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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현 (대상 1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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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현 (대상 16:7~13)
  
 
  우리 교회는 일 년에 두 번에 걸쳐서 감사의 예배를 공식적으로 드립니다. 처음 감사는 맥추절이라 표현했습니다. 성경에는 일명 초실절이라 하기도 하고 칠칠절이라고도 하며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초실절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린다는 의미이고, 칠칠절이란 것은 유월절을 지난 7주지난 후에 드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오순절이란 바로 유월절 지난 50일째 되는 날이 되기 때문입니다. 

맥추절이라고 붙여진 것은 밀 수확이 이때가 되기 때문에 봄에 나는 보리를 생각하면서 맥추절이라 일컫는 것입니다. 태양력으로는 5월말에서 6월에 해당되는데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전반기 삶을 생각하면서 반년동안 여러 가지 삶의 열매를 생각하면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감사의 예배는 절기가 아니더라도 많이 강조되는 부분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감사절을 두 번이나 지키도록 했는지 모릅니다. 감사란 특별한 조건에서 나오는 것이 되어서는 참된 감사가 아닙니다. 

사실은 감사는 계절도 시간도 없습니다. 감사는 어느 곳에서든 캐낼 수 있는 마음 따뜻한 선물입니다. 어느 때든 어느 곳에서든 감사를 캐어내면 감사가 되고, 불평을 캐어내면 불평이 나옵니다. 감사는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해석입니다. 부족하여도 감사를 잉태한 자는 감사를 낳고, 풍족하여도 불평을 잉태한 자는 불평을 낳습니다. 

감사는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생각의 크기이고 믿음의 크기입니다. 소유에 비례하는 감사는 소유에 비례한 불평을 낳고, 믿음의 감사는 조건에 메이지 않아 세상을 행복하게 하고, 자신을 풍요롭게 합니다. 감사는 은혜를 아는 자의 마음의 열매이며, 섭리를 수용하는 자의 사유의 방식입니다. 감사한 만큼 삶이 여유 있고 따뜻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맥추절을 맞았습니다. 사실은 대부분의 교회들은 지난 주일에 지켰습니다만 저희 교회는 오늘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해마다 봄에는 맥추절, 가을에는 추수감사절로 지키면서도 왜 감사해야 하는가? 에 대한 감사해야 할 이유는 말씀을 통해서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감사해야 할 조건을 찾거나 감사를 왜 해야 되는가의 당위성 보다는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매주일 감사 헌금을 드리기도 합니다. 감사드린다고 하면 입술로 하는 감사와 헌금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현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읽은 본문을 통해서 감사의 표현방법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마음으로 하는 것과 말로 표현하는 것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을 통해 의사전달을 하게 됩니다. 서로의 생각과 뜻을 전달하게 됩니다. 사랑, 기쁨, 감사, 슬픔, 비통함 등 이런 감정적인 것은 표현이 중요합니다. 사랑을 할 때 말로만 하는 사랑도 괜찮지만 입술에 발린 소리가 아닌 실제적 표현을 원합니다. 때로는 말 한마디가 엄청난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반복된다면 신실성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표현을 원합니다. 사랑도 구체적인 표현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감사한 마음도 구체적으로 표현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는 감사의 대상은 궁극적으로는 변함이 없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감사의 대상은 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의 방법과 표현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감사의 삶을 바르게 살기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현방법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감사하는 마음을 입술로 표현해야 합니다.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입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로마서10장에 보면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7-8절에 보면 “그 날에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를 세워 먼저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여” 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도록 시켜라 는 것입니다. 교육하라는 것입니다.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방법과 왜 감사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가르쳐도 잘 듣지 경우가 허다합니다. 미국 신학자 하비 콕스는 “현대인들은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감사와 기쁨의 마음은 잊어버렸다”고 했습니다. 딤후3장에 보면 말세에 고통당하는 때가 이르면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 중의 한 가지가 “감사치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사람들이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로든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살후1장3절에 보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찌니 이것이 당연함은”라고 했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자신부터 감사를 배워야 하며, 우리 자녀들에게 감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골로새서3장15절에 보면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명령어로 말씀하셨습니다. 17절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 마음을 입술로 표현해야 합니다. 

7절에 보면 “감사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감사하고 입술로 감사하는 표현이 되지 않으면 구체적인 행동으로 감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실 입술로 감사하는 것이 쉬울 것 같아도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으면 감사하다는 말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감사의 조건을 찾아서 하려면 하기가 어렵습니다. 

윤덕수 목사님이 중풍병으로 반쪽밖에 사용할 수 없어서 죽기만을 바라고 있을 때 주님이 한 번은 아무 무섭게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야, 이놈아! 네가 명색이 목사인데 너는 어떻게 반쪽 없어진 것만 불평할 줄 알았지 남은 반쪽은 감사할 줄 모르느냐? 반쪽가지고 무엇하느냐고 항의했는데 너는 없어진 것만 가지고 툴툴댈 줄만 알았지 한번이라도 ‘하나님! 그래도 반쪽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해 봤니? 

