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다시 뒤집어 보면 (출 34:1~9)

  • 잡초 잡초
  • 214
  • 0

첨부 1


다시 뒤집어 보면 (출 34:1~9)


하나님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3장 20절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사실 우리가 기대하기는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요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이시라면 그래도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가 구하기 전에 미리 알아서 다 준비해 주실 수는 없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하나님께서는 그저 지켜보고만 계시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가 온갖 고생을 하는 것을 그냥 지켜만 보고 계신 것은 아닌가 싶어서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붙잡고 견디어 보고자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이건 도무지 참고 이길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릴 때는 나도 모르게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하나님 이제 제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어떻게 좀 해 주세요” 하고 몸부림을 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그냥 버려두고 계신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 때는 그냥 다 팽개쳐 버리고만 싶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절망 가운데 있는 것 같았는데 가만히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나름대로 피할 길을 준비하고 계신 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감사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또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마련하셔서 능히 감당케 하신다. 하지만 이걸 깨닫기까지의 고통이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지 않습니까?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이 또한 가져가기도 하신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던 욥이 나중에는 내가 하나님과 만날 수 있다면 왜 이런지 따져보아야 하겠다! 나는 도무지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까지 하지를 않습니까? 


먼저 생각할 것은 이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잖아 입니다.

처음에 애굽으로 내려올 때만 해도 너무 좋았습니다. 아들 요셉이 형제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날이 번성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작스럽게 정권이 바뀌면서부터 어려움이 닥치기 시작하는데 하루아침에 노예로 신분이 바뀌고 말았습니다. 무슨 반역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바로가 내어준 땅을 일구면서 그곳에서 소와 양들을 치면서 평화롭게 살았을 뿐인데 백성의 수가 날로 늘어간다고 해서 새로 애굽의 왕이 된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이상 자유민이 아닌 노예로 취급한다고 하는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졸지에 세상이 바뀌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천국과 같은 삶을 살았다면 더 이상은 아닙니다. 우미라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나라에 충성하며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왜 이렇게 되어야 하는지 그들은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도 견뎠습니다. 그래도 이겨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식까지도 죽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모두는 아니고 아들을 낳으면 죽여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리라고 선언합니다.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이러다가 무슨 일 나는 것 아닌가 싶어서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바로를 만나 내 백성을 보내달라고 한 다음부터 애굽의 학대는 더 심해졌습니다. 그런 가운데 펼쳐졌던 10 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이 과연 살아계심을 저들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애굽을 떠납니다. 그런데 애굽을 떠나고 나서 보니 자기들이 가는 길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길과는 전혀 다릅니다. 애굽의 사막지대와 다름없는 그런 사막지대를 통과해 갑니다. 길도 없는 곳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홍해 바다에서 뒤쫓던 애굽 군대를 다 뒤엎어버렸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애굽 군대에 의해서 몰살당할 뻔 했습니다. 겨우 뛰는 가슴을 부여안고 앞으로 나아가다가 석 달 만에 시내 산까지 도착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시내 산에서 불이 타오르고 연기가 솟아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래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와서 전하겠다고 하며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계속해서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 모세는 감감무소식입니다. 백성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자기들만 내팽개쳐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모세가 앞장서서 이끌어주었는데 그 모세가 산으로 올라가버리고 난 다음에는 모두지 모세가 어떻게 됐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헤서는 어렴풋이 알기는 알지만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러다가 영영 모세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건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달라고 아론에게 요청을 합니다. 

하지만 당황스럽긴 아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론 역시 하나님을 직접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저 모세를 통해서 전해주는 말씀을 따라 섬겨왔을 뿐입니다. 그래 그도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스러웠을 것입니다. 자기는 그냥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은 잘 압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보아왔던 대로 금송아지를 새겨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 생각하고 그 앞에 제물도 드리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춤추며 즐거워하였던 것입니다. 

