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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배 밖으로 나아오라 (마 14:22~33) -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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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밖으로 나아오라 (마 14:22~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교회생활을 오래하면 자신도 모르게 언어와 사고와 생활과 습관이 훈련됩니다. 그래서 교회생활 오래하면 “할렐루야, 주여, 아멘, 주님의 뜻”이라는 말이 쉽게 나옵니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해 보면 대화의 용어들만 들어 보아도 그 사람이 크리스천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시골 교회에서 말 한필을 훈련했습니다. 훈련받은 그 말은 잘 달리는 준마가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이웃집 사람이 보고 그 말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싸게 사려고 흠을 잡으며 한번 타 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번 타 보라고 했습니다. 출발할 때는 “주님”하고 멈출 때는 “아멘” 하라고 했습니다. 이웃 사람이 말을 타고 “주님“하니까 잘 달렸습니다. 신이 났습니다. 한참 신나게 달리다 앞을 보니까 갑자기 낭떠러지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 “워워” 해도 그냥 달렸습니다. “스톱, 멈춰”해도 그냥 달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생각이 나서 “아멘”하니까 그 말이 가까스로 섰습니다. 그리고 앞을 보니까 한발만 더 나아갔으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하였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순간 온몸에 땀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한숨을 내 쉬면서 말했습니다. “오 주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해서 전열을 정비하고 그동안 집중적으로 이론교육을 마치셨습니다. 이제 14장에 들어와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실제로 훈련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이끌고 먼저 고향에 가서 전도하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에게 먼저 큰 은혜를 주시려고 고향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고향 사람들은 환영이 아니고 배척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고향을 나와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셨습니다. 

본문 바로 직전에서 예수님은 벳세다 광야에서 5병 2어의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비로소 예수님에게서 감추어진 신성을 알고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것을 아시고 사람들을 해산시키시려 제자들을 배에 태워 게네사렛 호수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홀로 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십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은 제자들을 본격적으로 현장교육을 시키십니다. 

그때 바다에 광풍이 불어 제자들이 사나워진 풍랑과 싸우는 고난을 겪게 됩니다. 그때 예수께서 물위로 걸어 오셨다고 했습니다. 본문은 그때가 밤 사경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밤을 사경으로 나눕니다. 1경은 오후 6시부터 9까지를 말합니다. 2경은 밤 9시부터 12까지고, 3경은 밤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말하는 4경은 새벽 3시 이후를 말합니다. 그 새벽시간에 누군가 물위로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것이 유령인줄 알고 놀라 무서워 할 때 주님께서 “내니 무서워하지 말라”하고 안심시키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베드로가 “나를 물위로 걸어가게 하소서”하고 말하자 주님은 “내려오라”하고 그를 부르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몇 가지 의도를 내 보이십니다.  


모험 하라 

베드로는 주님의 부름을 받고 바다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물론 곧 물에 빠졌지만 주님은 그에게 뛰어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모험의 길을 훈련하신 것입니다. 아이는 언제나 붙들고 다닐 수만은 없습니다. 넘어져도 홀로 걷는 연습을 시켜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에게도 때로 이런 모험이 필요합니다. 성경에 기적이 일어난 곳을 보면 대부분 이 같은 모험이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중풍병자가 사람들에게 들려져 예수께 찾아가 보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다가 갈 수가 없었습니다. 진퇴양란이었습니다. 그가 그렇다고 그냥 집으로 돌아 왔으면 그는 영원히 치유 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지붕을 뚫고 내려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치유함을 받습니다. 이 지붕을 뚫는 모험이 기적을 불러왔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먼 곳에 격리되어 살았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성내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들은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각오로 성내로 들어와 예수께 찾아가 고쳐달라고 모험을 감행하였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그때 비로소 고침을 받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자신들에게 주어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더라면 더 이상 기적도 치유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 우여곡절 끝에 입신을 해서 왕의 총애를 받습니다. 그때부터 뭇 사람들의 시샘을 받습니다. 그는 매일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도했습니다. 적어도 예전에는 그렇게 해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기도하면 함정에 빠집니다. 그냥 함정이 아니고 사자 굴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래도 다니엘은 하던 그대로 기도했습니다. 사자 굴에 던져지면 하나님이 건져주실 줄 믿고 기도한 것입니다. 만일 건져주지 않아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여전히 하던 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 놓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 행동은 죽기를 각오한 대단한 모험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사자굴속에 던져졌고 하나님이 그를 건져주시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은 모험이 있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궁의 법도를 무시하고 왕에게 나아갑니다. 그때 자신도 살고 민족도 살고 하나님께 영광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 기회를 놓치고 주저주저 하고 나 혼자만 안전하려고 했더라면 결국 자신도 망하고 민족도 망하고 하나님의 영광도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 그런 용기를 발휘하고 모험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 번 기회를 주시고 그 기회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험을 감행할 때 그곳에 기적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나아간 것도 대단한 모험입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의 상상을 뒤엎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은 모험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베드로가 지금 배 안에 있습니다. 그곳은 안전한 곳입니다. 평안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 평안은 있지만 그냥 있으면 기적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바다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오늘 우리 신앙인에게는 이 배에서 뛰어내리는 모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물위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 하다 보면 주님은 때로 우리를 이끌어 내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 중병의 길을 가게 하시기도 합니다. 그때가 밖으로 나아갈 때입니다. 실패로 시련의 길을 가게도 하십니다. 불화로 갈등의 길을 걷게도 합니다. 얼핏 보면 재수 없어서 그런 일들이 내게 주어진 것 같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그때가 나로 하여금 밖으로 나오게 하시는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모험의 삶을 살고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 길을 순종하고 걷고 보면 신앙의 새로운 눈을 뜨게 되고 모험의 길을 걷게도 됩니다. 결국 베드로는 그 모험의 신앙으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을 체험하고 새롭게 만나고 새 세계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행동 하라 