네가 한번 대답해 바라. 네가 반쪽이라서 못하는 것이 뭐가 있니? 네가 반쪽이라서 볼 것을 못 보니? 네가 반쪽이라서 냄새를 못 맡니? 네가 반쪽이라서 먹을 것을 못 먹니? 꼭 좔좔 쏟아야 말이니? 천천히 말하면 안 되니? 반쪽이라 아무것도 못한다고? 네 왼손으로 글 연습하여 설교원고 쓰면 안되니? 꼭 쌩쌩 달려가야만 되니? 남을 의지하고 비틀대면서 걷는 것은 걷는 것이 아니니? 네가 못하는 것이 뭔지 말해 보아라.” 

그래서 생각해 보니 아직도 남은 게 너무 많더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일어나기를 하나님께 날마다 호소하는 아내가 옆에 있었고, 두 자식이 있었고, 자기 동생보다 더 나를 위해 눈물 흘리고 안타깝게 애쓰는 수십 명의 장로들이 있었고, 밤을 새워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목사님이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잘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를 한번만 살려주시면 두 번 다시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며 살겠습니다.”라고 간절히 회개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생명이 있음을 감사하고, 먹을 수 있으니 감사하고, 빚을 지고 있던지 굶지 않고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고, 우리 주위에 이웃이 있고 성도가 있으니 감사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곁에 구역식구들이 계시고 목사님이 계시니 감사하십시오. 아침이 되어 눈을 뜨고 일어나면 다시 생명 주심을 감사하고 일어날 수 있게 하심을 감사고 햇살을 받으며 걸을 수 있으니 감사하는 등 감사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먼저 입술로 감사합시다. “주님 감사해요!” 


둘째, 주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만민 중에 전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증거 해야 합니다. 8절 하반절에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고 했습니다. 9절 하반절에도 보면 “그의 모든 기사를 전할지어다.” 그리고 12-13 절에도 보면, “그의 종 이스라엘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의 행하신 기사와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법도를 기억할지어다.” 시편9:1절 말씀에도 보면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감사하는 사례가 있으면 그것을 전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면 그 감사사례를 다른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전해야 합니다. 고후9장11절에 보면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예루살렘교회를 위하여 너그럽게 헌금한 것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너그럽게 헌금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고후2장17절에 보면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여기서도 바울은 자신의 복음전파 하는 과정 속에 여러 가지 핍박과 환란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기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한다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들을 드러내어 자랑하는 것이 감사함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셋째, 찬양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9절 상반절에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고”그리고 골로새서 3장 16절에 보면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감사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것이 찬양입니다.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우리가 입술에 감사가 넘쳐야 찬양도 쉽게 흘러나오고 그 찬양이 은혜롭습니다. 

느헤미야12장24절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령대로 순서를 따라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고” 27절에 보면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 46절에 보면 “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에는 노래하는 자의 지도자가 있어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노래와 감사하는 노래를 하였음이며” 

시편18편49절에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시편32편2절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시편106편47절 “우리가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이사야51장3절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다니엘2장23절 “나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성경구절을 살펴본 바에 의하면 감사하는 것과 찬양하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찬양이 넘치는 분은 감사가 넘치는 분들이요, 감사가 넘치는 분들은 찬양이 입술에서 흘러나오게 됩니다. 


넷째, 여호와의 이름을 자랑하는 것으로 표현해야합니다. 
역대상16장10절 말씀,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감사하는 성도는 여호와의 이름을 자랑합니다.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게 됩니다. 시편79편13절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감사하는 성도들의 입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입에 발렸습니다. 입만 벌리면 나옵니다. ‘우리 하나님이 해주셨지요. 너무 감사합니다.’ 예를 들면 ‘어떻게 그렇게 좋은 신랑 만났어요.’라고 할 때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예, 그렇지요. 너무 좋은 신랑 만났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요’ 그리고 이렇게 곁들여서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어머님 아버님께 감사하지요. 왜냐하면 좋은 아들 낳아주셔서 제 신랑으로 주셨으니까요. 그리고 부족한 저를 며느리로 맞아주셨느니까’ 반면에 남편들에게 ‘어떻게 저런 아내를 얻었어요?’ 라고 하면 ‘예, 감사하지요. 하나님이 저렇게 좋은 돕는 베필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런 아내를 낳아서 길러주신 장모님 장인어른께도 감사하지요’ 

감사의 표현을 통하여 결국 부모님의 이름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항상 하나님이 제일 먼저 나오지 않습니까?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이름을 많이 자랑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부모님께 감사하고픈 마음이 일어나면 부모님의 이름을 자랑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곧 감사의 표현입니다. 


