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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사 (히 13: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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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는 제사 (히 13:14~17)


라디오를 듣는데 사회자가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말이 중요하다해서 “말이 씨가 된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 발 없는 말이 천리길 간다 하는 교훈들을 남겼습니다. 말이 중요 하다는 것이지요. 말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람은 말하는 데로 그 인생이 결정되는 수가 많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 인생이 부정적으로 끝나는 수가 많고 사람에게 악을 많이 쓰는 사람은 그 인생이 험하게 끝나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했어요.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돌아옵니다.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저주가 돌아옵니다. 성경에 비교되는 사람이 많아요. 가인과 아벨, 셈과 함, 아브라함과 롯, 야곱과 에서 요셉과 형제들, 다윗과 사울, 이외에도 보면 선으로 산사람과 악으로 산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말을 입술의 열매라 했어요. 열매가 있어요. 결과가 있어요. 

열대지방에 가면 꽃들이 화려합니다. 제가 여행 중에 꽃이 하도 화려해서 코를 대고 향내를 맡아 보았어요. 놀란 것은 향기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필리핀선교 쎈타 뒤에는 꽃을 키우는 농장이 있습니다. 한번은 갔더니 국화를 우리쎈타에 선물로 주어서 여러 화분을 문 앞에 늘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반가워서 냄새를 맡았는데 향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국화인데 향기가 없어요. 향기가 없으니 조화 같은 느낌이 듭니다. 꽃은 보기도 좋아야 하지만 향기가 나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말에도 향기가 나야 합니다. 더러운 구린내가 나면 안됩니다. 말을 번지르 하기만 했지 향기가 없어요. 이런 사람들을 말은 잘하네 하고 사람들이 비웃지요. 말은 청산유수네 하기도 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이런 소리를 들으면 안 됩니다. 말은 되도록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지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입니다. 

본문은 찬송의 제사를 드리자 합니다. 찬송의 제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사요. 로마서를 빌리면 산제사 살아있는 제사 생명이 있는 제사입니다. 생명이 있는 제사는 말 한대로 사는 것입니다. 생명은 운동력이 있어요 그래서 변화가 나타나지요. 말 한대로 살면 변화가 있어요 
자신이 변하고 주변이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는것이지요. 그 변화는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변화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지요. 

1이들은 기둥처럼 쓰여집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기둥처럼 쓰여 지는 사람이지요. 저희 교회가 오래전에 리모델링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때 성가대석을 늘리고 강단도 뒤로 밀어내서 이만한 공간을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 보는 것처럼 옛날에 지은 집이라 벽에 기둥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장애가 많아요. 문을 하나내는데도 공간을 넙ㄹ히는데도 기둥이 걸려요. 기술자를 불러서 진단을 했어요 기둥을 잘라도 되겠는가? 몇 개는 잘라도 되는데 네 모퉁이 기둥은 절대로 자르면 안 된다는 거지요.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기둥이라고 다 같은 기둥이 아니다. 어떤 기둥은 오히려 방해가 되는 기둥도 있고 어떤 기둥은 정 말 소중하게 쓰임 받는 기둥이 있구나, 하는 것입니다. 세우지 않아도 될 기둥 세워 답답한 것처럼 세우지 않을 일꾼 세워 참으로 교회가 답답 하고 장애만 되는 경우도 있다 하는 사실입니다.

기둥이 되려면 모퉁이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모퉁이 기둥의 상징은 섬김입니다. 온 건물을 떠 받들고 있는 것이 사명이지요. 주님은 오셔서 자신이 모퉁이 돌이 되셨다 하셨어요. 그 말씀이 요즈음 깨달아 집니다. 모퉁이 돌이 뭐예요. 기둥을 떠 받치는 거예요. 다 주고 다 사랑하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모퉁이 돌이지요. 우리는 그 모퉁이 돌 위에 세워진 기둥 들입니다. 주님이 내 아래서 교회를 받들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주님 위에서 교회를 받들고 있지요. 그럼으로 이 모퉁이 돌을 벗어난 기둥은 의미가 없어요. 

잡히시던 날 밤 성찬식하면서 예수님이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습니다. 섬김입니다. 베드로가 주여 내 발은 절대로 씻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지요. 내가 너를 씻지 않으면 내가 너와 아무 상관이 없다. 무엇입니까? 섬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내가선생으로서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도 가서 이렇게 행하라 가르쳤습니다. 베드로가 살면서 그 마음에 교만이 떠오를 때마다 주님이 자신의발을 씻은 것을 생각 했을 것입니다. 주님에게 섬김을 받아야 합니다. 그 섬김으로 나아가 봉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네 모퉁이 기둥, 모퉁이 돌 되신 주님위에 세워진 기둥이 됩니다. 

