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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 (시 50:14~15,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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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 (시 50:14~15, 22~23)


  건물 안의 공기가 환풍기 시설의 힘으의 천정 위로 해서 바깥쪽으로 빠질 것은 빠지고 새로 들어올 것이 들어와야 신선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처럼, 사람의 심령과 생활에서도 적절한 '순환'이 일어나야 건강하고도 온전한 상태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영적 환풍기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감사생활'입니다.
  감사야말로 우리 쪽에서 하나님께로 올려야 할 것이 올라가게 하며 그 대신에 우리 쪽으로 들어와야 할 것이 들어오게 만들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영장(지휘자)들 중의 한 명이었으며 이 시편 50편을 노래한 "아삽" 역시 그런 사실을 체험한 성도였습니다.
  이제 2008년도 상반기에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총들을 기억하며 예배드리는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은 이 시편을 통하여 과연 기독신자의 신앙생활에서 감사를 통한 영적순환이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위로 올리는 예배의 필수요소입니다. 

  본문 14절과 15절에 "14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기록했습니다. 

  본문 앞에 있는 7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라고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시면서 그들이 당신께 드려야 할 제사에 대하여 선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우선 8절에서는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고 하셨습니다.
  제사에는 "제물"이 "항상" 포함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천명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준비하는 점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아무 책망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에 그런 짐승의 "번제"가 항상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그 제사가 완벽한 것이 되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10절 이하에서 하나님께서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라고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고 계시듯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잡수시고 싶어서 제사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3절에서도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라고 재삼 강조하고 계시듯이, 사람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부족한 그 무엇을 채워드리는 행위'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제물이 제사에 필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그 제사를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꼭 더해져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그것을 두고 오늘 읽은 본문 14상반절에서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조금 바꾸어 표현한다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물은 감사하는 마음이다.'라는 말입니다.
  즉 앞에서 바쳤던 짐승의 번제라는 구체적인 제물에 감사라는 마음의 제물이 합쳐짐으로써 비로소 온전한 제사가 된다는 뜻인 것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14하반절에 보면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라고 했습니다.
  이 '서원'은 '감사'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 편에서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하여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제물과 함께 바치는 아주 당연한 반응인 것에 비하여, 서원은 그것을 작정하는 성도 편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어떤 선한 일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이면서도 자발적으로 약속하고 시행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감사라는 것은 무슨 신앙이 아주 깊거나 선한 일에 특별히 열심히 있는 수준에 도달한 신자가 되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신자라는 이름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이것만은 꼭 할 줄 알아야 할 정도로 신앙생활의 초보요 기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22절에 보면 하나님께 이런 감사조차 드릴 줄 모르는 자라면 사실상 이미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이나 마찬가지라고 단정 짓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사 즉 예배는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자"로 모시는 행위,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자기 머리 위로, 하늘 위로, 저 지극히 높은 보좌 위로 올리고 또 올리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예배자에게 진정 감사드리는 마음이 없이는 결코 그런 참된 예배가 드려질 수 없습니다.
  또한 예배는 그저 사람 편에서 하나님을 높인다고만 다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으시는 하나님 편에서 기뻐하실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그 점에 있어서도 감사란 필수불가결의 요소인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 중에서 우선 십일조는 엄격히 따질 때 '헌금의 한 종류'가 아니라 '십일조' 그 자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지극히 당연한 의무수행에 불과한 것이므로 '우리가 무엇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과는 그 성격 자체가 벌써부터 다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우리교회에서는 예배 순서에 그냥 '헌금'이라고 하지 않고 '십일조와 헌금'이라고 구분해 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처럼 십일조는 하나님 앞에서 '법적으로' 꼭 바쳐야 할 필수 헌금이지만, 감사헌금은 하나님 앞에서 '자발적으로' 바쳐야 할 헌금 중에서 가장 기본에 해당되는 헌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사헌금은 사실 매 주일 한번 씩은 바쳐야 할 헌금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 아무리 그래도 매 주일마다 감사헌금 드린다는 것은 너무 자주 하는 것 같습니다. 십일조도 한 달에 한 번 월급 받을 때마다 하니까 감사헌금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아서 하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월급 받는 사람은 한 달에 한 번, 2주에 한 번 월급 받는 사람은 격주로, 주급을 받는 사람만 매주 감사헌금을 드려야 한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해서 일 주일에 한 번 감사헌금 드리는 것이 '너무 자주'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엿새'라는 날을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과 은혜 가운데 생존하고 활동하다가 주일을 맞이하게 되는데, 진정한 신자라면 어찌 그 심령에 감사제목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매일 드려야 할 것을 겨우 일주일에 한번만 드리니 오히려 부족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또한 '범사에 감사'라는 것이 아주 훌륭한 감사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무슨 좋은 일이 있어야만 감사헌금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하고 넘어간,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될, 넘겨서는 안 될 모든 감사제목들' 통틀어서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특별한 일'에 대해서는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감사헌금을 드려야 하지만 '범사'에 대해서는 그저 감사하는 마음만 가지고 헌금은 안 드려도 된다고 어떻게 말할 수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지난달에 2008년 회계연도 상반기가 끝났는데 참 고마운 일 중에 하나가 우리교회의 일반감사헌금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십일조에 비해서는 감사헌금이 좀 약했었는데 올해부터는 감사헌금도 예산을 초과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록 국내 경기는 나쁘고 혹 개인 수입이 줄어들 때에도 우리의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과 손길은 더 풍성하게 자라날 때 그것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더 기뻐하시겠습니까? 

