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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벌과 나비를 부르는 노래 (고후 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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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과 나비를 부르는 노래 (고후 2:12~17) 
 

여름의 한복판에 들어섰습니다. 무더위에 모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여름을 색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뭐니뭐니해도 여름의 색은 녹색일 것입니다. 산마다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을 정도로 녹음이 우거졌습니다. 그러나 푸른 숲만 있다면 그 아름다움이 반감될 것입니다. 숲 여기저기에 피어있는 꽃들로 인해 숲은 더 아름답습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다양한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여러분, 철따라 피는 꽃들을 좋아하시죠? 유채꽃으로 뒤덮인 들판을 생각해 보세요. 화사한 벚꽃은 또 어떻습니까? 이런 꽃들은 먼 곳에서 전체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런가 하면 가까이 다가서서 꽃 한 송이 한 송이를 자세히 보기도 합니다. 혹은 서로 다른 몇 송이 꽃을 화병에 꽂아놓고 지긋이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때 꽃을 즐기는 방식은 <눈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꽃은 눈으로 봄으로 즐깁니다.

그렇다면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꽃을 즐길까요? 그들은 보지 못하니까, 꽃을 즐길 수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책을 읽던 중에 시각장애인들은 향기를 통해 꽃을 즐긴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예민한 사람들은 향기만 맡고도 꽃의 색깔을 구분한다고 합니다. 같은 장미라도 색깔에 따라 향기가 달라 그 향기로 색깔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꽃은 색깔만 가진 게 아니라, 향기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로 꽃의 색깔만 보다 보니, 꽃이 향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때가 많습니다. 꽃은 향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존재를 특별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설명합니다. 

왜 그리스도인을 향기라고 했을까요? 왜 꽃의 화사한 색깔 같다고 하지 않고, 향기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생명이 번식하도록 하는 것이 향기이기 때문입니다. 

꽃이 어떻게 번식하는지 아시지요? 꽃이 번식하려면 수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때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벌이나 나비 같은 곤충들입니다. 벌이나 나비가 꽃으로 몰려들어 꿀을 먹습니다. 그러면서 온 몸에 꽃가루를 묻힙니다. 그 곤충들이 다른 꽃으로 옮겨다니다 보면 그 꽃가루가 다른 꽃의 암술에 묻게되고, 수정이 이루어집니다. 거기서 열매나 씨가 생겨 다음세대를 이어갑니다. 이런 식으로 곤충이 수정을 돕는 꽃들을 <충매화>라고 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만약 벌이나 나비가 꽃에 날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것들이 날아와야 꽃가루를 묻혀 갈텐데, 아예 날아오지 않으면 수정이 어렵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꽃들은 벌이나 나비를 부르는 비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향기입니다. 향기로 벌과 나비를 부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꽃들은 우리가 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지요. 

바울 사도는 향기같은 존재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수많은 곳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색깔 아름다운 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외모는 빈약했습니다. 허리는 구부정하고, 매부리코에, 별로 인상이 좋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향기가 풍겨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 그와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가는 곳에는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는 벌과 나비를 부르는 향기였습니다.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바로 이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다운 일이 이루어지고, 죽어가던 사람이 살고, 인생이 부흥되고, 교회가 부흥되는 생명의 열매를 위해서는 향기가 필요합니다. 향기는 축복을 부르고, 사람을 부르는 매력이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의미에서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향기가 있는 곳에 벌과 나비가 모여드는 것처럼, 향기 있는 그리스도인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흥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데 오늘 우리는 향기를 발하는 데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향기 없는 꽃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때로 향기를 발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향기를 발하는 것보다는 색깔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 더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호주에서 태어난 <칼 폰 프리슈, 1886-1982>는 1973년에 노벨상을 받은 동물학자입니다. 그는 무려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벌을 관찰하여 1965년에 <꿀벌의 댄스 연구>라는 책을 냈습니다. 벌들은 서로 춤을 추어서 꿀을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고 합니다. 그는 벌이 250미터 떨어진 꽃으로 곧장 날아가는 것을 관찰했는데, 이는 향기 때문이었습니다. 

꽃의 색깔도 벌과 나비를 부르는 데 도움이 되지만, 중요한 것은 향기입니다. 향기는 바람을 타고 골짜기마다 퍼집니다. 그 향기 때문에 꽃이 깊은 숲에 숨어 있어도 벌들이 날아오는 것입니다. 결국 벌과 나비를 부르는 것은 예쁜 색깔이라기보다는 향기인 것입니다. 향기가 벌과 나비를 부르고, 그 결과 생명이 번식하게 됩니다. 

여러분, 예쁜 색깔보다 진한 향기를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색깔을 예쁘게 보이려면 겉을 꾸미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겉만 꾸미다 보니, 겉은 참으로 아름다운데, 향기가 없습니다. 마치 조화 같은 인생이 되고 맙니다. <허동인> 시인은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거짓 꽃을 보며>란 시에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종이꽃...
헝겊꽃...
플라스틱꽃...  

여러 가지 색깔 
여러 가지 모양이
한데 어울려
꽃 아닌 꽃이 
꽃인 체 한다. 

못난 사람일수록 화장을 짙게 하듯
향기 없는 꽃이라서
더 호화찬란스러운가? 

가짜가 진짜인 것처럼
판을 치는 세상일지라도
난 덩달아 
거짓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눈길을 끌지 못해도 
목숨이 길지 못해도
나 자신의 향기를 지닌
순수한 꽃이고 싶다.  

