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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운명의 인봉을 뗄 자 (계 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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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인봉을 뗄 자 (계 5:1~14)

 
성경 66권 가운데서 설교자들이 해석하기 가장 어려워하는 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평가하지 않지만 제가 신학교 다니던 시절 장로교에서는 존 칼빈을 기독교 2000년 역사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취급하고 그의 신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위대한 신학자가 다른 모든 성경은 주석을 써서 해석을 해놨는데 요한계시록만은 주석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그 진리가 너무 깊은 의미가 있어 자기의 실력으로서는 도저히 해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만약 내가 이 모자란 실력을 가지고 억지로 해석을 해놓으면 후대에 많은 성도들이 그것을 읽고 잘못된 신앙을 갖게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은 내가 안하겠다.” 그래서 칼빈의 요한계시록 주석은 없습니다. 

왜 이 성경이 그렇게 어려운가? 이 책이 쓰이던 당시는 기독교 박해 시대입니다. 이 책의 저자가 되는 사도 요한도 로마의 도미시안 황제에게 박해를 받아 영원히 살아나오지 못할만한 장소인 밧모섬이라고 하는 불모지에 귀향을 갔던 때입니다. 제가 밧모섬에 갔을 때 요한계시록을 썼다던 바위 동굴에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섬은 죄수들을 죽으라고 갖다 버리는 섬입니다. 

