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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 (막 3: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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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 (막 3:13~15)


카자흐스탄은 우리 나라보다 큰 데 인구는 몇 백만에 불과하였습니다. 
겨울이면 영하 40도에서 50도까지 내려 갑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벌판입니다.
그 벌판을 달릴 때 빨리 가려고 혼자 자동차를 몰아 달립니다. 아직 미개발국이라 자동차 생산이 없습니다. 모두 중고차입니다. 만일 빨리 가려고 혼자 가다가 벌판에서 자동차가 고장나면 거의 다 얼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고가 겨울마다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멀리 가려면 두 세 대가 모여서 같이 가야 합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합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드리려고 합니다. 
썬 다씽 이야기입니다. 눈이 엄청나게 많이 온 어느 날 썬다씽은 전도하기 위허여 험악한 산 길을 혼자 걷고 있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 넘어 동네로 복음을 전하러 가는 썬다씽의 발걸음은 사명의 발걸음이었습니다. 그 때 산 길에서 마침 모르는 이를 만나 친구삼아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의지가 되었습니다. 
가다보니 한 사람이 눈길을 걷다가 지쳐서 쓰러져 있었습니다. 썬다씽이 말했습니다.
<우리 이 사람을 업고 가십시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내 몸 하나 가기도 힘든 데 이 사람을 업고 가다가는 같이 죽어요.> 그리고 거절하였습니다. 썬다씽은 그가 거절한다고 그 사람을 죽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전도자 양심에 죽는 사람을 그대로 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다가 같이 죽더라도 업고 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 사람을 등에 업었습니다. 천근만근이었습니다. 온 몸에 진 땀이 흘렀습니다. 한참을 걸었습니다. 지쳐서 같이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등에 업힌 사람은 얼었던 몸이 녹기 시작하였습니다. 썬다쌍의 몸이 뜨거워졌기 때문입니다. 서서히 의식이 돌아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다 쉬고, 쉬다가 갔습니다. 드디어 등에 업히지 않고 같이 걷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되었습니다. 한참 가다보니 한 사람이 길거리 쓰러져 있었습니다. 얼굴을 들치고 보니 빨리 가겠다며 혼자 가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얼어 죽어 있어 있었습니다. 추워서 얼어 죽은 것이었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일하실 때 제일 먼저 하신 일은 12 명 제자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혼자서도 무슨 일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내가 12 영이나 되는 천사를 동원시키지 못 할 줄 아느냐?>
12영은 12만명입니다. 예수님은 한 마디로 천사 군사도 동원시키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갈릴리 바다를 건너실 때 배가 없어도 건너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갈길리 바다를 걸서어 건너녔습니다. 어느 관광객이 갈릴리 바다에서 배를 타려고 요금을 물으니 엄청나게 비쌌습니다. 관광객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걸어서 건너셨구나!>
예수님은 사람의 도움없이도 하시고 싶으신 일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12명 제자를 부르셔서 같이 일하셨습니다.
이유가 분명합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 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게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함이러라>

예수님이 12명 제자를 부르신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12명 제자를 부르신 이유를 분명히 본문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2. 또 보내사 전도도 하게 하며
3. 귀신을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는 12명 제자를 부르시고 예수님과 같이 일하자고 하셨습니다. 전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귀신도 내어 쫓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들에게 우리끼리 같이 가라고 명하십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님이 같이 있어줄 테니 예수님과 같이 일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

처음에 제자들은 둘씩 둘씩 짝지어 같이 다니며 전도하고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후에는 12명 제자들이 모두 한 명씩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일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같이 가면 멀리 갑니다. 예수님과 같이 가면 멀리 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12 제자들은 예수님과 같이 멀리 갔습니다. 온 세계를 복음을 염색하였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심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오늘 제목을 다시 외치려고 합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주님과 같이 가면 됩니다.

주님같이 가면 다음과 같은 유익이 있습니다.

1. 시너지 효과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철사를 가지고 바늘을 만들면 하루 종일 25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둘이 같이 만들면 625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말 한 마리가 마차를 끌면 1톤을 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마리 말이 같이 끌면 5톤을 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10을 쫓으면 두 사람이 같이 쫓으면 20명을 아니라 1000명을 쫓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시너지 효과라고 합니다. 같이 걸으면 시너지 효과가 있습니다. 같이 한 마음으로 일하는 것은 큰 힘이 됩니다.
예수님이 12명 제자들과 같이 일하려고 하셨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면 됩니다. 예수님은 빨리 가려 하지 않으시고 멀리 가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2000년을 달려 왔습니다. 온 세계로 달려 갔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일이 있을 때마다 같이 하면 큰 시너지 효과가 있습니다.

특별히 주님과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시너지 효과가 그 어느 누구와 같이 가는 것보다 큽니다.
제자들을 부르셔서 같이 있자고 하신 말씀이 본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 시너지 효과가 큽니다.