신앙이 오래되면 때로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신앙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가 오래되면 이론 신앙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그 신앙은 대부분이 물이 없는 신앙생활입니다. 눈물도 없고 감격도 없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5장부터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이론교육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14장에 와서 현장교육을 하십니다. 현장교육을 하려면 배에서 출렁대는 바다로 뛰어내려야 합니다. 내려오면 때로 빠지기도 하고 물을 먹기도 하지만 그래도 뛰어내려야 합니다. 유능한 수영선수가 되려면 물을 많이 먹어야 합니다. 

오늘은 이론교육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임상교육 시대입니다. 현장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동하고 합니다. 잘 되는 회사는 사무실을 벗어나 밖으로 현장으로 나아갑니다. 이제는 이론 중심학과는 인기가 없습니다. 사회에서 별로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임상 경험을 중시하고 현장과 실제를 중시하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그동안 이론 신앙을 중심으로 평안히 배안에서 신앙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40년 만에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론 신앙에서 행동하는 신앙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배안에서 배 밖으로 나아가는 신앙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안전한 배에서 뛰어내리면 위험이 있고 모험이 필요하고 물을 먹어야 하듯이 교회를 건축하려면 우선 헌금을 해야 합니다. 갑자기 지출을 경험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배 밖으로 나아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평안히 신앙생활 하다가 어느 날 기도원에 가야 하는 것도 바다로 뛰어 내리는 모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기도원에 가 보지 않은 분들은 기도원에 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경험이 없어서 우선 겁부터 납니다. 그래서 가지 말자고 반대부터 합니다. 그런데 한번 가 본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오히려 재미도 있습니다. 철야기도회도 금방 지나갑니다. 금식기도도 하고 보면 상쾌합니다. 맛이 있습니다. 몸이 가볍습니다. 그래서 또 하고 싶어집니다. 바다로 뛰어내리는 모험도 하고 나면 용기가 생깁니다. 담력이 생깁니다. 또 내리고 싶어집니다. 겁도 없어집니다. 베드로도 뛰어내리기 전에는 상당히 망설였을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뛰어내렸습니다. 물에 빠지기는 했지만 큰 경험을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수제자가 된 이유도 그런 모험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그 행동은 다음에 또 자연스럽게 그런 모험을 감행하고 용기를 발휘해서 또 행동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이 부활하신 후 고향으로 돌아가 고기잡이 하던 밤중에 주님이 바다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누군가 “주님이시다”라고 외칠 때 베드로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즉시 바다로 뛰어내렸습니다(요 21:7). 왜냐하면 한번 경험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훈련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제는 배 안에 앉아있던 신앙에서 배 밖으로 뛰어 나가는 모험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베드로를 밖으로 나아가게 하신 이유입니다. 신앙생활은 이론 생활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현장교육과 훈련은 더 중요합니다. 그래야 어떤 환경에 처해도 역할을 다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안을 보라 

사람은 안에만 있으면 안전의식에 머물러 있기 쉽습니다. 그리고 시야나 생각이나 의식이 좁아집니다. 그래서 때로 밖으로 나아가고 나가서 밖도 보고 안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나가면 밖의 넓은 세상이 실감나게 보입니다. 또 안을 들여다보면 구태의연한 것이 보이고 작고 좁은 것이 눈에 보입니다. 옛날 고향에서 자랄 때 동네 앞에 흐르던 시냇가가 얼마나 넓고 깊었습니까. 뒷동산이 얼마나 크고 높았으며 옛날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장이 얼마나 크고 넓었습니까. 그런데 오늘 다시 가서 보면 얼마나 좁고 얕고 작은지 모릅니다. 밖에 나가서 넓은 세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안목을 가지고 안을 들여다보니 실상이 보인 것입니다.   