만약 요한에게 내리신 계시가 그 당시 사람들이 쉽게 읽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말이나 글로 기록이 되었다면 그 당시에 벌써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아무리 읽어도 그 뜻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계시로 되었기 때문에 이 책이 지금까지 이렇게 훌륭하게 보존이 되었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 기록이 앞으로 있을 종말적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암호 문자적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 암호 문자를 해석하는 게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잘 해석하면 박사가 되고 잘못 해석하면 이단이 되는 그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동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사자, 송아지, 독수리, 흰 말, 붉은 용, 청황색 말, 검은 말, 옛 뱀…. 이런 말들이 많이 나오고 숫자도 많이 나옵니다. 24장로, 666 그리고 7이라는 숫자, 14만7천…. 이런 숫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오늘 봉독해 드린 5장을 간단히 소개해 드리면 예수님의 제자 요한에게 갈등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다른 제자들은 다 순교를 당해 죽었습니다. 자기 하나 남았습니다. 그런데 자신도 이제 밧모섬에 귀향 와서 이 동굴 속에서 이렇게 죽어버리고 만다면 지금까지 생명을 바쳐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무참하게 동굴 속의 사도 요한인 자기를 마지막으로 이 섬에서 종말을 고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진리는 누가 전하는가? 내가 마지막인데…. 그리고 인류는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그래서 심각한 고민으로 하나님 앞에 심각한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이 요한에게 계시를 보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의 내용은 요한이 바라본 계시의 내용이 ‘하나님이 오른손에 무슨 책을 한권 가지고 계시다.’ 라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책 속에 요한이 지금 하나님을 향해서 제일 궁금하고 심각하게 질문했던 “장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모든 해답이 들어있는 책을 하나님이 오른손에 가지고 계시다.” 이것을 계시로 봤다는 겁니다. 여기에 대한 해석은 간단합니다. 인류의 모든 문명은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려져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 특별히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의 시작과 끝을 연결하면서 보면 하나님의 계획성을 대략 알 수 있게 됩니다. 창세기는 만물의 시작으로 나타납니다. 요한계시록은 만물의 종말입니다. 창세기는 인간 세상이 시작되는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인간 세상은 끝이 나고 하나님의 세계인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된다.” 죄와 슬픔, 고통의 시작으로, 창세기에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 소산을 먹으리라” 인간 고난이 시작되는데 요한계시록에서는 “끝났다. 다시는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슬픈 것이 없다.” 이렇게 대조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 창세기 3장에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하나님이 금지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2장에 와서는 “내가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게 하리니, 이제 맘대로 먹어라.” 이런 비교가 나타납니다. “너는 필경 흙으로 돌아가서 죽으리라.” 이것이 창세기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영원히, 영원히 살리라.”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에덴동산의 주인이 되라.” 창세기에서는 마귀에게 굴복 당했잖아요? 요한계시록에서는 “마귀를 결박하여 영원히 활동하지 못하게 무저갱에 집어넣는다.” 이 대조에서 우리는 확실한 것 하나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속성은 본래 모습에로의 회복입니다. 에덴을 상실한 인간들에게 다시 에덴동산을 회복시켜 줄 것이며, 죄와 슬픔으로 흑암에 매여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죄와 흑암에서 자유하게 해서 에덴동산의 주인이 되게 하시는 본래 모습에로의 회복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속성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성경의 시작과 끝의 연결을 살펴보면 “결국 인류의 모든 운명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될 것이며 그 장차 되어질 일은 하나님의 오른손에 잡혀있다.” 이렇게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건이 기독교의 종말적 순간을 가져왔는지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우선,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 순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종말이다. 끝났다.” 예수님의 제자들마저도 예수의 복음을 위해서 몸 바칠 수 있는 각오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지나간 3년으로 예수의 책임은 끝이다. 종말이다.”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더구나 로마의 박해 시대 때 기독교의 복음은 다 사라지고 고작해야 원형극장에서 사자에게 뜯어 먹히는 몇 사람의 신자들과 카타콤이라고 하는 굴속에 들어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쓰러지는 성도들뿐이라며 “로마시대에 기독교의 끝이다. 종말이다.” 이런 분위기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에 여러분, 지금 원형극장에 가보십시오. 중앙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승리다.” 그런 뜻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보면 일본이 신사참배 안한다고 한국 기독교를 무참히 박해해서 제암리 교회 교인들이 예배드리는 것을 밖에서 걸어 잠그고 휘발유 뿌려서 몽땅 다 불태워 죽였을 때 ‘아! 한국 교회는 끝났다. 종말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에 인류의 운명이 달려있기 때문에 그 잿더미 속에서 일어난 성도들이 오늘의 세계 최대의 한국 교회를 이룩했습니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북한은 교회도 하나 없고 교인 한명도 없이 공산당이 완전 승리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두고 보십시오. 앞으로 그곳에서 복음의 씨앗은 다시 살아나서 온 세계를 비추는 빛이 될 테니 두고 보십시오. 하나님의 오른손에 인류의 모든 계획이 달려있는 것이지 인간이 하는 일에 하나님의 역사가 달려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지금 요한계시록이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운명은 하나님의 오른손에 잡혀있다. 하나님이 하시기에 달려있다.” 그런데 그것을 열어서 보려고 하니까 일곱 인으로 인봉이 되어 있어서 아무도 볼 수 없다고 “이 책의 인봉을 뗄 자는 하늘 위에도 땅 위에도 땅 아래에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이 자신의 미래입니다. ‘장차 내가 어떻게 될 것인가?’ 왜 관심이 많은가?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관심이 많은 겁니다. 그래서 이러한 인간 심리를 이용해서 생겨난 문화가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사람들이 점쟁이한테 가서 점을 보는 이유가 뭡니까? 미래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관상을 보고 손금을 보고 토정의 비결을 보는 것이 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알고자 하는 인간 심리를 이용한 문화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것이 생깁니다. 아주 인기 있는 사람이 예언 기도를 해준다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장래는 이렇게 될 것입니다.” 라고 기도를 해서 알아내서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기도를 많이 받으러 갑니다. 그런데 기도가 잘 안 맞습니다. 운명적인 일은 장래를 몰라야 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것은 천사도, 누구도 모른다. 하나님만이 아신다. 내일 일은 내일 하라.” 이렇게 설교를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존재도 하나님의 신비는 알 수가 없고 따라서 그의 손에 잡힌 세계와 인류의 운명을 알 수 있는 사람은 하늘에도 없고 땅에도 없고 땅 아래에도 없도다.” 그래서 요한은 너무 답답해서 알려달라고 크게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울지 말라. 이 책의 비밀을 열어서 알 사람이 하나 있다.” 라고 희망을 줍니다. 5절에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그가 누굽니까? 설명하지 않아도 다윗의 뿌리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예수님에 대한 여러 가지 상징적 표현이 나타나있습니다. “그는 일곱 뿔이 있다.” 능력과 권세를 말합니다. 성경에 뿔은 힘의 상징입니다. 짐승들이 뿔이 없으면 아무 힘을 쓰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시편 18편 2절에도 “주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이렇게 말했으며 또 어떤 사람이 기도를 해서 응답이 왔을 때 그의 고백하는 말은 “주께서 내 뿔을 높이셨으며”라고 표현합니다. 그 다음에 일곱 눈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뭡니까? 온 세상을 다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일곱 숫자를 완전수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럭키 세븐(lucky seven)’이라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일곱 교회는 온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를 총 망라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뿔 능력이 있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일곱 눈을 가지시고 일곱 교회를 보고 계시다. 온 세상을 다 보고 계시고 모든 능력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 그가 이 책의 비밀을 열어줄 자격이 있다.” 어린 양의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오른손에게 책을 취하셨다함은 하나님의 권세가 어린 양 예수에게 주어진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마지막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므로 내가 이 권세를 또 너희에게 줄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하나님의 권세가 어린 예수에게 주어졌다.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경배하겠다.” 이 네 생물은 도대체 무엇인가? 사자, 소, 사람, 독수리 이런 생물들이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을 읽어보시면 알게 됩니다. 유대 민족은 열두 지파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열두 지파가 길을 갈 때는 언제나 세 지파씩 넷으로 나눠서 동서남북에 같이 행진을 하는데 그때마다 그들이 들고 가는 깃발이 있습니다. 그 네 깃발이 그려진 그림이 있습니다. 유대 지파는 사자입니다. 르우벤 지파는 사람입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소, 단 지파는 독수리였습니다. 그것을 왜 들고 가는가? 네 가지 그림은 예수의 속성을 나타냅니다. 사자는 동물 중의 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상징하여 마태복음에 예수 그리스도는 왕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으로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그는 왕이다. 사자다.” 그 다음에 마가복음에는 “수난의 종 예수! 일하는 소다.” 종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다음에 누가복음은 “인자, 참 사람의 모습”으로 인간 예수의 모습입니다. 