돌아가신 김우영 목사님이 하셨던 말씀이 설교 도중 문뜩 떠올랐습니다.
식인종들에게 선교하셨던 아셀트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아셀트 선교사는 생명을 걸고 식인종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여 주신다는 말씀 하나 확실하게 믿고 선교에 임하였습니다. 식인종들이 여러 번 아셀트 선교사를 끌고 가서 잡아먹으려고 시도하였습니다. 밤마다 기웃거렸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찾아오기만 하면 어김없이 창칼을 들고 무서운 눈초리로 지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서워서 떨다가 그냥 가곤 하였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식인종들이 아셀트 선교사를 낮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낮에는 없는 데 밤이면 지키고 있는 사람이 무누입니까?>
아셀트 선교사는 이상하게 생각하며 대답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지키는 사람이 없습니다.>
식인종들이 말했습니다.
<거짓말 마시오.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한 두 명이 본 적이 아닙니디. 우리가 당신을 잡아먹으려고 여러 차례 왔지요. 그러나 무섭게 지키고 있는 그 때문에 접근하지 못 하고 돌아 
그 때에 아셀트 선교사에게 떠오르는 영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쓸모 없는 죄인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지켜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저를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했던 불신앙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아셀트 선교사는 순간적으로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과 같이 가면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같이 가십시오. 나는 설교 하러 강대상에 올라 올 때도 주님을 초청합니다.
<주님 같이 올라가시지요.>
TV 녹화를 할 때에도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입으로 소리내어 외칩니다. 
<주님 같이 녹화하시지요.> 지금 설교 준비하면서도 외칩니다.
<주님 옆에 같이 계셔 주세요.>

지난 주간 시카코 중북부 목사님 수련회를 인도하고 돌아 왔습니다. 정반대 시차였습니다. 그러나 가서 내리자 말자 첫 시간을 일도하고, 마지막 시간을 딸리 끈내고 비행기륽 탔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4일간 시차를 느끼지 못 하였습니다. 주님께 그렇게 기도하였더니 주님이 그대로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1분도 시차를 느/끼지 못 하였습니다. 정말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주님과 같이 가면 멀리 갈 수 있습니다.


2. 같이 가면 격려가 됩니다.

홀로가다가 절망하면 누가 위로하여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둘이 가다가 한 명이 넘어지면 다른 사람이 일으켜 줍니다. 상처가 나면 상처를 싸매 줍니다.
그렇기에 혼자가지 않고 같이 간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9-12)

신학교 동창 목사님 중에 한 명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혼자 필리핀 여행을 떠났습니다. 당뇨가 심하였던 친구인 데 혼자 가서 갑자기 저혈당이 되어 길거리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습니다. 아는 이도 없습니다. 길거리에 쓰러져 있다가 간신히 누가 병원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하여 주지 않았습니다. 죽었습니다. 여권을 보고 대사관에서 연락하였습니다. 그래서 시신을 한국을 가지고 왔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누가 옆에 있으면 안 죽습니다.> 고등학교 동창중에 윤 용일이라는 친구가 카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가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배재 동창회가 아주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끈끈한 동문의식으로 늘 서로 도와주며 외국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 친구 사업체에 불이 났습니다. 배재인들이 돈을 모아 주었습니다. 그는 이제 완전히 이민생활이 끝난 줄로 알았는 데 동창들의 도움으로 다시 사업을 시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저런 동문들 은혜를 갚기 위하여서라도 죽을 힘을 다 하여 일 하자”라고 결심하였습니다. 슈퍼를 개업하였는 데 얼마나 잘 되는 지 마트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내가 그 곳에 들렀더니 “가지고 가고 싶은 만큼 가지고 가라”라고 시원스럽게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같이 가면서 격려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같이 가면 멀리 갑니다. 그리고 격려가 됩니다.
하물며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실 때 주님의 격려는 가장 큰 격려가 됩니다.

인생길읅 걸어가다 보면 정말 어려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누구애게 말할 수 없어서 혼자 고민할 때 나는 주님의 사진 곁으로 갑니다. 그리고 주님을 물끄러미 쳐보 봅니다. 그리고 애절하게 불러 봅니다.
<주님!>
주님은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내가 대신 대답합니다.
<오냐!> 나는 또 말합니다.
<주님! 주님의 종 강 문호 가 왔어요.> 주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여 주시면 좋은 데 아무 말 없으십니다. 내 입으로 내가 말합니다.
<그래. 왔구나! 너 무슨 문제로 고통당하는 지 내가 알지.> 그리고 내 입으로 주님이 해답을 막 말씀하여 주십니다. 내가 내 입술을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내 입술을 주장하여 주십니다. 놀라운 지혜가 나옵니다.. 주님의 격려가 나옵니다.
<강 문호야! 내가 세상을 이긴 것같이 너도 세상을 넉넉히 이실 수 있느니라.>
나는 이 글을 시카코에서 돌아 오는 길에 비행기에서 정리하였습니다. 주님이 격려하시는 음성을 얼마나 세밀하게 들었는 지 한참 넋을 잃고 눈물을 닦았습니다.
<강 문호야! 내가 네 진심을 알아. 내가 네 중심을 알아. 네가 얼마나 갈보리 교회를 사랑하는 지 알고 있지. 전기 한 등을 얼마나 아끼고, 종이 하나 아끼려고 편지지 이면지까지 사용하는 것을 내가 보았다. 갈보리 교회를 만명 교회로 이룰 려고 발버둥치는 네 심정을 내가 알지. 내가 같이 할 거야. 누가 몰라 주는 것같아도 알아 주는 이가 있단다.>
혼자 가면 빨리가요. 그러나 주님과 같이 가면 멀리 갈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 전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나포레옹이 프랑스 사관학교 시절이었습니다. 친구들은 그를 왕따 시켰습니다. 세 가지 별명을 불렀습니다.
<촌놈! 가난뱅이, 땅딸보.>나폴레옹은 너무나 괴로워서 학교를 포기하려고 하면서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어머니의 답장은 이런것이었습니다.
<내 아들 나폴레옹아! 비굴해지지 말아라. 좋은 환경에서 영웅이 탄생한 적이 없다. 네게 무서운 적이 있다. 바로 허영과 사치다. 가장 귀한 친구는 독서다. 책을 읽거라. 나는 절대 낙심하지 않는다. 너를 믿는다. 내가 함께 하마.>