  감사드리는 마음이 없는 예배는 '위로 올라가는 예배'가 아니라 여전히 '구걸하는 앉은뱅이들의 자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의 제물이 결핍된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아니라 순전히 불평불만만 가득한 '다고다고 하는 거머리'들이 자기 소원 먼저 들어달라고 하나님 앞에 줄 서서 경쟁하는 시간일 뿐입니다. 
  결국 그런 예배는 '예배의 형식'은 있지만 '예배의 본질'을 상실한 빈껍데기요 실질적으로 하나님께 아무 영광도 돌리지 아니하는 '사람의 군집'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번제물이 항상 하나님 앞에 드려지고' 있는 것처럼 그와 동시에 '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마음을 함께 바침으로써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생활의 기본을 이행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2. 감사는 더 큰 은혜와 축복을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받게 해 주는 통로입니다. 

  본문 22절과 23절에 "22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기록했습니다.

  역시 이 본문 앞 16절 이하에 보면 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에 대하여 책망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참으로 놀라운 것은 16하반절에서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입에 두느냐"라는 말씀입니다.
  즉 여기서 하나님께서 언급하시는 "악인"은 그냥 전혀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가 아니라 제법 율법도 배우고 제 딴에는 '하나님의 언약 운운'할 줄도 아는 이스라엘 백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정도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와서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라는 책망을 듣고 있을 뿐 아니라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는 저주까지 받게 된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이어지는 23상반절에서 상기시켜 주고 있듯이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감사의 제사"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에 23하반절에 보면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 즉 감사의 제사로서 당신께 영광을 돌릴 줄 아는 자에게는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란 '죄로부터의 구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죄 용서와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슨 감사제사를 드린다고 그것이 '공로'가 되어서 보답으로 주어질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궁극적인 구원'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과 십자가의 공로로 이미 주어진 것이며, 성도가 감사 제사를 드리게 되는 것도 바로 이미 주어진 이런 은혜 때문에 결과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반응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감사의 제사로서 하나님 앞에 옳은 행위'를 보이는 자에게 보여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구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일반적인 은혜로 도와주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아까 15절에서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자'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약속하신 것이 바로 이와 꼭 같은 맥락인 것입니다. 

  이미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하여 감사드릴 줄 아는 자라야만 하나님 편에서도 계속적으로 더 좋은 것으로 베풀어 주고 싶으실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감사할 줄 모른 자에게는 축복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감사에 보답해서 축복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받은 축복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자는 사실상 하나님을 잊어버린' 배은망덕한 자가 분명하기 때문에 더 이상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며 설교를 듣고 다른 사람 앞에서 '성경 말씀이 이렇고 저렇고' 운운 하는 교인들 중에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즉 감사라는 옳은 행위가 전혀 없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우리의 정곡을 찌르는 경고가 아니겠습니까?
  '네가 신앙생활 한다면서도 진정한 축복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내가 이미 내려준 은혜에 대하여 조금도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은 정말 저와 여러분의 양심을 부끄럽게 만드는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까?

  제가 옛날에 미국에서 친구들과 골프를 치러 갈 때면 항상 김밥을 싸서 나갔습니다.
  미국 퍼블릭 골프장에서 요깃거리로 사 먹을 수 있는 것이란 주로 핫도그이고 정말 잘해야 햄버그 정도인데, 천성이 '신토불이'인 저는 그런 것 먹고서는 전혀 힘을 쓸 수가 없는 체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혼자 먹을 수는 없으니까 항상 4인분을 준비해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운동 약속한 날이 오면 저 혼자 다른 친구들보다 두 시간은 더 일찍 일어나서 김밥을 만들어야 했었습니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저도 혼자 놀러 나가면서 제 아내에게 김밥까지 그것도 4인분씩이나 만들어 달라고 할 염치가 없어서 항상 제가 손수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매번 골프 칠 때마다 서비스해 주었더니, 언제부터인가 이 친구들이 제가 김밥을 건네주면 고맙다는 말도 없이 마치 자기네들이 어디 주문했던 음식 배달받는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받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감사인사는커녕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제가 김밥 내미는 쪽으로 손만 뻗어서 김밥을 낚아채듯 받아 자기 골프백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저도, 물론 제가 무슨 큰 절이나 받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무심하게 받아가는 친구들에게 더 이상 정성을 쏟기가 싫어(?)졌습니다.
  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밥 안 먹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무언가 '밥'을 해 가지 않을 수는 없었고, 그 대신에 그 김밥을 만드는 정성과 그 김밥의 질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그것을 실제로 한번 잡수어 보셨던 우리 교회의 어느 권사님의 표현에 의하면 처음에는 '고급요리' 수준이었던 그 김밥이 나중에 가서는 주먹밥 수준의 '인스턴트식품'으로 격하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꼭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릴 줄 모르는 교인은 그 하나님의 살아 계심이나 그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나 그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해 주시는 것을 모르는 사람, 즉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나 실상 아무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도대체 왜 더 좋은 것으로 베풀어 주고 싶으시겠습니까?

