하지 못하는 심령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 마태는 길가밭의 심령을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듣기 위해 나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설교 시간에 귀로는 듣고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 사람이다.

독일 함부르크대학의 신학교수였으며, 유명한 설교가인 헬무트 틸리케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의 마음이 날마다 많은 차량이 통행하는 도로와 같고, 사람들이 시간마다 바삐 지나가고 쉴 사이가 없는 분주한 거리와 같다면 그는 영원한 씨앗이 자랄 수 있는 땅을 마련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의 부자와 위인들은 항상 교통이 복잡한 곳에 나와 있을 때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분주한 거리와 무수한 차량이 줄달음치고 있을 때 스스로 위대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곳에는 생명의 역사가 없다. 하루에 단 10분 동안도 자신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기도록 허락하지 못할 정도로 분주히 산다면 그는 사단에 의해 철저히 농락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2) 바위(돌밭)

(눅 8: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간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본문에서의 ‘바위’는 표면에 얇게 흙으로 덮혀 있는 밭의 상태를 가리킨다. 이것은 그 사람의 얄퍅한 신앙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은 무엇인가? 말씀을 받을 때 기쁨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흙이 부드러운 부분이 있는 동안은 뿌리를 잘 내린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보고 믿음이 있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보이지가 않는다. 
예)교회를 졸업한 어느 청년.

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는가? 말씀을 감정적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말씀이 때로는 꿀송이 같기도 하지만 때로는 방망이와도 같아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두들기며 상처를 내기도 한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말씀이 때로는 우리의 취부를 드러내기도 하고, 우리의 악한 부분을 찌르고 도려내기도 한다. 그 수치와 고통을 참아낼 때 믿음의 뿌리가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추한 부분과 악한 것들이 드러나게 되면 부끄럽고 두려워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도망치게 된다. 

오늘날 귀를 즐겁게 하는 설교에 익숙한 신자들이 기쁨을 얻기 위하여 코메디 같은 설교를 듣기 위해 채널을 돌리고 그런 교회를 찾아가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주님을 배반할 가능성이 크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의 상태이기 때문에 잘 넘어진다. 어린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이듯 말씀을 쉽게 조심스럽게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 초신자에게 새벽기도 나오라, 저녁예배 나오라. 큐티를 해라 말하기는 곤란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이유식을 먹일 수는 없을 것이다. 

용비어천가의 한 구절,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뮐새 꽃 피고 여름 하나니..,” 
뿌리가 낮은 나무는 조금 강한 바람만 불어도 뽑히고 만다. 말씀이 실제로 그 심령에 뿌리를 내릴 때 고통이 따르게 된다. 새생명의 출산에 고통이 따르듯 말씀이 심령 속에 싹이 트고, 뿌리가 내리는 일은 고통과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사람들에게 자기를 따르는데 드는 모든 비용을 계산해 보라고 말씀하신다.

예)베네딕트 수도원의 규칙, 수도자에게 1년 간 수도 기간 중에 자기 방에 세상에서 입던 옷을 남겨 둔다고 한다. 1년이 지난 후 세상에서 입던 옷을 치우고 수도사 의복을 준다.

일시적이고 감정적인 신앙으로는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진지한 숙고가 필요한 것이다. 매 주일 교회당으로 달려나오지만 진정한 참회가 없는 종교적 만족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3) 가시떨기

(눅 8: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이 사람의 심령 속에는 뽑아내야 할 잡초가 많은 사람이다. 그 심령에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을 섬기면서 세상도 함께 섬기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주님과 세상에 양다리 걸치고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첫째로 이 사람이 뽑아내야할 잡초는 이생의 염려다. 근심을 안고 사는 사람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길...
(마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둘째로 이 사람이 뽑아내야할 잡초는 재리의 욕심이다. 그것이 신앙성장의 장애가 되는 것이다.
(딤전 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셋째로 이 사람이 뽑아내야할 잡초는 일락의 유혹이다. 
(눅 16: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심령이 가시밭인 사람들은 바쁜 사람들이다. 걱정하랴. 돈 모으랴. 쾌락을 누리랴.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의 욕구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갈망은 있으나 그의 대답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는 핑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가시덤불의 기운이 그를 가로 막아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된다.

4) 좋은 땅  

(눅 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이 사람들은 말씀을 잘 들을 뿐 아니라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네 종류의 사람들이 모두 말씀을 들었다. 듣는 것은 쉽지만 들은 말씀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 결국 그들은 결실하게 되는데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결실을 얻게 된다. 옥토와 같은 심령은 어떤 모습인가? 

1)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 자 -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귀가 복되다. 깊이 묵상..
2)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 - 순종. 말씀이라면 불리해도, 어려워도 순종하는 자를 가리킨다. 
3)인내하는 자 - 박윤선 박사는 ‘인내는 말씀을 깨닫는데서 나온다’고 했다. 비록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씀을 따라 가면 아름다운 결실을 보게 된다.

오늘 이 비유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두 가지로 요약해보자.

첫째, 자신의 심령 상태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회사 사원들이 건강검진을 하였는데, 어떤 사람들은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D로 판정이 나온 사람들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C로, 어떤 사람은 B로, 어떤 사람은 건강상태가 양호하다는 A로 나왔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들을 때 내 자신이 어떤 상태의 심령인가를 진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길가인가? 아니면 돌밭인가? 아니면 가시덤불인가? 아니면 좋은 밭인가? 내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나의 영적 상태를 새롭게 갱신하는 것이다.
건강 검진의 목적은 질병을 예방하는 것이다. 검진 결과를 받은 사람은 치료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은 네 가지 종류의 밭의 반응으로 끝나지만, 우리에게 숙제를 남겨 주셨다. 

그것은 자신의 영적 상태를 알고 개선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분은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씨앗이 길가에 떨어지지 않도록 살피라. 너희는 말씀이 뿌리 내릴 수 없을 정도로 얄팍한 인간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가시를 뽑아 없애라. 좋은 밭이 되라.” 

이 말씀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너희는 조용히 말씀을 붙잡아야 하며, 완고함을 제거해야 하며, 하나님을 우리의 욕망의 도구로 삼지 말고 그분에게 한날의 조용한 시간을 바치라”는 것이다. 

사람이 쌓고 세우는 것은 언젠가 무너지고 만다. 사람이 애써 모으려 해도 하나님께서 바람 한 번만 불으시면 흩어지고 만다. 100배의 결실은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나와 주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마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 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호세아 선지자의 충고로 오늘 말씀을 마치고자 한다.

(호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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