여러분, 그렇다면 향기를 발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속 사람을 가꾸십시오. 냄새란 깊은 속에서부터 나옵니다. 속이 아름다우면 향기가 발산될 것이고, 속에 문제가 있으면 악취가 날 것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 병환이 깊은 분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가족들은 아버님을 늘 깨끗하게 모시려고 애를 썼습니다. 방도 깨끗했습니다. 옷도 자주 갈아 입혀 드렸습니다. 욕창이 생기지 않게 잘 모셨습니다. 방에 방향제도 놓았습니다. 심방을 온다고 하니 더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냄새는 숨길 수 없었습니다. 잘 듣지 못하셨기 때문에 귓가에 입을 가까이 대고 기도하게 되었는데, 냄새를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오랜 병은 그 분의 온 몸에서 견디기 힘든 냄새가 나게 했습니다. 그 분 안에 깊은 병이 있다보니, 옷을 갈아입고 깨끗하게 계셔도 속에서 나는 냄새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 영혼 속에 아름다운 것들을 채우십시오. 본문 14절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풀어서 말씀드리면 <그리스도를 알면 저절로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은 어디에 있어도 표가 납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있으면,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면 그리스도인들만이 낼 수 있는 냄새가 나게 됩니다. 바울이 향기를 발하게 된 것은 그 분의 영혼에, 그 인생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써 노력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삶을 연습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면, 그 분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우리로부터 향기가 발산될 것입니다. 우리가 향기를 발한다기보다는,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향기를 내실 것입니다. 똑같은 그릇이라도 그 안에 썩은 음식이 있으면 악취가 나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구미가 당기게 됩니다. 내용물이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의 삶으로부터 허브 향기처럼 많은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향기가 발산되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향기를 내기 위해 너무 조급하지 마십시오. 꽃의 색깔은 피기 전, 봉오리 때부터 보입니다. 일찍부터 그 꽃의 색깔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향기는 꽃이 다 피어 활짝 벌어져야 퍼져나가기 시작합니다. 활짝 피어야 꽃 깊은 꿀샘의 냄새가 풍겨나게 됩니다. 색깔은 금방 드러나지만, 향기는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너무 빨리 향기를 발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억지로 향수를 뿌리듯 하지 마십시오. 종종 예수 그리스도 향수를 사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봉사하고, 충성하면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억지로 뿌리는 향수일 수 있습니다. 그 마음 깊은 곳에는 그리스도가 없으면서 억지로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은 향기가 아니라, 시간이 가면 악취로 바뀔 것입니다. 

먼저 그리스도를 모시는 일에 힘쓰십시오. 그리스도를 모시고, 꾸준히 살아가십시오. 여러분 안에 주님의 말씀을 깊이 품고, 그 분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늘 그 분의 뜻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 분께 기도하는 일에 힘쓰십시오. 그리고 그 분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우리도 모르게 은은한 향기가 풍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사람에게서는 어떻게 향기가 발산되는 것일까요? 앞에서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향기를 발산하신다고 했는데, 우리 주님은 어떤 향기를 내셨습니까? 이에 대해 에베소서 5장 2절은 매우 중요한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거기 보면 <향기로운 제물>이란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향기와 제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제물이 있으면 향기가 납니다. 향기가 있으려면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향기와 제물을 연결시킨 말씀은 성경에 매우 많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 한 예를 말씀드린다면, 출애굽기 29장 1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수양의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하나님께 수양을 잡아 제물을 바쳤는데, 그게 향기로운 냄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향기가 있으려면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도 당신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향기를 발하는 성도가 되려면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헌신을 해야 합니다. 이런 헌신 없이는 향기를 발할 수 없습니다. 

베다니의 마리아를 보십시오. 그녀는 주님께 귀중한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어 드렸습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가장 아름다운 헌신의 표상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향유를 붓자, 온 집안에 향기가 가득했습니다. 헌신이 있는 곳에 향기가 풍긴 것입니다.

이 편지를 보낼 당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여러 가지 오해를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을 비난했습니다. 그가 진정한 사도도 아니면서, 자기 욕심을 차린다고 비방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고린도 교회 교인들과 서먹서먹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편지를 보낼 때에는 오해가 많이 풀려 가는 단계였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아버지와 같은 사랑으로 대했습니다. 마치 끝까지 희생하고도 자식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아버지나 어머니 같았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처음에는 바울을 오해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신들을 충동질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악취를 풍기는 사람이며, 바울은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바울에게로 모여오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향기로운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 교우들 모두가 주님을 헌신적으로 섬기게 되길 원합니다. 헌신적인 삶을 사십시오. 여러분을 제물을 드리십시오. 제물이 되려면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구약의 모든 제물은 죽여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욕심을 죽여야 하겠습니다. 교만도 죽여야 하겠습니다. 주님처럼 십자가를 지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다 그런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면 우리 교회에서 향기가 풍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억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냄새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5절을 다시 보십시오.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했습니다. 향기는 코가 있는 모든 사람에게 다 똑같이 풍겨납니다. 상대방을 가려가면서 향기를 발하는 게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구원을 받을 사람에게나, 멸망할 사람에게나, 누구에게나 똑같이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상대방을 가려 가면서 향기를 풍기지 마십시오. 상대방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앞에 악취를 풍기고, 상대방이 내게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향기를 풍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분의 향기를 맡게 하시기 바랍니다.

교역자 수련회에 갔다가 허브 농장에 잠시 들렀습니다. 곳곳에 진한 향기가 풍겼습니다. 벌과 나비들이 날아들었습니다. 한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도 이렇게 꾸미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게 꾸미면 좋겠습니다. 교회 구석구석을 아기자기하게 만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람 허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교우들이 허브가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가 널리널리 퍼지길 원합니다. 세상 곳곳이 썩어 냄새가 나는데, 우리 교회가 방향제 역할을 감당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로 모여 오는 역사갈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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