독수리는 가장 높은 데 계시는 예수의 신성을 말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말씀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네 생물이 어린 양에게 경배를 드렸다는 것은 온 세상의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에게 경배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천국에는 장로 24명밖에 없다는 것인가? 이것도 구약 성경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일을 대표하는 지파가 레위 지파였습니다. 그 중에서 제사장 단열의 수가 24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전을 대표하는 24단열이 구약 성경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이십사 장로라 함은 모든 성도를 가르치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 어린 양 예수께 경배를 드린다. 그들은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는데 그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 이렇게 구약성경에 나타나 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릴 때 그냥 드리지 않고 향을 피우면서 드렸습니다. 향 연기가 하늘로 올라감과 똑같이 하나님 앞에 올라가라는 뜻으로 언제나 향불을 피워놓고 그 앞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너무 귀하여 천사들은 금 대접에 그 기도를 담아서 하늘나라에 가서 어린 양에게 그 금대접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의 거룩함과 중요성에 대해서 확실하게 우리가 알았습니다. 내가 드리는 기도는 얼마나 귀한지 천사들이 금대접에 내 기도를 담아서 어린 양 앞에 가서 “여기 가져왔습니다.” 라고 보고를 한다고 지금 나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도 기도는 안합니다. 왜 안하십니까?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늘 말합니다. 한 가정에 한 사람만 새벽기도 하라고! 해보세요. 가문에 무슨 일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한번 두고 보세요. 왜 내가 자신 있게 말하느냐 하면 저는 경험이 많기 때문입니다. 보아온 예화 거리가 하도 많아서 그럽니다. 한번 해보세요. 한번 누군가는 ‘우리 가문은 내가 기도하는 사람이다.’ 한번 해보세요. 체험과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그렇게 귀한 금대접에 가져가는 기도를 멀쩡하게 안합니다. ‘독야청청 나는 평생 기도 안하고 그냥 살리라.’ 그들이 모두 같이 노래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어린 양은 그 책을 가지시고 그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만이 내 운명의 인봉을 떼실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 운명의 장래의 인봉을 뗄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점쟁이를 믿지 않고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관상쟁이를 찾아가지 않고 교회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토종의 운명의 비결인 토종비결을 무시하고 성경을 보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이 되시고 하나님의 비밀의 책을 취하신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그 예수를 위해서 우리 평생에 에너지를 아낌없이 희생시키는 일에 즐거운 노래를 부르면서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아! 사람들이 다 참 똑똑하다.’ 특별히 한국 사람은 더 똑똑하고 머리가 좋습니다. 그런데 왜 똑똑하게 계획한 것들이 내 맘대로 안 되느냐 말입니다. 대통령은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서 그 나라에서 최고 브레인을 다 불러서 최고의 머리를 짜내서 나라를 운영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그 나라들이 최고 브레인들이 움직이니까 잘 해야 될 것 아닙니까? 맘대로 안 됩니다. 왜 그럽니까? 제가 확실히 이야기 할 수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머리가 제일 좋은 사람들이 유대인입니다. 못 따라갑니다. 세계는 배후에 유대인들이 다 움직여 나갑니다. 지금 보세요. 오바마와 메케인 다 유대인표 얻으려고 온갖 제스처를 다 쓰면서 아양 떨잖아요? 그들이 안 된다면 안 되니까요. 미국에만 유대인이 700만 가까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하버드 대학 교수의 50퍼센트가 유대인입니다. 뉴욕의 중고등학교 교사들 50퍼센트가 유대인입니다. 그들이 다 움직입니다. 프랑스, 러시아 다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이 다 움직입니다. 머리 때문입니다. 