나폴레옹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장군의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
오늘 지금 이 시간 주님이 여러분에게 외치는 말씀을 나는 확싫히 들었습니다.
<가롭리 성도들아! 용기를 내라. 나와 같이 가면 멀리 갈 수 있다. 어떤 문제에도 해답이 있다. 어떤 강에도 다리가 있다. 어떤 장글에도 길이 있다. 헤쳐 나가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주님과 같이 가면 멀리 갑니다.


3. 같이 가면 공격당하지도 않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합니다. 같이 가면 격려가 되고 누가 감히 공격하지도 않습니다. 같이 있는 사람을 공격하다가는 자기가 오히려 당할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왕국을 가끔 봅니다.
사슴은 연약합니다.
사슴과 호랑이가 싸우면 백번 싸워도 백번 다 사슴이 이깁니다. 그런데 호랑이 사슴을 잡아 먹으려고 할 때 숲속에 숨어 한 마리를 노립니다. 같이 있는 사슴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습니다. 홀로 떨어져서 풀을 뜯고 있는 사슴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같이 있는 사슴에게 대들면 다른 사슴들이 한꺼번에 공격하면 아무리 호랑이라도 도망치게 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늘 같이 계셨습니다. 그러면 마귀들이 공격하지 못 합니다. 

  큰 구렁이가 병아리를 잡아 먹으려고 따라갑니다. 잡히면 한 입에 들어갑니다. 병아리라 도망치다가 엄마 품속으로 쏙 들어갑니다. 그러면 구렁이는 감히 덤벼 들지 못 합니다. 어미 닭은 새끼를 보호하려고 생명을 걸고 싸우기 때문입니다. 죽을 줄 알면서도 덤빕니다. 무섭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덤비면 그 어떤 적도 벌벌 떨게 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과 함께 한 제자들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같이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과 떨어지면 사고가 납니다.
주님과 같이 걸어가는 길은 멀리 가는 길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 공격을 막아 주십니다.

한 목사님께서 부흥회를 인도하시러 여수행 기차를 탔습니다. 잠을 자려고 하였지만 잠은 오지 않고 옆 노인에게 전도하라는 성령의 감동이 자꾸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서로 말문을 연 후 예수를 믿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노인은 화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이제 보니 예수쟁이로구만. 내가 뭐가 답답해서 예수를 믿어>
그래도 전도를 게속하자 노인은 순찰중인 안내원을 불렀습니다.
<이봐요. 내 돈 내고 편히 가려고 일등칸에 탔는 데 이 예수쟁이가 날 보고 자꾸만 지옥에 간다고 공갈을 하니 더는 못 참겠소. 차비를 물어주든지 이 예수쟁이 입을 막아 주든지 하시오>
창피를 당한 목사님이 얼굴을 숙이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자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이 소주를 사오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까는 미안했소. 소주나 한 잔씩 하며 이야기 하십시다>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할아버님. 그렇게 술만 좋아하시면 지옥 갑니다>
그러나 노인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쯤 흘렀습니다. 얼마 전 호통을 치던 안내원이 목사님께 다급하게 달려와 물었습니다.
<아까 그 노인을 아시나요?>
<아니요 모르는 분인데 그냥 전도를 했지요?>
안내원이 말했습니다.
<그 노인은 술에 취해서 화장실로 갔어요. 승강구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신다고 하다가 비틀거리더니 떨어져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십시오. 그러나 멀리 가려면 우리 같이 가야 합니다. 특별히 주님과 같이 가야 합니다. 그러면 멀리 갈 수 있습니다. 그려면 시너지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격려하여 주십니다. 주님이 공격을 막아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전라도 광주에서 일어 났던 사건 하나를 소개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 네 명이 에레베이터를 탔습니다. 그런데 고장이 나서 그 속에서 67시간을 갖혀 있었습니다. 4명은 잠바 두 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추웠습니다. 그래서 꼭 끼어 안고 잠바를 덮고 추위를 견디고 살았습니다. 같이 살아야 합니다. 서로 어울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강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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