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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있으라 (학 2: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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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있으라 (학 2:17~19)


우리 한국 사람만큼 ‘복’을 좋아하는 민족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복을 아예 달고 삽니다.  모든 것에 ‘복’자가 붙어 있습니다.  우리 음식문화는 찌개를 즐겨 먹고, 좋아합니다.  왜 찌개를 좋아하는가하면 찌개가 보글보글 끓습니다.  그러니까 먹을 때에도 우리는 복을 달라고 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한마디로 복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복을 좋아하는 민족의 문화와 기질이 너무 치우쳐서 복을 잘 강조하지 않았습니다만 실제로 성경만큼 복을 말하는 책이 없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주시는 놀라운 복에 대하여 강조합니다.  성경에서 복을 빼면 남는 게 없을 정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말합니다.

그 가운데 본문도 역시 복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19절 마지막에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선포합니다.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하나님은 친히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복을 주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에게 약속한 대로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받은 복은 무엇보다도 성전을 짓기 위하여 헌신한 사람들에게 임하는 복이었습니다.  학개서는 성전건축이 주제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본국으로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지었던 아름다운 성전이 이방민족에 의해 무수히 짓밟히고 무너진 것을 통탄하던 그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다짐하며 힘을 모아 성전을 재건합니다.  그러나 결코 쉽지가 않았습니다.  많은 방해와 어려움으로 그만 성전건축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14년이라는 세월동안 성전건축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러다가 학개 선지자가 시대의 사명을 받고 다시 성전재건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학개의 말을 듣고 다시 성전을 재건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완공을 보게 됩니다.  본문은 그런 배경 속에서 하나
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이제 오늘부터, 성전을 건축하는 지금부터 복을 주겠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당시 이스라엘에게 어떤 복을 주셨을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축복은 과연 어떤 복일까요?  오늘 우리가 이것을 본문을 중심으로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는 물질의 복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이렇게 말씀합니다.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이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농사를 통한 풍성한 열매, 즉 물질의 복을 말씀합니다.  돌이켜 보면, 성전을 방치하며 살던 때에 하나님은 복을 주시지 않아 백성들이 큰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 이제부터, 헌신하는 순간부터 복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물질의 복을 약속하십니다.  성경은 물질의 축복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굳게 믿습니다.  여기 물질의 복은 육신의 복이요, 세상의 복이고, 눈에 보이는 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할 때, 특히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일하고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주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굳게 믿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 복을 생각하면서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는 물질의 복을 어떻게 받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 인간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수고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물질의 복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눈물로 씨를 뿌리는 것으로 말합니다.  씨를 뿌려야 거두는 법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려야 기쁨으로 거두는 것입니다.  어떻게 뿌리지 않고 거둡니까?  또한 성실로 식물을 삼으라고 권면합니다.  성실로 식물을 삼는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매일 밥을 먹듯이 성실하게, 신실하게, 열심히 수고하고 땀 흘리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우리가 열매를 거두고 복을 받는 것입니다.  대가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최선을 다한 뒤 바라보는 것입니다.  물질의 복도, 모든 것도 다 그렇게 임합니다.  

그런 면에서 성경적인 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복을 ‘happy’ 라고 말합니다.  ‘Happy’는 ‘Happening’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연히 일어난 일, 행운을 잡은 사건이 행복입니다.  예를 들어 복권에 당첨이 되었다든지, 몇 백 년 묵은 산삼을 발견했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입니다. 늘 유동적이고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happy가 아니라 blessing입니다.  ‘행복’이 아니라 정확하게 말하면 ‘축복’입니다.  축복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입니다.  이 필연적인 복을 받기 위한 두 개의 통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 쪽에서의 통로, 다른 하나는 인간 쪽에서의 통로입니다. 하나님 편의 복의 통로를 소위 ‘은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 편의 통로를 우리는 ‘수고’라고 말합니다.  이 둘의 아름다운 조화를 통해 우리가 물질의 복을 받습니다.  그런 면에서 ‘blessing'이란 말이 어원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 말은 ’bleed, blood'라는 말 즉, 피를 흘린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그만큼 복을 위한 대가가 지불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인간이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복을 받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야 합니다.  그렇다고 나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먼저 내가 노력하고, 수고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인 의미의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의 복을 얻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나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수고와 헌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바로 그곳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물질의 복을 말하는 모든 말씀에서 인간의 수고와 헌신을 강조합니다.  그냥 적당히 하거나 모양만 갖추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수고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바로 그런 헌신을 통해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의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얻기 위한 나의 수고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수고해서 얻은 축복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가치가 있어야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가장 가치 있는 곳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물질의 복에 대한 또 다른 교훈은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수고하고 최선을 다하는데도 여전히 물질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어려움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물론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물질의 복이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받을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기에 지금은 아니더라도 앞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의 시대에 그것을 받지 못하면 나의 자녀들이 받고, 그 다음세대까지 가서 주실 것까지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과 기독교역사를 통해 그것을 너무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처음 세대는 극한 가난과 어려움을 겪었지만 다음세대와 후대가 복을 받은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지금이 아니라고 전부가 아닙니다.  앞으로 분명 주실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나의 수고와 기다림을 통해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세상에서 말하는 복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복의 의미를 잘 새기고, 수고와 최선을 통해 우리 삶에 하늘 문을 열리고 쏟아 부으시는 축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관계의 복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물질의 복과 함께 관계의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관계의 복은 물질의 복과는 다른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신령한 복, 하늘의 복,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이라고 말합니다. 