다섯째, 여호와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는 감사의 표현입니다. 
11절에 보면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그분이 지금까지 나의 인생을 다 이끌어주신 능력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남은 인생을 살면서도 계속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그분의 이름을 찾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감사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케냐 마사이 족에게 선교하는 안찬호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마사이 족은 “건기가 되면 소를 몰로 이동을 한다고 합니다. 우기가 시작되는 10월말쯤 돌아오는데 어느 해에는 소들이 너무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사람들도 지쳐있었습니다. 추장의 소가 153마리였는데 91마리나 죽었고, 선교사의 소도 30마리 중 12마리가 죽었습니다. 추장이 더 이상 예수를 믿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심방을 갔으나 심방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선교사는 기도했습니다. “더 이상 예수를 안 믿는다.”고만 말하지 않도록 “추장을 지켜주옵소서. 변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일이 되어 예배시간이 다 됐는데도 추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그때 밖에서 소울음소리가 들렸고 나가보니 추장이 하얀 소를 몰고 교회에 왔습니다. 

하얀 소는 마사이 족이 성스럽게 여기는 동물로 축제 때만 잡는 소입니다. 그런데 추장이 선교사를 보면서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더니 기둥에 소를 매어놓고 교회 안으로 들어와 “목사님, 간증하고 싶습니다. 제게 약간의 시간을 주십시오.” 그래서 선교사는 너무 놀라운 일에 허락을 했는데 추장이 “할렐루야!” 라고 소리를 치더니 “예수님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이번에 알게 됐습니다. 너무 감사하여 가장 좋은 소를 하나님께 감사예물로 드립니다.” 

모두가 놀라서 웅성거렸습니다. 화를 내고 예수 믿지 않겠다고 할 것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했는데 추장이 오히려 그것을 감사하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추장이 그렇게 감사하는 이유는 “제소 62마리와 목사님의 소 18마리가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소를 91마리나 죽이셨습니다. 처음에는 야속했는데 계속해서 죽어가는 소를 보고 기도했습니다. ‘지켜 주옵소서. 살려 주옵소서.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소를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제 소는 91마리를 죽일 수 있는 분이라면 153마리를 모두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기도를 들으시고 더 이상 죽지 않게 하셨습니다. 

제소는 91마리 밖에 죽지 않았고, 그래서 62마리나 데리고 올 수 있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으시지 않고 저를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소는 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분이 저를 사랑하시고 제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너무도 감사해서 이 소를 드립니다. 모두 드려야 하지만 아직 제게는 어린아이가 있고 우유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교회나 목사님이 필요하시다면 소를 드리겠습니다. 제가 가진 소는 하나님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래서 선교사님도 18마리나 살려주신 하나님께 한 마리를 드려 감사드렸더니 다른 성도들도 소와 양과 염소 등 감사예물로 가져와서 하나님께 드렸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이미 감사의 표현이 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4:6-7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의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끝으로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감사의 표현 중의 최고의 표현입니다. 
시편 122:4절 말씀에 보면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여기서 그리로 올라간다는 것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즉 감사의 제사를 드리려고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형통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장 잘 된 감사의 표현은 예배입니다. 입택, 개업, 첫돌, 회갑 등 갖가지 감사예배가 많습니다. 이 예배가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순수하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면 그의 삶이 형통해집니다. 감사의 표현가운데 가장 좋은 것이 예배입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야 말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배에는 나의 모든 기도와 찬송과 헌금과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레위기7장에 보면 여호와께 드릴 화목제 희생의 규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화목제사를 드릴 때 규례를 살펴보면 12절에서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만일 그것을 감사하므로 드리거든 기름 섞은 무교병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를 그 감사 희생과 함께 드리고 / 또 유교병을 화목제의 감사 희생과 함께 그 예물에 드리되 /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로 돌릴찌니라” 

화목제사는 하나님과 화목, 관계개선을 의미하는 제사로서 이것은 반드시 감사의 제사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교전병과 함께 감사희생을 함께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감사의 희생’이란 제물을 의미합니다. 이 제물은 소,양,염소 중 형편에 따라서 드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릴 때는 항상 헌금을 준비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희생의 제물로 드림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실 감사의 예배를 드릴 때는 미리 헌금을 준비함이 바람직합니다. 가정예배를 드리던 입택예배를 드리던 돌예배를 드리던 회갑이나 칠순의 예배를 드리던 희생의 제물을 미리 준비하여 정성껏 드림이 좋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골로새서2장7절에 보면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경우에 배우는 사람이고, 참으로 강한 자는 자신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고, 정말 부자는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의 형편에 자족하면서 감사하는 삶이 되십시오. 그 감사의 마음으로 모든 일에 입술로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하십시오. 주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만민 중에 전해서하는 것으로 표현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에서 찬양으로 감사의 표현을 하십시오. 여호와의 이름을 자랑하며, 여호와의 능력을 구하는 것으로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감사의 예배를 자주 드리십시오. 당신의 감사의 희생은 여러분의 삶을 형통케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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