그랬는데 갑자기 나타난 모세가 웬 돌판을 집어던지며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금송아지를 불로 녹인 다음 금을 갈아서 가루로 만들고는 금가루를 물에 넣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도대체 이 백성이 형님에게 무슨 일을 했기에 형님은 그들이 이렇게 끔찍한 죄를 짓게 하셨습니까?”라고 아론을 야단치더니 모세는 진의 입구에 서서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나에게로 오너라.” 그러자 레위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모세에게 모여들었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옆에 칼을 차고 진의 이 문에서 저 문으로 다니며 너희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죽여라.” 레위 집안의 백성은 모세에게 복종했습니다. 그 날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삼천 명 가량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모세가 말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 기꺼이 여러분의 자녀와 형제를 희생시켰으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 것이오.”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끔찍한 죄를 지었소. 그러나 나는 이제 여호와께 올라갈 것이오. 혹시나 여러분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있을지도 모르겠소.” 그리고 난 다음 모세는 다시 산으로 올라가 버립니다. 백성들로서는 기가 찰뿐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날 벼락인지 모르겠습니다. 

자기들은 모세가 하도 내려오지 않으니까 답답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그냥 자기들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기겠노라고 한 것뿐이었는데 모세가 화를 낸 것도 그렇고 무슨 돌판을 던져서 깨뜨린 것도 그렇고 또 레위인들을 통해 애꿎게 삼천 명 가량을 쳐 죽인 것도 그렇고 하나같이 이해가 안 되는 것들뿐입니다. 그래 그냥 두려움 속에 따르기는 해도 납득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얼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그래도 이건 아무래도 아니잖아 하는 불만이 그 마음속에 스멀스멀 일어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서서 어떻게 했는지 그들은 알지 못하기에 더 그렇습니다. 무언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자세히 풀어서 설명이라도 해 주었다면 섭섭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단지 그들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대로 했을 뿐인데 그것도 하나님을 잘 섬겨보겠노라고 한 일인데 그래서 제물을 드리며 더 즐겁게 먹고 마시고 춤추었던 것인데 말입니다. 뭐가 뭔지는 몰라도 이건 정말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번 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더 그렇습니다.

이게 오늘 우리들의 한계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고 알지만 그래도 그 하나님이 직접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라고 해도 때마다 그런 경험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해도 여전히 답답할 때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너무도 힘이 듭니다. 그럴 때 주의 종이라고 하는 사람이 툭 던진 한 마디가 더 마음을 상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목사님이 그러시면 안 되는 거잖아. 너무 서운합니다. 생각할수록 더 상처가 됩니다. 그러니 어떻게 견딜 수가 있겠느냔 말입니다. 

사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면 성도들의 이런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그 아픔이 가슴 깊이 만져집니다. 그러기에 목사 역시 더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 내가 조금만 더 조심스러웠다면 내가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그들의 마음을 헤아렸더라면 하는 자책이 제 마음에 가득합니다. 왜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그저 따뜻한 한 마디가 필요한 그들에게 따뜻한 말은 해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상처만 주었을까? 그래 모세가 다시 산을 오르듯 그렇게 주의 전에 엎드립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죽일 놈입니다. 내가 저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생각 없이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던 나를 차라리 벌하소서. 그리고 저 상처 입은 심령을 주님 위로해 주시고 바로 세워 주옵소서.”하고 부르짖으면서도 그런 제 마음도 찢어질 듯이 아픕니다. 굳어 있는 모습을 보기가 너무도 힘이 듭니다. 아니 그 자리가 비어있을 때는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깨닫는 것은 다시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다시 돌판을 새겨 만들어 가지고 산으로 올라오라고 하신 것은 이렇게 화를 냈던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누가 뭐래도 모세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라고 했어도 그 앞을 가로막았어야 합니다. “하나님 이것까지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번만이라도 용서하소서. 내가 저들을 잘 가르치겠습니다. 아니 나부터 더 다듬겠습니다. 그러니 저들을 죽이라는 말씀만은 거두어 주옵소서.”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이미 모세는 사십 일에 걸쳐서 산 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지 않았습니까? 먼저 말씀을 받고 먼저 은혜를 깨달은 자로서 마땅한 일을 모세는 하지 못했습니다.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불같이 화를 내지 않나 레위인들 보고 백성들을 죽이라고 하지를 않나 하나같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래 놓고는 다시 산위로 올라가버립니다. 아무도 따라오지 말라고 합니다. 산에 그 누구의 모습도 보이면 안 된답니다. 산 근처에서는 양이나 소에게도 풀을 뜯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때 백성들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또 다시 버려진 자식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이끌어 석 달 동안 걸어온 길이 험한 광야였습니다. 길도 없는 곳으로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어 지금 시내산 자락에 있습니다. 누구도 와보지 않은 곳이기에 여기서 어떻게 가나안 땅으로 가야할 지를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도 알 길이 없습니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도대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다시 휙 하고 산으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이제는 조용히 기다릴 뿐입니다. 그 마음들이 얼마나 무거웠겠습니까? 지금이야 다른 곳을 통해서도 위로를 받을 곳이 있다지만 그들은 아니었습니다. 