2,이들은 십자가 지고 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는 제사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잠시라도 지고 간 사람은 제자들이 아니고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그 말 잘하던 제자들은 어디로 갔는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자원해서 지었던 억지로 지었던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지고 간 사람은 시몬뿐입니다. 우리도 지고 갈 십자가가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교회에다가 지고 갈 십자가를 가져다 놓으셨습니다. 누가 지고가야 할런지는 모르나 누군가는 지고가야 합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지난 주일에 말씀 드린 것처럼 사랑의 확증입니다. 십자가 지고 가는것 하나님의 사랑을 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내용이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아래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인종이나 사상이나 지역이나 종교를 초월해서 생명은 사랑 받아야 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겟세마네의 피맺힌 기도 후에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사랑하기에 순종입니다. 거기에 거부가 없습니다. 다른 덧붙임이나 이유가 없습니다. 순종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사랑하기에 다 주고 가셨습니다. 피 한 방울까지 다주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철학자는 사랑이 뭐냐? 보고, 듣고, 주는 것이다. 주고 또 주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면 주님만 보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처럼 다주고 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이유는 달지 마세요.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다 줄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피곤하지도 않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니까? 14년도 하루 같았어요. 사랑하면 체면도 없습니다. 아무데서나 손잡고 아무데서나 신랑자랑이고 색시 자랑입니다. 그래서 애처가도 나오고 공처가도 나오고 요즈음은 경처가도 나왔데요.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입만 열면 예수자랑입니다. 

사랑하면 쫒아 다닙니다. 막달라 마리아 그림자처럼 예수님을 따라 다녔어요. 마누라 사랑하니까? 마누라 가는데마다 쫒아 다니더라구요. 요즈음 마켓에 가보니 시장 바구니들고 쫄랑쫄랑 따라 다니는 남자 많아요. 사랑하는데 누가 뭐라고 할꺼요. 

사랑하면 다 맡깁니다. 통장도 맡기고 집문서도 맡기고 다 맡기는 거예요. 주님 사랑하면 우리의 모든 것 다 맡기고 사는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의 십자가 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릴 사랑해서 십자가 졌듯이 우리도 하나님우해 교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십자가 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3. 이들은 경건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까지도 자신들의 죄인 양 그렇게 깨어서 기도하는사람,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들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건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교회의 거울입니다. 교회의 얼굴입니다. 거울은 거짓말이 없습니다. 감사하면 감사의모습으로, 찬송하면 찬송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달라지면 우리교회가 달라지고 한국교회가 달라질 것입니다 

어느 장로님이 천국에 갔습니다. 가보니 자기교회 별 볼일 없는 집사가 있는데 천사들 서너 명이 둘러서서 대접을 잘합니다. 장로님 생각이 집사도 저렇게 대접을 하니 장로는 특별대우를 해주겠구나 했는데 아무도 반기는 사람도 없고 물한 모금 마시라는 천사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천사를 불렀습니다. 이보오 천사 사람이 왔으면 뭔가 대접을 해야 할게 아니오. 나는 장로요, 그랬더니 천사가 아무말도 하지 않고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그래서 쳐다보니 “장로는 셀프”라고 써있습니다. 기분이 나쁘지만 할 수 없이 혼자서 음식을 가져다 먹다가 자기교회 목사님이 생각났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어떻게 되었나 그래서 천사에게 묻습니다. 우리교회 목사님은 어디 계시오. 천사가 하는 말이 목사님은 배달 갔습니다. 하더랍니다. 

장로는 셀프입니다. 장로만 셀프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셀프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누가 시켜서 합니까?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합니다. 대접을 하고 보살피고 하는것은 어린아이나, 아니면 병든 환자나, 아니면 노인이 되어 치매에 걸린 사람들에게만 해당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 사지가 멀쩡한 모든 사람은 셀프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찾아서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성숙한 성도요 교인입니다. 거기에 산제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사는 스스로 제물이 되는 제사입니다.

제물은 죽은 것입니다. 죽어 살아야 합니다. 어려서 집안에 일이 있으면 닭을 잡는데 그때는 모가지를 비틀어 잡았지요. 그런데 잘못 비틀면 설죽어서 털을 다 뜯었는데 후다닥 일어나서 도망을 가는 거예요 그러면 온 집안이 난리입니다. 교회도 설죽어서 문제입니다. 십자가에서 온전히 죽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산제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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