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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인이 곧 해답이다 (사 44: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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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이 곧 해답이다 (사 44:18~20)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한 다음에 더 치료를 요하는지 퇴원을 시켜도 되는지 그 환자의 정신건강 정도를 시험하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환자가 있는 방에 수도꼭지를 물이 흐를 정도로 적당히 열어놓습니다. 그러면 수돗물이 방으로 흘러서 물이 고이게 됩니다. 이때에 환자에게 걸레를 주고 물을 닦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보통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먼저 무엇을 하느냐하면 수도꼭지부터 잠그고 다음에 엎드려서 물을 닦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퇴원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아직 치료가 더 필요한 환자는 수도꼭지는 잠글 생각은 하지 않고 방에 흘러넘치는 물만 열심히 닦는답니다. 이런 사람은 아직 집으로 돌려보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지금 내가 당한 현실만 가지고 잘됐느니 안됐느니 죽겠느니 살겠느니 몸부림을 치고 이 사람 원망 저 사람 원망합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먼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부터 생각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 불행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왔으며 그 아픔의 뿌리가 어디에 있느냐?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됐는가를 깊이 추적해서 원인부터 고치려고 합니다. 이것이 건강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실로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모든 문제들 정치, 경제 무엇이든지 그 근본원인으로 돌아가서 뿌리에서부터 생각하면 문제해결이 훨씬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가 무엇을 가졌느냐하는 소유 적 평가가 아닙니다. 그 보다 중요한 그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평가해야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을 행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왜냐하면 알기는 아는데 행하는 것이 없다면 문제입니다. 지식도 많고, 생각도 많고, 그러다보니 말도 참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실천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이런 사람이 문제입니다. 아는 척은 혼자서 다하고 잘난 척은 혼자서 다해놓고는 일하는 현장에는 쏙 빠져버립니다. 그래서 언제나 지나고 나면 욕만 먹는 불쌍한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이런 사람이 생기느냐하면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사랑의 문제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가 무엇을 사랑하며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생각과 행동의 모티브가 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부부간에 살면서 한평생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정말 수고 많이 하는 부인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팔자타령 신세타령 다해 가면서 죽지 못해서 이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건 사랑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가슴에 사랑이 없어서 억지로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족을 위해 아무리 수고했다고 하더라도 평가될 가치가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행했느냐보다 훨씬 더 근원적이고 가치가 있는 기준은 먼저 무엇을 사랑했느냐 입니다. 그 행동 속에 얼마나 사랑이 담겼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우리는 일찍이 사랑을 알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사랑을 실천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어쩌면 사랑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문제 속에 살고 있고 특히나 신앙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왜일까요? 분명히 그 사랑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사랑을 점검해봐야 합니다. 당연히 사랑할 것을 사랑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사랑하되 올바른 사랑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사랑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사랑의 대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여러 가지 생각하고 답해야할 것이지만 이미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믿는 자녀들이라면 고민할 이유도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에 대한 바른 응답을 해야 합니다. 사랑에 응답할 줄 아는 존재요, 사랑을 알고, 사랑을 깨닫고, 사랑을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라면 사랑을 하는데 있어서 제일의 대상은 마땅히 하나님이어야 됩니다. 그런데 제일의 사랑의 대상인 하나님을 잊고 대신 명예를 사랑하거나 지식을 더 사랑하거나, 물질을 사랑하는 것은 생각을 빗나가게 하고 행동을 빗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그 행동이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결과 되어 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생각과 물질을 사랑하는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행동과 세상의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의 행동이 같을 리가 없는 법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매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참 어리석고 답답하고 한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우매함이 어디로부터 왔느냐하면 바로 우상숭배라는 죄악으로부터 말미암았음을 이사야 선지자가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제일의 사랑의 대상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다른 것으로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 결과가 뻔하지 않습니까? 해답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이 원인을 알았어야할 이스라엘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우상의 형상에 미혹 되어서 그 우상의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영적 무감각과 무지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보면 그렇습니다. 대개 사람의 눈에 만족하게 보이는 것은 유혹되기 쉬운 것들입니다. 우리의 감각기관 중에 가장 일차적이고 민감한 부분이 아마 눈일 것입니다. 보는 것에서부터 문제는 시작 될 때가 많습니다. 안 보면 모를 것도 보면 욕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보이는 것만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붙들고 그것을 얻으려 하고 그것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오직 자기의 육체적인 그 감각만을 의지하고 보이는 것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뛰어난 감각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 흔히 달인이라는 말을 합니다. 요즘 텔레비전 개그 프로그램에도 나옵니다만 학문이나 기예의 한 특정분야에 오래된 경력으로 뛰어난 사람을 달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감각이 아무리 뛰어났다 하더라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결국 이 말은 인간의 육체적 감각이란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이 바로 한계가 있는 육체적인 감각 즉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만져지는 것 등에 의지해서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어져서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모세 때부터 계속 되어 온 걱정거리였습니다. 혹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곳 신들이 베풀어 주었다고 믿는 가나안 사람들의 잘못 된 믿음을 따라 보이는 풍성함을 좆다가 하나님을 잊을까 걱정했던 모세의 마음이 가나안 목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는 마지막 고별설교에 진하게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걱정이 현실이 되어서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빠졌고 그래서 자기들이 하는 말이 옳은지 이 행위가 정당한 것인지 조차도 고려해볼 마음의 여유나 지식이나 이해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건 비극입니다. 본문에 나오는'재'란 우상숭배의 허무함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어떤 물질이 불에 완전히 타고나면 재가 남는데 그 재란 유용성을 잃어버린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정말 무가치해서 어느 것에도 다시 쓸 수 없는 물질입니다. 이런 허망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계속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갈증을 느끼면서도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잘 미혹 되는 존재요, 자신이 좋아하는 그것에 빠져 있을 때는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관심이 없어집니다. 영적으로 무감각해졌기 때문에 구별하지도 못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이렇게 심각하게 되었습니다. 원인이 잘못되어서 해답이 없는데 그 원인을 모르고 있단 말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원인이 되어서 눈이 가려졌는데 그리고 마음도 어리석어졌는데 그 원인을 인정하지 않아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참으로 답답할 노릇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소를 숭배합니다. 그래서 수천 명이 굶어 죽어가면서도 절대로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그런 인도에서 달리던 열차가 강으로 추락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3천명이 사망하는 대형 사고였는데 그 사고의 원인은 다리 한 복판에서 소를 발견한 기관사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열차가 전복되면서 강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소 한 마리의 목숨과 사람3천명의 목숨을 맞바꾼 어처구니없는 사고입니다. 그렇다고 그 소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이렇게 허망한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을 잘못 찾으면 반드시 결과가 잘못됩니다. 온전한 사랑을 하지 못하면 생각이 잘못되고 생각이 벗어나면 행동이 빗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의 어떤 대상에 대한 지나친 집착도 우상 숭배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형상만이 아닐지라도 충분히 우상이 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주변에 있음을 유의해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정말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하나님 이외의 그 어떤 것이 우리의 원인이 되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그것을 몰라서 해답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문제만 쌓아가면서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무지해서 원인도 모른 채 방황만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이 우리의 원인이 되어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해답은 너무나 명쾌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살아가고 있는 해답은 무엇입니까? 원인이 곧 해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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