이윽고 사십 일 만에 다시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가나안 당에 들어가거든 이방 신정을 다 없애고 우상을 다 부수고 그들을 섬기지 말며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의 삼대 절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들은 이곳 광야에서 할 일이 아닙니다. 나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난 다음에는 할 일입니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그걸 지키라는 것은 반드시 너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과 더불어 그럴 때 하나님께서 복 주시겠다고 하는 뜻이 그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후로 하나님께서 친히 내 백성들과 함께 동행하겠노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우리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도 광야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는 다른 입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로서 이 말씀이 어떻게 우리 가운데 적용이 될 수 있겠습니까? 결국은 유월절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언제나 기억하고 이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합당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요 맥추절이란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며 수장절은 그 말씀 안에서 주어진 모든 은혜를 하나도 잃지 않도록 잘 간직하고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상처가 되는 모든 일들을 결국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셔야만 합니다. 그래서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을 해 봐도 결론은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고쳐지지 않는 성격도 결국 성령의 열매가 우리 안에 맺어질 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특히 맥추절은 말씀을 주신 말씀을 선포일이자 신약의 성령 강림절이라는 것은 오직 말씀 안에서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목사도 마찬가지고 우리 모든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예외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따라 살되 성령께서 항상 나를 사로잡아 주시고 이끌어주셔야 합니다. 그 은혜를 언제든지 내 마음에 새기고 간직해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섬기는 자녀들의 마땅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성품의 가장 첫째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오래 참음과 자비와 착함과 성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사랑으로부터 시작해서 절제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성령의 열매가 어떻게 맺어질 수가 있습니까? 오직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제일 앞에 오는 것은 곧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기본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동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쉽게 성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소망하며, 모든 것을 견뎌 냅니다.” 

이 사랑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서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맥추절에 그러므로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귀한 은혜와 인도하심이 저와 여러분 가운데 넘쳐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는 참으로 안 된 사람들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보기보다는 아니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오히려 더욱 더 상대방을 힘들게 만드는 때가 더 많은 그런 일들과 말들을 하고 있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런 일을 뒤늦게 알고 나서 또 다시 그 아픈 상처가 도져버려 힘들어 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보다 더 할까요? 왜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그냥 지켜보고만 계신 것 같은 건 또한 무슨 이유일까요? 그것은 오직 말씀을 따라 성령 안에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적응 훈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따라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길은 나도 잘 되고 자녀 손자들 후손으로 이어지면서 복된 삶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제든지 이 말씀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요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의 감동하심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어떤 자리에 있든지 서로를 축복할 수 있는 성도들이요 서로를 세워나가는 귀한 동역자요 중보자로서의 귀한 삶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