다행히 한국에 유대인이 없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도 멀어서 올 수가 없었습니다. 또 하나는 가봤자 얻어먹을게 없어서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이 없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다 유대인들이 움직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머리 좋은 사람들이 사는 이스라엘 나라는 인류 역사에 가장 고난스럽습니다. 지금도 고난스럽습니다. 조그만 비도 오지 않는 땅덩어리 하나 가지고 날마다 싸웁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세계에서 제일 강대국이 되고 누구도 당하지 못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거나 하나님 역사에 맞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운명의 인봉은 하나님의 오른손에 달려있습니다. “그 권세를 어린 양에게 주었도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섭리대로 세상은 되어지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대로 안 됩니다. 

따라서 내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의 오른손에 잡혀 있습니다. 그대로 되는 겁니다. 그것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큰 성취를 이루었다고 해도 교만하지 않고 어떤 절망의 고난의 자리에 떨어졌다 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 운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나는 그 손에 잡혀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대로 되어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나라의 불안요소가 많이 생겨지면 국민총화가 깨어지고, 또 어느 나라나 그렇게 되어지기를 바라는 불순 세력이 있습니다. 그러면 나라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경제는 어려워지고 행복도는 떨어지고 어떤 때는 대책 없는 미래 불안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 것인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언제나 하나님이시었기 때문에 인류 역사는 사람들이 잔머리 굴리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쥐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대로 움직여 나가야 됩니다. 로마가 망할 거라고 예측한 사람 누구도 없었습니다. 운명의 인봉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주어진 하나님의 고유 권한이라서 인간의 계산대로 되지 않고 하나님이 계획한 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도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교회 교인들이라고 확실한 통계를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운명의 주인은 누구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이 민족을 지켜보시며 계획된 하나님의 역사를 한 단계, 한 단계 이루어 나가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성을 사도적 관찰로 보면서 순례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내 운명은 어디 달려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손에 잡혀있다. 이 민족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의 오른손에 잡혀 있다. 하나님의 계획대로 될 것이다.’ 이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요한계시록대로 됩니다. 바로 이러한 것을 믿으면서 이 세상을 이겨가는 것이 우리 하나님 백성들의 삶인 것을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진리의 내용입니다. 

성도 여러분! 확실해진 것이 있습니다. 21세기에는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확실한 사명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한국교회와 이 민족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여기에 큰 소망의 빛을 가지고 있는데 다소 주변에는 어려운 요소들이 있지만 우리 모두 끊임없는 기도로 그의 손을 움직여 나가고 우리의 기도는 금대접에 담겨 지금도 하나님께 상달되고 있는 사실에 대한 믿음의 확실성을 가지고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혼란스러운 현실을 믿음으로 이기고 승리하여서 하나님의 뜻의 성취가 바로 우리를 통해서 이 땅에 이루어져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세상은 이루어져왔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되어져감은 저희들은 고백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확실히 한국 교회 성도들을 통해서 그 기도와 헌신도가 세계 선교에 공헌할 수 있는 그러한 시대가 된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고백하오니 하나님이여! 이 민족을 힘 있게 하시고 한국 교회에 복을 주셔서 세계 선교에 책임질 수 있는 십자가 의식의 기쁨과 행복을 아버지가 허락해 주시옵소서. 나 자신의 개인적인 운명의 주인이 하나님의 오른손에 달려있다는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주변에는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으나 하나님이 결코 나를 버리지 아니한다고 하는 확실한 신앙으로 이 세상을 이겨가는 힘 있는 영적 사역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이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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