  우리교회 할렐루야 찬양대의 오케스트라에서 봉사하고 있는 장하얀 양은 정말 장래가 촉망되는 첼리스트인데, 얼마 전에 프랑스에서 열린 '앙드레 나바라 국제 콩쿠르' 대회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의 유망한 젊은 첼리스트들 중에서 21명만 뽑힌 1차예선을 통과하고 2차예선에 나가게 되었는데, 세계무대에 처음으로 도전하게 된 장하얀 양도 물로 최선을 다했겠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장하얀 팬클럽 회장'인 저도 뒤에서 열심히 응원을 보내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겨우 3명만 나가는 결선에는 아쉽게도 뽑히지 못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무슨 대회에 나가서 떨어져 본 적이 없던 장하얀 양이기 때문에 혹시나 실망이 너무 크지 않을까 하고 저는 나름대로 무척이나 걱정이 되어서 '힘내세요, 파이팅'하고 메시지를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장하얀 양의 대답은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며 사랑이었음을 깨닫고 더 노력해서 다음에는 더 나은 모습으로 도전하겠다는 각오'와 함께 '기도해 주신 목사님과 성도님들에 대한 감사와 이런 기회를 통하여 저를 연단시키시고 성장시켜 주신 주님께 대한 감사' 등 구구절절 감사 감사로 꽉 차 있었습니다.
  정말 얼마나 기특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진심으로, 장하얀 양이 동아콩쿨에서 1등 했을 때보다도 이번이 훨씬 더 자랑스럽고 더욱 사랑스러웠습니다.
  물론 이전보다 훨씬 더 열렬한(?) 팬이 되었으며 앞으로도 팬클럽 회장으로서의 후원 역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면, 사실 그 자체는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도,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감사를 그렇게 크게 받아 주십니다.
  우리의 감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이 비하면 실로 아무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간이라도 빼어 줄 듯이'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를 더욱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감사의 제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으로써 그처럼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베풀어 주시는 더 큰 은혜와 축복을 꼭 체험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건물 공기도 순환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영적 순환이 부단히 일어나야 합니다.
  즉 '올라갈 것이 올라갈 때에 들어올 것이 들어오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뜨거운 감사가 제물과 함께 하나님께로 올라갈 때 그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시원한 축복의 바람이 우리 삶에 충만히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런 순환이 없는 인생은 자연히 숨이 막힐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로써 하나님과 교통하는 '환풍기' 없이 그저 자기중심이라는 방 안에서 '선풍기'만 돌리는 사람은 그 꽉 막힌 답답한 삶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길이 없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참된 기쁨이 없다면 바로 이런 감사를 드릴 줄 모르기 때문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애를 써 보아도 구체적인 축복을 여태껏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가 이미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해서조차 감사드리지 않고 있기 때문은 아니겠습니까?
  그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감사'로써 그 막힌 물꼬를 틀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맥추감사절은 2008년 상반기를 생각할 때 우리들 모두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특별한 감사제목이 있는 주일입니다.
  먼저 우리 조국에 대해서는 10년 동안 이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국시와 사상을 어지럽혀 왔던 좌파정권이 종식되고 그 대신에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대통령과 새 정부가 세워졌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두고 진심으로 감사드릴 줄 알아야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더 좋은 것으로 축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 교회에 있어서는 교육관 신축과 개관이라는 또 하나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받은 축복을 진심으로 감사드릴 줄 알아야 하나님께서도 앞으로도 우리의 '잔이 넘치도록' 더 채워 주시지 않겠습니까? 

  또한 마찬가지로, 우리가 2008년 상반기에 베풀어 주신 모든 범사를 기억하며 정말 뜨거운 감사를 올려드려야 2008년 하반기는 오히려 '받아 쌓을 곳이 부족할 정도로' 더 많이 베풀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감사절뿐만 아니라 매주일 아니 매일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로 제사를 올려 드리며 그런 옳은 행위로 당신을 영화롭게 하는 자에게 내려주시는 각양 좋은 은혜와 축복을 평생토록 누리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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