17절을 보면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지난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고 얼마나 많은 은혜와 축복으로 이끄셨는가를 알려줍니다.  사랑하기에 이끌었고, 사랑하기에 때론 징계도 주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눈에 보이는 어떤 현상적인 축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은혜였는가를 상기시켜 줍니다.  특히 성전을 짓기 위해 헌신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백성을 사랑하시고, 여전히 좋은 관계를 맺기 원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 되심이 가장 큰 축복임을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물질만이 아닙니다.  물질보다 더 소중한 축복은 바로 관계의 복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관계를 맺으시고, 하나님이 내 삶에 개입하시고 살피시고, 이끄시는 축복입니다.  평온할 때는 물론이고 힘들고 어려울 때 부를 수 있는 주인이 있다는 축복입니다.  곤고하고 각박한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축복입니다.  두렵고 예측 못하는 세상에서 나의 장래를 책임지시는 분이 계시다는 축복입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세상에서 나를 평온케 이끄시는 축복입니다.  이것보다 더 소중한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고, 주인이시고, 내 인생에 영원한 동반자이시고, 믿을 만한 분이시고, 사랑하고 계시는 그분을 붙잡고 앞으로 천국까지 가게 된다는 축복보다 더 큰 축복이 무엇입니까?

생물학자들은 행복을 생활에서 느껴지는 만족과 기쁨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의 행복을 호르몬 작용에 의한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우리 몸의 어떤 자극을 통해 얻어지는 것을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에 의한다면 행복해지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잠을 푹 자서 뇌를 쉬게 하면 됩니다.  단백질을 듬뿍 함유한 음식을 섭취하고, 가벼운 운동을 하고, 좋아하는 일을 적절히 하면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습니까?  지금 의학이 이렇게 발달했는데도, 우리에게 먹을 것이 넉넉하고 풍족한데도, 여가를 즐길 수단이 엄청나게 많아졌는데도, 인간의 행복 지수는 점점 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무엇을 반영합니까?  행복이 단순히 몸을 편하게 해주는 것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회학자들은 삶의 질이 곧 행복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즉 개인의 소유와 나라의 경제적, 물질적 지표로 행복감을 측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습니까?  미국을 보십시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게 살면서 그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점점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더 살벌하고, 더 불안하고, 자살도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그 하나의 대표적인 예가 있습니다.   오래전 미국의 최대 부호였던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사람은 석유의 제왕으로 불리었던 '폴 게티'라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하워드 휴즈' 입니다.  하워드 휴즈는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죽기 전 가장 고독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가장 부유한 사람이 어이없게도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방탕한 생활을 한 결과로 얻은 병 때문에 몸져누웠을 때, 그의 주위에는 재산을 탐내고 노리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 결과 누구도 믿지 못해 홀로 유폐된 생활 속에서 지내다 보니 제대로 먹지 못한 것입니다.  석유의 제왕이라고 불렸던 폴 게티도 막대한 재산이 있었지만, 일생동안 다섯 번 결혼했다가 모두 이혼했습니다.  

그는 막내아들이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고, 장남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경험하였습니다.  당대 최대의 부호였던 두 사람의 죽음은 그들이 소유했던 재산으로 행복할 거 같았는데 똑같이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참된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행복을 ‘인간이 느끼는 환희와 만족’이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가 살면서 뜻밖에 찾아온 행운이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효과가 생각한 것만큼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갑자기 올라간 것은 결국 갑자기 떨어집니다.  갑자기 더위가 오면 사람들은 짜증을 냅니다.  그렇지만 더위가 계속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첫 날처럼 덥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돈벼락을 한번 맞아 본 사람은 일상에서 행복하기가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 자극 수준이 향상된 사람은 웬만한 자극으로 행복감을 맛보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물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심리적으로,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행복을 말했지만, 거기에 참된 행복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성경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이것이 참된 행복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는 것입니다.  주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내 안에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신실히 믿고, 그분의 도에 복종하면서 사는 길입니다.  

가만히 보면 이미 우리가 가진 축복입니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귀한 축복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선택받은 백성과 자녀에게 관계의 복을 무엇보다도 강조합니다.  지금 우리가 많이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향해 ‘축복있으라’고 선포하십니다.  특히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자에게 축복을 말씀하십니다.  물질의 복을 주시고, 관계의 복을 주십니다.  이미 우리가 받았고, 앞으로도 계속 받을 복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큰 축복이 삶에 임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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