배안에 있으면 평안하고 안전하기는 합니다. 온실은 따뜻하고 안전하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제자들이 언제까지 배안에서만 있을 수 있습니까. 주님은 이제 얼마 있으면 죽으시는데 승천하시는데 언제까지 우리끼리 안전하게 양지에만 있을 수 있습니까. 배 밖으로 나가면 피곤하고 파도가 무섭고 바람으로 물결이 거세게 일어 바다에 깊이 빠질 수 있지만 그래도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 사후에 스스로 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훈련은 쉽고 재미난 것이 없습니다. 모든 훈련에는 매사 모험과 수고와 위험이 뒤따릅니다.  

엊그제 TV 프로에 청각장애인 대학생이 무용을 참 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대학생은 음악을 전혀 듣지 못함에도 감으로 듣고 감으로 언어를 익혀 무용을 했습니다. 그 어머니에게 어떻게 했기에 청각장애가 있는데도 이렇게 까지 훈련이 되었습니까? 하고 물으니 내가 죽은 후에 혼자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무섭게 훈련시켰다고 했습니다. “엄마”라는 말 한마디 배우는데 수백 번 수천 번 말하도록 연습을 시켰다고 합니다. 할 때까지 어린아이에게 밥을 주지 않고 훈련을 시킨 결과라고 합니다. 그 결과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아이가 감으로 듣고 말하고 무용도 하고 대화도 가능한 상태까지 된 것입니다. 

그 부모는 주님처럼 아이를 험한 현장으로 내 보낸 것입니다. 바다로 불러낸 것입니다. 처음엔 사정없이 물을 먹였습니다. 그 후 훈련되어 세상을 혼자 살아가게 만든 것입니다. 주님은 이제 얼마 있으면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주님이 가신 후 제자들끼리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은 안타깝지만 배 밖으로 제자들을 불러내셨습니다. 모험하게 하셨고 강해지게 하셨고 그들에게 자신의 신성을 보이시며 훈련하셨습니다. 배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언제까지 집안에서 배안에서 안일하게 부모들 곁에 끼고 살아가겠습니까. 나가야 합니다. 거센 바다로 뛰어 들어가야 합니다. 나가 싸워야 하고 스스로 헤엄칠 때까지 물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험난한 길을 가는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배 밖으로 불러내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따라 물로 뛰어 들어가는 모험을 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대단히 사랑이었습니다. 때로 실수도 했지만 그러나 베드로의 마음속에는 온통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던 사람입니다. 누군가 “주님이시다” 라는 말을 듣자마자 바다로 뛰어내렸던 사람입니다. 베드로 말고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또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에게서 신적 권위를 발견하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배에서 내려오라는 말씀을 듣자마자 뛰어내렸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상상도 못할 일을 베드로는 실행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100% 신뢰한 사람입니다. 거기에서 이런 용기가 발휘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에서는 이런 신뢰가 나옵니다. 

또 하나는 중심입니다. 베드로는 “너도 떠나려느냐” 는 주님의 말씀에 “주님이 여기 계시매 내가 어디로 가리니까”하고 자신의 분명한 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것이 베드로의 주님을 향한 중심입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에 베드로는 주저하지 않고 “주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베드로로 하여금 뿌리 깊은 이런 중심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 중심은 예수님에게서 발견한 신적인 권위입니다. 이 신적인 권위를 발견하게 되면 이 같은 중심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신앙은 주님에 대한 사랑과 신뢰와 중심을 이루는 생활입니다. 그때 그곳에서 깊은 신앙이 발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내 목숨을 내 맡기는 모험이 발생하고 깊이 있는 신앙의고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는 주님을 향한 이 중심을 이루는 삶이 중요합니다. 주님을 향한 신앙이 중심을 이룰 때 거기서 무게가 주어지고 헌신이 이루어지고 전폭적인 신뢰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배 안에서도 역사하십니다. 동시에 주님은 배 밖에서도 역사하십니다. 오히려 배 밖에서 역사하시는 것이 더 많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배 밖으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인에게는 언제나 이 용기가 있어야 하고 모험이 있어야 하고 이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때 보잘 것 없는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증명되고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지 말고 대신 길이 없는 곳으로 가라, 그리고 자취를 남기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로 하여금 이 세상에 그런 발자취를 남기도록 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불러내셔서 그 길을 가게 하시고 그런 발자취를 남기라고 하십니다. 그 발자취는 신앙의 모험생활에서 주어지고 신앙의 행동에서 주어집니다. 그리고 주님의 모습에서 거룩한 신성을 발견하는 안목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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